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00)
화. 욕
일촉즉발의 상황.
한운철 TV에서나 보던 비상식적인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클락션을 울릴 틈도 없었다.
끼익.
추돌을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았다.
급정거는 아니었다.
모든 차량이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급정거만큼 위험한 건 없었으니까.
슈욱-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는 차.
아찔한 순간이었다.
멀어지는 차량을 보며 하마터면 욕설을 뱉을 뻔 했다.
“하아..”
그냥 칼치기도 아니었다.
터널이라는 밀폐된 공간 속에서 저런 운전을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자살행위였다.
빠르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대형 추돌사고로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그리고 차에는 네 명의 아이가 타 있었다.
‘처음이야.’
그리 길지는 않은 운전경력이지만 다양한 유형의 운전자를 봐 왔다.
허나 처음이었다.
이런 아찔한 상황을 겪은 건.
기본적으로 내 운전의 모토는 안전운전이었다.
혼자서도 안전운전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연두와 함께 타는 경우가 많으니 더더욱 그랬다.
단순히 천천히 달리는 게 안전운전이 아니었다.
특히나 고속도로에서는 말이다.
제한속도를 지켜서 운전하되 다른 차량과의 속도를 어느 정도 맞춰서 운전해야 한다.
말 그대로 고속으로 주행하는 도로니까.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나는 웬만하면 1차선을 타지 않았다.
‘아무래도 더 위험하지.’
운전자 간의 암묵적 룰이었다.
같은 도로라도 1차선은 더 빠르게 주행하는 차량을 위한 차선이다.
오늘도 그랬다.
일부러 1차선을 피해서 주행했다.
조금 더 빨리 도착하겠다는 이유로 위험도를 조금이나마 올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이 펼쳐질 줄이야.
아직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사고위험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니 말이다.
“다들……”
괜찮냐고 물어보려는 참이었다.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갑작스레 속도를 늦춰서 놀랐을 테니까.
시선은 룸미러를 향했다.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본 내 입이 작게 벌어졌다.
“.. 괜찮니?”
쭉 뻗은 김윤호의 팔이 아이들을 감싸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제스처였으니까.
그 안에는 놀라서 몸을 웅크린 아이들이 보였다.
“괘, 괜찮아여.. 윤호삼촌은요?”
“삼촌은 괜찮아.”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는 거 같았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 삼촌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잘했어, 주원아.”
“네?”
“놀랐을 텐데 잘 대처했어.”
그런 삼촌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처음 겪네요,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는.”
“흔한 건 아니지.”
운전의 위험성이었다.
아무리 조심해서 운전해도 사고의 위험성은 존재하니까.
따라서 어느 정도의 임기응변도 필요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블랙박스 따서 신고는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냥 칼치기도 아니고 터널 속 칼치기니까. 우리는 사고를 피했지만 저런 식으로 계속 운전하면……”
생략된 말은 뻔했다.
누군가는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신고는 칼치기를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의 개념이 아니었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아직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던 삼촌의 모습은.
감사는 나중에 전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아이들이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으니까.
심지어 유리마저도.
“많이 놀랐지, 얘들아?”
아이들을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저씨도 더 조심해서 운전할 거고.”
“네에.”
“네, 아저씨.”
가까스로 넘어간 위기.
다행히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활기를 되찾았다.
비밀이었다.
칼치기 운전자를 향해 마음속으로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다는 건.
***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시골에 도착했다.
쭉 늘어선 시골길.
“하아..”
이래도 좀만 더 달리면 할머니 집 도착이다.
앞서 그런 일이 있기도 했고,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창문을 다 열어줬다.
시골에 와서 창문을 닫고 있는 건 죄악이니까.
“우아.. 공기 진짜 좋아여..”
정말 그랬다.
서울에서는 수목원이 아니면 맡을 수 없는 짙은 내음이 코를 타고 들어온다.
아니, 수목원과도 다르다.
논밭의 내음. 이건 시골이 아니면 맡을 수 없는 향기였다.
그런데……
“.. 윽.”
순간 느껴지는 향에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시간차로 이어졌다.
창밖을 바라보던 유리가 코를 틀어막는다.
