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5)
75화. 진부한 진심
[어린이대공원 시리즈 3탄! 아빠의 즉석 재능기부!]연두와 함께 영상을 업로드하고 하루가 흘렀다.
지금까지 올린 영상들과 포맷이 달랐던 만큼, 반응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평소와 비슷한 정도의 반응이라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평소보다 못 미치더라도.’
연두와 함께 보며 즐거워한 영상이니 그걸로 됐다고 여겼다.
사실 올리는 영상마다 사람들이 좋아해 주길 바라는 건 욕심일지도 몰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껏 올린 영상들은 전부 그렇긴 했지만.
구독자들의 반응을 너무 신경 쓰다가 연두튜브의 색깔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모습을 사랑해주는 구독자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것.
그게 처음에 연두튜브를 개설할 때의 취지가 아니었는가.
그러니 걱정은 내려놓기로 하자. 부담 없이 즐기기로 하자.
‘.. 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예상 밖이었으니까.
차라리 평소 조회수의 반토막이 났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전혀 반대의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조회수 : 67만회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역대급 조회수였다.
업로드한 후 이제 하루가 지났는데 67만이라니.
이미 저번 영상의 조회수는 가볍게 뛰어넘은 상태였다.
구독자도 엄청나게 치솟아 있었고.
연두가 올린 영상인 만큼, 반응을 확인하는 것도 함께였다.
“.. 연두야.”
“네, 아빠!”
“어떻게 알았어?”
“으응..?”
연두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 질문을 이해 못 한 게 분명하다.
그야, 아직 연두는 영상의 반응이 어떤지 몰랐으니까.
67만이라는 숫자는 연두에게 설명해주기에는 너무 까마득한 숫자였다.
그런 숫자보다는 더 알기 쉽게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할지 어떻게 알았어?”
“.. 사람두리 조아해요?”
“응.”
“어, 얼마나요…?”
“음.. 얼마나일까…”
괜히 장난스레 말을 늘이며 뜸을 들였다.
연두는 시선을 고정하고 내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빤히 바라보는 표정이 귀여워 일부러 대답을 미뤘다.
“아빠아…”
한동안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연두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는 내 무릎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빨리 말해주세여.. 연두 궁금하단 마리에요!”
“하하, 알겠어.”
최근 들어 내가 안도하는 부분 중 하나였다.
처음에 와서 함께 지낼 때보다 분명해진 연두의 의사 표현.
‘처음에는 아니었어.’
당시의 연두는 별거 아닌 말을 하더라도 무척이나 조심스러워했다.
무언가 부탁을 할 때는 더더욱 그랬고.
심지어 어떤 말을 뱉고 나서 혼자 불안해할 때도 상당히 많았다.
사소한 실수라도 할 때면 하얀 얼굴이 샛노랗게 변하기도 했다.
하는 말이나 행동에 대한 주변 반응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모습.
그런 모습이 눈에 보일 때마다 안쓰러워 미칠 거 같은 기분을 느꼈다.
‘왜 그런지 알 거 같으니까.’
별거 아닌 말에도 화를 내고. 어렵게 꺼낸 부탁은 들은 체도 안 하고.
사소한 실수를 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그런 비정상적인 시간들을 보내왔어야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걸 알기에 연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연두의 의사 표현이 한층 분명해졌다.
답답한 건 답답하다고, 궁금한 건 궁금하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도 분명하게 표현하곤 했다.
예를 들면 ‘아빠.. 연두 노리터 가고 시퍼요…’같은 부탁.
물론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이야기를 꺼낼 때는 조심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랜 시간에 거쳐 연두의 몸에 배어버린 거니까.
미술치료사 윤영이 누나도 내게 조언해 준 부분이었다. 억지로 교정하려 하지 말라고.
‘의사 표현을 강제하려 하는 거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
그녀의 말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실제로 연두는 스스로 변화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생기고 있었고, 전처럼 심하게 불안해하지 않았다.
속도는 느리지만 변화는 눈에 분명히 보였다.
‘내 역할은.’
그 변화를 바라보며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아빠’라는 자리에서 묵묵히 말이다.
“엄청 좋아해. 다른 영상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봤거든.”
그제야 연두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헤헤, 연두 말이 마자써요!”
“그러네. 아빠는 몰랐는데. 대단한데? 우리 연두.”
연두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여!”
“응?”
“아빠가 대다네요.. 연두는 아빠가 구림 그리는 거 엄청 조아해요. 사람둘도 초록님이 구림 그리는 거 하눌만큼 땅만큼 조아해요..!”
“크크.”
이게 연두가 생각하는 이번 영상의 흥행 논리인 건가.
단순하긴 한데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뭐, 내 생각은 다르긴 하지만.
“아닐걸? 연두가 찍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야.”
“아닌데.. 아빠가 구림 그리는 거……”
역시나 이번에도 의사 표현이 확실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댓글 보고 확인해 볼까?”
“조아요!”
연두와 나.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스르륵.
나는 댓글란을 향해 마우스 커서를 내렸다.
***
-이번 영상 레전드네. 조회수 보소 ㅋㅋㅋㅋ
-출근길에 켰는데 연두 안 나와서 띠용했다. 근데 이럼 인정이지 ㅋㅋ
-ㄹㅇ 이건 반칙이잖아. 목소리만으로 이렇게 귀여운 게 가능한 거냐고!!
-ㅋㅋㅋ 신개념 생중계 ASMR이네. 이게 뭐라고 나는 반복재생중인 거냐.
-귀여워! 귀엽다고! 젠장! 너무 귀엽다고!! 귀여워서 화가 난다고!!!
