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90)
화. 하나도 안 미안해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연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치아가 흔들리는 건 연두의 여덟 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 아빠..”
사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모든 사람은 젖먹이 때 유치가 나고 그 유치가 빠지는 시기를 겪는다.
가장 먼저 빠지는 건 앞니.
개인의 차이가 있으나 보통 첫 유치가 빠지는 시기는 8세 전후였다.
앞니를 만진 손이 덜덜 떨렸다.
톡.
한참이 지나 다시 건드려봤다.
또 덜렁거린다.
다시 한번 연두는 충격과 공포에 빠져들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치아가 확실히 흔들린다는 걸 인정한 시점에 연두의 머릿속에 보건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치카치카 열심히 해야 해요. 안 그러면 이가 썩어서 치과에 가서 아프게 이빨을 빼야 할지도 몰라요.’
연두는 유치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학교에 치아가 흔들리는 아이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연두가 그 실례를 눈으로 직접 접한 건 아니었기에 생각할 수 없었다.
시은이와 레나는 아직 그 시기가 찾아오지 않았고.
따라서 연두는 생각했다.
이가 썩어서 흔들리는 게 분명하다고.
“잘못했어요..”
곧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연두는 중얼거렸다.
“흑, 치카치카 더 열심히 할게여…”
원래도 치과를 싫어하는 연두였다.
병원을 가는 것도 무서웠지만 치과에 가는 건 더 무서웠다.
입을 크게 벌리고 검진을 받는 것도, 입 안에 무언가가 들어오는 것도, 위이잉거리는 기계 소리도 공포를 자극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엉덩이에 맞는 주사보다도 무서웠다.
그런데 그 치과에 이빨을 빼러 가야 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우으…”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고서 연두는 혓바닥을 움직여 앞니를 톡 건드렸다.
하마터면 울음이 터질 뻔했다.
“흔들리지 마아… 흐윽.”
이제는 앞니에게 말을 걸 정도였다.
그 정도로 연두는 멘탈이 무너질 만큼 무너진 상태였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행복했는데 말이다.
아빠 휴가가 시작되고 이제 즐겁게 놀 일만 남았는데 이런 시련이 찾아올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한 연두였다.
“미안해.. 치카치카 열심히 안 해서 미안해…”
패닉에 빠진 채로 한참 동안 앞니에게 말을 걸다가 연두는 생각에 빠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하나도 아프지 않다는 점이었다.
치아가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무섭긴 했으나 그게 통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로 연두는 거울을 바라봤다.
“.. 괜찮아.”
아무 이상 없었다.
조금 얼굴에 살이 찌긴 했지만 치아가 흔들리는 게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무섭다는 것 말고도 치과에 갈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앞니에게 미안했다.
열심히 치카치카를 했으면 빠지지 않아도 됐을 텐데.
“.. 열심히 하면 돼!”
울음을 꾹 삼키고 연두는 다짐했다.
이제부터라도 치카치카를 더 열심히 하면 앞니가 다시 단단하게 붙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마음으로 연두는 칫솔을 손에 쥐었다.
무려 새벽 세 시에.
치카. 치카.
폭풍 양치질.
치약도 평소보다 더 많이 짜서 칫솔에 묻힌 뒤에 구석구석 치카치카를 했다.
특히 앞니는 더 정성껏 했다.
입 안을 헹군 뒤에 연두는 조심스레 입을 벌렸다.
조금은 나아졌을까.
톡.
“…!”
아까보다 더 흔들렸다.
당연했다.
흔들리는 유치를 칫솔로 자극했으니 더 흔들리면 흔들렸지 덜 흔들릴 리는 없었다.
동공지진을 일으킨 연두는 칫솔을 내려놓은 뒤에 입을 꾹 다물었다.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그게 연두의 마지막 혼잣말이었다.
조용히 화장실에서 나온 연두는 사뿐사뿐 걸어가 아빠가 잠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아빠를 꼭 껴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다 흔들리는 앞니를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연두는 모르지.’
‘.. 네?’
‘연두가 입 이렇게 벌리고 자는 거. 흐에…’
‘아, 아니에여!’
그 말이 맞다면 아빠를 보고 자는 것도 위험했다.
연두가 등을 돌렸다.
아빠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설움 속에서 연두는 베개를 껴안고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아침에 눈을 뜬 나는 평소와 다른 변화를 포착했다.
연두의 등이 보인다.
‘.. 뭐지?’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보통 일어나면 연두가 내 품에 파고든 채로 잠들어 있는 경우가 가장 많았으니까.
