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76)
화. 교감
“.. 연두랑 같이 연탄곡을 치고 싶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 타이밍에 수호가 뜬금없이 마음을 전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애초에 아까 OX 퀴즈 때도 연두를 좋아한다는 말 앞에 ‘친구로서’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기도 했고.
한편 채팅창에 올라오는 댓글들.
-휴우…
-일단 고백은 아닌 거잖아.
-오해해서 미안해, 수호야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연탄곡이 머임??
-연탄곡이 곡 이름이야? 제목 특이하네.
-누렁이 왈츠도 있는데 뭐
-앜ㅋㅋㅋㅋㅋ
-일단 뭔지는 몰라도 하나 더 연주한다는 거잖아. 극 락 극 락……
보다시피 연탄곡이 뭔지 모르는 댓글이 많았다.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었다.
-연탄곡은……
설명하는 연두부의 댓글은 수많은 댓글들에 묻히기 일쑤였다.
방법은 하나였다.
내가 설명하는 수밖에.
다행히 나는 연탄곡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거 같아서 설명을 드리자면……”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하나의 피아노로 두 명이 함께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곡이 연탄곡의 정의다.
그래서일까.
설명이 끝난 뒤에 수많은 댓글이 날아들었다.
-수호, 이 녀석……
-근데 신기하다. 난 피아노에 그런 게 있는 줄 몰랐음.
-그니까 동시에 하나의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거잖아. 영화에서 몇 번 본 거 같은데.
-연탄곡 치면서 사랑에 빠지는 거 국룰 전개 아니냐.
-실제로 연탄곡 자체가 좋아하는 사람 생각하면서 작곡한 경우 개많음 ㅋㅋ
-수호 빌드업 미쳤는데??
-근데 보고 싶긴 하다. 그림 개이쁠 거 같아.
-ㅇㅈ
우선 방송이 당장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연두부들은 잔뜩 신이 난 상태다.
수호를 향해 입을 뗐다.
“왜 연두랑 연탄곡을 치고 싶었어?”
역시 수줍은 얼굴이었으나 이번에는 답을 망설이지는 않았다.
“연두는..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피아니스트니까요. 그러니까 꼭 한 번 같이 피아노를 쳐 보고 싶었어요. 오늘이 아니면,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아서…”
“그랬구나.”
진심이 전해진다.
나도 연탄곡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런데 수호야.”
“네.”
“연탄곡을 치려면 따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아?”
혼자 연주하는 것도 준비가 필요하다.
하물며 둘이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연탄곡을 별도의 준비 없이 치는 게 가능할지가 의문이었다.
“네. 그래서……”
수호는 의외로 뒤가 없었다.
하필이면 연두와 같이 연탄곡을 치고 싶다고 생각한 게 어제 잠들기 전이었다는 모양.
가져온 건 악보뿐이었다.
그러니까 스스로도 익숙하지 않은 곡을 들고 온 거다.
“하하..”
조금은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연습도 제대로 되지 않은 곡을, 심지어 연탄으로 연주할 생각을 한다.
자칫하면 엉망이 될지도 모르는데도.
‘달라졌잖아.’
전의 수호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무조건 완벽하게 준비해야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과거 수호의 모습과는 명백히 달랐으니까.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그리고 이 제안에 대답하는 건 내가 아니었다.
“어때. 연두야?”
전혀 준비되지 않은 연탄곡.
아무리 방송이라지만 부담이 돼서 거절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나 연두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악보조차 보지 않고서.
“하고 싶어요, 연탄곡..!”
환해지는 수호의 표정.
그리고 아차 하고서 연두에게 악보를 건넨다.
“.. 여기.”
“응!”
악보를 받아든 연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옅은 미소가 번지는 연두의 입가였다.
***
선동이는 무척 화가 난 상태였다.
왜 피아노에는 연탄곡이라는 게 있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연탄곡.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방송 도중에 몇 번이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선동이였다.
‘흥! 엄청 못 해 버려라.’
그렇게 생각했다가 곧바로 선동이는 입을 두 번 두드렸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 취소.’
비겁한 건 싫었다.
선동이의 장점 중 하나였다.
유치한 생각을 하다가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건.
선동이는 방금과는 반대의 말을 뱉었다.
“잘해라..”
그 목소리를 들은 김진아가 말했다.
“뭐야. 방금 잘하라고 한 거야?”
“응.”
“연두?”
“아니, 둘 다.”
“웬일이야? 수호만 나오면 아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그런 적 없거든.”
입을 삐죽 내밀며 선동이는 말했다.
“기왕 할 거면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좋잖아.”
“오오..”
김진아가 미소를 띠며 얘기했다.
“우리 아들 멋있는데?”
“.. 그, 그래?”
멋있다는 말에 금세 헤벌레하는 선동이.
오대수가 와락 껴안는다.
“자랑스럽다, 아들아!”
“.. 억!”
한편 노엘은 다른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독일에서의 기억이었다.
연습실에서 연두를 만났을 때, 비록 연탄곡은 아니었으나 함께 연주한 적이 있으니까.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였다.
딴. 따단.
그때를 떠올리다 보면 당시의 감정까지 되살아났다.
둘뿐이던 연습실에서 말도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피아노 두 대로 온전히 교감했던 그 순간이.
조금은 희망을 얻기도 했다.
마냥 밝은 애라고 생각했던, 자신과는 정반대라고 생각했던 연두의 연주 속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으니까.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아픔과 상처까지도.
‘그런데도……’
연두는 가장 환한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노엘은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웃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소피아가 입을 뗐다.
