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75)
화. 연탄곡
생각 이상의 연주를 펼친 수호.
그로 인해 기가 죽은 건 아닐까 걱정한 게 무색하게 연두는 되려 자극을 받은 모습이었다.
한 명의 피아니스트로서.
딴. 따단. 딴.
몇 번의 두드림만으로 어떤 곡인지 알 수 있었다.
경쾌한 선율.
고개를 돌리니 수호도 작게 웃음짓고 있다.
하기야 내가 아는 곡을 수호가 모를 리 없지. 더군다나 이건……
‘쇼팽이니까.’
방금 수호가 친 곡과 마찬가지로 쇼팽의 음악이었다.
에튀드가 아닌 왈츠지만.
[Chopin – Waltz No.4 in F, Op.34 No.3]작품명 화려한 왈츠.
그러나 그 제목보다는 ‘고양이 왈츠’라는 별칭으로 더 널리 알려진 곡이었다.
실제로 고양이와 관련이 있었다.
피아노 건반 위에 올라간 새끼고양이가 스스로 낸 소리에 깜짝 놀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쇼팽이 본 거다.
그게 악상이 되어 만들어진 게 바로 ‘고양이 왈츠’였다.
‘얘기해 줬지.’
나는 내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피아노의 기술적인 면에 관여할 수는 없으나, 곡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건 가능했다.
처음에 연두가 이 곡을 접했을 때 나는 말해줬다.
앞서 말한 일화를.
‘그러니까.. 쇼팽이 우리집에 놀러 온 거야.’
‘쇼팽이요?’
‘응.’
‘쇼팽이 아빠랑 연두네 집에여?’
‘그렇지.’
‘우아…’
몇 년간의 동화책 읽기를 통해 다져진 스토리텔링 능력.
그 기술 중 하나였다.
적절한 비유를 들어 연두가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쇼팽이 집에 놀러온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연두에게 있어서 그만큼 설레는 일은 없었다.
즉, 단숨에 몰입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여? 쇼팽이 집에 놀러왔는데요..?’
역시나 질문왕 연두는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실제로 고증에도 맞았다.
내가 본 이야기에 따르면, 쇼팽은 자신이 아닌 ‘조르주 상드’가 키운 고양이를 보고 악상을 떠올린 거니까.
그게 누구냐 묻는다면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그런데 쇼팽이 우리집에 와서 본 거야.’
‘.. 뭐를여?’
‘누렁이를.’
나는 덧붙였다.
‘정확히는 연두 피아노 위에 올라갔다가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하는 누렁이를 본 거지.’
‘아! 누렁이 그런 적 있어요!’
‘하하, 그렇지?’
꽤나 지난 일이었다.
쇼팽의 일화처럼 피아노 위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란 누렁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눈도 깜빡 안 하지만.
나중에 그때 장면을 떠올리며 실소를 뱉었지. 쇼팽은 그런 걸 보고도 영감을 얻는구나 하고.
‘그런 누렁이의 모습을 보고 쇼팽이 만든 곡이라고 보면 돼. 이 고양이 왈츠는.’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연두는 말했다.
‘아빠.. 다시 들어볼래요…’
사뭇 진지한 모습에 나는 말없이 다시 곡을 틀어줬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왔다.
살며시 선회하듯 올라가는 입꼬리가.
곡을 끝까지 다 들은 뒤에 연두는 자그맣게 덧붙였다.
‘… 누렁이 왈츠.’
그때부터였다.
고양이 왈츠를 나랑 연두가 ‘누렁이 왈츠’라고 부르게 된 건.
그리고 지금.
수호의 멋진 연주에 답가를 보내듯, 연두는 그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딴. 딴. 따단. 딴.
상쾌하고 활기 넘치는 리듬이 돋보인다.
생기있게 움직이는 연두의 손은 마치 건반 위를 뛰노는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아니, 누렁이를.
-미쳤다…
-나 이거 진짜 좋아하는 곡인데 ㅋㅋ 이 정도로 좋은 곡이었나.
-고양이 집사의 위엄…
-진짜 신난다. 쇼팽도 보면서 어깨춤 출 듯.
-뭔가 톰이 제리 잡으러 다니는 거 연상되지 않냐.
-수호 연주가 최고급 메인디쉬라면, 이건 무릉도원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극상의 디저트같다.
-찰떡비유 지리네.
