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64)
화. 첫 독자
“냐아.. 냐…”
누렁이도 옆에서 만드는 과정을 계속 지켜봐서일까.
놀라운 적응력이었다.
단숨에 고층의 캣폴까지 폴짝 뛰어 올라가서는 투명 해먹 위에 자리를 잡았다.
‘마음에 드나 보네.’
원래 그랬다.
낯을 많이 가리기도 하지만 마음에 든 대상에 한해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마음을 여는 누렁이니까.
연두랑 시은이를 만났을 때도 그랬고.
다행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눈길조차 안 준다면 엄청 허무했을 거 같으니.
“성공이야, 연두야.”
“.. 네에.”
세상 뿌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연두가 자그맣게 덧붙인다.
“성공이에여…”
감격에 찬 얼굴.
그런 연두의 입이 순간적으로 작게 벌어진다.
“.. 아빠!”
다소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려 누렁이를 바라봤다.
다행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었다.
“.. 푸흣.”
몸을 잔뜩 웅크린 누렁이가 투명 해먹 안에 쏙 들어가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녀석의 얼굴이다.
해먹에 너무 밀착해서인지 얼굴이 엄청 커다래 보인다.
‘나름 소두인데.’
그러다 부끄럽기라도 한 건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자연히 우리 눈에 들어오는 건 누렁이의 앙증맞은 핑크색 발바닥이었다.
여러 모습 보여주네, 오늘.
“.. 흐흣.”
쿡쿡 웃음 짓는 연두.
그러더니 조금은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 해보고 싶어요.”
“응?”
“누렁이처럼 연두도 해보고 싶어요. 조금만 작았으면……”
투명 해먹 위에 올라가 보고 싶다는 뜻인 거 같다.
누렁이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두는 투명 해먹에 아무리 얼굴을 밀착해도 미모를 숨기기 힘들지 않을까 하고.
“그래도.. 괜찮아여!”
“응?”
“누렁이가 엄청 좋아하니까! 그리고 진짜진짜 귀여우니까……”
저절로 번지는 웃음.
늘 드는 생각이지만 귀엽다고 말하는 본인이 제일 귀엽다는 사실을 연두만 모르는 거 같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그런 연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고마워, 연두야.”
“.. 으응?”
“사실 이거 만드는 거 엄청 어려운 거거든. 근데 연두가 도와줘서 쉽게 만들 수 있었어.”
실제로 그랬다.
리뷰에 괜히 악명이 자자한 게 아니었다.
이 캣타워는 내 조립 인생을 통틀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려운 조립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비교적 빠르게 끝낼 수 있었던 건 연두의 힘이 컸다.
‘혼자였으면 금방 싫증이 났을 거야.’
조립 난이도를 떠나서 혼자 질려버려서 ‘다음에 이어서 하지.’ 하고 미뤘을 확률이 농후하다.
그런 경우에 정말 다음에 이어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 높은 확률로 창고에 들어간 채로 먼지가 쌓였겠지.
‘동기부여가 됐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됐다.
그에 더해 필요한 것들을 전달해주고 눈을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는데 어떻게 포기할 생각을 하겠는가.
연두는 힐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정작 본인은 아리송한 표정을 짓긴 하지만.
“아빠가 다 만들었는데.. 연두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긴.”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아빠 옆에 있었잖아.”
옆에 있어 주는 것.
특히나 그 대상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된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연두에게 나는 음악적으로 스승이 되어줄 수도 없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어렵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연두의 꿈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아니었어.’
연두가 내게 그렇듯 나 역시 연두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리고 연두는 말해줬다.
‘잘할 수 있어여.. 아빠가 보고 있으니까…’
나는 깨달았다.
그저 옆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나는 이은경이 될 수 없고, 연두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는 유리나 수호가 될 수도 없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대신할 수 없어.’
아무도 아빠라는 내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 사실을 자각한 뒤로 쓸데없는 자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모두에게는 주어진 역할이 있고, 나는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도.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연두야.”
그런 내 눈에 들어왔다.
행복이 가득 느껴지는 연두의 가느다란 미소가.
***
[연두와 함께하는 캣타워 조립!(feat. 그런데 누렁이가…?)]조금의 어그로성 제목.
사실 연두튜브에 한해서는 어그로성 제목을 사용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연두부라면 일단 누르고 보니까.
아마 제목을 적지 않고 올려도 조회수는 유지될 거라 생각한다.
‘이 정도면 어그로라고 하기도 민망하고.’
유투브 문화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어지간한 제목 어그로에는 낚이지 않게 됐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궁금증 유발은 조미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음식을 먹을 때라고 가정하면 그전에 솔솔 풍기는 냄새라고 해야 할까.
종종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숟가락을 들었는데, 막상 입에 넣고 보니 형편없는 맛인 경우 말이다.
