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46)
746화. 냥냥펀치
여느 때와 같은 하굣길.
시은이네 모녀와 함께 걷던 와중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다음에 시은이를 만나면 해 주려 했던 말.
‘관심이 많아 보였으니까.’
그 대상은 ‘JUNE’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시은이는 준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였다.
미처 저번에 얘기하지 못한 정보를 주려는 참이다.
준이 남자일 확률이 높다는 것 이상으로 시은이가 흥미를 보일 만한 정보.
“시은아.”
“아저씨.”
그런데 웬걸.
시은이도 나한테 하려던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저씨 먼저 얘기해요.”
“그, 그럴까?”
상황이 다소 머쓱하긴 했으나 나는 소곤소곤 운을 뗐다.
“준에 관한 이야기인데……”
“…!”
역시나 격한 반응이다.
준이라는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이런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떨리는 눈동자.
그런 시은이를 향해 얘기했다.
“준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하나 더 있어.”
마찬가지로 자그마한 목소리로 묻는다.
“.. 그게 뭔데요?”
대화가 조금 길어지는 듯하니 세연씨가 연두의 손을 잡아끌었다.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또 비밀이야기 하네, 또.”
“…”
“안 되겠다. 일로 와, 연두야. 우리도 비밀이야기 하자. 사실 시은이가……”
그렇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연두가 세연씨 쪽으로 향했다.
시은이 어쩌고로 시작하는 말.
대놓고 들으라는 식의 말이었지만, 우스운 건 시은이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되려 나를 보며 또 한 번 물어왔다.
“뭐예요? 새로운 정보가.”
이쯤 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시은이는 ‘JUNE’의 열렬한 팬이 아닐까 하고.
마냥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처음에 나한테 준이 누군지 물었던 게 걸리긴 하지만 말이다.
뭐,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바로…”
“바로?”
“준이 연두부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채 근거를 말하기도 전이었다.
생각지 못한 시은이의 반응이 눈앞에 펼쳐졌다.
“.. 풋.”
뭐지, 이 반응은?
자그맣게 터진 웃음은 쉽사리 멈출 기색이 없어보인다.
“아, 흐흣. 아저씨..”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반응이었다.
애초에 시은이가 이렇게 웃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고, 내가 딱히 웃긴 이야기를 한 건 아니니까.
웃기려는 의도로 꺼낸 얘기는 더더욱 아니고.
그런 와중에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만약 그 이유라면 납득이 갔다.
말 그대로 ‘JUNE’이 연두부라는 내 말 자체를 근자감 또는 근거 없는 허세로 받아들여 웃은 거라면.
그래서는 곤란하다.
나름 설득력 있는 근거가 내게는 있었으니까.
“왜요?”
다행히 시은이가 먼저 물어왔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긴 했지만.
“왜 준이 연두부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아저씨가 저번에 얘기했던 거 기억하지? 준은 엄청 차가운 말투를 구사한다는 거. 그리고 일에 있어서도 엄청 까다롭기로 유명해. 그런데……”
“그런데?”
“아저씨한테는 되게 친절한 편이야.”
그게 끝이냐는 듯한 표정에 빠르게 덧붙였다.
“어떤 제안을 해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제일 큰 건……”
뭐니 뭐니 해도 제일 큰 건 연두의 성우 참여를 적극 추진했다는 점이었다.
얘기를 전부 들은 시은이는 말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그러네요.”
“응?”
“준은 연두부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그렇지?”
“네.”
이상하다.
원하는 반응을 끌어냈는데도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든다.
뭔가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린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뭐, 착각이겠지.
“근데 시은아.”
“네.”
“왜 그렇게 준에 대해 관심이 많은 거야?”
나도 나대로 궁금증을 풀기로 했다.
“혹시 준의 팬이야?”
아니나 다를까.
내 물음에 시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동시에 자그맣게 입을 연다.
“아저씨.”
“응, 시은아.”
“부탁이 있는데요.”
빤히 바라보는 시은이를 향해 말했다.
“어떤 부탁인데?”
“들어줄 거예요?”
여기서 들어줄 거라 대답하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줄 수밖에 없잖아.
