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45)
745화. 연두퀴즈
주원과 우영의 대화를 들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다름 아닌 서도연이었다.
덜컥.
우연이었다.
찻잔을 들고 스튜디오 복도를 걷던 와중에 자그마한 대화 소리를 듣게 된 건.
자연스레 걸음을 멈춘 도연은 귀를 기울였다.
“에이, 솔직하게 얘기해 봐. 방금 얘기한 캐리나?”
초록님의 목소리였다.
캐리나가 유명 걸그룹 멤버라는 것 정도는 도연도 알고 있었다.
이어지는 우영의 목소리.
“캐리나는 제 스타일 아니에요.”
그제야 대화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상형 토크인 거 같았다.
신기했다.
우영이는 말할 것도 없고 초록님이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처음 보니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여자끼리 대화할 때도 이상형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니 말이다.
“.. 우영아.”
“네.”
“나한테는 상관없는데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면 안 된다?”
살짝 웃음이 나왔다.
진지하게 말하는 초록님의 모습도 그렇고,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우영이의 반응도.
그 뒤에 도연은 천천히 발을 뗐다.
‘이상해.’
이대로 계속 듣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엿듣는 듯한 모양새니 말이다.
그렇다고 끼어들기도 뭐하다.
대화 주제를 볼 때 둘이 얘기하게 두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그렇게 자리를 피하려는 참이었다.
“형은요?”
걸음이 멈췄다.
그 뒤에 또 한 번의 물음이 도연의 귀를 파고들었다.
“형은 누구 좋아하는데요. 캐리나?”
왜일까.
방금까지만 해도 떼려던 발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에이.. 나는 그런 거 없지. 알잖아. 나는 연두밖에 없어.”
초록님다운 대답.
그러나 우영이는 집요했다.
“그거랑은 상관없죠.”
몇 차례의 대화가 더 오갔다.
어떻게든 들으려는 자와, 어떻게든 대답하지 않으려는 자의 실랑이가.
승자는 우영이였다.
“.. 윌터.”
윌터 역시 네스파의 멤버였다.
캐리나와 이미지는 상반되지만 인기로는 밀리지 않는 멤버.
“아, 진짜요?”
“그냥 요즘 단발이 잘 어울리더라고! 하하!”
그리고 윌터는 단발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도연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였다.
“지금 한 이야기는 서로 비밀로 하죠.”
“.. 비밀 확인.”
도연이 흠칫 몸을 떨었다.
이렇게 되면 정말 비밀 이야기를 엿들은 거나 다름없었다.
다급히 발을 움직였다.
도망치듯 몇 발자국을 옮긴 도연은 마침 보이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 하아.”
실소가 나왔다.
왜 쓸데없이 대화를 엿들어서 이런 상황을 만든 건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 도연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
한눈에 봐도 긴 머리카락.
어깨와 가슴을 넘어 그 아래 부근까지 떨어지는 기장이 눈에 띄었다.
줄곧 유지해왔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짧은 머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그런데……
“너무 길지 않나?”
거울을 보며 도연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
우영이와의 대화를 끝낸 나는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스튜디오를 나섰다.
시간이 아직 여유로웠다.
‘이럴 때는 연두튜브만 한 게 없지.’
바로 연두튜브에 들어갔다.
[연두의 휴일을 보내는 방법!(feat. 누렁이)]오랜만에 누렁이가 잔뜩 등장하는 영상이었다.
나름 연두튜브의 마스코트인 만큼 한 번씩은 연두부에게도 보여줄 의무가 있으니까.
연두부의 반응이 떠오른다.
-와.. 오늘 미쳤다.
┖연두성분에 누렁성분까지.. 너무 달아!!
┖ㄹㅇ ㅋㅋ 이 썩을 듯.
┖누렁이 토실토실해진 거 봐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10분간의 힐링타임…
┖2배속충인 내가 유일하게 배속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채널…
┖그저 연두튜브.
역시나 반응이 좋았다.
하기야 연두와 누렁이 케미는 연두튜브 초창기 대부터 있었던 근본 케미니까.
