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60)
화. 중심
카메라는 최근에 시은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었다.
그때 이후로.
카메라의 즐거움을 깨달은 뒤에 연두와 나눴던 대화.
‘그 카메라 아저씨가 선물로 준 거라고 했지?’
‘응, 아빠가!’
‘카메라로 사진 많이 찍어?’
‘아니. 많이는 안 찍어.’
‘그럼?’
‘연두는 아빠처럼 사진 잘 못 찍어서.. 그래서 연두가 진짜진짜 찍고 싶은 사진만 찍어.’
‘진짜진짜 찍고 싶은 사진?’
‘응.’
그 뒤에 연두가 덧붙였던 한 마디.
‘소중한 거…’
연두의 말을 듣고 시은이는 깨달았다.
사진을 찍으며 즐거웠던 건 소중한 대상을 담았기 때문이라는 걸.
연두의 카메라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연두한테 소중한 게 뭔지.’
그래서 카메라가 가지고 싶어졌다.
연두처럼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카메라 안에 담고 싶어졌다.
그래서일까.
아저씨가 준 선물이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 들어요.”
“응?”
“마음에 들어요, 엄청.”
고개를 든 시은이의 눈에 비치는 건 잔잔하게 웃음 짓는 주원의 얼굴이었다.
그런 주원의 옆에서 신세연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네?”
“요즘 시은이가 카메라 엄청 갖고 싶어 했던 거요. 연두가 알려준 거예요?”
그러자 옆에서 연두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자기는 아니라는 듯이.
그 말대로 시은이가 카메라에 꽂혔다는 사실을 알려준 건 연두가 아니었다.
애초에 주원은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시은이가 그랬어요?”
“헐.. 몰랐어요?”
세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시은이가 원래 뭐 사 달라고 조르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카메라를 사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아직 안 사 줬어요?”
괜히 찔리는 표정으로 세연이 말했다.
“주원씨도 알겠지만 제가 카메라에 좀 무지하잖아요?”
“그렇죠.”
“.. 납득하는 게 너무 빠른데요?”
“하하, 아니에요.”
“아무튼 그래서 주원씨한테 물어보려던 참이었어요. 시은이랑 같이 주말에 사러 가려고.”
그 말에 주원은 조금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제가 모녀 둘만의 시간을 뺏은 게 되는 거 아닌가요?”
“에이, 뺏긴요.”
세연은 시은이를 손으로 감싸며 얘기했다.
“둘만의 시간은 넘쳐나는데요.”
그러고선 묻는다.
“아저씨 선물 마음에 들어, 시은아?”
“응.”
연두도 옆에서 입을 헤 벌리고 말한다.
“예쁘다.. 파란색 카메라…”
그때였다.
연두의 모습을 순간 포착한 시은이가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찰칵.
깜짝 놀란 연두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런 연두를 보는 시은이의 입가에 조금은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이어지는 목소리.
“연두가 그랬지?”
“.. 으응?”
“연두는 아직 사진을 잘 못 찍어서, 카메라 안에 소중한 것들을 담는다고.”
주원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마치 ‘연두가 그런 말을 했어?’라고 말하는 듯한 제스처다.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를 향해 시은이는 말했다.
“나도야.”
카메라를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덧붙인다.
“나도 카메라는 잘 모르고 잘 찍지도 못해. 그래서 연두처럼 소중한 것들만 찍을 거야.”
조금 지나 엷게 달아오르는 연두의 볼.
뒤늦게 깨달아서였다.
그런 시은이의 카메라 속에 처음 담긴 게 자신이라는 걸.
“시은아..”
미소를 띠며 시은이는 고개를 돌렸다.
다음으로 시선이 향한 건 다름 아닌 신세연이 있는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엄마의 모습을 카메라 속에 담았다.
찰칵.
소중한 선물이다.
그런 소중한 카메라인 만큼, 소중한 것들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연두와 엄마.
의심의 여지 없이 시은이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
카메라를 손에 든 채 서성이듯 하는 잠깐의 머뭇거림.
수줍은 표정이 떠올라있다.
허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다른 때는 몰라도 지금만큼은 망설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손에 힘을 주어 카메라를 들었다.
스윽.
올라가는 구도.
이윽고 앵글에 들어오는 건 다름 아닌 주원의 얼굴이었다.
