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74)
화. 변화
“이번에는 꼭 대상을 탈 거예요..!”
눈에 꾹 힘을 주고 포부를 밝히는 연두.
화면에는 채팅이 올라오고 수호는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지금의 나는 진행자라는 사실이다.
“그렇군요. 그럼 연두의 다음 목표는 대상인 거네요?”
“맞아여!”
“이제 최우수상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건가요?”
그 물음에 연두가 대답한다.
“만족했어여.. 최우수상 받아서 엄청 기뻤어요.. 그런데……”
“그런데?”
“이번에는 꼭 대상을 타고 싶어요!”
솔직한 답변.
그러나 초재석에 빙의한 나는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조금 짓궂은 물음이 입 밖에 나갔다.
“다음 콩쿠르에 수호가 나온다면요?”
멈칫하는 연두.
예상 못한 질문이었는지 옆에 있는 수호의 입도 작게 벌어진다.
“그래도 대상을 탈 자신이 있나요?”
과연 연두는 어떻게 대답할까.
올라오는 채팅들.
-집요하다..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게.. 초재석?
-연두 놀라서 눈 동그래진 거 봐 ㅋㅋㅋㅋㅋㅋ
-수호도 덩달아 놀람.
-과연 연두의 대답은? ㄷㄱㄷㄱㄷㄱㄷㄱ…
잠깐 고민하던 연두는 천천히 입을 뗐다.
“자신은.. 많지 않아요…”
풀이 죽은 얼굴이다.
“수호는 진짜진짜 멋진 피아니스트니까…”
확실히 그랬다.
기본기와 실력만 놓고 보면 수호는 유리에게도 크게 밀리지 않는 피아니스트니까.
어떻게 보면 콩쿠르 때는 최악의 모습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아직도 유리의 말이 떠오른다.
‘쇼팽을 이렇게 재미없게 칠 수 있구나.’
혹평이었다.
비록 심사위원은 아니었지만 피아노에 한해서 유리의 귀는 상당히 정확한 편이었다.
최악의 연주.
새장 속에 갇혀서 그런 연주를 펼쳤음에도 수호는 대상을 타 냈다.
반면에 연두는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느껴졌지.’
준비하는 기간 내내 몇 번이고 들은 연주였지만 콩쿠르 때는 달랐다.
완전히 몰입해서 들었다.
콩쿠르에서 딸의 연주를 듣는 게 아니라, 한 피아니스트의 연주회에 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대상을 탄 건 수호였다.
‘격차는 존재해.’
아마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연두일 거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겠지.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에 넘어가려는 찰나였다.
“그래도.. 지고 싶지는 않아요!”
조금 놀랐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연두가 승부욕을 드러낼 줄은 몰랐으니까.
내 생각 이상으로 연두의 목표에 대한 열망은 강력했던 모양이다.
다시 MC 본능이 발동했다.
“그렇다는데 수호씨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수호가 입을 뗐다.
“저는 콩쿠르 때 제가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상은 연두가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상소감 때 했던 말 그대로였다.
겸손한 모습을 보이려 한 말이 아니라 진심인 게 느껴져서 인상깊었지.
아직도 그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이어지는 수호의 말.
“그래도.. 다시 콩쿠르에서 연두를 만나게 되면 지고 싶지 않아요.”
“그럼 수호씨도 목표는 대상인 거네요?”
“네, 그런데 다음 콩쿠르는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죠?”
“저는 지금보다 더 멋진 피아니스트가 돼서 다시 연두를 만나고 싶어요.”
짤막하게 덧붙이는 말.
“.. 콩쿠르에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만히 듣고 있는데 마음이 따뜻해질 정도로.
유리와 더불어 연두에게 이런 라이벌이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
조금 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본격적인 콘텐츠로 넘어갔다.
음악방송.
“잠깐 캠을 돌릴 테니까 놀라지 마세요, 여러분.”
그 말과 함께 캠을 돌렸다.
동시에 화면에 들어오는 건 미리 옆에 준비해 둔 피아노였다.
캠 각도상 방금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화면에 피아노를 비춘 것만으로도 채팅창은 환호의 도가니였다.
-믿고 있었다고!!
-아 ㅋㅋ 피아니스트가 게스트인데 피아노 나와줘야지.
-오늘 레전드 콩쿠르 재현 각이냐.
-미쳤다 미쳤어..
-피아노 나오는 것만으로 이렇게 설렐 일이냐.
-그 옆에 연두랑 수호가 있으니까.
-다른 말이긴 하지만 유리까지 불러서 피아니스트 특집 해도 꿀잼일 듯.
