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94)
화. 안 아프게 빼는 방법
모두의 시선이 조나예의 손끝을 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승부의 향방이 지금 이 순간에 달려있었으니까.
‘제발……’
애써 태연하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긴 했으나 이 순간에 그 누구보다 간절한 건 나였다.
아니, 한 명 더 있구나.
반대편에서 지켜보고 있는 성현이도 나 못지않게 속이 탈 게 분명하다.
어쩌면 더 심할지도 모른다.
압도적으로 이긴 게임을 트롤링을 반복해서 억지로 명승부를 만든 장본인이니까.
그러나 전혀 안쓰럽지는 않다.
승부는 승부니까.
반대 상황이었다면 약을 올렸으면 올렸지 동정하지는 않을 녀석이라는 걸 알고 있기도 하고.
우리 사이에 그런 건 사치다.
‘가라, 조나예.”
스트라이크는 바라지도 않는다.
7점 차이.
아무리 나예가 마지막 타자라고 해도 충분히 역전의 쾌거를 이뤄낼 수 있는 점수 차였다.
근거가 뭐냐고?
앞서 나예가 낸 점수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6, 8, 7, 10.’
아무리 초심자라고 해도 특정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 마련이다.
6, 8, 7, 10.
점수만 봐도 알겠지만 명백한 상승세였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는 해도 마지막에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기도 했고.
지금 흐름이라면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긴장할 필요 없어. 그냥 저 중간에 있는 핀이 성현이 얼굴이라고 생각해.’
‘.. 유성현 얼굴?’
‘응.’
그런 내 응원(?)에 용기를 얻은 건지 나예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꽤나 힘찬 발걸음이었다.
이어지는 외마디 기합.
“이얏!”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쾅!
엄청난 강속구.
그걸 코앞에서 본 내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절로 입 밖에 튀어나오는 허탈한 목소리.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소극적으로 공을 던지던 모습과는 다르게 공을 냅다 바닥에 내리꽂았으니까.
무슨 테니스의 왕자인 줄 알았다.
그렇게 내리꽂은 공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도랑행이었다.
“헐…”
그런 말도 안 되는 투구를 하고서 나예는 잔뜩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우리를 바라본다.
“어, 어떡해..”
내가 할 말이다.
이 상황을 어떡하면 좋지.
“유성현 얼굴이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힘이 들어가 버려서……”
심지어 내 탓이었던 거냐.
고개를 돌리니 준수가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뚫어질 듯이 바라보고 있다.
참 좋은 친구다.
그러다 나와 준수는 동시에 몸을 크게 들썩였다.
“자, 잠깐만!”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
말도 안 되는 투구에 당황한 나머지 볼링의 기본 룰도 망각하고 있었다.
한 턴 당 주어지는 기회는 두 번이다.
아무리 도랑행이라고 해도 그걸 만회할 스페어 기회가 있었다.
화면을 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야! 빨리!!”
“다시 던져! 시간! 시간!”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멘탈케어를 해 줄 시간은 없었다.
일단 던지고 봐야 할 거 아닌가.
질 때 지더라도 시간 초과로 던지지도 못하고 지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제야 조나예가 허겁지겁 공을 집어 들었다.
“으, 이얏!”
그 와중에도 기합은 뱉는군.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굴린 공이 레인을 타고 핀을 향해 굴러간다.
매우 느린 속도로.
“.. 어?”
굴러가는 공을 보는 내 입이 점차 벌어진다.
궤도가 괜찮았다.
힘없이 굴러가긴 하지만 중앙의 핀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될지도 몰라.’
희망의 불씨가 차올랐다.
파워는 약하더라도 정중앙의 핀을 맞춘다면 7점 이상은 충분히 나올 만하다.
이대로만 가 준다면 말이다.
“안 돼애!!”
줄곧 침묵을 지키던 성현이도 절규와 같은 고함을 질렀다.
나도 참을 수 없었다.
“돼애!!!”
두 명의 서로 다른 염원이 부딪혔다.
이윽고 볼링공이 핀에 도달해 부딪히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거짓말처럼 공이 궤도를 틀었다.
“.. 어어?”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공에 힘이 없으니 언제까지고 직선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하필이면 마지막 순간이었다는 게 문제지만.
콰앙!
흩어지는 핀.
몇 초의 시간이 지나가고 자연스레 내 눈은 서 있는 핀을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하, 하하…”
승리의 여신은 내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
극적인 패배.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건 더더욱 경박한 상대의 환호였다.
