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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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화. 혼비백산
“나는 있을 거라 생각해, 귀신.”
“…!”
모두가 숨죽이게 만드는 시은이의 참전이었다.
신기한 일이다.
아직 아무런 근거를 들지도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시은이 말에는 설득력이 느껴진다.
흠칫한 유리가 반박한다.
“귀, 귀신은 없다니까?”
“왜? 눈으로 본 게 아니라서?”
“그래!”
유리는 얘기했다.
“말했잖아! 난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구.”
“그럼 산소는?”
“.. 뭐?
“산소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있잖아.”
“산소랑 귀신이랑 같니? 산소는 과학자들이 있다고 증명한 거잖아!”
생각 이상으로 수준이 높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간 얘기만 놓고 보면 유리 쪽이 논리적으로 우수해 보인다.
산소와 귀신은 다르다.
유리 말대로 산소는 과학자들이 밝혀낸 거니까.
‘귀신은 아니지.’
그래서 귀신이라는 녀석이 신기한 거다.
소문만 무성할 뿐 과학자를 포함해서 귀신의 존재를 밝혀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귀신에 겁을 먹는다.
어쨌거나 과학적 증명 여부는 훌륭한 논리적 뒷받침이 될 수 있었다.
‘흥미진진하네.’
두 아이의 대결 구도.
과연 시은이는 여기서 어떻게 받아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됐다.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오른다.
정면으로 부딪치거나, 유리한 논지로 돌리거나, 아직 과학자가 증명하지 못한 것들도 많다는 식으로 전개하거나.
시은이라면 어느 쪽이든 가능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네 옆에 있을 수도 있어.”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어붙은 유리.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고 뒤늦게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 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다.
그럴 만도 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들려온 시은이의 말은 상당히 으스스하게 느껴졌으니까.
지금 네 옆에 있을 수도 있어.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시은이라 더더욱 그랬다.
“.. 풋.”
그러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시은이.
“장난이야.”
“.. 뭐?”
“너 말대로야. 산소랑 귀신은 다르니까.”
장난 뒤에 상대의 주장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시은이.
그 뒤에 이어졌다.
“나도 귀신이 없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없을 수도 있는 건 뭐야..?”
“없을 수도 있지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INTJ.
그 성향답게 본격적으로 시은이는 논리 전개에 들어갔다.
“산소도 그렇잖아. 원래는 없었으니까.”
“산소가 원래 없었다고?”
“정확히는 있는 걸 몰랐던 거지. 책에서 읽었는데 옛날 사람들은 산소라는 게 있는지도, 산소가 있어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대. 과학자들이 산소가 있다는 걸 밝혀내기 전까지는.”
절로 입이 벌어졌다.
사실 산소를 예로 들었을 때는 그리 적절치 못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반박의 여지가 많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시은이는 단번에 그 여지를 없애버렸다.
“귀신도 과학자들이 아직 밝혀내지 못했을 뿐이지, 우리 주위에 있을지도 몰라.”
“…”
“그리고, 지금 네 옆에도.”
전혀 몰랐다.
시은이에게 이런 짓궂은 면이 있는지.
어쩌면 아까 회장 부회장 얘기 중에 말다툼했던 일의 복수인지도 모른다.
파장은 무척이나 컸다.
“야!”
유리는 마구 소리쳤다.
“웃기지 마! 귀신같은 건 없어! 절대 없어! 없다구!”
“없을 수도 있지.”
“없을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없다니까!”
“그럼 산소는……”
“…… 산소 얘기 그만해!”
승패가 정해진 거 같다.
논리를 떠나서 멘탈적으로 유리가 타격이 훨씬 커 보였으니까.
나는 실소를 뱉으며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시은이가 의외로 짓궂은 면이 있구나?”
시은이는 잠자리가 나랑 비교적 가까운 편이었다.
말 그대로였다.
방금의 시은이는 별로 논리로 이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유리한테 겁을 주고 싶었던 거 같은데……”
완전히 통했다.
겉으로는 센 척하지만 유리의 목소리에서는 잔뜩 겁먹은 게 느껴졌으니까.
귀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목소리.
“.. 죄송해요.”
“응?”
“장난이 치고 싶었어요. 유리가 귀신을 무서워하는데 안 그런 척하는 거 같아서.”