“.. 우엑!”
과장이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논밭의 내음을 뚫고 강력한 똥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왔으니까.
‘논밭의 거름 냄새겠지.’
잽싸게 창문을 닫았지만 이미 늦었다.
냄새가 차 안에 가득 들어찬 상태였으니까.
그때였다.
마찬가지로 코를 틀어막으며 레나가 입을 뗐다.
“미뉴리 방구 꼈지!”
“…?”
유리의 눈이 드넓은 논밭처럼 휘둥그레졌다.
“무.. 뭐?”
“방구 꼈잖아!”
“아니거든! 밖에서……”
밖에서 나는 냄새라고 말하려 한 거 같다.
하기야 아는 게 많은 유리라면 이게 어떤 냄새인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런데 말을 멈춘 유리는 아주 스무스하게 노선을 틀었다.
“너잖아, 방구 뀐 거!”
“.. 응?”
“아까 휴게소에서 큰 것도 쌌으면서.”
“큰 거 아니라 했잖아!”
“증거 있니?”
무적의 논리였다.
증거를 댈 수 없는 일에 증거를 대라고 하는 건.
다시 시작된 두 아이의 다툼에 보호자인 김윤호가 개입했다.
“저기, 얘들아.”
오늘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 삼촌이다.
“아저씨가 뀌었어. 미안해.”
세상 진지한 목소리로 하는 자진고백.
정말 안 믿긴다.
나뿐 아니라 아이들도 조금도 믿는 눈치가 아니다.
그렇게 범인 없는 범인 찾기가 시작됐다.
“난 아니야.”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부정하는 시은이.
시선이 향하자 깜짝 놀란 연두가 휙휙 고개를 내젓는다.
현 상황을 정리해 보자.
아이들은 모두 자기가 아니라고 하고, 삼촌은 맞다고 하는데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건……
‘… 나잖아?’
실제로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
생각해 봤다.
여기서 내가 아니라고 해명을 한다면 다시 범인 찾기가 시작될 건 뻔한 일이다.
따라서 나는 희생을 선택했다.
“후후.. 들켜버린 건가.”
어리둥절한 표정의 아이들.
삼촌은 여전히 진지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된 이상……”
말끝을 늘인 나는 소리쳤다.
“한 번 더 발사다! 푸파팟!”
입으로 내는 경박한 효과음.
이 정도면 방귀 수준이 아니라 설사였다.
아직 논밭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 동시에 나는 버튼을 눌러 창문을 모두 개방했다.
창문을 마구 들어오는 향긋한 똥냄새.
“오우, 스멜..”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우에엑!”
“아, 아저씨! 창문 닫아요!”
난리가 났다.
나는 씩 웃으며 못 들은 척 시골길을 질주했다.
세상 행복해하는 아이들이었다.
***
뿌듯했다.
서로를 향해 근거 없는 모함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교훈을 준 거 같아서.
여담이지만 삼촌은 조금도 타격이 없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이곳이 고향인 삼촌이다.
거름냄새는 고향냄새의 일부에 불과하다.
타격을 입을 리 없었다.
“다 왔네요, 이제.”
“그러네.”
마침내 도착한 할머니 집.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주는 건 두 마리의 길고양이였다.
“냐아~”
고양이의 힘일까.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졌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떠오른다.
“헤헤..”
“고양이야!”
겁을 내던 유리도 친구들 틈에 껴서 조심스레 고양이를 바라본다.
그러다 입가에 번지는 자그마한 미소.
찰칵. 찰칵.
참을 수 없는 연시레유와 스트릿 출신 고양이의 조합에 촬영을 연발했다.
시골에 오니 사진 한 장을 찍어도 확실히 다르다.
어느 구도에서 찍어도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배경이 앵글 안에 들어오니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다.
‘이걸 어떻게 안 찍냐고.’
순간순간의 포인트들이 있다.
그 타이밍을 놓치는 건 사진작가로서 실격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양이와 인사도 나눴으니 이제 할머니 집에 들어갈 차례다.
나는 당부의 이야기를 건넸다.