그래도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어떤 부탁일지 나 역시 궁금했으니까.
“그래, 들어줄게.”
시은이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이후 귀에 들어왔다.
“저.. 드림 큐를 해보고 싶어요.”
***
들어준다고 못을 박은 이상 부탁은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 유출하지만 않는다면 지인에게 보여주는 건 가능한 영역이기도 했고.
세연씨에게는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시은이가 게임을 해 보고 싶어 해서요.”
“게임이라면……”
“저번에 말한 게임이요. 저희 팀이 작화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돌 육성 게임.”
“.. 아.”
왠지 모르게 세연씨의 얼굴에도 잠시나마 동요가 스쳤다.
“네, 그럼……”
허락해주긴 했지만.
그렇게 세연씨와 헤어진 뒤에 시은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연두는 잔뜩 신이 났다.
시은이가 집에 놀러 온다는 사실만으로.
“헤헤..”
집까지는 금방이었다.
현관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누렁이가 폴짝 뛰어나오며 반긴다.
경계심 따위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고양이는 똑똑한 동물이다.
그리고 시은이는 누렁이가 거리를 전전하던 시절부터 연두와 함께 매번 보금자리를 찾았던 파트너였다.
매번 갈 때마다 간식을 챙겨주기도 했고.
나는 확신한다.
누렁이는 다른 건 몰라도 한 번이라도 간식을 준 사람은 결코 잊지 않는다.
그런 녀석이니까.
“냐! 냐아!”
봐라.
평소보다 훨씬 더 격하게 반긴다.
비교적 시은이가 집에 놀러 온 게 오랜만인 것도 있고.
“누렁아, 잘 지냈어?”
시은이도 쪼그려 앉은 채로 미소를 지으며 누렁이를 쓰다듬는다.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나란히 앉은 모습을 보니 자연히 지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도 꼭 이렇게 앉아서 누렁이를 쓰다듬곤 했는데.
슥.
빙긋 웃으며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당시의 모습은 연두튜브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무려 3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을 그때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았다.
“누렁이 진짜 많이 컸다..”
“응!”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두가 덧붙인다.
“배도 많이 나왔어..”
“배도?”
“응.”
그 말에 시은이가 누렁이를 바라봤다.
누렁이는 배를 보이고 일말의 경계심도 없이 대자로 누워있었다.
바로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은이.
연두는 말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간식 조금만 주라고 했어.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찌면 건강이 나쁠 수 있대.”
“그렇구나.”
“연두도 똑같아..”
“응?”
“간식은 참기 어려워. 맨날 소시지 하나만 먹으려 하는데 하나 먹으면 더 먹고 싶어져서…… 더 먹으면 살찌는데……”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세상 진지한 얼굴로 자기성찰을 하듯 얘기하는 연두의 모습에.
시은이는 옅게 웃으며 얘기했다.
“연두랑 레나랑 똑같이 얘기하네.”
“응?”
“레나도 꿀떡을 한 개만 먹은 적이 없대. 한 개만 먹으려면 이만한 대왕꿀떡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
“대왕꿀떡..?”
“응.”
어감이 웃긴 건지 연두가 쿡쿡 웃다가 얘기했다.
“그럼.. 연두는 대왕소시지!”
“.. 흣.”
잔뜩 신났네.
서로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에 나까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나저나 누렁이 녀석.
‘너무 편하게 누워있는 거 아니냐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배는 고양이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취약한 부분이라고, 그래서 웬만큼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 앞이 아니면 배를 보이고 눕지 않는다고.
반대로 말하면 100% 믿을 수 있는 사람 앞에서는 배를 드러내고 눕기도 한다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적어도 우리 셋은 그런 사람인가 보네.’
고양이의 매력이었다.
대놓고 애정 표현을 하지는 않아도 이런 식으로 가족이라는 걸 느끼게 만드는 포인트가 있었다.
그때였다.
무언가 떠오른 듯 시은이가 말했다.
“아, 맞다!”
“.. 응?”
“그거 해 자! 저번에 얘기했던, 힘든 척하면 누렁이가 코 때리는지.”
“아!”