‘많이 봤지.’
특히 유투브에 많았다.
알맹이 없는 내용이더라도 조회수를 위해 제목으로 광역 어그로를 시전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댓글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별이 쏟아지니까.’
그런데 그 별이 삐처리 된 별이라는 게 함정이다.
다행히 나는 아직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다.
되려 그 반대였다.
다음 영상을 올리라며 무수히 많은 히읗이 쏟아지는 건 이제는 일상이 됐으니 말이다.
‘.. 괜찮아.’
최근에 연두의 연주 영상을 올리고 환 공포증이 되살아날 뻔하긴 했지만 히읗에는 거의 면역이 된 상태다.
최소한 욕을 먹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런 면에서 나는 축복받은 편집자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히읗을 볼 때면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약간의 공포심과, 이렇게나 연두튜브 영상을 좋아해 준다는 점에서 오는 고마움.
달칵.
클릭과 동시에 댓글창이 떠오른다.
의외로 이번 영상에는 히읗이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와.. 조립 미쳤다.
┖개어려워보이는데??
┖아니, 저거 그거잖아. 완성한 사람보다 때려부순 사람이 더 많다는 헬난이도 캣타워.
┖그런 거도 있음?
┖여기 가 보셈(링크)
┖별점 실화냐?
┖리뷰는 더 미쳤음 ㅋㅋㅋㅋㅋ 사람들 광기에 사로잡혀있음.
댓글을 보니 꽤 유명한 제품이었던 모양이다.
외관을 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링크가 공유되는 걸 보면.
-초록님 진짜 미쳤다…
┖저게 몇 시간 걸려서 오래 걸린 거라 생각하면 오산임. 진짜 미친 속도인 거임.
┖이게 ‘금손’인가..?
┖저거 조립해본 입장에서 업체는 설명서 찢어발기고 초록님한테 조립 풀버전 받아서 그걸 교본으로 채택하는 게 나을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경배하라.. 유성초 스나이퍼의 재림이다…
┖앗. 아앗…
┖조립하는 건 누구보다 싫어하는데 보는 쾌감은 미쳤다.. 캣타워 진짜 존예…
┖젠장! 초록!! 왜 이렇게 완벽한 거냐고!!!
결국 나오는군.
유성초 스나이퍼.
예상은 했지만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연두 귀여워어….
┖대왕못.. 꼬마못… 아기망치…..
┖오늘부터 공구의 이름은 연두어로 바뀝니다. 다들 숙지하시길.
┖아빠한테 대왕못 주는 연두 귀여워. 아빠 조립하는 거 입 벌리고 바라보는 연두 귀여워. 누렁이 위험할까 봐 가까이 못 오게 하는 연두 귀여워. 나사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부끄러워하는 연두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너무 귀여워…
┖이게 연두부의 광기인가… ㄷㄷ
┖한 순간 한 순간이 소중하다, 진짜…
오늘따라 웃게 만드는 댓글들이 유독 많았다.
캣타워 조립 영상인 만큼 주인공인 누렁이에 대한 반응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누렁이도 진짜 졸귀다…
┖캣폴에 얼굴 비비는 거 봐 ㅋㅋ 가만 보면 누렁이는 ㄹㅇ 쇼맨쉽이 있음.
┖이래서 내가 스트릿출신 냥이들을 못 잃어…
┖마지막에 캣타워 올라가는 장면까지 완벽한 기승전결이었음.
┖마지막의 마지막에 초록님이랑 연두 대화까지.. 초연 케미까지 폭발해버렸다…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옆에 있어 줘서……
┖그만 달달해!!! ㅠㅠㅠㅠ
┖충치가 28개가 생겨버렸다.
역시 보통 연두부의 반응이 가장 핫할 때는 원조케미가 등장할 때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당연했다.
초연케미와 누렁이와의 케미가 동시에 등장한 영상이니까.
‘히읗을 치는 것도 까먹을 정도였나 보네.’
입가에 번지는 웃음.
편집자로서 이보다 더 뿌듯할 수는 없었다.
***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에게 있어서 꿈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크다.
꿈은 목표라는 단어로 치환 가능하니까.
목표가 없는 삶 속에서 의미를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멈춰 있는 기분이 든다면 더더욱 조급함이 들 수 있다.
시은이가 그랬다.
연두는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향해, 레나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꿈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걸 보면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혼자 멈춰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그렇게 혼자만 멈춰 있다가 연두와 레나가 뒷모습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사각. 사각.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성을 다해 쓴 한 글자 한 글자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시은이는 이제 막 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엄마가 해준 말을 생각하며 글을 쓰니 그게 한 줄이 되고, 세 줄이 되고, 열 줄이 되고, 어느새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었다.
글에 있어서 시은이의 스승은 엄마인 신세연, 아니 ‘JUNE’이었다.