“우와악!!”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고함과 함께 성현이 녀석이 제자리에서 마구 점프했다.
이해는 갔다.
만약 역전승을 거뒀다면 나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 같으니.
그렇기에 더욱 쓰라린 패배였다.
“와… 이게 말이 돼?”
“6점이라고?”
“진짜 영화 각본 쓰라고 해도 이렇게는 안 쓴다. 관객들한테 욕먹을 게 뻔하니까.”
“인정… 대박이다.”
동감이었다.
그 긴 승부의 마무리가 1점 차이라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푸하핫! 설렜냐?”
패자를 향한 승자의 횡포가 시작됐다.
알고 있었다.
명승부고 뭐고 간에 좋은 승부였다며 악수를 내밀 녀석이 아니라는 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에이.. 표정 풀자, 주원아.”
“하하, 내 표정이 뭐가 어떻다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쿨하게 넘기려는데 들려오는 말.
“어허!”
훈장님인 줄 알았다.
고개를 드니 성현이가 세상 엄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까마득한 형한테 말을 놓으면 쓰나! 자, 다시 말해보도록.”
“…”
“어허, 어서!”
승부는 승부다.
그건 내게도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간신히 열을 가라앉힌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형님.”
“그렇지, 그렇지.”
완전히 맛이 들린 녀석은 재차 입을 뗐다.
“아우야.”
“.. 예.”
“네가 생각하는 유성현의 장점을 세 가지만 말해 보거라. 제한시간은 5초다.”
신기한 일이다.
못 말하면 뭘 시킬지 몰라 필사적으로 떠올리려 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되는 대로 말을 뱉었다.
“키가 평균이 넘는다! 여자친구가 있었다! 공무원이다!”
“푸흣!”
웃음을 터트리는 친구들.
그리고 성현이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 아우야.”
“예, 형님.”
“지금 그걸 칭찬이라고 한 거니?”
“죄송합니다.”
“키가 평균이 넘는 건 그렇다 치자. 두 번째는 뭐니? 여자친구가 있었던 건 뭐가 칭찬인 거니? 응?”
할 말이 없어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도무지 떠오르는 장점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하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니까.
한참 훈계를 듣고 나니 성현이는 말했다.
“자, 그럼 다음!”
“다음이요?”
“그럼 내가 끝일 줄 알았니?”
나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다른 건 몰라도 ‘니’로 끝나는 이 킹 받는 말투는 혈압이 오른다.
티를 낼 수는 없지만.
“우리 팀 에이스 칭찬도 한 번 들어봐야지.”
“에이스라면…”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 서아 칭찬 세 가지! 제한시간은 5초다. 시~작!”
다시 또 머리를 굴렸다.
방금과 달리 이번에는 순식간에 두 개의 장점이 떠올랐다.
역시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성현이였던 거다.
“볼링을 잘 친다! 착하다!”
두 개 다 장점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허나 연달아 두 개를 말하고 나니 마지막 하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최서아와 시선이 맞닿았다.
“.. 예쁘다?”
“…!”
깜짝 놀라서 눈을 깜빡이는 최서아.
당황할 만도 했다.
‘그래도 사실이니까.’
학창시절에 최서아를 좋아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격은 둘째치고 누구든 좋아할 만한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의 달라진 게 없는 외모는 충분히 장점이 될 수 있었다.
“통과.”
그렇게 말한 성현이, 아니 성현이 형은 얘기했다.
“그런데 내 칭찬과 느낌이 많이 다른 건 나만의 착각이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서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뒤를 생각해 꾹 참고서 얘기했다.
“하하, 그럴 리가요.”
대체 이 불합리함을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걸까.
앞길이 막막하다.
그런 내 귀에 자그맣게 들려오는 목소리.
“저기…”
최서아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반응한 건 옆에 있는 성현이였다.
“왜?”
“할 말이 있어서…”
“뭔데?”
“볼링 이긴 거.. 내가 캐리한 거 맞지…?”
잠깐만.
여기서 이렇게 맥락 없이 자화자찬을 한다고?
게다가 최서아가 ‘캐리’라는 단어를 쓰니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성현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그러고선 덧붙인다.
“너 아니었으면 확실하게 졌을 테니까.”
“그럼…”
“그럼 뭐?”
최서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얘기했다.
“너, 너 말고 내가 하면 안 돼?”
