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84)
화. 사랑
“예쁘다…”
연두의 한 마디.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고수하던 생활방식을 한순간에 버릴 정도로 성일수는 한 여자를 사랑했던 거다.
늘 짓고 있는 미소도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연두뿐만이 아니었다.
시은이와 레나,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유치하다며 코웃음을 치는 유리조차도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시선에 스치는 또 한 명의 표정.
다름 아닌 세연씨였다.
‘잘 모르겠어.’
어떤 표정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방금 이야기로 인해 떠오른 표정임은 확실해보인다.
이윽고 작게 벌어지는 입.
“정말.. 많이 사랑하셨나 보네요.”
성일수를 향한 얘기였다.
“하하, 쑥스럽네요.”
옆에 있던 윤경아가 입을 뗐다.
“그래서 얼떨결에 결혼까지 해 버렸죠. 원래 결혼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제가 꺼낸 말이니까 빼도 박도 못하잖아요.”
“.. 그건 몰랐던 이야기인데?”
“당신이랑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그때는 그랬다는 거지. 우리 둘 다 어렸으니까.”
“아.”
빙긋 웃으며 성일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어렸지.”
한편 이야기를 들은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두 아들도 있었다.
우선 이수의 경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과자만 집어먹고 있다.
엄마아빠의 러브스토리는 궁금하지 않다는 건가.
‘자주 들었을지도 모르지.’
삼수는 달랐다.
엄마인 윤경아에게 안겨들며 이야기한다.
“엄마!”
“응?”
“엄마아빠가 결혼해서 너무 좋아!”
“흐응, 그래?”
“응! 엄마아빠가 결혼 안 했으면 나는 못 태어났을 거니까!”
“…”
세상 현실적인 이유에 말문이 막힌 윤경아였다.
***
토크가 끝난 뒤.
배운 동작을 전체적으로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윤경아는 관전자 역할이었다.
“어머.. 너무 잘한다..”
아이들을 향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그녀.
얼마 뒤에 복습이 끝나고 성일수는 우리를 향해 말했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의 마지막 시간, 실전훈련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전훈련이요?”
“네.”
실전 훈련.
성일수의 말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할 때 말고도 또 하나의 상황이 있다고 했다.
그건 바로 호신용 목적이었다.
‘내 몸을 지키기 위해.’
모든 무술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가장 기대가 되기도 했다.
실전상황에서 태권도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궁금했으니까.
성일수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저는 나쁜 사람이 될 겁니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달라진 분위기.
“그리고 그 나쁜 사람은 손에 무서운 물건을 들고 있을 수도 있죠. 실제로 저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고요.”
다소 딥해지는 이야기.
그래서일까.
옆에서 보고 있는 윤경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개의치 않고 성일수는 말했다.
“그럼 여기서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어서 그는 앉은 순서대로 이름을 지목했다.
실전 훈련.
그에 걸맞게 정답을 말하는 것도 입이 아니라 실전과 비슷하게 진행됐다.
“우오오! 나는 나쁜 사람이다! 너를 혼내주겠다!”
그런 거 치고 상당한 발연기긴 했지만.
처음 지목당한 유리.
지금은 괴한이 된 성일수를 향해 발을 내지른다.
“악!”
오늘 배운 아래차기였다.
하단에 아래차기를 맞은 괴한 성일수가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진다.
“꾀꼬닭…”
쓰러지는 소리까지 리얼(?)했다.
쿡쿡 웃음짓는 유리.
그 뒤로 연두와 시은이, 레나, 세연씨까지 나와서 차례로 오늘 배운 기술을 뽐냈다.
참고로 연두는 또 왼발 오른발 동시에 차기를 하다가 실패했다.
쿵.
곧바로 일어나서 정권지르기로 괴한을 무찌르긴 했지만.
물론 힘을 실어 때린 건 아니었다.
이건 진짜 때리는 게 아니라, 실전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답을 맞히는 데 의의가 있었으니까.
“끄억.. 너무 강하다…”
괴한 성일수의 발연기는 계속됐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저건 단순히 눈속임일 뿐이었다.
이런 문제에는 시각을 달리해 접근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럼 다음은.. 초록님 나오시죠. 아니, 나와라!”
드디어 내 차례군.
괴한 앞에 선 나는 기본준비자세를 취했다.
“네가 초록이면 다야! 가만두지 않겠어..”
어김없이 위협하는 괴한 성일수.
당장이라도 발차기를 내지를 듯한 표정을 짓다가 나는 입을 뗐다.
“잠깐만!”
“.. 뭐지?”
“이러는 건 좋지 않아. 우리 대화로 풀자고.”
당황한 표정의 괴한.
그렇다.
이게 바로 내 신개념 해답이었다.
‘어떻게 이기냐고.’
손에 무기까지 든 적이다.
아무리 내가 태권도 초고수라고 해도 이길 확률이 100%는 아니었다.
이긴다고 해도 크게 다칠지도 모르고.
“아직 늦지 않았어, 친구. 폭력을 쓰는 건 너 자신만 갉아먹는 일이야. 감옥에 가게 될 거고 매일 콩밥만……”
그때였다.
순식간에 내 앞에 접근한 성일수가 나를 툭 밀어서 넘어트렸다.
순간 서러움이 증폭됐다.
‘왜 나한테만 이렇게 엄격한 건데.’
앞선 상황에서는 발차기 한 대에 기절하더니 나한테는 일말의 자비도 없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만약 이게 실전이었다면 끝장이었다.
이 전략의 허점이 드러난 셈이다. 대화가 안 통하는 순간 끝이니까.