당황한 표정이 직사각형 안에 담긴다.
“어? 시은아? 그, 그렇게 갑자기 찍으면……”
“.. 풋.”
역시 아저씨다.
사진은 누구보다 잘 찍지만, 찍히는 입장이 됐을 때는 엄청 어색해한다.
그런 주원을 보며 시은이는 자그맣게 지시했다.
“.. 웃어요, 아저씨.”
역시 주원에게 배운 말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지금만큼은 시은이가 촬영감독이었으니까.
이윽고 떠오른다.
주원이 멋쩍은 미소를 머금는 순간, 시은이는 놓치지 않고 촬영 버튼을 눌렀다.
찰칵.
만족스러운 표정.
사진을 확인하려는 순간에 시은이의 귀에 들려왔다.
“그런데 시은아.”
“네.”
순간 걱정이 차올랐다.
혹시 아까 한 말 때문에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하고.
아저씨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만약 그렇게 얘기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카메라 말인데……”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말을 가로막으려는 참이었다.
“그렇게 찍으면 안 돼.”
“.. 네?”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을 찍을 때 그렇게 광각으로 핀치줌아웃 해서 찍으면 되게 바보 같이 나오거든.”
씩 웃으며 아저씨가 말한다.
“역시 아직 갈 길이 멀긴 하구나? 연두도, 시은이도.”
“…”
아저씨는 바보였다.
***
설마 시은이가 가장 가지고 싶어 했던 물건이 카메라였다니.
성공적인 선물이 돼서 다행이다.
항상 선물을 줄 때면 상대가 좋아할지 걱정이 되곤 하는데, 이런 반응이 돌아오는 것만큼 기분이 좋을 수가 없지.
그나저나 의아하긴 하다.
시은이에게 선물을 준 뒤에 괜히 제 발이 저려 얘기했다.
‘사는 김에 세연씨 줄 것도 같이 살 걸 그랬네요.’
괜히 제 발이 저린 건 아니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받은 게 많았다.
손수 만든 과일청을 선물 받기도 했고, 자잘한 것들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았다.
의아한 건 세연씨의 반응이었다.
‘괜찮아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그녀는 덧붙였다.
‘.. 제 선물은 이미 받았으니까.’
‘네?’
아리송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물을 이미 받았다니.
아무리 곱씹어봐도 최근에 내가 그녀에게 준 선물은 없다.
마지막으로 준 선물을 생각하려면 연어처럼 강물을 꽤나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잠깐만.
이렇게 말하니까 나 되게 별로처럼 느껴지네.
‘아니에요. 시은이 선물이 제 선물이다, 뭐 그런 얘기죠.’
‘하하..’
뭔가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내가 받은 게 아니더라도 연두가 누군가한테 선물을 받고 좋아한다면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거랑 비슷한 이치겠지.
고개를 돌리니 연두가 연두색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문득 떠올랐다.
아까 시은이 카메라를 보며 연두가 했던 말이.
‘예쁘다.. 파란색 카메라…’
같은 모델이지만 색깔이 다르다.
혹시나 싶어 말했다.
“연두야.”
그러자 연두가 살며시 고개를 든다.
“아까 아빠가 시은이한테 선물한 카메라 보고 감탄했잖아. 엄청 예쁘다면서.”
“으응. 예뻐여..”
“많이 예뻤어? 막 가지고 싶을 정도로.”
조금은 걱정이 됐다.
아무리 같은 모델이라 해도 새로운 카메라를 본다면 가지고 있는 카메라가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
왜냐고? 내가 그렇거든.
뽐뿌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물건을 너무 사고 싶은 욕구를 빗대어 ‘뽐뿌 온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물욕은 없는 편이지만.’
유일하게 내가 뽐뿌를 느끼는 게 미술도구와 카메라였다.
그래서였다.
혹시 연두도 새로운 카메라를 가지고 싶어진 게 아닐까 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연두색 카메라는 사 준 지도 꽤나 시간이 흐른 물건이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새로운 카메라를 사 줄 의향도 있었다.
‘안 쓴다면 불필요한 소비겠지만.’
카메라는 연두가 무척 자주 사용하는 물건 중 하나이니 말이다.
따라서 충분히 사 줄 만했다.
“네. 많이 예뻤어여..”
