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86)
화. 우정
아침식사 시간.
세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서 아침을 먹고 있다.
나랑 연두, 그리고 사료그릇에 코를 박고 먹고 있는 누렁이까지.
“.. 냐아.”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친 건 누렁이였다.
만족스러운 듯이 혀를 날름하며 돌아서는 누렁이를 보니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면……
아암.
야무지게 숟가락을 입에 넣는 연두가 보인다.
오늘 아침메뉴는 볶음밥.
개인적으로 상당히 자신있는 메뉴 중 하나이다.
같은 볶음밥이라고 해도 어떤 재료를 메인으로 두고 볶을지는 항상 다르다.
훌륭한 셰프는 레시피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재료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니까.
‘스승님의 말씀이지.’
게다가 볶음밥은 크게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 음식이었다.
이상한 것만 안 넣는다면.
그에 따라 내가 오늘 선택한 재료는 새우였다.
레시피를 볼 필요도 없었다.
파기름을 내서 볶다가 각종 야채와 새우를 넣고 또 볶고, 밥을 넣고 또다시 볶으면 끝이니까.
물론 중간에 마법소스를 추가하는 건 필수다.
‘굴소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연두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햄스터처럼 양볼이 볼록하다.
“천천히 먹어, 연두야.”
“네에.”
결국 연두는 한그릇을 밥 한 톨도 안 남기고 야무지게 비웠다.
나는 진작에 다 먹은 상태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두는 내 자리로 걸어오더니 그릇을 회수해간다.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대견하다.
끝이 아니었다.
“.. 읏.”
옆에 있는 의자를 당기는 연두.
싱크대 쪽으로 당기는 걸 보니 설거지까지 하려는 게 분명하다.
“아니야, 연두야.”
“.. 으응?”
“오늘은 괜찮아. 아빠가 할게.”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아빠가 요리했으니까.. 설거지는 연두가 해야 해요..!”
확실한 역할 분담.
논리적이다.
그러나 세상이 논리만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다.
항상 변수가 있으니까.
“시계 한 번 볼래, 연두야?”
“시계..?”
벽걸이 시계를 본 연두의 눈이 동그래진다.
이제는 원형시계를 보고도 시간을 볼 줄 알게 된 연두였으니까.
나는 말했다.
“빨리 준비 안 하면 지각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설거지는 저녁에 아빠랑 같이 하자.”
“네..”
조금은 풀이 죽은 얼굴로 말한다.
“미안해여, 아빠.. 연두가 늦잠 자서……”
“하하, 아니야.”
준비를 마친 뒤 등굣길.
태권도를 배우고 온 뒤에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장난스레 나는 말을 꺼냈다.
“연두야.”
“네, 아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태권도 쓰면 안 된다?”
톡 건드리며 덧붙였다.
“일수태권도 규칙 알지?”
“알아여!”
단호한 얼굴로 연두는 얘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할 때가 아니면 태권도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
일수태권도의 유일무이한 규칙이었다.
“그래서 관장님은 가족을 지킬 때만 태권도를 사용한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가족을 사랑하니까..”
확실히 그랬다.
성일수 관장님이 태권도를 사용하는 조건은 아내와 이수, 그리고 삼수를 지키기 위해서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수는 굳이 안 지켜줘도 될 거 같긴 하지만.
‘삼수도 마찬가지고.’
발차기를 보니 시간문제였다.
아마 몇 년만 지나면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괴물이 되어있을 거 같으니까.
왠지 그렇게 돼도 성격은 그대로일 거 같지만.
그러고 보니 궁금해진다.
‘잘 해결했으려나.’
일수태권도의 규칙.
그건 관장님 막내아들인 삼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그래서였다.
삼수가 마음이 쓰여 해결책을 알려준 건.
이게 맞는 건가 조금 고민이 되긴 했으나 효과는 직빵일 거라 생각했으니까.
뭐, 잘한 거겠지.
어떤 경우든 괴롭힘은 좋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연두도 가족을 지킬 거예요..!”
결의에 찬 표정.
입을 앙다문 그 모습을 보니 그만 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래, 연두야.”