솔직한 심정을 말하는 시은이를 향해 나는 얘기했다.
“하하, 그랬구나.”
나한테 죄송하다고 할 문제는 아니었다.
시은이의 가벼운 장난이 유리에게는 치명타가 들어간 거 같기는 하지만.
그나저나 연두는 계속 조용하네.
‘잠든 건가?’
내 바로 옆에 누워있는데 숨소리도 없이 조용하다.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다.
평소 연두를 생각할 때 자고 있는 거라면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야 정상이니까.
“자, 연두야?”
“…!”
몸을 들썩이는 촉감이 느껴진다.
새어 나오는 웃음.
아무래도 시은이 장난에 치명타를 입은 건 유리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무서워서 가만히 있던 거구나.
“아, 아직 안 자여..”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연두 표정이 예상이 가서 재차 웃음이 나왔다.
넌지시 연두를 향해 말을 건넸다.
“연두는 어떻게 생각해?”
“.. 으응?”
“귀신이 있다고 생각해?”
겁먹은 딸을 향해 귀신 얘기를 하는 못된 아빠였다.
그래도 궁금했다.
지금까지 쭉 소리 없이 듣고 나서 연두는 어떤 입장을 취할지.
“모르겠어여..”
잘 모르겠다.
그것도 하나의 입장이 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 시은이도 비슷한 입장인 거고.
“그럼 만약에 귀신이 연두 앞에 나타나면 어떡할 거야?”
역시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맞서 싸운다, 도망친다, 보이지 않는 척을 한다 등등.
“얘기해 볼 거에요.”
“응?”
“착한 귀신일 수도 있으니까……”
대화로 해결한다.
연두다운 방식이라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쁜 귀신이면?”
“나쁜 귀신이면……”
대답을 포기하고 내 품에 파고드는 연두.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여기서 더 하면 다 같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유리였다.
“귀신은 없어!”
“왜냐고?”
“귀신이 있었으면……”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데 자문자답까지 해가며 귀신이 없는 이유에 대해 설파하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큰 목소리로.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그때였다.
쿵. 쿵.
귀에 들어오는 발소리.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 뭐지?’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귀신 얘기를 하고 있던 차에 들려온 소리였으니까.
곧이어 방문이 활짝 열렸다.
“쫑알쫑알쫑알쫑알! 아주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누구야!!”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유리.
귀신보다 무서운 할머니 등장이었다.
침묵 속에서 나는 조용히 입을 뗐다.
“.. 일단 저는 아니에요.”
이보다 추할 수 없는 한 마디였다.
***
할머니가 왔다 가신 뒤에는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다.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귓속말로 옆에 있는 사람과 속닥거리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금방 잦아들었다.
‘당연하지.’
고단한 하루였다.
피곤한 눈을 뜨고 있게 만들었던 귀신 이야기.
그 이야기도 끝났겠다, 남은 건 잠드는 일뿐이었다.
드르렁. 컹.
오른쪽에서는 벌써 우렁찬 코골이 소리가 들려온다.
그 주인공은 선동이였다.
소리를 들으니 많이 피곤했나 보다.
‘안 좋은 거 아닌가.’
코를 심하게 고는 게 좋을 거 같지는 않다.
자세가 불편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공간을 좀 더 열어서 바른 자세로 눕혀줬다.
“오..”
그러니 신기하게도 코골이가 멈췄다.
뿌듯한 얼굴로 천장을 보고 누우니 왼쪽에서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연두가 잘 때 내는 특유의 숨소리였다.
‘잠들었나 보네.’
잠에 빠져드는 아이들.
보이지는 않지만 조용한 걸 보니 다들 잠든 게 아닐까 싶었다.
그에 따라 나도 눈을 감았다.
감은 눈을 뜬 건 그로부터 체감상 한 시간가량이 지난 후였다.
‘.. 왜 잠이 안 오냐.’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몸은 피곤한데도 정신이 말짱해서 잠이 안 오는 경우.
설마 나도 귀신 얘기에 영향을 받은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자존심에 조금은 스크래치였다.
아이들도 이렇게 잘 자는데.
“후우..”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 순간이었다.
