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87)
화. 출시
작업실 내부.
세연은 노트북을 앞에 둔 채로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면에는 떠올라 있다.
수차례 고쳤다 지웠다 하며 발신을 망설였던 메일이.
[드디어 출시일이네요.]이상한 일이었다.
작가로서 매일같이 쓰는 글인데도 몇 줄의 메일을 작성하는 게 이렇게나 어렵다는 게.
결국 보내긴 했지만 말이다.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스친다.
다른 내용보다도 메일의 끝부분에 작성한 내용 때문이었다.
‘.. 어쩔 수 없었어.’
내일이 게임의 출시일이었다.
주원에게 그렇듯 메일을 주고받는 건 세연에게도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그 끈을 이어가고 싶었다.
게임이 출시됐다고 툭 끊어지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초록님은 어떠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메일을 주고받으며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게임이 출시된 이후에도 가끔은 메일을 보내도 괜찮을까요?
-아주 가끔입니다.
그래서 보낸 메일이었다.
둘 중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면 끈은 자연스럽게 끊어지고 말 테니까.
다시 한번 화면을 바라본 세연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번엔 진짜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라.’
업무적으로 이어진 관계였다.
메일을 주고받았다고는 하나 초록은 자신의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고.
실은 알고 있지만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아직도 세연의 책상 위에는 주원이 그려준 ‘JUNE’의 팬아트가 놓여 있었다.
수염 난 중년 아저씨가.
‘그래.’
알고 있다.
게임 출시가 끝난 상황에서 억지로 인연을 이어갈 명분은 없다는 걸.
하지만……
띠링.
그때였다.
세연의 귀에 알림음이 들려온 건.
보통 꽤나 긴 텀을 두고 메일을 주고받는 걸 고려하면 상당히 빠르게 온 답장이었다.
그게 불안감을 더 증폭시켰다.
허나 선택지는 하나였다. 망설임의 길이와 상관없이 메일은 결국 확인할 테니까.
달칵.
눈앞에 떠오른 메일.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제목이 심상치가 않았다.
끝인사를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이었으니까.
-저도 작가님의 멋진 이야기 덕분에 작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희 스튜디오 초록의 팀원들도 마찬가지고요. 모두를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원래 주원의 말투는 아니었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상대의 말투를 표방하는 법이다.
지금 주원이 그랬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해주신 부탁에 대해서는……
잠시 읽기를 멈춘 세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들어드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쿵.
명백한 거절 의사 표현이었다.
왜일까.
거절당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이런 기분이 드는 건.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애써 남은 몇 줄을 읽어내려가는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 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이어졌으니까.
-아주 가끔 메일을 주고받자고 하셨죠.
분명히 그랬다.
부담을 느낄 걸 염두에 두고 굳이 강조하듯 덧붙인 문장이었다.
아주 가끔.
주원은 그 문장을 언급하고 있었다.
-저는 작가님과 아주 가끔보다는 좀 더 자주 메일을 주고받고 싶거든요.
-그게 제가 역으로 드리는 부탁입니다.
-만약 괜찮으시다면……
“… 하.”
풀리는 긴장.
거절이 아니었다.
‘좀 더 자주……’
수식어를 곱씹을수록 새어 나오는 웃음.
메일 하나에 세연은 아이처럼 웃음 짓고 있었다.
***
출시를 하루 앞둔 날.
게임회사 넥스트의 AD인 최승조로부터 연락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최승조.
넥스트와 처음 미팅을 가졌을 때 왔던 남자 중 하나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도 가장 많이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이기도 했고.
“그동안 고생 정말 많으셨습니다, 초록님.”
“하하, 감사합니다.”
그대로 덕담을 돌려줬다.
“팀장님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직 출시 전이었다.
그러나 이런 멘트를 입 밖에 뱉으니 자연히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짧지 않았던 그동안의 여정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팀원들과 했던 첫 미팅, 그림체 적응이 어려워서 헤맸던 일, 아이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겠다며 춤 영상을 돌려봤던 것.
그 여정 속에는 연두도 있었다.
‘구민아 역할을 했으니까.’
성우 녹음을 하고 피아노 녹음을 한 것도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였다.
팀원 하나하나가 최선을 다했다.
예전부터 늘 의지가 됐던 우영이도, 처음에는 헤맸지만 나중에는 에이스가 된 도연씨도, 항상 묵직하게 기둥처럼 받쳐주는 표식씨도, 그림은 물론이고 분위기메이커 역할까지 톡톡히 해주는 경우씨도, 그리고 팀원 모두를 위해 중심을 잡아주는 하나씨도.
모두가 한 사람처럼 움직였다.
‘팀이었어.’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팀이었다.
그래서였다. 이어지는 최승조의 말이 마음속 깊이 와닿은 건.
“초록님도 그러시겠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도 저대로 많은 선택을 했습니다.”
“네, 그러셨겠죠.”
최승조의 직책은 높았다.
그리고 높은 위치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아마 내가 모르는 상황들 속에서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수많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최승조는 말했다.
“그 많은 선택들 중에 제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스튜디오 초록’에 손을 내민 겁니다.”
어쩌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게임의 완성에는 작화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이 더해져서 완성되니까.
최승조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사람 중 하나이다.
이미 게임이 완성된 상황 속에서 의식적으로 건네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았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견인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는 못 해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적어도 폐를 끼치지는 않았다는 것.