-연두는 피아노 칠 때 제일 예쁜데 아이러니하게도 미모에는 가장 집중이 안 됨. 듣다 보면 연주에 빠져들어서.
-와… 생각해보니까 진짜 그러네.
피아니스트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얘기였다.
물론 외모에 대한 칭찬도 좋다.
한 남자배우가 남긴 어록도 있지 않은가. 잘생겼다는 건 늘 새롭고 짜릿하다고.
나도 뼈저리게 공감한다.
‘.. 장난이고.’
설사 빈말이더라도 기분좋은 칭찬 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수줍어하면서도 늘 배시시 웃음짓는 연두였으니까.
그러나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예외였다.
외모에 관한 언급이 하나도 없어야 된다는 둥의 극단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게 전부인 건 곤란해.’
피아니스트로서 선 무대에서조차 외모에 관한 언급뿐이라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그래서였다.
이런 연두부의 반응이 반가운 건.
연두가 한 명의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딴. 따단. 딴.
연두의 두 손이, 그걸 증명해내고 있었다.
***
연두의 연주까지 끝이 나고 방송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방송을 시청중이었다.
선동이와 노엘은.
“… 아들, 얼굴이 빨개졌는데?”
“무, 무슨 소리야!”
괜히 찔린 선동이는 말을 더했다.
“더워서 그래, 더워서.”
“호오..”
무더운 여름은 지나간지 오래다.
그런 선동이의 반응이 오대수는 마냥 귀여울 뿐이었다.
짜식, 부끄러워하기는.
앞선 수호의 연주를 들을 때와는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
사실상 표정관리가 전혀 안 됐던 선동이였다.
‘말이 안 되잖아!’
노엘 하나로 족했다.
그런데 웬 재야의 고수가 나타나서 또 입이 떡 벌어지는 연주를 선보인 거다.
심지어 잘생겼다.
알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연두 주위에는 이런 녀석들이 많은지.
‘세 명이나 있잖아!’
노엘과 수호.
그 사이에 선동이는 자신을 슬쩍 끼워넣었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미래에 국내 최고의 의사가 될 인재니까.
게다가 미남이고.
“.. 뭐, 좀 치긴 하네.”
그렇게 애써 쿨하게 넘어간 선동이.
연두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는 말 그대로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헤벌레하는 표정.
괜히 그 모습을 보며 오대수와 김진아가 웃은 게 아니다.
“근데 엄마도 깜짝 놀랐어. 연두가 이 정도로 잘 치는 줄은 몰랐는데.. 저번 콩쿠르 때보다도 더 늘은 거 같지 않아?”
“.. 응.”
선동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덧붙였다.
“그런 거 같아.”
가만히 넘어갈 오대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선동이 네가 그렇게 뿌듯해하는 거냐.”
“응?”
“하긴, 사랑하는 여인의 발전을 지켜보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지.”
잠시 멍하니 있던 선동이가 말뜻을 파악하고 빽 소리쳤다.
“아! 그런 거 아니라고!”
한편 그 시각.
노엘과 소피아도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떤 거 같니?”
주어를 생략한 질문에 노엘은 바로 대답했다.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많은 거 같네요. 한국에는.”
“그러니?”
“네.”
“네가 생각하는 한국의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누구인데?”
“제 또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아니라고 했다면 이은경의 이름이 나올 건 불 보듯 뻔했으니까.
“우선 이 남자애요.”
노엘이 가리키는 건 수호였다.
방금의 연주만으로도 노엘은 수호가 어떤 역량을 가진 피아니스트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은?”
노엘은 지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유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애도 좋은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해요. 성격이 조금 고약하긴 하지만.”
소피아가 소리내어 웃었다.
사족을 붙이는 법이 거의 없는 노엘이 굳이 뒤에 덧붙인 말에.
그녀는 재차 입을 뗐다.
“그리고, 또 있니?”
노엘의 시선이 화면을 향해 내려갔다.
소피아가 말했다.
“.. 연두구나.”
“네.”
“그럼 다음은? 또 아는 피아니스트가 있니?”
고개를 저으며 노엘은 대답했다.
“아뇨. 제가 아는 한국의 제 또래 피아니스트는 세 명이 전부라서요.”
“그렇구나.”
“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응?”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한국의 많은 아이들이 독일로 유학을 온다고.”
늘 진지하지만 더 진지한 얼굴로 노엘은 덧붙였다.
