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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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화. 대치
여전히 교문 밖에는 광이 나는 검은색 수입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 앞에는 연상호가 교문에 기대어 서 있었고.
방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대로 계속 있어 봐야 딸 앞에서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으니까.
“후우..”
생각만 해도 열이 올라왔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수확은커녕 일방적인 손실만 얻고 돌아가는 셈이다.
그건 사업가로서는 최악의 트레이드였다.
‘올 거야.’
아직 방법은 있었다.
조금 늦는 거 같긴 하지만 곧 세연이가 시은이를 데리러 올 거다.
입구는 교문 하나뿐.
이 자리만 지키고 서 있으면 만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자책할 필요 없어. 변수였으니까.’
연상호에게는 추진력뿐 아니라 뛰어난 능력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자기합리화였다.
스스로의 행동에서 잘못을 찾기보다는, 그 일이 틀어진 것에 대한 다른 이유를 찾으려 하는 사고회로.
역시 장점은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멘탈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다만,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본질적으로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시은이가 없었잖아. 있었으면 반드시 알아봤을 거야.’
애초에 방법이 틀렸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로 일이 틀어지게 된 변수에 관해서만 생각한다.
도피인 동시에 자기합리화였다.
그건 연상호의 기분을 꽤나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단지 해프닝일 뿐이다.
되돌리면 그만인 사소하기 그지없는 해프닝.
툭.
그때였다.
왠지 모르게 옆에 지나가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 건.
“.. 꽃?”
꽃을 들고 있었다.
자신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생화는 아니었지만 꽃의 생김새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리고 꽃은 하나가 아니었다.
똑같이 생긴 꽃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다.
‘애가 둘이라도 되는 건가.’
젊어 보이는데 의외였다.
외관만 보면 나이는 비슷하거나 조금 더 어리다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거 같은데.
그런데 왜일까.
환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 묘하게 거슬리는 건.
‘뭐,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라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연상호는 시선을 거뒀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다.
그건 둘째치고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사람이었다.
나쁘지 않게 생기긴 했지만, 자신과 비교하면 그냥 봐줄 만한 정도이고.
적어도 연상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슥.
시선을 내린 연상호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 어?”
엉망이 되어 있는 꽃다발.
“이런 미친……”
얼마나 세게 쥐었으면 줄기는 꺾이고 꽃잎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다.
이런 꽃다발을 딸에게 줄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목전까지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참아내며, 연상호는 신경질적으로 땅바닥에 꽃다발을 내던졌다.
팍.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고개를 든 연상호는 두 눈을 의심했다.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방금 본 남자와 시은이로 착각했던 여자아이, 그리고……
“.. 시은이?”
이상했다.
왜 시은이가 세연이가 아닌 낯선 남자와 함께 나오는 걸까.
꿈틀대듯 무언가 올라오는 기분.
“잠깐만요.”
발을 앞으로 뻗었다.
자연스레 입에서 쏘아붙이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당신, 누구예요?”
두 시선이 교차했다.
그리고 둘 중 누구도,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
“당신, 누구예요?”
들려온 물음과 반대로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누군지.
‘설마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납게도 노려본다.
적대감을 감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긴 그랬다.
처음 본 사람한테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거 자체가 일반적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 정도로 노려보면 시선을 피할 법도 하지만 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방금 자초지종을 들어서일까.
“…”
나도 정면으로 눈을 응시했다.
딱히 적대감을 담지는 않았지만 지긋하게 바라보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입을 뗐다.
“여기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남자가 빈정대듯 대꾸한다.
“그걸 물어본 게 아닌데.”
“그럼 뭘 물어본 거죠?”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그쪽이 누구길래 시은이랑 같이 나오는지 물은 거 아닙니까.”
거슬리는 말투를 구사한다.
중간중간에 반말을 섞는 것부터 신경질적인 어투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마 뒤에서 위축되어있는 시은이와 연두가 아니었다면, 바로 내면 깊숙한 곳에 묻어둔 본성이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전에 시은이 할머니를 만났을 때와는 또 달랐다.
그때는 나이를 생각해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필요는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니까.
‘화를 내야 하는 건 내 쪽이고.’
썩 유쾌하지 않았다.
연두를 자기 딸이라 생각해서 꽃다발을 건네고 접촉했다는 것도.
둘뿐이었다면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받았을 테지만, 아이들이 있기에 간신히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두 아이의 보호자는 나니까.
“부탁을 받았습니다.”
“부탁?”
“네.”
“누구한테 부탁을 받아요?”
“시은이 어머니한테요.”
“세연이?”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기가 찬다는 듯이 실소를 내뱉으며 말한다.
“또 도돌이표네. 그러니까 그쪽이 뭔데 세연이한테 그런 부탁을 받냐니까?”
그 순간 붙잡고 있던 끈이 풀어졌다.
“말조심하지.”
“.. 뭐?”
“내가 그쪽 친구인가? 둘 중 하나만 하든지, 어설프게 존댓말 반말 섞는 건 그만해줬으면 좋겠는데.”
벌어지는 입.
반응을 보아하니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한 모양이다.
“하아.. 너 몇 살인데?”
“대답할 이유는 없는 거 같고.”
기억하기로 상대는 세연씨보다 연상이다.
내가 더 어릴 게 뻔하다.
불리한 주제는 대답하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그나저나.. 웃기는군.’
세연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연씨 어머니와 이 남자는.