“제가 내민 손을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곧바로 나는 응답했다.
“손을 건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음성으로나마 악수를 주고받았다.
프로젝트의 파트너로서.
이제 남은 건 이 프로젝트의 향방을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
“안녕히 다녀오셨어여, 아빠..!”
책가방을 메고 나를 반기는 연두를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인사하는 건 어디서 배웠어, 연두야?”
“학교에서요!”
출시를 하루 앞둬서일까.
연두의 인사가 꼭 ‘그동안 고생했어요, 아빠!’라고 얘기해주는 거 같았다.
이런 게 가장의 마음이 아닐까.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돌아오면 반갑게 맞이해 줄 아이가 있다면 고된 하루를 버틸 수 있으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런 감성적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의지할 수 있는 팀원들이 있고, 일은 쉽다고는 못하지만 즐겁고, 일터에서 돌아오면 나를 반겨줄 딸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예쁜 딸이.
언젠가부터 내 인생은 이렇게나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연두도 학교에서 재밌게 보냈어?”
“네에. 오늘은여…”
얘기하며 걸어가다 보니 금세 도착한 집.
미리 편집해 둔 태권도 시리즈 2탄을 업로드하고 연두와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달그락. 달그락.
아침에 약속한 대로 함께 설거지를 했다.
내가 슥삭슥삭 세제를 묻히면 연두가 꼼꼼하게 물로 씻어내는 역할이었다.
세제를 문지르는 와중에도 내 시선은 연두를 향하고 있었다.
‘엄청 열심이네.’
앙다문 입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자꾸만 웃음이 난다.
그런 연두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연두야.”
“네, 아빠!”
“설거지 다 하고 뭐 할까?”
그 말에 연두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서 되묻는다.
“아빠 일 안 해도 돼요..?
“응, 안 해도 돼.”
아직 연두는 내일 게임이 출시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귓속말로 속삭이듯 덧붙였다.
“아빠랑 팀원들이 ‘드림 큐’ 일러스트를 다 그렸거든.”
“우아… 전부 다여?”
“응, 전부 다.”
작게 벌어진 입.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해줬다.
“그리고 내일 게임이 출시될 거야.”
출시를 기다렸던 건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세상 환한 웃음이 입가에 떠오른다.
“게임 출시.. 헤헤…”
배시시 웃는 연두를 보니 저절로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게임 출시되고 나면 아빠 한동안 휴가다?”
“.. 휴가?”
“응. 그러니까……”
쉽게 풀어서 얘기해줬다.
“연두랑 놀 시간이 잔뜩 생긴다는 거지.”
“…!”
동그래지는 눈.
그렇다.
휴가가 시작되고 나면 연두랑 작정하고 놀 계획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확인한 건 연두튜브였다.
[연두의 태권도 원데이클래스 2탄!(feat. Love story)]저번에 업로드한 영상에서 바로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성일수 관장님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나쁜 사람을 마주했을 때의 실전 훈련까지 포함된 알찬 영상이다.
곧바로 연두부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와.. 한편의 영화였다.
┖관장님 아내분 존멋이다… 나랑 결혼할지, 다시는 안 보고 살지 선택해.
┖선택지가 극과 극이라 더 낭만있는 듯.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혼을 선택해버린 성일수 관장님의 낭만까지…
┖ㄹㅇ 미쳤네.
┖연두 한 마디면 모든 게 설명된다. ‘예쁘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의 예쁘다. 극찬이네.
┖이런 사랑이 하고싶다…
┖제목에 러브스토리길래 혹시? 하고 눈에 불 켜고 들어왔는데 이런 이야기였네.
┖나도 ㅋㅋㅋ 혹시 연두랑 삼수가? 하고 들어옴.
역시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나와 세연씨, 그리고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고 느꼈던 감정을 연두부도 느꼈을 테니.
‘사랑이라..’
나도 제대로 정의할 수 없는 단어다.
그러나 단어를 정의할 수 없다고 해서 사랑을 논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직관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이건 사랑이라고.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었다.
그리고 성일수 관장님의 이야기는 그에 완전히 부합했다.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개웃기네.
┖당장이라도 박살낼 것처럼 하더니 삼십육계 줄행랑 ㅋㅋㅋㅋ
┖실제로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법이라는 게 킬포인트.
┖관장님 매력 터진다, 진짜…
┖발연기 ㅋㅋㅋ 애기들한테 바로 쓰러져주는 거 스윗한 거 봐.
┖근데 초록님한테는 세상 엄격 ㅋㅋㅋㅋㅋㅋㅋ
1탄에 삼수의 매력이 한껏 드러났다면 2탄은 성일수 관장님의 매력이 두드러졌다.
아마 일수태권도는 더 성장할 거 같았다.
그리고……
-출시일이다…
┖ㄷㄱㄷㄱㄷㄱㄷㄱ
┖드디어 볼 수 있는 건가.. 구민아 완전판.
┖과연 이번에도 초록님의 미다스의 손은 발현할 것인가.
┖확실한 건 이번에 흥행하면 ‘스튜디오 초록’ 위상은 말도 안 되게 상승할 듯. 지금도 높긴 하지만.
┖ㄹㅇ 그럼 더이상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음.
┖그만큼 초록님 안목이 뛰어나다는 거지. 배우가 작품 잘 고르는 것처럼.
출시일이 기사를 통해 드러난 만큼 기대감을 드러내는 댓글이 잔뜩 올라와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