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44)
744화. 첫사랑
하루가 시작됐다.
1학년 5반에는 늘 일찍 등교하는 하연이와 1학기 회장이었던 성우가 도착해있었다.
성우가 시간표를 바라봤다.
‘1교시는 수학인가.’
성우는 순서별로 교과서를 정리해 책상 밑 서랍에 넣었다.
뿌듯한 얼굴.
비록 2학기가 되며 회장의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아직도 성우는 회장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본래 계획과는 다소 틀어지긴 했다.
1학기 회장 선거 때 치열한 접전(?)을 벌인 뒤에 회장의 임무를 수행하며 생각했으니까.
‘서연두한테 바통을 넘겨주는 거야.’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연두는 괜찮은 아이였다.
아니, 괜찮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회장으로서 위기를 맞을 때마다 도움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의 자신과 달리, 연두는 밝은 에너지로 반을 이끌 능력이 있다는 걸.
그러니 자연스레 바통을 넘겨줄 생각이었다.
‘사퇴하겠습니다..!’
설마 생각지 못했다.
1학기와 마찬가지로 2학기 회장 선거까지 사퇴할 거라고는.
그러고선 추천했다.
‘하연이를 추천합니다!’
‘.. 으, 응?’
그렇게 회장은 엉겁결에 연두의 첫 짝꿍이었던 임하연이 됐다.
사실 걱정이 됐다.
소심한 성격인 임하연이 반을 이끄는 회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그런데……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소심하게 밝힌 포부와 달리 생각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었다.
특유의 꼼꼼한 성격이 빛을 발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연두와 부회장이었던 시은이, 그리고 레나가 옆에서 자기 일처럼 도와주기도 했고.
설마 이런 그림을 전부 예상한 거라면……
‘.. 서연두.’
대단한 통찰력이었다.
그와 별개로 성우에게는 1학기 회장으로서 역할을 다할 의무가 있었다.
마침 교실에는 둘뿐이었다.
교과서 정리를 마친 성우는 하연이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임하연.”
“.. 으, 응?”
갑작스런 부름에 깜짝 놀란 하연이가 반응했다.
“요즘 힘든 건 없어?”
1학기 때 회장을 한 만큼 회장으로서 느끼는 고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다.
이와 같은 질문을 건넨 건.
어떤 고충이라 하더라도 가장 실질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었으니까.
쭈뼛대는 하연이를 향해 덧붙였다.
“괜찮으니까 편하게 얘기해 봐. 가장 힘든 게 뭔지.”
다정한 말투.
애석하게도 성우가 빼먹은 게 있었다.
회장으로서.
그 말이 붙지 않으면 지금 하는 말들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멘트였다.
순수하게 상대를 걱정해서 하는 말처럼 들리니까.
‘.. 뭐, 뭐지?’
그리고 하연이는 제대로 오해하고 있었다.
뭘 말해야 하지?
“그, 그게……”
머릿속이 복잡했다.
갑자기 힘든 걸 물으니 뭘 얘기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런 진지한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거 같았다.
결국 하연이는 눈을 꾹 감고 뱉었다.
“잠이 너무 많아져서 힘들어!”
“.. 응?”
“예, 예전에는 아침 일찍 잘 일어났는데.. 2학기가 되니까 엄마가 깨워도 잘 못 일어나겠어서.. 맨날 일어나기 싫다고 투정 부리고 그래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다 보니 쑥스러운 이야기를 해 버렸다.
성우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서 회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건가.’
이런 생각지 못한 고충일 줄이야.
안타깝게도 뭐라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딱히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성우가 말했다.
“어, 뭐.. 그래.. 힘내라.”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무 무성의하다는 생각이 들어 덧붙였다.
“미녀는 잠이 많다잖아.”
“…!”
빨개지는 볼.
별생각 없이 성우가 던진 말의 임팩트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
스튜디오 초록.
일러스트 작화가 거의 끝나가는 만큼, 우리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완성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기한을 못 맞출 걱정은 사라졌다는 거다.
“우와.. 도연님.”
“네.”
“어떻게 이런 구도를 생각했어요? 저라면……”
감탄하는 최표식.
실제로 감을 잡기 시작한 시점부터 서도연은 본격적으로 역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현시점은 에이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본의 아니게 예언을 한 셈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에이스는 도연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부끄럽지만 프로젝트 초창기에 내가 한 이야기였다.