아니면 내 위에 발을 올리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내가 연두를 꼭 끌어안고 잠들어 있거나.
톡. 톡.
등을 건드렸다.
잠든 건지 아무런 미동도 없다.
하기야 이 정도로 일어나면 연두가 아니지.
“연두야.”
이름을 부르며 팔을 뻗어 연두를 끌어안았다.
자연히 고개가 내 쪽을 향한다.
“.. 아빠?”
“응, 아빠야.”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을 이었다.
“오늘은 웬일로 저쪽을 보고 자고 있을까, 우리 공주님이?”
“…”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연두의 표정이 경직되더니 몸까지 뻣뻣하게 굳는다.
조금 놀란 나는 물었다.
“왜 그래, 연두야?”
“.. 으니에여.”
어눌한 발음.
뭔가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아직 잠에서 덜 깬 건가 싶어서 그냥 넘겼다.
한동안 연두를 꼭 끌어안고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슬슬 일어날까?”
“네에..”
연두도 몸을 일으킨다.
오늘은 내 휴가 첫날이자 주말이었다.
연두도 학교에 가지 않으니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날이라는 뜻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설레는 기분이었다.
‘이게 얼마 만이냐.’
아무런 걱정도 없다.
업무적으로 생각할 것도 없고 연두튜브 편집이 밀린 것도 아니다.
부엌으로 향한 나는 말했다.
“연두도 손 씻고 세수하고 와. 혼자서 할 수 있지?”
“.. 네.”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인지 목소리에 힘이 없다.
원래라면 첫 휴가라며 나보다 훨씬 들떴을 텐데, 그게 실감이 안 갈 정도로 잠이 덜 깬 모양이다.
뭐, 씻고 나와서 정신이 들면 괜찮아지겠지.
“어디 보자.”
나는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휴가 첫날인 데다가 시간도 널널한 만큼 공들여 식사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제 산 연어가 보인다.
좋아, 너로 결정이다.
‘싱싱할 때 먹어야지.’
연어로 만들 수 있는 아침 식사가 뭐가 있을까.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레시피.
그건 바로 연어덮밥이었다. 바로 재료 준비에 들어갔다.
‘양파, 상추, 방울토마토, 아보카도…’
손질은 어렵지 않았다.
양파와 상추는 가볍게 채 썰어주고,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토막 내고, 아보카도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준다.
소스는 어떻게 만드냐고?
‘간장, 물, 식초, 설탕, 다진 마늘……’
필요한 것들을 쭉 나열한 뒤에 적당한 비율로 섞어주면 완성이다.
연두가 나온 건 소스를 완성했을 즈음이었다.
“다 씻었어, 연두야?”
“네에..”
이상하네.
씻고 나왔는데도 여전히 목소리에 힘이 없다.
아니, 굳이 따지면 방금보다 더 푹푹 꺼지는 목소리다.
“잠깐 이쪽으로 와 볼래, 연두야?”
힘없이 걸어오는 연두.
앞에 선 연두를 유심히 바라봤다.
겉으로 느껴지는 변화나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은 건가.’
잘 모르겠다.
그 사이에 소스는 다 섞은 상태였다.
“이거 아빠가 만든 소스인데 한번 먹어볼래?”
새끼손가락으로 콕 찍어서 연두의 입에 가져다 댔다.
흠칫 놀라는 반응.
바로 혀를 낼름 내밀어 맛을 보던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그래도 결국 맛을 보긴 했다.
“어때?”
“맛있어여…”
뒤이어 나도 맛을 봤다.
소스는 완벽했다.
야채 손질과 소스 제조가 끝났다면 이제 거의 완성이나 다름없었다.
“연두야.”
“네, 아빠.”
“오늘 메뉴는.. 연어 덮밥이야!”
“…”
한 템포 늦게 들려오는 목소리.
“맛있겠다…”
세상 뻘쭘했다.
억지로 올린 텐션에 영혼 없는 리액션이 돌아왔으니까.
그와 별개로 확실히 이상했다.
“어디 아파, 연두야?”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상황을 보니 우선은 요리부터 완성하는 게 맞을 거 같았다.
완성한 소스에 양파를 넣고 약불로 천천히 졸이고, 그러는 동안 연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했다.
탁. 탁.
이제 예쁘게 토핑만 하면 완성이었다.
밥에 적당량의 소스를 끼얹은 뒤에 일부러 연두를 불렀다.
“연두야.”
“네.”