-오, 좋다..
-유리랑 수호의 조합? 뭔가 안 어울릴 거 같은데 보고 싶다…
뜻밖에 눈에 들어온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에 더해 가능하다면 노엘까지 초대해서 피아니스트 특집을 진행하는 거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었다.
‘뭐, 나중 일이지.’
우선 현재에 집중하기로 하자.
고개를 살짝 돌려 연두를 본 나는 입을 뗐다.
“연두야. 피아노 소리 문제없이 잘 나오는지 확인해 줄래?”
아까 확인하긴 했지만 혹시나 해서였다.
방송 준비를 위해 원래 있던 위치에서 옮겨둔 것도 있고.
“네!”
힘차게 대답한 연두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귀에 들어왔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음의 향연이.
고개를 돌리니 연두가 해맑은 얼굴로 나를 향해 말한다.
“문제없이 잘 나와여!”
방금 연두가 한 게 뭔지는 음알못인 나도 알고 있었다.
스케일(scale).
훈련법이기도 하고 보통 연주하기 전에 가볍게 손을 푸는 워밍업 용도로도 많이 사용한다.
소리가 잘 나오는지 확인해달라니까 스케일을 해 버릴 줄이야.
확실히 가장 정확한 점검이긴 하다.
-방금 뭐임?
-이게 피아니스트의 점검인가…
-나한테 잘 나오냐고 물어보면 뚱땅뚱땅 두드려보고 말 텐데.
-연두야.. 왜 이렇게 멋있어..?
-쿨하게 스케일 한 번 하고 일어나는 거 왤케 멋지냐.
-풀사운드로 이어폰 끼고 보고 있는데 잠깐이지만 귀가 녹는 줄 알았음.
-스케일만으로 극락을 가게 만드는 연두는…
-손 진짜 빠르다, 근데. 모든 음을 다 치는 건데 저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치네.
-아 ㅋㅋ 누구한테 배운 기본기인데.
-잠시 잊고 있었다. 연두 스승님이 이은경이라는 걸.
-초록님. 수호한테도 한 번 점검 맡겨주시면 안 될까요?
시청자의 의견은 적극 반영하는 편이다.
사실 나도 보고 싶은 것도 있고.
“수호야.”
능청스레 말을 건넸다.
“혹시 모르니까 수호도 한 번 확인해 줄래? 손에 잘 맞는지 확인도 할 겸.”
“아, 네.”
좋아, 완벽했어.
자리에서 일어난 수호가 피아노 앞으로 걸어간다.
이어지는 음의 향연.
따다다단.
역시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스케일이었다.
살짝 고개를 돌리는 수호.
“잘 나오는 거 같아요.”
그리고 채팅창에는 극락이 도배됐다.
***
문제없이 소리가 나오는 것도 확인했으니 남은 건 하나였다.
“이제 연주를 해 볼 건데요. 수호씨는 요즘 가장 즐겨 치는 곡이 있나요?”
“아, 저는……”
조금 머뭇거리던 수호가 말했다.
“요즘 가장 즐겨 치는 곡은 아니지만 가장 연주하고 싶은 곡은 있어요.”
이런 적극성은 두 팔 벌려 환영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처음부터 치고 싶은 곡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 어떤 곡인가요?”
“쇼팽인데……”
이어지는 곡명을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곡 선정에 문제가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단지 의아했을 뿐이다.
“그건 콩쿠르 때 쳤던 곡 아닌가요?”
“맞아요.”
역시나 그랬다.
내 기억력에 문제가 없다면 콩쿠르 때 수호가 쳤던 곡과 동일했으니까.
쇼팽 에튀드.
쇼팽 에튀드 중에서도 상당히 고난도에 속하는 곡이었다.
척 봐도 어려워보이긴 하지만.
‘장난 아니게 빠르지.’
아홉살의 나이에 큰 실수 없이 연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낼 만한 곡이다.
그런 곡을 완벽하게 연주해내고 대상을 받은 수호였다.
따라서 나는 물었다.
“똑같은 곡을 연주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때 제 연주는 아무것도 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요.”
“전하지 못했다고요?”
“네. 연주를 들은 관객들이 한 말이 맞았어요. 로봇같다, 기계같다, 재미없다…”
숨이 턱 막힌다.
이걸 본인 입으로 이렇게 언급해버릴 줄이야.
연두도 당황한 건지 눈을 깜빡인다.
-ㅠㅠㅠㅠㅠㅠㅠ
-나쁜 사람들…
-미안하다, 수호야..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초등학생이 저걸 칠 수 있다고? 하면서 입 벌리고 봄.
-나도.