생색을 내려는 건 아니다.
막상 도연씨는 기억도 못 할지도 모르지만, 그 말이 현실이 돼서 기쁘면서도 뿌듯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그림체에 대한 감만 잡는다면 기본기에 강점을 보이는 서도연이 날아오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으니까.
‘구멍이 없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닫게 된 사실이다.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작화팀.
경리인 유하나까지 포함해서 팀 내에는 구멍이 없었다.
개개인으로 볼 때도 그렇고, 각 팀원의 강점이 뚜렷한 만큼 팀적으로도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는 느낌이었다.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 속에서 혹시나 내가 구멍이 되는 건 아닐지.
‘기분 좋은 긴장감이지.’
그건 나로 하여금 좀 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어 줬다.
워낙 현재 퍼포먼스가 만족스러운 탓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굳이 서둘러 이 구도를 깰 필요가 있을까 하고.
물론 언제까지나 현 멤버만으로 계속 갈 수는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허나 생각했다.
좀 더 지금 상태를 유지하며 내실을 단단히 하고, 천천히 변화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 생각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완벽하다고 생각했어.’
원래 내 생각대로라면 그 완벽할 때가 변화를 줄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상태를 유지할 생각을 하고 있다.
나쁘게 말하면 안주였다.
지금 상태에 만족하는 나머지,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거다.
따라서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현 상황에 만족할수록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종적으로 내가 그리는 작화팀의 모습.
그건 내가 없더라도 팀으로서 역할을 해낼 수 있어야 했다.
하나의 나무처럼.
현 팀원들.
나를 포함해서, 서도연, 한경우, 선우영, 그리고 경리인 유하나까지.
우리는 총 여섯 개의 가지가 되는 거다.
뿌리 깊은 나무라면 그 가지 중 하나가 잠깐 기능을 상실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빈자리를 메워줄 다른 가지들이 있으니까.
‘그래.’
이번 프로젝트가 그 경계선이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별개로, 우리의 현주소를 가장 정확히 알려주는 건 대중의 반응이다.
그에 따라 내 판단은 달라지게 되겠지.
만약에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정해져 있었다.
발을 뻗는다.
가지가 정체되지 않고 더 뻗어나갈 수 있도록.
‘팀원들을 뽑는 거야.’
몇 명이 될지는 모른다.
그야, 당연하다.
우리를 팀으로서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줄 팀원이자 동료를 구하는 일이니까.
“무슨 생각 하세요, 초록님?”
“아.”
유하나의 물음에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직은 일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번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 말을 꺼내도 늦지 않으니.
그런 나를 향해 유하나가 말한다.
“그럼 이거 좀 보세요. 도연님이 그린 그림인데……”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서도연의 그림을 바라봤다.
어떤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막상 눈을 마주치니 도연씨는 낯간지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앞서 가지에 비유했듯, 각 팀원들은 수장으로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될 거다.
수평적인 팀 동료이자 리더와 같은 역할.
파트너.
삼촌의 회사에서 쓰는 명칭으로는 파트너였다.
그리고 도연씨는 분명히 팀원들을 잘 이끄는 훌륭한 파트너가 될 게 분명하다.
대학생 시절 비협조적인 팀원과 조를 꾸리면서도, 어떻게든 멱살을 잡고 캐리해서 수석을 꿰찰 정도였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협조적인 팀원이 주어진다면 날개를 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분명히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겠지.
‘우영이는.. 뭘 보는 거지?’
손에 펜을 쥔 채로 헤드폰을 쓰고 데스크톱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뭘 저렇게 열심히 보는 건지 눈도 붉게 충혈되어있고.
직접적으로 묻는 건 방해가 될 거 같아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화면을 본 내 입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 푸흣.”
걸그룹의 뮤직비디오.
헤드폰을 뚫고 음악이 새어 나온다.
“암 온 더 넥스트 레벨~ 절대적 룰을 지켜~ ♪”
뭘 하는지는 알겠다.
아이돌을 그려야 하니 실제 아이돌을 보며 영감을 받으려는 거겠지.
웃은 이유는 하나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우영이가 걸그룹을 보며 눈이 충혈되어있다는 사실 자체가 웃음 포인트였다.