-이번 영상은 걍 모든 게 완벽했음. 재미, 쾌감, 귀여움, 그리고 감성까지. 할머니가 오천원 내미는 부분 진짜 오졌다..
아무래도 내 말이 맞는 거 같다.
연두가 너무 귀여워서 화가 나 버린 사람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연두가 빙긋 웃으며 화면의 댓글을 가리켰다.
-초록님 뭐야..? 저 정도로 잘 그린다구?
└그니까. 저번 영상은 그렇다 치고, 저렇게 짧은 시간에 저 정도 퀄리티로 그리는 게 가능해?
└ㄹㅇ 13분 동안 홀린 듯 봤다. 연두 목소리 들으면서.
└옆에 줄이랑 사람 차이 보소 ㅋㅋㅋㅋ 초딩 농구장에 나타난 마이클 조던이누.
└저 한국대 미대 다니는데 전공생도 저 정도로 못 그림. 색 쓰는 거부터 취미 수준 넘어섬.
└풉. 한국대? 학생증 인증하고 씨부리시길.
└윗놈 속고만 살았나 ㅋㅋㅋ 갑분 시비 개웃기네.
└진짜 이 정도면 세계관 최강캐 아니냐 ㅋㄷㅋㄷ 연두 아빠지, 목소리 좋지, 그림 실력 오지지, 잘생겼지.
└뒷모습밖에 안 나오는데 잘생긴 줄은 어케 앎 ㅂㅅ아.
└뒷모습만 봐도 알지. 너같은 새끼는 뒷모습만 봐도 못생긴 거 알아봄.
└와꾸 현피 ㄱ? 쫄?
└하던가. 만나서 더 못생긴 놈이 짜장면 사는 걸로.
└아아.. 왜 당신들은 상처뿐인 싸움을 하려고 하십니까….
└다 모르겠고.. 연두 아빠인 게 가장 부럽다.. 하 인생….ㅅㅂ
다 좋은데 뒤에 수박은 좀 빼 주지.
그나저나 역시 나와 연두는 눈에 들어오는 댓글이 다른 모양이었다.
내 눈에는 연두에 관한 댓글이 들어오는데, 연두는 귀신같이 나에 관한 댓글을 집어내고 있었다.
아직 글자를 읽는 게 미숙한데도 말이다.
“헤헤, 아빠 칭차니다.. 여기도! 구리고 여기도!”
“어쩔 수 없네. 우리 둘 다 좋아하는 걸로 하자, 연두야.”
연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영상의 흥행은 연두의 귀여움과 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이 적절한 밸런스를 이룬 결과일 테니.
‘물론 연두의 비중이 훨씬 크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걸 얘기하면 또 연두랑 실랑이를 벌이게 될 테니 그만두기로 하고.
아, 댓글창에는 이런 재미있는 댓글도 있었다.
-근데 초록님이 처음에 그린 여자 뭐야? 그림 존예인데?
└저번에 밥 먹는 영상에 나온 일행 같은데?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 그림으로 보면 ㄹㅇ 여신인데.
└그다음에 그리는 여자애도 넘나예쁜뎅…
└연두는 칭구도 예쁜 거야? 나도 좀 껴주라….ㅠㅠ
문제가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의 얼굴은 가려둔 상태였다.
신세연과 시은이의 얼굴도 마찬가지였고.
즉, 사람들이 보는 건 내가 그리는 그림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모델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하긴, 그림을 그리면서도 새삼 느낀 사실이었다.
세연 씨와 시은이가 정말 예쁜 얼굴이라는 건.
지이잉. 지이이잉.
이번 영상의 흥행 덕에 핸드폰은 쉴 틈이 없었다.
조금 쉬려고 하면 메일이 날아왔으니까.
[안녕하세요! 물감 브랜드 베타입니다! 메일을 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번 영상에서 아크릴 물감을 쓰시는 모습을 보고……]이번에는 아크릴 물감 협찬인가.
이미 물감뿐만이 아니라 이젤을 포함한 온갖 미술도구의 협찬 제의가 온 상태였다.
어떤 걸 받을지 고르는 게 고민될 정도로.
“연두야.”
“네에.”
“아빠가 갖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나?”
연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물깜이랑 붓..!”
“그거 안 사도 될 거 같아.”
“.. 왜여?”
“살 필요가 없어졌거든.”
아리송한 표정의 연두를 향해 말을 이었다.
“아빠가 그림을 잘 그려서 그냥 주겠다고 그러네?”
“.. 선물로요?”
“응, 선물로.”
뭐지? 되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왜인지 연두의 표정이 눈에 띄게 울적해졌다.
내가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일 리는 없었다.
“왜 그래, 연두야?”
내 물음에 연두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 연두는 받기만 해여.”
“응?”
“아빠눈 연두 옷도 사 주고, 신발도 사 주고, 장난깜도 사 주고, 구림도 그려주는데……”
이제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 같았다.
연두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연두도 아빠한테 주고 시퍼요.. 선물.”
“하하..”
어떤 마음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허나 연두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존재했다.
아무래도 그걸 알려줘야 할 거 같다.
“.. 이미 받았는데?”
내 말에 연두가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빠는 이미 연두한테 받았어. 선물.”
“여, 연두는 준 적 업는데……”
“아니.”
어디서 들어본 듯한 진부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내가 이 말을 누군가에게 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이 말을 할 누군가가 내 인생에 찾아올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 했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입 밖에 낼 수밖에 없었다.
“너야, 연두야. 연두 네가 아빠한테는 가장 큰 선물이야.”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선물이 너라는 것.
이 진부하지만 진심 어린 한마디를 해 주고 싶었다.
고개를 든 연두의 눈과 내 시선이 맞닿았다.
그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내 진심이 전해졌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