-힘내, 수호야. 어른들이 미안해…
-애초에 콩쿠르가 알려지고 기자들도 찾아가서.. 상처 많이 받았을 거임.
-흐구ㅠㅠ 속상해.
그러나 수호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연두 연주를 듣고 생각했어요. 사람들한테 전해지는 연주를 해야겠다고.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드는 수호.
눈동자 안에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어요.”
이제 알았다.
콩쿠르 때와 똑같은 곡을 선택한 이유를.
관객들에게 달라진 점을 보여주기에는 같은 곡 만한 게 없었다.
그래야 변화가 체감될 테니.
‘증명하고 싶은 거구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선 말로 진심을 전하는 건 확실히 성공한 수호였다.
허나 그런 말이 있다.
피아니스트는 입이 아니라 피아노로 말한다고.
누가 한 말이냐고?
그걸 얘기하면 신용도가 곤두박질 칠 거 같으니 굳이 얘기하지는 않겠다.
아무튼간에 증명의 무대는 마련되어있었다.
“그럼 바로 연주해 볼까요?”
“네.”
연두부들의 응원.
피아노 앞에 앉은 수호를 향해 연두도 진심어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수호야, 파이팅..!”
“고마워.”
옅은 미소.
그 뒤에 예고없이 연주가 시작됐다.
따단. 딴.
시작부터 빠르게 움직이는 손.
생각할수록 놀랍다.
저 작은 손으로 이런 빠르기와 움직임을 소화해낸다는 게.
수많은 연두부가 보고 있는 채팅창 속에는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 연두부들도 있었다.
어떻게 아냐고?
올라오는 채팅을 보면 알 수 있다.
-와.. 진짜 미쳤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이렇게 귀 호강해도 되는 거냐, 진짜…
-ㄹㅇ 고품격 음악방송이다.
-본업하는 수호…
-진짜 이거 연주하기 개까다로운 곡인데. 나한테 욕하는 법을 알려줬던 곡…
-와, 양손 다른 리듬 연주하는 거 소름돋는다…
-기교 미쳤다.
-오른손 아티큘레이션 살려서 치는 거 봐. 콩쿠르 때도 완벽해서 할 말이 없었는데 더 완벽해졌는데?
-이게 아홉살? 이게 아홉살? 이게 천재???
-대상의 품격이다…
전문용어가 등장한다.
뿌듯한 사실은 이제 나도 그런 용어들이 뭔지 알고 있다는 점이다.
혼자 공부했다.
피아니스트 아빠가 기본적인 용어도 몰라서는 안 되니까.
‘아티큘레이션.’
고급 용어였다.
연속되는 선율을 더 작은 단위로 구분해서 각 단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연주 기법.
그 말대로였다.
빠른 연주 속에서도 수호는 음 하나하나에 강약을 담고 있었다.
생명력이 느껴진다.
어느 순간에 나는 발견했다.
수호의 연주에 완전히 빠져든 채로 몰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따다단. 단. 따단.
연두는 완전히 넋이 나간 채로 감상하고 있다.
같은 피아니스트로서 존중과 경의, 그리고 동경이 담긴 눈빛으로.
클라이막스에 접어드는 연주.
손목과 손가락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건반 위를 춤춘다.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달라졌어.’
정확히 뭐가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수호에게 달라진 점을 찾는 게 아니라 듣고 있는 나한테 찾기로 했다.
듣는 재미가 있었다.
음 하나하나에서 생명력이 느껴진다.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귀를 타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왔다.
‘.. 웃었어.’
끝나지 않은 연주.
그 속에서 살짝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는 수호의 입꼬리가.
이제는 수호에게도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가장 큰 변화였다.
방금 내 눈에 들어온 수호의 웃음은.
-나만 본 거 아니지?
-수호 웃는 거 진짜 심쿵..
-내가 수호 또래 여자애였으면 무조건 반했다…
-남자도 반한다, 이건.
-콩쿠르 때는 완벽한 로봇같았는데 오늘은 전혀 아닌데?
-귀가 즐겁다…
-이어폰 풀로 하고 보셈. 진짜 극락감.
쏟아지는 반응.
연주가 끝나고 수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줍은 표정으로 일어선다.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수호야.”
“네.”
“전해졌어, 완전.”
옆에서 연두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수호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고개를 돌린 나는 연두와 눈을 맞췄다.
“…”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미 수호가 넘겨준 바통을 이어받을 준비가 됐다는 걸.
피아노 앞에 앉는 연두.
역시나 별도의 예고는 없었다.
딴. 따단.
그렇게 귀에 파고들었다.
다시 연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