왼쪽 끝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몇 차례 들려오는가 싶더니 귀에 들어왔다.
자그마한 목소리가.
“.. 서연두.”
유리 목소리였다.
갑자기 연두를 부르길래 처음에는 잠꼬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재차 들려왔다.
“서연두..”
잠꼬대는 아닌 거 같았다.
안타깝게도 연두는 잠들면 미친 오리 알람이 울려도 깨지 않는 깊은 잠의 소유자였으니까.
못 들은 척 가만히 있으니 조바심 섞인 한숨 소리와 함께 또다시 들려온다.
“.. 연시은.”
이번에는 시은이를 부른다.
응답이 없자 또 한차례 뒤척이더니 목소리를 낸다.
“오선동..”
선동이는 꿀잠 중이었다.
코는 안 골지만 잠에 빠져든 지 오래였으니까.
그런 와중에 이어지는 유리의 목소리에 하마터면 침묵 유지에 실패할 뻔했다.
“.. 오라버니.”
이렇게 부르면 선동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자 이불을 퍽퍽 차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그러다 작게 신음을 낸다.
“우으..”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유리가 이렇게 한 명씩 이름을 부르는 이유가 뭘지.
그리고……”
“.. 아저씨.”
내 이름이 불렸다.
바로 대답하려다가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에 입을 멈췄다.
이제 남은 건 레나뿐이다.
‘이유가 있을 거 같아.’
연두를 처음으로 부르고 레나를 마지막인 이유가 있을 거 같았다.
심지어 레나는 바로 옆자리인데.
여기서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미안하다, 유리야.’
그렇게 나는 유리의 부름을 외면했다.
다시 맴도는 정적.
이번에는 침묵이 꽤나 길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무슨 일이냐고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이레나.”
“…”
“이, 이레나. 나 좀 도와줘…”
“우.. 으에?”
바로 옆인 탓인지 처음으로 반응이 있었다.
비몽사몽한 목소리.
“일어나 봐, 이레나.”
“.. 메?”
미치겠네.
웃음을 참는 게 고역이었다.
자다 일어난 레나 반응이 너무 리얼해서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조금은 정신이 든 걸까.
“머, 머야..?”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갑자기 유리가 왜 자신을 깨운 건지.
“그, 그게……”
드디어 이유가 밝혀지기 직전이었다.
개봉박두.
“같이 가 줘…”
“.. 어디를?”
“화, 화장실……급해……”
둘이 꼭 붙어서 나가고 난 뒤에야 나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귀신같은 건 없다더니.
안 자길 잘했다. 이런 진귀한 장면을 볼 수 있었으니까.
***
시골집.
없는 게 없는 한옥집이었지만 단 하나, 서울에 있는 집과 가장 큰 차이점이 있었다.
집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즉, 화장실에 가려면 현관문을 열고 나가야 했다.
바로 앞에 위치하긴 했지만.
“캄캄해…”
낮과는 달랐다.
손전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긴 했지만 온통 환하던 낮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더군다나 유리와 레나.
둘은 명실상부 겁쟁이기도 했고.
“귀신 때문에 아니야..”
“.. 응?”
“시골이라 무서운 동물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귀신 무서워서 같이 가자고 한 거 아니라구.”
“으, 응..”
손전등을 든 레나.
그런데 다른 한쪽 손에 감촉이 느껴졌다.
유리가 손을 잡은 거다.
평소라면 질색을 하며 피했겠지만 레나는 모르는 척 같이 손을 잡았다.
지금은 똘똘 뭉쳐야 하는 때였으니까.
끼익.
몇 번을 망설이다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왜일까.
밝을 때는 탁 트인 집 앞 공터가 이렇게나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건.
게다가 주위에 우뚝 서 있는 나무들.
“가, 가자..”
“.. 응.”
그때였다.
발을 내딛는 두 아이의 귀에 들려오는 바람 소리.
휘이잉-
갑자기 세게 부는 바람에 놀란 두 아이가 앞으로 달려갔다.
동시에 들려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낙엽이 밟혀서 나는 소리였다.
허나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꺄아악!”
“어, 엄마!!”
손전등을 흔들며 마구 뛰어가는 두 아이.
끝이 아니었다.
“컹컹!”
“꺄아아악!”
혼비백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