이쯤 되니 한 가지 말해둬야 할 게 있다.
이모티콘.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껏 내가 만든 이모티콘은 총 두 개이다.
연두티콘과 연두부콘.
출시한 지 시간이 꽤나 지났지만 두 이모티콘 모두 아직까지 상위에 랭크하고 있는 스테디셀러였다.
사실 두 이모티콘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연두부콘이 좀 더 이모티콘에 적합한 느낌이긴 하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정인물보다는 추상적인 소재를 가져와서 이모티콘화하는 게 표현에 더 용이하니까.
그렇다.
연두부콘이 흥행을 기록한 건 ‘연두부’라는 소재가 큰 역할을 했다.
범용성이 높다고 해야 하나.
기본 틀을 잡아두고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이모티콘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얼마 전에 얘기를 나눴으니까.’
이모티콘 부서에서 내 담당자였던 제이디에게 연락이 왔다.
차기작을 내는 게 어떠냐고.
나는 대답했다.
‘지금은 조금 어렵겠네요.’
‘그런가요..’
‘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시간이 좀 날 거예요. 괜찮으면 그때 그려서 보내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기쁜 내색을 하면서도 그녀는 의구심을 표했다.
‘그런데 이모티콘을 완성하기에는 짧은 시간 아닐까요?’
‘초안은 금방 그릴 수 있을 거예요. 떠올린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어서요.’
‘그게 뭔지는……’
‘지금 말하면 재미없겠죠?’
그런 대화였다.
나름 두 번에 걸쳐 이모티콘을 제작하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이모티콘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소재라는 거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그것만 확실히 정하고 나면 다음은 술술 그려낼 수 있었다.
고려해야 할 건 간단했다.
범용성이 높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잡으면 된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대상이 존재했다.
이름하여……
‘누렁티콘.’
바로 누렁이였다.
특징도 뚜렷한 데다가 범용성도 높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점에서 조건에 완전히 부합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만큼 누렁이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연두 말고는 없을 거다.
의외로 중요한 점이었다.
내가 그리는 대상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는.
‘연두, 연두부, 그리고 누렁이.’
생각해보면 세 가지 모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대상이었다.
그래서일까.
누렁티콘도 잘 그려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뭐, 그 정도였다.
지금은 ‘드림 큐!’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마치는 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니까.
그런 와중에 장문의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가 좋아하는 고래.. 아니, 연두퀴즈입니다! 연두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아이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연두는 귀엽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벌을 받게 될까요?
음성지원이 됐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우연우 등판 뭐냐 ㄷㄷ
┖역시 연두튜브다. 지금 가장 핫한 변호사인 우연우까지 오게 만들 줄이야.
여담이지만 고래는 우연우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다.
그와 별개로 연두부, 아니 우연우가 낸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화를 내는 연두부도 많았다.
┖어떤 미친놈이 연두가 안 귀엽대! 어?
┖바로 무기징역.
┖이천만 연두부로부터의 철퇴형.
생각보다 분위기가 험악하다.
나도 궁금하긴 했다.
과연 변호사 우연우는 어떤 판결을 내렸을지.
시선을 내리니 들어온다.
-정답은 벌을 받지 않는다, 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문제의 핵심을 봐야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웃기네 진짜
┖문제의 핵심을 봐야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성지원 뭐냐고. 진짜 우연우인 거냐고.
┖이 드립을 이길 드립이 생각나지 않는다…
“푸흣.”
나도 웃음이 터졌다.
정말 법정에서 우연우가 발언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으니까.
이 정도면 재능이었다.
이런 댓글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톡.
한동안 웃다가 나는 따봉을 누르고 차 시동을 걸었다.
이제 그 연두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퇴근 시간.
여느 때처럼 서도연과 한경우는 퇴근길을 함께했다.
뉘엿뉘엿 져 가는 해를 바라보며, 분위기에 심취한 듯이 한경우는 말했다.
“히야. 이제 진짜 가을이네~”
날씨도 그랬다.