“연어 좀 예쁘게 밥 위에 올려줄래?”
고개를 끄덕이며 연어를 올리기 시작한다.
평소라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도와줄 게 없냐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 텐데.
어쨌거나 완성된 연어덮밥.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연어덮밥을 앞에 두고 깨작거리며 밥을 먹는 연두의 모습이.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말이 안 돼.’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연어는 회 중에서도 연두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었다.
일단 같은 연씨돌림 아닌가.
또 맛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한 입 먹어 본 결과 음식 맛은 기가 막힌다.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연두야?”
“아니여..”
“그럼?”
그런 내 물음에 연두는 중얼거리듯 답했다.
“입맛이 없어서…”
입맛이 없다.
연두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결국 거의 먹지도 않고 숟가락을 내려놓은 연두는 뒤이어 내온 과일마저 거부했다.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연두야.”
나는 연두 옆 의자에 앉아서 얘기했다.
“그럴 수 있어.”
“.. 네?”
“가끔은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고, 기운이 없을 수도 있고, 연두가 말한 대로 입맛이 없을 수도 있어. 그건 사람이면 당연한 거야. 아빠도 그럴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연두 아빠였다.
그리고 아빠로서의 내 감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알아.”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연두가 어떤 이야기든 아빠한테 숨기지 않고 말하는 아이라는 걸.”
“.. 아빠.”
“그런데 아빠한테 말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고민이 있을 수도 있잖아. 아빠가 해결해 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줄까?”
나를 바라보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그냥 얘기해도 돼.”
말 그대로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강요하는 게 아니었다.
“그게 어떤 고민이든지 아빠는 연두가 싫어하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지 않을 거니까. 끝까지 연두랑 같이 고민하고 결정할 거니까.”
“…”
붉어지는 눈시울.
두 팔을 뻗어 꼭 안아주니 연두는 몸을 떨며 흐느끼다가 말했다.
“흑, 아빠.. 이가…”
“응?”
“이가 흔들려요.. 흑, 치과 가기 싫어여…”
하마터면 우는 연두를 끌어안고 웃음이 터질 뻔했다.
***
내 품에서 격하게 몸을 떨며 흐느끼는 연두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그런 연두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조금은 설렐 정도였다.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어렸을 적이 떠오른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도 처음으로 이가 흔들렸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조용히 실을 가져왔다.
멘트도 떠오른다.
‘이거로 빼면 하나도 안 아파.’
‘지, 진짜?’
‘그럼. 아빠 어릴 때는 다 실로 뺐다니까?’
그리고 나는 기억한다.
아팠다.
안 아프다는 아빠의 말은 순 거짓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아직 완전히 흔들리기 전에 힘을 줘서 뺐으니 안 아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왜 아빠 얘기만 하면 이런 거밖에 안 말하는 거 같지.’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아빠는 좋은 분이었다.
다소 투박하고 장난기가 많으셨을 뿐이지.
‘그 심정이 이해는 가.’
묘한 감정이었다.
내 아이가 이가 빠질 때가 됐다는 사실에서 오는 일종의 뭉클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 사실을 숨긴 이유도 세상 귀여웠다.
치과에 갈까 봐 무서워서, 그리고 앞니에게 미안해서.
이러니 어떻게 안 웃겠는가.
“연두야.”
애써 웃음을 참고서 얘기했다.
“치과 안 가도 돼.”
“…?”
순간 툭 그치는 울음.
나는 설명해줬다.
유치와 영구치의 차이를 하나도 빠짐없이.
그리고 이가 흔들리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말이다.
“이는 점점 더 흔들리다가 자연스럽게 빠질 거야. 그리고 그 빠진 곳에는 새싹처럼 새로운 이가 돋아날 거야.”
“.. 새로운 이?”
“응. 평생 빠지지 않을 새로운 이가.”
인체의 신비였다.
어느새 울음이 그친 연두가 말한다.
“그럼 치과 안 가도 돼여?”
“안 가도 돼.”
“이한테 안 미안해도 돼여?”
“안 미안해도 돼.”
“그럼……”
연두의 시선이 천천히 식탁 위를 향했다.
“.. 연어덮밥 먹어도 돼요?”
못 살겠다는 얼굴로 나는 말했다.
“당연하지.”
“…”
다시 숟가락을 쥔 연두는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러고선 앞니를 톡 건드리더니 혼잣말을 한다.
“더 흔들린다.. 근데 하나도 안 미안해.. 헤헤..”
“푸흣.”
인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