“뭘 해?”
“주원이 형.. 아니, 누나!”
이건 또 뭐람.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유성현 동생과 최서아 동생.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무조건 후자가 나았다.
“쩝. 아쉽긴 한데……”
명준은 충분했다.
팀을 승리로 견인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의심의 여지 없이 최서아니까.
“어쩔 수 없지. 이주원만 동의한다면 양보할게.”
이윽고 나를 향하는 둘의 시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 밖에 뱉었다.
“서아 누나.”
자존심 따위는 없었다.
유성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
최서아는 구세주였다.
예상은 했지만 누나로서 최서아는 천사였으니까.
팀 선정 때 앙금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우려였다.
‘체했을 거야.’
만약 원래 상태가 이어졌다면 분명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체했을 거다.
성현이 녀석이 나를 가만히 뒀을 리가 없다.
최서아는 그 반대였다.
‘챙겨주기까지 했어.’
나만 동생이 된 게 아니다.
최서아도 오늘 하루는 내 누나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그 역할이 뭐냐고?
‘서아야! 동생 좀 챙겨라!’
‘주원이 귀여워~’
‘아, 나도 주원이 같은 동생 있었으면 좋겠다! 흐흣.’
같은 학교 동창 아니랄까 봐, 짓궂기로는 여자애들도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나를 코흘리개 동생 취급했다.
녀석들의 재촉에 최서아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케어할 수밖에 없었고.
‘머, 먹어, 주원아…’
다른 의미로 어려운 자리이긴 했다.
그래도 성현이 동생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점은 변함없었지만.
그와 별개로 잘 모르겠다.
식사가 끝나고 헤어지기 전에 최서아가 한 말의 의미는.
‘.. 나중에 밥 한 번 사!’
그 말에 나는 대꾸했다.
‘또요? 오늘도 제가 샀는데…’
‘그, 그럼 다음에는 내가 살게!’
뭐, 장난친 거겠지.
그렇게 헤어진 뒤에 시간에 맞춰 연두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내 하루를 궁금해하는 연두를 향해 얘기해줬다.
“친구들 만나서 볼링 쳤어.”
“볼링..?”
“응. 공을 던져서 핀을 맞히는 게임인데 되게 재밌어. 나중에 연두도 같이 하자.”
지금은 안 됐다.
볼링공을 던지는 건 물론이고 가장 가벼운 공을 드는 데도 애를 먹을 테니까.
그래도 조금 지나면 연두를 데려갈 생각이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우연히 여자인 친구들을 만났다는 얘기를 해 주자 연두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입을 뗐다.
“.. 언니도 있었어요?”
“응?”
“아빠가 좋아했던 서아 언니..”
갑작스런 언급에 당황한 나는 말했다.
“크흠.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네?”
“네에.”
“.. 있었어. 상대편이긴 했지만.”
“아빠가 이겼어여?”
“아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1점 차이로 진짜 아쉽게 졌어. 그 서아 언니가 볼링을 엄청나게 잘 치더라고.”
“우아…”
내가 겪은 수모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 뒤에 쭉 연두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같이 그림을 그리고, 동화책을 읽다가, 저녁을 만들어 먹고, 산책을 나섰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 즐거워.’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여유로운 상황 속에서 소소한 일상을 보냈을 뿐인데 마음속에 충만감이 일었다.
공허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나를 향해 연두가 배시시 웃으며 이야기한다.
“헤헤, 아빠..”
“연두야.”
“아빠랑 계속 같이 있으니까 좋아여…”
미치겠네.
꼭 이럴 때면 연두보다 한 발자국 늦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그대로 돌려주려는 참이었다.
“.. 아.”
외마디 음성을 뱉은 연두가 입을 우물거리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선 중얼거리듯 말한다.
“진짜진짜 많이 흔들려여…”
“그래?”
살짝 만져봐도 되냐고 물은 뒤에 손을 가져다 댔다.
톡.
건드리는 순간에 알 수 있었다.
색깔을 보면 열매가 완전히 익었을 때를 알 수 있듯이 완전히 무르익었다는 걸.
때가 왔다.
연두의 첫 유치를 뺄 타이밍이.
“연두야.”
“네, 아빠.”
“이제 알려줄게. 하나도 안 아프게 빼는 방법.”
그와 동시에 나는 방으로 들어가 하나의 준비물을 가져왔다.
새하얀 실.
아빠의 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