“잠깐만요. 한 번 더 해도 되나요?”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었다.
나도 주먹으로 간다.
의외로 관장님은 쿨하게 허락해줬다.
“하앗!”
기합을 내지르며 옆차기를 개시했다.
상당한 고난도 기술인 만큼 가산점이 붙을 테고, 괴한은 알아서 나자빠져 주겠지.
허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툭.
나자빠진 건 나였다.
미소를 띠며 성일수는 넘어진 나를 향해 얘기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괴한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기를 들고 있는 상대에게 준비동작 없는 발차기는 위험하죠.”
뭐라 반박을 하고 싶었으나 사실이었다.
이게 실제상황이었다면 단순히 넘어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을 테니.
그럼 대체 정답이 뭐지.
‘설마 유리의 아래차기가 정답은 아닐 거 아니야.’
그게 정답이라면 단연코 관장님에게 스파링을 신청할 거다.
맞아서 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은 이수. 괴한으로서 불량 고등학생은 참을 수 없지. 흐하하!”
아들도 포함이었던 모양이다.
짜증 섞인 표정으로 이수가 앞으로 걸어나온다.
“누가 불량 고등학생이라는 거야. 그리고 발연기 좀 그만해.”
“네가 생각하는 정답은 뭐지?”
“정답이고 자시고……”
이수가 주먹을 꾹 쥐었다.
“무기를 들든 어쨌든 나쁜 놈이라는 거잖아. 나쁜 놈은 착해질 때까지 맞아야지.”
기본준비자세.
이윽고 이수는 순식간에 괴한 성일수의 앞으로 접근했다.
주먹을 뻗는 성일수.
그 손을 피한 이수는 몸을 틀어 괴한의 얼굴을 겨냥했다.
스륵.
막혔지만 이어지는 연타.
하나같이 진심이 담긴 공격이었지만 정타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수의 발목을 잡은 성일수가 말했다.
“실전이었으면.. 알지?”
“.. 쳇.”
스파링 수준이 아니다.
아까도 봤지만 두 번 봐도 신기한 부자간의 공방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서는 삼수.
“악당도 회전은 못 이겨!”
그렇게 또 공중에서 회전해서 얼굴을 노린 삼수의 공격은 가드에 막혔다.
매트 위에 대자로 뻗은 삼수.
“악당이 너무 세잖아.. 꾀꼬닭..”
아빠의 태권도 실력부터 발연기까지 흡수해버렸다.
이렇게 끝이 난 모의훈련.
“모두의 답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부 오답입니다.”
역시 정답은 없었군.
그는 나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악당과 대화로 해결한다는 초록님의 발상은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죠.”
“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안 통하는 괴한을 만났을 경우에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럼.. 정답이 뭔가요?”
“지금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게 오늘 수업의 마지막입니다.”
마지막 수업.
동시에 관장님은 이수를 또 한 번 호출했다.
“이수, 이제부터 너는 나쁜 사람이야. 나는 괴한을 맞닥뜨린 거고.”
“갑자기 사람을 악당 취급……”
투덜대던 이수는 순간적으로 자세를 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일수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으니까.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
‘… 뭘 하려는 거지.’
그건 보고 있는 나와 아이들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리고 어느 순간, 성일수가 기합을 내질렀다.
“하앗!”
지면에서 떨어진 발.
이윽고 믿기 힘든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파밧. 팟.
그대로 뒤돌아선 성일수는 냅다 줄행랑을 치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을 끔뻑이는 이수.
조금의 시간이 지나 성일수는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자, 이게 정답입니다.”
“예?”
“무기를 든 악당을 마주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도망가세요. 악당보다 달리기만 빠르면 됩니다.”
정답이 삼십육계 줄행랑이었다니.
즉, 결론은 하나였다.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도록 달리기를 연습하라는 교훈을 남기는 마지막 수업이었다.
***
즐거웠던 원데이클래스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세연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 예뻤어.’
직업이 작가인 만큼 그녀는 주위에서 많은 영감을 얻곤 했다.
글을 통해서는 많은 것들을 표현하는 게 가능했다.
표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예쁜 단어를 골라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었다.
허나 가끔 신기할 때가 있었다.
꾸며낸 것도 아니다. 과장하거나 축소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풀어낼 뿐인데도, 그 이야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와닿을 때.
일례로 주원씨와 연두 이야기를 들 수 있었다.
‘마냥 순탄했던 건 아니야.’
물론 세세한 부분까지 알지는 못했다.
허나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팠던 연두의 과거, 열악했던 당시의 상황, 그리고 친척들의 반응까지.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서 부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이었다.
‘현실은 픽션보다 아름답다.’
그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세연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도 누군가의 시선에는 그렇게 보일 거라는 걸.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왜일까.
관장님의 러브스토리를 접했을 때 스스로 놀라울 정도로 마음 속 깊이 와닿았던 건.
세연은 작가였다. 글을 쓰다 보면 당연히 사랑에 관해 다뤄야 할 때도 많았다.
따라서 나름대로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허나 그런 사랑도 추상적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오늘이 그랬어.’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직관적으로 떠올랐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남자는 오랜 시간 고수한 생활방식을 한순간에 포기하고 여자를 택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는 확신이 없음에도 결혼을 입에 담았다.
역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둘은 맺어졌어.’
시시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 엔딩을 맞기까지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희생이 있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짧은 이야기조차 그렇게나 아름다운데.
자연히 떠오르는 생각.
‘나도 언젠가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옅은 미소를 띠며 세연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지금이라면 평소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눈부시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