연두도 바로 알아들었다.
저번에 둘이서 한 얘기였다.
풀이 죽어있는 걸 보면 냥냥펀치를 하는 누렁이가, 과연 힘든 척을 해도 똑같이 반응할지.
나 역시 궁금하다.
단순히 우연이었을지, 아니면 정말 누렁이는 감정을 읽고 행동하는 건지.
둘은 소곤소곤 작전회의를 시작했다.
“연두야..”
“응, 시은아..”
“하나 둘 셋 하면 누렁이 옆에 쓰러지면서 눕는 거야. 엄청 힘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가 말을 받았다.
“응! 엄청 힘들다는 표정으로……”
눈을 맞추는 두 아이.
이윽고 시은이는 자그맣게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동시에 누렁이 옆으로 두 아이가 나란히 쓰러졌다.
앓는 소리를 내며.
“으윽…”
“너무 힘들어…”
이 정도면 힘든 척이 아니라 아픈 척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누렁이는 딱히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정확히 몇 초 동안은.
“.. 냐아?”
옆을 힐끗 바라본 누렁이가 몸을 일으킨다.
잠깐 흠칫한 연두와 시은이는 혼신의 연기를 이어갔다.
그때였다.
누렁이가 둘 주위를 돌기 시작한 건.
“…”
그리고 한순간.
걸음을 멈춘 누렁이가 외마디 울음과 함께 냥냥펀치를 발사했다.
첫 펀치의 주인공은 시은이였다.
퍽!
동그래지는 눈.
“냐아!”
그 사이에 누렁이는 여전히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 연두를 향해서도 제2의 펀치를 날렸다.
톡 건드리는 듯한 위력 없는 펀치이긴 했지만.
신기했다.
설마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날 줄이야.
“우아..”
“와..”
몸을 일으켜 나란히 앉은 연두와 시은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뒤이어 새어 나오는 웃음.
두 아이의 웃음소리는 한참 동안 그치지 않았다.
***
한동안 누렁이와 시간을 보낸 뒤에 주원이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시은아.”
“네, 아저씨.”
조금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모양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정체가 ‘JUNE’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시은이는 많은 것들을 알아봤다.
매개체는 인터넷이었다.
엄마가 ‘JUNE’이라는 걸 확신한 것도 인터넷을 통해서였으니까.
‘엄마.. 엄청 열심히 했구나.’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정작 가장 알고 싶었던 정보는 접하기 어려웠다.
그게 뭐냐고?
바로 엄마가 쓴 글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나오는 건 ‘JUNE’이라는 작가에 대한 정보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의미가 없었다.
이미 시은이는 ‘JUNE’이 누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됐으니까.
아무리 잘 추측해놓은 정확한 글도 시은이보다 정확할 수는 없었다.
딸보다 엄마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아까 웃은 이유도 그래서였다.
‘JUNE’은 연두부일 확률이 높다는 아저씨의 추측은 정확했다.
실제로 엄마는 연두부니까.
전부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아저씨를 보니 안쓰러우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러면서도 줄곧 든 생각이 있었다.
‘.. 보고 싶어.’
엄마가 쓴 글이 보고 싶었다.
사실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찾는 게 가능하긴 했지만, 아직 시은이는 그 정도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아저씨에게 부탁한 건.
지금 엄마가 쓰는 글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고.
“연두야.”
“응.”
“연두는 드림 큐 해 봤다고 했지?”
그 말에 연두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대답한다.
“그런데 아빠가 완성은 아니라고 했어.”
“.. 어땠어?”
“엄청.. 엄청 재미있었어.”
뿌듯했다.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인 거구나.
“시은이도 엄청 재밌을 거야..!”
“응. 그랬으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하려는 참이었다.
덜컥.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가 방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어지는 목소리.
“이제 들어와도 돼, 얘들아.”
소파에서 일어나는 두 아이.
연두의 손을 잡고서 시은이는 주원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주원이 모니터 앞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여기 앉으시죠.”
의자에 앉은 시은이가 고개를 들어 데스크톱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화면에는 떠올라있었다.
‘드림 큐!’의 시작 화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