걸그룹 멤버라고는 주연이밖에 모르는 녀석이었는데.
심지어 자그맣게 중얼거린다.
“결속은 나의 무기…”
역시 그림에 미친 녀석이었다.
***
퇴근하기 전에 우영이와 짧게나마 대화를 나눴다.
“아까 네스파 뮤비 보고 있던데.”
“네.”
“왜 보고 있던 거야?”
“그림에 참고가 돼서요.”
역시 그림에 관한 거라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우영이였다.
나는 넌지시 입을 뗐다.
“걸그룹이라면 프로미스 뮤비도 있잖아. 프로미스에는 주연이도 있으니까.”
“거기엔 없어요.”
“뭐가?”
“오늘 그린 원재경을 닮은 멤버요.”
원재경은 ‘드림 큐!’에 나오는 비주얼 멤버였다.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우영이가 말한다.
“원재경은 네스파의 캐리나를 닮았거든요.”
하마터면 또 웃음이 터질 뻔했다.
왜 우영이가 걸그룹 얘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바로 이어지는 녀석의 말에 간신히 참아내긴 했지만.
“실제 아이돌을 보는 게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래?”
“네. 동작은 말할 것도 없고 의상 디테일도 참고할 게 많아요. 저는 걸그룹이 어떤 동작을 취하는지도 모르고, 걸그룹 의상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까요.”
확실히 그렇다.
나도 애매한 부분이 있으면 실제 아이돌을 참고하곤 했다.
그래서 우영이의 변화가 놀라웠다.
원래는 전부 멋대로 그리는 성향이었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생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그랬다.
“그리고……”
“그리고?”
“왜 사람들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건지 조금은 알 거 같아요.”
그 말에 나는 장난스레 말했다.
“우영이 너, 좋아하는 아이돌 생겼구나?”
“.. 네?”
“맞네! 누구야?”
“아니거든요!”
“에이, 솔직하게 얘기해 봐. 방금 얘기한 캐리나?”
잠깐의 침묵.
망설이는 듯하다가 우영이가 작게 입을 뗀다.
“캐리나는 제 스타일 아니에요.”
“.. 우영아.”
“네.”
“나한테는 상관없는데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면 안 된다?”
녀석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되묻는다.
“형은요?”
생각지 못한 역공에 바보같이 눈을 끔뻑였다.
“어?”
“형은 누구 좋아하는데요. 캐리나?”
“에이.. 나는 그런 거 없지. 알잖아. 나는 연두밖에 없어.”
“그거랑은 상관없죠.”
집요하다.
이 정도로 깊게 파고들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네스파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멤버 정도는 있을 거 아니에요.”
또 탈출을 시도했다.
“하하,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네스파는 내 얼굴도 모를 텐데.”
“네스파가 형 얼굴을 모르는 게 뭐가 중요해요. 그리고 형 얼굴 정도는 알 걸요, 아마?”
“…”
“얘기해 봐요.”
“진짜 그냥 팬심에 불과해.”
“알겠으니까.”
결국 나는 끝까지 사수하지 못했다.
“.. 윌터.”
“아, 진짜요?”
“그냥 요즘 단발이 잘 어울리더라고! 하하!”
아니, 이게 뭐라고 그러지.
괜히 머쓱해진 나는 우영이를 향해 말했다.
“나도 말했으니까 이제 너도 말해!”
“저요?”
“응.”
그게 공평했다.
절대 놔주지 않을 거 같은 눈빛을 보내니 결국 녀석이 입을 뗐다.
“저는……”
그런 와중에 나는 포착했다.
어느샌가 우영이의 귀가 빨개져 있다는 사실이.
이 녀석, 설마 진짜 좋아하는 건가?
‘하긴, 우영이도 남자니까.’
과연 누굴까.
기다림 속에 마침내 우영이의 말이 이어졌다.
“.. 굳이 꼽자면, 예리요.”
“뭐?”
“크흠..”
상상도 못 했다.
여기서조차 실존 인물이 아닌 ‘드림 큐!’의 예리를 꼽을 거라고는.
세상 쑥스러운 표정.
“지금 한 이야기는 서로 비밀로 하죠.”
“.. 비밀 확인.”
아무래도 우영이의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