“왜 그런 걸까요. 이 셋을 보면 그 반대가 돼야 할 거 같은데.”
“호호..”
그럴 만도 했다.
소피아가 한 말도 틀리지 않았고, 노엘이 의아해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지막이 입을 뗐다.
“글쎄. 아마 네가 말한 세 명이 조금은 특별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또 하나, 노엘이 특별한 것도 있었다.
수준높은 독일의 또래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노엘이었으니까.
그래서 크게 와닿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독일의 수준이.
‘그런데도 이 세 명을 인정한다는 건……’
그만큼 특별한 아이들이라는 뜻과도 같았다.
그래서일까.
소피아의 얼굴에 조금은 장난기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그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네.”
“그 셋과 네 실력을 비교하면 어떤 거 같니?”
역시나 바로 답이 나왔다.
음악에 있어서 노엘은 판단이 빠르고 정확한 편이었으니까.
“지금으로서는 제가 더 낫다고 생각해요.”
“.. 지금으로서는?”
처음이었다.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은 건.
잠깐 혼자 생각하는가 싶더니 노엘은 입을 뗐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어떤 생각?”
“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그 셋 중에 한 명이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어있을 거 같다는.. 그런 생각이요.”
“그 한 명이 누군지 물어봐도 되니?”
이어지는 노엘의 답을 들은 소피아는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화면에서는 연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콘텐츠가 끝이 났다.
오엑스 퀴즈부터 이런저런 토크, 그리고 음악방송까지.
예정보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즐거운 나머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에 따라 나는 방송종료를 선언했다.
즐거운 만큼 아쉬움은 남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언제까지고 방송을 진행할 수는 없고, 오늘 준비한 콘텐츠 그 이상을 했으니까.
그런데 웬걸?
연두부의 반발이 생각보다 심했다.
-초
-락
-락
-락
-초
-락
-초
………
………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면 오늘 열심히 진행한 내 이름을 연호해주는 줄 알고 기뻐할 뻔 했다.
둘 다 아니었다.
초락은 ‘초록’과 ‘나락’의 합성어였다.
-그만해, ㅁㅊ놈들아.
-아쉬운 건 알지만 이건 아니지. 초록님이 오늘 얼마나 캐리했는데.
-이러다 이제 방송 안 켜면 너네가 책임질 거냐.
-연두가 초락 뜻 물어보기 전에 다들 아닥해라. 연두 상처받는 거 보고 싶냐.
-여기가 고래 방인 줄 알어 ㅉㅉ
-내가 볼 땐 연두부 말고 다른 애들이 침투한 게 틀림없다.
-분란종자들 쳐내!!
애꿎은 고래가 불쌍하다. 그나저나 이런 느낌이구나.
혼자 방송하면서 나락 도배를 받아본 건 처음이라 조금 얼떨떨하긴 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방송이 그만큼 재밌었다는 거니까.
“초록 엄청 많다.. 헤헤…”
다행히 연두는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거 같았다.
초락을 초록으로 본 모양이다.
그에 따라 채팅창 물결은 순식간에 ‘초락’에서 ‘초록’으로 바뀌어갔다.
-초
-록
-록
-초
-록
………
………
간간이 ‘락’이 올라오긴 했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였다.
“저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고개를 돌리니 수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조심스레 입을 뗀다.
“방송 종료하기 전에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하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수호의 첫 부탁이었다.
어지간하면 들어줄 생각이었다.
-오, 뭐야.
-수호좌 설마 폭탄발언?
-설마…
-숨겨왔던 나의~
-에이 ㅋㅋ 아무리 수호라도 이 타이밍에 그러면 고백으로 혼내주는 거지.
다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었다.
진짜 수호가 그런 말을 하려고 생각한다는 연두부는 하나도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 그러니까.. 연두랑……”
-어??
-잠깐만. 뭔데.
-진짜라고?
-아니야. 그거 아니야, 수호야. 멈춰.
-아직 안 늦었다.
심상치가 않았다. 과하게 머뭇거리는 모습.
지금껏 수줍어하는 모습이 여러번 있긴 했으나 곧잘 할 말은 했던 수호였다.
그리고 마침내 수호가 입을 뗐다.
“.. 연두랑 같이 연탄곡을 치고 싶어요!”
“…”
동시에 우리는 깨달았다.
한 명도 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