손을 꼭 잡으며 얘기했다.
“아빠도 연두랑 누렁이가 위험에 처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게. 관장님한테 배운 발차기로.”
그런 나를 빤히 보더니 연두가 말한다.
“거울 보면서 연습한 발차기로요..?”
“.. 켁.”
이어지는 헛기침.
알 수 없었다.
물을 마신 것도 아닌데 사레가 들린 이유를.
***
영상이 올라간 뒤, 관장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연락이 늦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채널을 확인해서요.’
채널이 급성장한 데에 있어서 고마움을 전하는 내용의 통화였다.
확실히 떡상이긴 했다.
아마 함께 콘텐츠를 진행한 첫 채널이라 더 파급력이 컸던 걸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좋은 일이지.’
내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원래 구독하고 있기도 했고, 함께 콘텐츠를 진행한 채널이 잘 돼서 나쁠 건 하나도 없으니까.
그런데 우스운 건 따로 있었다.
일수 태권도 채널이 떡상했다는 것보다도 나를 기분좋게 만든 소식은.
통화를 마칠 즈음이었다.
‘아, 참.’
그렇게 운을 뗀 성일수는 말했다.
‘깜빡할 뻔 했네요. 아들녀석이 전해달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아들이라면…’
알다시피 성일수의 아들은 둘이었다.
이수와 삼수.
그리고 내게 말을 전해달라고 한 건 삼수인 모양이었다.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삼수가 그러더라구요.’
‘뭐라고요?’
‘형아 말대로 했더니 친구들이 하나도 안 놀린다고. 감사하다고요.’
심지어 놀리던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이랑 사탕까지 줬단다.
뿌듯함에 벅차오를 정도였다.
내가 공들여 제작한 삼수를 위한 쇼트영상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궁금하긴 했지만 초록님과 아들녀석 둘만의 비밀인 거 같아 묻지 않았습니다.’
‘하하, 그러셨군요.’
그 말에 안도했다.
딱히 비밀로 한 건 아니었지만 떠벌릴 만큼 근사한 이야기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끝난 통화였다.
생각하니 다시 떠올라 연두튜브에 들어갔다.
[삼수 발차기 모음]수익창출을 하지 않는 쇼트영상.
다시 봐도 기가 막힌다.
입이 떡 벌어지는 삼수의 발차기에 공들인 내 편집까지 가미된 영상이니까.
그렇다고 휘황찬란한 효과를 부여한 건 아니다.
‘그건 하수지.’
내가 건드린 건 카메라 구도와 굴곡 정도였다.
없는 발차기를 만들어낸 게 아니다.
편집빨로 발차기를 살린 것처럼 보이는 건 말짱 도루묵이니까.
현장에서 직관한 삼수 발차기의 현장감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게 내가 부여받은 과제였다.
그리고 과제 수행에 대한 보상은 엄청났다.
괴롭힘을 막아낸 데다가, 연두부 반응까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삼수 미쳤다…
┖본영상으로 볼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이렇게 각 잡고 발차기하는 거 보니까 감탄나오네..
┖귀여운 얼굴과 그렇지 못한 발차기다…
┖나름 태권도 7년 했는데 회축 저렇게 깔끔하게 차는 거 처음 봄.
┖괜히 국대 아들이겠냐고 ㅋㅋ
┖이 정도면 차세대 태권도스타 아니냐.
┖태권도학과 지망하면 이름처럼 삼수하는 일은 절대 없을 듯.
┖ㅇㅈ
┖그리고 졸귀임.
삼수 팬이 됐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나 이런 발차기를 할 줄 아는데도 놀리는 아이들에게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댓글이 눈에 들어온 건.
-삼수는 안 되냐?
┖뭐가.
┖외모도 귀엽고 아빠랑 형 유전자 고려하면 나중에 존잘 될 거 같은데.
┖그니까 그게 뭐.
┖연두 남친후보. 일단 확실히 지켜줄 수 있을 듯.
┖ㄷㅊ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ㄷㅊ가 나와버리네.
┖일단 말이 안 되는 이유 : 삼수도 관심이 없음.