“무슨 생각 하니, 노엘?”
그 물음에 노엘은 대답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멋졌던 순간이요.”
“그렇구나.”
소피아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을 뿐이다.
***
연탄곡.
수호가 준비해 온 악보의 윗면에는 제목이 쓰여있었다.
반가운 이름이 보인다.
[Tchaikovsky: Sleeping Beauty – Waltz]다름 아닌 ‘차이코프스키’의 곡이었다.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이은경이 우승한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가 바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니까.
연두가 악보를 보고 미소지은 이유도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센스가 있네.’
곡명도 그랬다.
이 연탄곡의 제목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다.
그중에서도 왈츠다.
왈츠는 여러 장르 중에서도 연두가 제일 강점을 보이는 장르였다.
“네가 여기를 치면 될 거 같아, 연두야.”
“.. 응!”
연탄곡이다 보니 각자가 쳐야 할 부분이 달랐다.
둘은 곧잘 파트를 분배했다.
악보를 숙지하는 시간이 있긴 했으나 맞춰보는 시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 와중에 연두가 속삭이듯 말한다.
“.. 들어본 적 있어여.”
“응?”
“이 노래..”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곡과 귀에 익숙한 곡은 연주하는 것의 차이는 크니까.
배시시 웃음 짓는 연두.
악보를 지나는 눈에 맞춰 연두의 손가락도 움직인다.
건반 위는 아니지만 허공 위를 춤춘다.
‘이런 느낌이구나.’
‘드림 큐’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전혀 모르는 곡이다.
그럼에도 연두의 손을 보고 있으니 피아노 선율이 귀에 들어오는 거 같았다.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이 곡을 제대로 들은 건 어젯밤이 처음이라고 하니까.
툭.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아이는 거의 동시에 손을 멈췄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하나, 둘, 셋.”
그렇게 연탄곡 연주가 시작됐다.
***
피아니스트 딸을 가진 나지만 거의 접해본 적 없었다.
연탄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정식 장르도 아니니까.’
소나타 형식으로 다른 악기를 곁들이기도 하지만 그건 연탄곡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 연탄곡은 언제 치냐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잘 모른다.
아까 본 바에 따르면 연탄곡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작곡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체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축제나 이벤트성으로 치는 경우가 많겠지.’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많이 하지 않는 건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내 생각은 연주 시작과 동시에 박살 났다.
딴. 따단. 따단.
‘.. 뭐야, 이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음의 향연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느낌.
그 이유를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장르야.’
연탄곡은 내가 듣던 피아노와 완전히 달랐다.
왜냐고?
구현할 수 있는 음역대의 수가 달랐으니까.
혼자 피아노를 치는 경우라면 아무리 천재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구현할 수 있는 음역대는 두 개로 한정된다.
손이 두 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탄곡의 경우는 다르다.
‘최대 네 개의 음역대까지 동시에 구현할 수 있어.’
그 말의 의미는 간단하다.
보다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음을 내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지금 내 귀가 그 증거였다.
3개 또는 4개의 음역이 번갈아 맞물리며 귀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쾌감을 선사한다.
완전히 연주에 빠져든 채로 나는 둘의 모습을 바라봤다.
‘신경 쓰고 있어.’
악보에 집중하면서도 서로의 호흡을 신경 쓰고 있다.
처음 맞춰보는 거라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다른 한쪽이 템포를 맞춘다.
물결이 흔들리는 듯한 멜로디.
딴. 따다단.
이제야 확실해졌다.
왜 연탄곡이 남녀 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매개체로 사용되는지.
직접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음악적으로 교감하는 데 있어서 이만한 게 없었으니까.
‘.. 예쁘다.’
연주하는 둘의 모습을 보면 직관적으로 드는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연탄곡은 서로의 속도를 향한 배려가 없이는 연주가 불가능하다.
주선율은 시도 때도 없이 서로를 향해 옮겨가고, 그럴 때마다 파트너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게 템포를 맞춰야 한다.
그게 내가 정의한 연탄곡이었다.
-아니, 잠깐만.
-이게 처음 맞춰보는 거라고?
-한 번씩 흔들리긴 하는데 그 흔들림도 연주 일부로 느껴진다…
-왤케 예쁘냐, 진짜…
-지금 눈이랑 귀로 동시에 듣는 중.
-연주도 연주인데 서로 의식하면서 호흡 맞추는 게 미쳤다… 이게 연탄곡이구나.
-왜 수호가 연탄곡 치고 싶어 했는지 알 거 같네.
-몇 번이나 레전드가 나왔지만 오늘 레전드는 지금 이 순간이다.
-채팅 치는 것도 아깝다.
실제로 시청자 수는 전과 변함없지만 채팅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이유는 감이 왔다.
채팅 치는 것도 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는 거겠지.
나 역시도 그랬다.
곡이 클라이맥스로 넘어가는 시점부터 나는 채팅창을 아예 보지 않았다.
따단. 딴. 따다단.
딴. 딴. 따단.
건반 위를 강렬히 춤추는 네 개의 손.
그렇게 모든 걸 쏟아내듯 힘찬 멜로디가 전개되다가 연주가 마무리된다.
동시에 나는 참았던 숨을 터트리듯 내뱉었다.
“.. 하아.”
수호와 연두.
아직 두 아이의 손은 건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살짝 고개를 돌리는 둘, 스치듯이 시선이 교차한다.
“…”
말없이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 두 아이.
채팅창을 보지 않아도 어떤 채팅이 올라오고 있을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이 장면은, 꽤나 오랫동안 회자될 거 같았다.
그렇게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