“할머니가 입이 조금 거치실 수는 있는데 실제로 무서운 분은 아니니까 겁먹지 말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눈을 찡긋한 나는 문앞으로 가서 노크와 함께 목청을 높여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느껴지는 인기척.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크만 해도 알아들어, 이 놈의 조대새끼야. 할미가 귀가 없는 줄 알어?”
“에이, 반가워서 그랬죠.”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오랜만에 찾아뵙는 거잖아요.”
“흥, 그게 뭘 자랑이라고 실실 웃으면서 얘기해? 됐고, 쥐방울은……”
아이들을 향하는 할머니의 시선.
살짝 멈칫한 할머니가 아이들을 보며 입을 뗀다.
“많이도 데려왔네. 줄줄이 소시지도 아니고.”
발끈한 표정의 유리.
그러나 입을 꾹 다문 채로 아무 말도 못한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방금 나를 향해 뱉은 할머니의 찰진 욕에 기선제압을 당한 거겠지.
유리는 의외로 겁이 많으니까.
바로 맹수를 알아보고 섣불리 까불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선지도 모른다.
‘귀엽네.’
평소 모습을 알다 보니 그런 기죽은 모습도 귀여웠다.
이어지는 장면.
“안녕하세요, 할머니.”
“.. 안녕하세요.”
그리고 할머니를 본 적이 있는 시은이와 레나가 차례로 꾸벅 인사한다.
연두는 말할 것도 없었다.
“.. 헤.”
이제 할머니의 말 한 마디에 동요할 연두가 아니었다.
“할머니..”
그대로 달려간 연두는 할머니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당황한 할머니가 말한다.
“뭐, 뭐야! 안 떨어져, 요 년아?”
“보고 싶었어여..”
할머니한테 꼭 붙은 채로 떨어지지 않는 연두.
결국 떼어내는 걸 포기한 할머니의 시선이 이번에는 유리를 향했다.
시선이 교차했다.
“뭘 그렇게 멀뚱히 서 있어?”
“.. 네?”
“인사 안 해, 요 년아?”
역시 할머니의 레이더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흠칫한 유리가 주춤하다가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너무 그러지 마, 엄마.”
삼촌이었다.
생각해 보니 방금까지 삼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차에 다녀온 건가?
“상냥하게 대해주면 좋잖아. 아직 애기인데.”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런 삼촌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표정이었다.
“.. 네가 왜 여깄어?”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삼촌이 온다는 사실을 할머니가 모르고 있었다는 걸.
***
당연히 삼촌이 얘기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할머니 반응을 보면 아들이 함께 올 거라는 걸 꿈에도 생각 못한 표정이었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야 할머니는 얘기했다.
“그렇다고 말도 없이 와, 이 놈의 새끼야!”
“말없이 오면 좀 어때.”
삼촌은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우리 집인데.”
“누구 마음대로 우리 집이야? 내 집이지.”
“하하.”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안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삼촌은 핸드폰과 어떤 장치를 케이블로 연결했다.
“삼촌, 그건……”
“블랙박스야.”
그제야 납득이 갔다.
방금 삼촌이 없어졌던 건 블랙박스를 가지러 갔던 거라는 게.
어렵지 않게 삼촌은 아까 사고가 발생할 뻔 했던 장면의 영상을 찾아냈다.
다시 보니 더 기가 막힌다.
‘진짜 말이 안 되잖아.’
영상에는 선명히 드러났다.
위험했던 당시의 순간부터 칼치기한 차량의 번호판까지.
“이 파일 첨부해서 신고하면 될 거 같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할머니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둘이서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어.”
“아, 그게……”
나는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오면서 어떤 차 때문에 사고가 날 뻔 했거든요. 그래서 신고하려구요.”
“어땠길래 신고까지 해?”
“신고 안 하고 넘어가기에는 도로의 시한폭탄 같은 느낌이라서요.”
말 그대로였다.
결과가 어떻든간에 최소한의 경각심이라도 새겨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운전자들을 위해서라도.
“어디 봐.”
할머니의 말에 다시 재생되는 영상.
순간 할머니의 눈이 살짝 커진 뒤에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귀에 들어오는 목소리.
“이런 망할……”
그리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