┖앜ㅋㅋㅋㅋㅋ
┖진짜 처음 아니냐. 연두한테 그렇게 관심 없어보이는 또래 남자애 나온 건.
┖삼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구나.
나도 이제 눈치챘다.
생각해보면 삼수는 연두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시은이와 레나, 유리한테도 마찬가지고.
‘오히려 나였지.’
내 옆에 딱 붙어서 자세를 잡아주던 삼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잠깐만.
어쩌면 삼수는 나를 가장 좋게 생각한 게 아닐까?
답은 바로 나왔다.
‘아니야.’
삼수는 투명한 아이였다.
친구들이 놀리면 울고, 기분 좋으면 웃고, 맛있으면 행복한 표정을 짓고, 태권도 할 때는 진지하고.
그럼 나를 유독 챙겨준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내가 제일 못해서였다.
‘슬퍼지네..’
괜히 다운되는 기분.
허나 괜찮았다.
이번 일로 삼수에게 확실히 점수를 땄으니까.
앞으로 연두부 말대로 삼수는 차세대 태권도 스타로서 무럭무럭 자랄 거다.
그리고 끝내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인터뷰를 하는 거다.
‘가장 힘이 된 사람이 누구인가요?’
‘음.. 가족을 제외하면……’
그 순간 등장하는 내 이름.
상상을 넘어선 망상은 끝이 없었다.
***
스튜디오 초록.
일러스트의 수정 및 보안 작업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 건 게임 출시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또 하는 일이 있었다.
‘잘 모르겠네.’
정확히 어쩌다 일상의 한 부분이 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계기는 확실했다.
어느 날 ‘JUNE’이 슬럼프 극복법에 대해 물었던 날부터 서로 주고받기 시작한 메일이었다.
그래 봐야 하루에 두세개 정도지만.
[주말은 잘 보내셨나요]간단한 안부인사를 주고받기도 했다.
사실상 작화가 끝난 만큼 업무적으로 준과 내가 메일을 주고받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많은 양은 아니지만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주고받다 보니, 이제는 메일이 끊기면 꽤나 허전함이 들 거 같았다.
뭐, 끊긴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근데 이상하단 말이지.’
알다시피 준의 말투는 세상 딱딱했다.
철두철미한 띄어쓰기, 다나까로 끝나는 문장, 그리고 반쯤 확신하고 있는 수염 난 중년의 이미지까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메일을 주고받다 보면 묘한 익숙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친근감과는 달랐다.
‘내가 아는 사람이랑 메일을 주고받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 주변에 이런 말투를 구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철원에 있는 동한이도 이렇게는 말 안 한다.
그런데도 익숙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착각이겠지.’
생각해보면 그랬다.
하루에 두세개 정도라고 해도, 오가는 메일 속에서 친밀감이 강화되는 건 당연하다.
그로 인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띠링.
회신한지 몇 시간이 지나서 날아든 메일.
[드디어 출시일이네요.]제목을 보니 빙긋 웃음이 나왔다.
이제 언급하는구나.
‘하긴, 내일이니까.’
드림 큐의 출시일은 내일이었다.
만약에 이번에 오는 메일에 언급이 없다면 내가 먼저 화두를 꺼낼 생각이었다.
제목을 클릭하니 떠오르는 내용.
-아직 출시가 된 건 아니지만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튜디오 초록의 멋진 일러스트 덕분에 저도 더 기운차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였다.
준의 멋진 시나리오가 아니었다면 의욕이 조금은 떨어졌을 거 같으니까.
답장할 내용이 자연히 머릿속에 떠오른다.
-초록님만이 아니라 팀원분들께도 감사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역시 길지는 않았다.
몇 개의 문장이 더 이어진 뒤였다.
얼마 남지 않은 줄, 그때 나를 멈추게 만드는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부탁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초록님은 어떠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메일을 주고받으며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게임이 출시된 이후에도 가끔은 메일을 보내도 괜찮을까요?
-아주 가끔입니다.
“.. 흣.”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굳이 마지막 문장에 ‘아주’라는 수식어를 강조했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염 난 아저씨가 조금은 귀엽게 느껴졌다는 거.
바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타닥. 탁.
아무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