역시 그랬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꺼내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가지고 싶지는 않아여.”
“.. 응?”
“파란색 카메라는 시은이 카메라에요. 시은이가 소중한 거 많이 찍을 카메라..”
다시 연두가 손에 든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게 새로운 카메라를 갖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연두도 있어요. 소중한 거 많이 있는 카메라. 그리고……”
자그맣게 덧붙인다.
“아빠가 준 카메라.”
카메라를 바라보는 연두의 눈은 한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자연히 입가에 번지는 미소.
잠깐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격, 디자인, 성능…’
카메라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들 중 하나다.
허나 가장 중요한 건 빠져 있다.
내가 잊고 있던 그 가치를 연두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어떤 게 담겨있느냐.’
그렇다.
적어도 그 관점에 한해서, 연두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물건이었다.
이 자그마한 연두색 카메라는.
***
주광색 조명 및 원형 테이블.
얼굴이 붉게 올라온 두 남자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후우..”
술집이 아니었다.
잔을 내려놓은 연상호가 길게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반쯤 꼬인 발음으로.
“야.”
취할 대로 취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맞은편에 있는 박진혁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 색기야. 너 이 색기. 이 얄미운 놈의 색기.”
박진혁의 주사였다.
술에 취하면 욕쟁이 할머니에 빙의해서 쉴 틈 없이 욕을 뱉곤 했다.
그렇다고 쌍욕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똑같이 취해서인지 익숙한 술버릇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연상호는 개의치 않고 입을 뗐다.
“찐짜냐?”
“찐짜? 뭐가 찐짜야, 이 놈의 색기야.”
“찐짜.. 니 눈에도…”
거의 세수하듯 양손으로 얼굴을 뭉개며 덧붙였다.
“찐짜 내가 예전 그대로냐? 하나도, 하나도 안 변했냐?”
“그래, 이 색기야.”
박진혁이 반쯤 풀린 눈으로 중얼거린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재수없는 색기.. 그래서 불쌍한 색기…”
“.. 뭐라고오?”
“다행히 귀는 더럽게 나쁜 색기.”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는 게 포인트였다.
연상호가 다시 입을 뗐다.
“세연이가 그래……”
딸꾹.
“…… 랬어. 내가 똑같대. 전이랑. 왜지? 나는, 나는 달라졌는데.”
그렇다.
세연과의 재회 이후로 연상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말이 있었다.
계속해서 맴도는 말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싶겠지. 그런데…’
사람은 안 변해.
매번 하던 그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왔고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연상호를 괴롭혔다.
“야, 연상호.”
“뭐.”
“한 가지만 얘기하는데, 세상이 너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둬.”
그 말에 연상호가 실소를 뱉었다.
“웃기쥐 마.”
“뭐, 이 색기야? 나는 웃긴 적 없어. 웃으려면 나를 찾쥐 말고 무한상사를……”
“세상이, 나를 중심? 하!”
쾅!
책상 치는 소리에 박진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상호는 말했다.
“세상은 한 번도 나를 중심으로 돈 적 업숴. 내가 그러케 만든 거야. 세상이 나를 중쉼으로 돌도록.”
“…”
“맨날 날 보고 말하쥐. 부모 잘 만났다고.”
방금 책상을 친 걸 본 탓인지 박진혁이 소심하게 말했다.
“…… 잘 만난 건 맞잖아, 이 색기야…”
“아무도!!”
또 깜짝 놀란 박진혁.
다시 소리를 낮춘 연상호는 얘기했다.
“아무도 나처럼 못했을 거면숴, 뒤에서 떠드는 것밖에……”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고장 난 시계도 가끔은 맞는다는 말처럼 나름의 근거가 있긴 했다.
계속 봐 왔기에 박진혁은 알고 있었다.
‘미친놈이긴 하지.’
다방면으로 미쳐서 문제지만 연상호는 확실히 비범한 면이 있었다.
매번 금수저라며 부러워하긴 하지만, 박진혁은 도저히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연상호는 중얼거리듯 입을 뗐다.
“다시 그러케 만들 거야.”
“뭐?”
“세연이더, 시은이도… 다시 세상은, 나를 중쉼으로……”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연상호는 테이블 위로 고꾸라졌다.
“… 미친 색기.”
그런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