푹푹 찌는 날씨와 여름의 습한 공기는 사라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한경우가 재차 입을 뗐다.
“야.”
“왜.”
“수영장.”
눈빛에서 살의를 느낀 한경우는 말을 돌렸다.
“장난이고, 진짜 좋지 않냐?”
“뭐가?”
“가을.”
가을은 한경우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여름은 더워서 싫었고, 겨울은 추워서 싫었다.
서도연이 입을 열었다.
“나는 봄이 좋은데.”
“왜?”
“화창하잖아.”
“그 화창함이 싫어. 마냥 밝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가을은 쓸쓸함을 담고 있잖아. 고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어?”
“중이병이 덜 나았다는 거네.”
피식 웃음 짓는 서도연.
한경우는 한 방 먹었다는 듯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야, 서도연. 너 좋아하는 계절 바꿔.”
“뭔 소리야.”
“너 이미지랑 봄이랑 진짜 안 어울려. 가을이나 겨울이 너랑 딱 어울린다고.”
“뭐래. 너도 가을이랑 안 어울리거든.”
“어떻게 너랑은 맞는 게 하나도 없냐.”
그런 와중에 한경우의 눈에 스치듯 들어왔다.
약국이었다.
자연히 떠올랐다.
한여름 땡볕에 스튜디오를 나와 서도연에게 약을 사다 줬던 기억이.
지금 보이는 약국이 그 약국이었다.
‘시간 빠르네.’
기억하기로 새로운 프로젝트에 막 들어갔을 때였다.
작화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프로젝트는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약국을 지나쳐가는 한경우의 한쪽 입꼬리가 비스듬하게 올라갔다.
‘신기하단 말이지.’
생각해보면 그랬다.
홍원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도연과는 겹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성격부터 상극이었다.
될 대로 되라는 듯 여유만만한 성격을 지닌 자신과 달리, 서도연은 꼼꼼해서 사소한 것도 하나도 놓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왜 저렇게 애쓰는 걸까 생각한 적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하고 넘어가곤 했지만.
단지 성격뿐만은 아니었다.
함께 지내며 성격 말고도 많은 점이 정반대라는 걸 알게 됐다.
‘얘들아. 뭐 먹을래?’
‘짜장이요!’
‘저는 짬뽕……’
배달을 시키더라도 꼭 다른 메뉴를 먹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모든 게 정반대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였다.
신기한 기분이 드는 건.
‘.. 어쩌다 얘를 좋아하게 된 거냐.’
심지어 이상형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경우가 생각해왔던 이상형은 서도연의 외관과 정반대였다.
키는 큰 것보다는 아담한 편이 좋았다.
둥글둥글한 성격에 잘 웃었으면 했고, 고양이상보다는 강아지상의 외모에 끌렸다.
무엇보다도 단발이어야 했다.
아무리 예뻐도 머리가 길면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부터지.’
잘 모르겠다.
그런 이상형과는 정반대인 사람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건지.
그때였다.
슥.
가만히 걸어가던 서도연이 고개를 돌려 한경우를 바라봤다.
깜짝 놀란 한경우가 반응했다.
“왜, 왜.”
괜스레 덧붙였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우리 더럽게 안 맞는 거 맞잖아.”
그 말에 조금 망설이는가 싶더니 도연이 입을 뗐다.
“야, 한경우.”
“어.”
“별건 아니고……”
왠지 모르게 뜸을 들이다 말한다.
“나 머리 자르면 어떨 거 같냐?”
“뭐?”
“머리 자르면 어떨 거 같냐고.”
“.. 얼마나?”
“한 이 정도?”
도연의 손은 어깨 부근을 향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완전히 단발이다.
오래전부터 봐왔기에 지금껏 도연이 단발을 한 적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경우가 서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누가 자르래?”
“아, 아니?”
누가 봐도 당황한 반응.
한경우는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자르지 마.”
“뭐?”
“자르나 안 자르나 못생겼으니까 자르지 말라고. 왜 그런 말도 있잖아.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야!”
잠시 후, 거리에는 수박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