할머니 쪽은 ‘내가 누군지 알아?’ 같은 진부한 대사를 뱉더니 이 남자는 몇 살이냐며 서열정리를 하려 든다.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대충 뭔지는 알겠어.’
남자가 드러내는 적대감과 비아냥의 이유가 대충은 감이 왔다.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그러나 역시 내게는 그 오해를 풀어줄 의무 또한 없었다.
“하하, 재밌네.”
표정과 말이 반대다.
하나도 재미없는 표정인데.
“그래요, 원하는 대로 존댓말 해줄게요. 내가 그쪽이랑 싸우려고 이러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좋습니다.”
딱히 존댓말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 바라던 바였다.
싸우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시은이만 넘겨줘요.”
“싫습니다.”
넘겨주긴 뭘 넘겨줘.
시은이가 물건도 아니고.
“나, 시은이 아빠입니다.”
“그래요?”
“네. 그러니까 빨리 시은이 보내세요, 여기로.”
“안 됩니다.”
“지금 나랑 말장난합니까?”
“부탁을 받은 입장입니다. 그리고 그쪽이 시은이 아빠라는 걸 믿을 수 있는 근거도 저한테는 없고요.”
“아니, 그건……”
시은이 아빠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세연씨에게 부탁받은 건 시은이와 함께 하교하는 일이었다.
부탁을 우선해야 한다.
“시은이 성이 연시은이잖아요! 내 이름이 연상호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제 이름이 연주원이라고 하면 시은이 아빠가 되는 겁니까?”
“아니, 이런……”
여기서 더 하면 정말 말장난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입을 뗐다.
“정 그러면 시은이 어머니한테 연락을 하시면 될 거 아닙니까.”
“그건……”
이럴 줄 알았다.
역시 세연씨는 전혀 모르는 상황인 거겠지.
모든 활로가 가로막힌 그는 결국 감정에 호소하는 걸 선택했다.
“시은아.”
양손을 뻗으며 말한다.
“아빠야.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
“자, 이리 와, 아빠랑 가자. 응?”
만약 시은이가 가려고 해도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이 남자가 시은이 아빠라는 걸 확신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다.
심증만으로 보낼 수는 없다.
그런 내 귀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목소리.
“.. 싫어요.”
생각지 못한 한 마디였다.
“.. 시은아?”
“따라가기.. 싫어요.”
떨리지만 분명한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들은 연두도 시은이의 손을 꼭 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제 확실해졌다.
역시 시은이는 절대로 보낼 수 없다.
“그럼……”
고개를 돌려 걸어가려는 참이었다.
“잠깐만! 나는……”
충동적이었다.
연두의 손을 놓고 그를 향해 걸어갔다.
갑작스러운 내 접근에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방어 자세를 취한다.
“뭐, 뭐..”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적당히 해.”
“.. 뭐?”
“이 방법밖에 없었나? 시은이를 생각했다면 절대 이러지 못했을 텐데.”
그게 전부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고개를 돌려 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
이번에는 따라붙지 않았다.
한동안 느껴지는 건 고요한 적막뿐이었다.
***
어찌어찌 집에 도착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세연씨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는 시은이를 데리고 있어야 했으니까.
“냐아..!”
평소처럼 반기는 누렁이.
“잠깐만, 얘들아.”
처음이었다.
하교하는 동안 이렇게 말이 없었던 건.
억지로 말을 붙이기도 뭐해서 나도 조용히 걸어왔고.
‘계속 이럴 수는 없지.’
이런 상황이라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더 침울해질 뿐이다.
아이스티를 타 왔다.
“자, 얘들아.”
“감사합니다.”
“아빠는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는 괜찮아.”
홀짝. 홀짝.
또다시 정적.
홀짝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런 두 아이를 바라보다가 나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미안해. 아까는 무서웠지?”
서로 험한 말을 뱉은 건 아니지만 그 분위기는 그대로 전해졌을 거다.
저번에도 그렇고.
의도치 않게 이런 일이 연달아 생긴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연두가 나를 향해 말한다.
“괜찮아여, 아빠..!”
옆에 있는 시은이를 바라봤다.
솔직히 보기 어려웠다.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어떤 마음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
전에 집에서 기지를 만들고 놀았을 때 시은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아저씨.’
‘응.’
‘아빠는 꼭 있어야 해요?’
그 뒤에 덧붙인 말.
‘아빠 만난 적 있는데 얼굴이 기억 안 나요.’
그 말대로였다.
시은이는 아빠의 얼굴조차 잘 알지 못했다.
그런 아빠가 예고도 없이 찾아왔고, 단지 그 사실만으로도 크게 충격을 받을 만 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시은아.”
“네.”
“많이 놀랐지?”
내 말에 시은이가 자그맣게 대답한다.
“저는 괜찮아요.”
이어지는 한 마디.
“죄송해요.”
“응?”
“저 때문에 아저씨가……”
곧바로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야, 시은아.”
의도치 않게 얽히긴 했지만 그건 결코 시은이 탓이 아니었다.
세연씨 탓도 아니고.
“시은이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그런 내 말에 시은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 보고 싶었어요.”
“응?”
“엄마는 말 안 해주니까.. 한 번은 아빠가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말끝을 흐린다.
굳이 듣지 않아도 어떤 말이 생략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왜일까.
왜 시은이가 이런 일로 아파해야 하는 걸까.
“괜찮아, 시은아.”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때였다.
앞에 놓아둔 핸드폰 진동음이 들려온 건.
툭.
손을 뻗어 발신인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세연씨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