‘처음 글을 쓰는데 캐릭터를 만드는 건 엄청 어려워. 그때 진짜 좋은 방법이 있어.’
‘어떤 방법인데?’
‘시은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캐릭터로 만드는 거야. 엄마도 될 수 있고, 연두랑 레나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친구들이 될 수도 있지.’
한 마디 한 마디가 보물 같았다.
그 말대로 시은이가 만드는 첫 이야기의 캐릭터는 시은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세연도 있었고, 연두랑 레나도 있었고, 주원도 있었다.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성격 등의 요소는 실제 인물을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 흐흣.”
엄마 말이 맞았다.
캐릭터를 만들고 나니 캐릭터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저절로 손이 움직였다.
미숙할지도 모르는 글이지만 시은이는 힘차게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더는 겁먹지 않고.
툭.
다음날 선화초등학교.
오랜만에 단비어린이집 대표 장난꾸러기 민우가 5반에 놀러 온 상태였다.
시은이는 학교에서도 글을 쓰고 있었다.
“여기는 5반이다! 암호를 대라!”
민우가 들어오려는데 문을 가로막은 건 석호와 재호였다.
암호를 대라는 말에 민우가 힘차게 말했다.
“나는 1반의 김민우다!”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 5반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고!”
죽이 척척 맞는다.
석호와 재호는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잠깐 주춤한 민우는 무언가 떠오른 듯 짝다리를 짚더니 둘을 향해 선언하듯 외쳤다.
“나는 서연두와 이레나, 연시은의 친구다!”
“입장을 허락한다.”
아니, 이렇게 쉬운 거였냐고.
조금 당황한 듯 재호를 바라보더니 석호도 뒤늦게 덧붙인다.
“입장을 허락한다.”
프리패스였다.
이쯤 되니 암호는 연시레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5반에 들어온 민우는 연두와 레나를 향해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서연두. 이레나.”
“민우야, 안녕..!”
“안녕!”
반갑게 맞이해주는 둘의 모습에 어깨가 으쓱 올라간 민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은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가 쪽에 앉은 시은이가 눈에 들어왔다.
침을 꼴깍 삼킨 민우는 천천히 걸어갔다.
“야, 연시은.”
“…”
대답이 없었다.
글쓰기에 너무 열중한 탓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민우는 다시 한번 입을 뗐다.
“연시은!”
그제야 시은이가 고개를 들었다.
“응?”
눈앞에는 민우가 있었다.
“안녕.”
“.. 어어, 안녕.”
막상 인사해오니 당황한 민우.
아직 어린이집 시절부터 민우 억제기였던 시은이에 대한 공포심이 남아있는 탓이었다.
애써 말을 이었다.
이제 어린이집 시절의 김민우는 없었으니까.
그런 민우의 생각과 달리, 남들의 눈에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지만 말이다.
“뭐 하냐?”
그 말에 시은이가 흠칫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공책을 덮으려다가 시은이는 동작을 멈췄다.
숨기고 싶지 않았다.
연두와 레나처럼 꿈 앞에 당당해지고 싶었으니까.
“.. 글 쓰고 있어.”
“글?”
“응.”
“어떤 글 쓰는데?”
“이야기야.”
흥미로운 표정으로 민우가 얘기했다.
“이야기? 나 봐도 돼?”
“.. 어?”
또 바로 떠오르는 선택지가 있었다.
아직 조금밖에 안 써서 못 보여준다고 하거나, 보여주기 쑥스러워서 안 된다고 하거나.
그런데 또다시 엄마, 아니 준의 말이 떠올랐다.
‘아직 진짜 중요한 게 하나 남았어.’
‘뭔데?’
‘글을 쓰고 나면 부끄럽더라도 주위 사람들한테 꼭 쓴 글을 보여줘야 해. 엄마든 친구든, 아니면 다른 누구든.’
그 뒤에 엄마는 덧붙였다.
작가는 독자를 통해 가장 많이 성장한다는 말을.
민우는 단순하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민우는 독자로서 가장 적합할지도 모른다.
재밌는 걸 재미없다고 하지도 않을 테고, 재미없는 걸 재밌다고 하지도 않을 테니까.
‘으윽.. 노잼…’
그런 신랄한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이제 막 글을 쓴 입장에서 상처가 될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시은이는 피하고 싶지 않았다.
독자의 반응을 당당하게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 여기. 읽어봐.”
냅다 가져가는 민우.
두 손으로 공책을 펼친 채로 말없이 읽어내려간다.
애써 무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은이의 심장은 콩닥콩닥 뛰었다.
당연했다.
처음으로 독자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여주는 순간이었으니까.
사락.
넘어가는 페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읽는 내내 민우답지 않게 조용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민우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이윽고 새어 나오는 한 마디.
“다 읽었어. 그런데……”
그 뒤에 시작됐다.
시은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