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19)
화. 미래
“엄마랑 얘기 중이었거든.”
“어떤 얘기요?”
“글쎄.. 어떤 얘기냐는 말에 굳이 답하라면……”
조금은 멋쩍은 얼굴로 삼촌이 말을 이었다.
“…… 결혼, 이려나?”
입이 떡 벌어졌다.
처음 든 감정은 일종의 당황감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촌 입에서 나오니 결혼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졌으니까.
그 뒤에는 생각했다.
‘결혼을 하시는 건가.’
생각해보면 이상할 건 없었다.
결혼.
요즘 결혼하는 시기가 늦어진 건 사실이다. 미혼인구가 늘어나기도 했고.
그렇다고 해서 삼촌이 결혼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지.’
우리 삼촌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삼촌은 이렇다 할 결점을 꼽기 어려운 사람이다.
엄친아 대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개인적인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나쁜 의도가 아니니 하나씩 짚어보자.
우선 삼촌은 한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회사는 베일앤컴퍼니,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회사다.
학력과 직장 얘기는 너무 속물적인 거 같으니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겠다.
다음은 외모다.
속물적이라면서 외모 얘기로 넘어가는 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는데 그 생각이 맞다.
‘.. 어쩔 수 없잖아.’
의외로 어떤 사람에 대해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는 않다.
물론 나는 안다.
삼촌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허나 그런 깊은 부분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파악할 수 있는 점들이었다.
그래서 삼촌 외모는 어떻냐고?
‘어떻긴 뭘 어때. 잘생겼지.’
팔이 안으로 굽는 게 아니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봐도 삼촌은 무척 수려한 외모였다.
눈 아래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이 매력으로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막상 삼촌은 그다지 외모에 신경쓰는 거 같지 않지만.
‘성격도 그래.’
츤데레라기에는 애매하다.
그러나 무심하게 뒤에서 챙겨주는 면은 확실히 할머니의 특성을 닮았다.
그렇다고 겉으로 틱틱대는 것도 아니다.
외유내강의 표본.
한 마디로 츤데레에서 좋은 점만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 완벽하잖아.’
하나하나 나열하고 보니 더더욱 일등 신랑감이었다.
삼촌을 떠나보내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그러나 그런 삼촌이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신부라면, 분명히 삼촌에 버금갈 정도로 멋진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 삼촌은 그런 사람이니까.
‘책임지지 못할 말과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
결혼은 책임이 동반된다.
그래서 더더욱 기대가 됐다.
삼촌이 사랑을 하고, 책임지기로 결심한 신부는 어떤 사람일지.
그렇게 혼자 잔뜩 생각하고서 입을 뗐다.
“정말 축하드려요, 삼촌!”
우선은 축하였다.
자세한 걸 묻기 전에 축하인사를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 응? 무슨 축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오니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축하냐고 말씀하시면…… 삼촌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대한 축하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을 거 같은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삼촌이 결혼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삼촌도 할머니도 그렇게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이윽고 나는 팩트와 마주했다.
“내가 결혼을 한다고?”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삼촌의 표정을 보니 그제야 감이 왔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 아닌가요?”
“응. 주원이 네가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그렇다.
완전히 헛다리였다.
***
얼굴이 화끈거렸다.
입 밖으로 뱉은 건 얼마 안 되지만 마음속으로 온갖 생각을 했던 터라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하.. 착각했네요. 그럼 저는 자러 가 볼……”
“어딜 가.”
그러나 할머니에 의해 가로막혔다.
“앉어, 이 놈의 새끼야.”
“.. 저요?”
“너 말고 여기 또 누가 있어!”
말은 잘 듣는 타입이다.
그에 따라 삼촌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저기……”
이렇게 된 이상.
수치심은 잠시 접어두고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근데 삼촌.”
“응.”
“결혼하시는 게 아니면, 결혼은 무슨 얘기예요?”
그 말에 삼촌은 옅게 미소를 띠며 답했다.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는 중이었거든.”
“잔소리요?”
“응.”
할머니가 버럭 목소리를 냈다.
“뭐? 잔소리? 이 놈의 조대새끼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잔소리라고 해!?”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늘 이런 식이었다.
할머니가 역정을 내면 삼촌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받아넘기곤 했다.
‘잘 아는 거지.’
달리 말하면 할머니의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셈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삼촌은 나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할머니에게 조대새끼라는 애칭(?)으로 불렸을 테니.
짬은 무시할 수가 없는 법이다.
“잔소리라면……”
의외로 삼촌은 쿨하게 대답해줬다.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기를 바라시거든.”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평소 할머니의 무심한 모습 때문에 생각을 안 했지만, 자식의 결혼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나라도 그럴 거 같다.
삼촌같은 사람이 내 아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 같고.
‘조바심도 들겠지.’
아직 내가 부모로서 100%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는 아니다.
연두는 아직 여덟살이니까.
그래도 어떤 마음인지 어느 정도는 감이 온다.
나도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했다.
“삼촌은 어떤 생각이신데요?”
궁금해졌다.
결혼에 대한 삼촌의 생각이.
어쩌면 삼촌은 비혼주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른 답이 들려왔다.
“좋은 제도라고 생각해.”
“네?”
“결혼.”
의외의 답이었다.
“그럼 삼촌은 결혼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안 할 이유는 없지.”
그 뒤에 이어졌다.
“그런데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쫓기듯이 결혼상대를 찾고 싶지는 않아. 그렇게 결혼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네.”
“적어도 나는 그래.”
가만 보면 그랬다.
평소 삼촌은 과묵한 편이지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다.
생각이 확실히 정리된 채로 말을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나도 엄마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야. 그래서 내 생각을 엄마한테 얘기하는 중이었어.”
알 수 없는 할머니의 표정.
나는 슬쩍 눈치를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 말씀은 저도 동의해요.”
설득당한 게 아니다.
삼촌의 결혼관은 내가 어릴 적부터 생각하던 결혼관과 일치했다.
꽉 막힌 사고가 아니었다.
‘정답은 없어.’
어떤 방식으로 만나든 남녀는 사랑에 빠질 수 있고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정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조급한 마음이다.
아까 말했듯 결혼은 그리 가볍게 생각할 게 아니니까.
“할머니.”
자연스레 나는 삼촌 편에 서서 능청스레 얘기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뭐?”
“물론 이해하죠. 제가 할머니라도 그럴 거 같아요. 삼촌 보세요.”
삼촌을 가리키며 나는 말을 더했다.
“인물 좋지, 신수 훤하지, 한국대 졸업에 베일앤컴퍼니, 햐.. 저도 궁금합니다. 삼촌을 얻을 행운의 여성분이 누구일지.”
“……”
아들 칭찬하는데 싫어하는 부모가 있을 리 없다.
놀랍게도 이 비현실적인 스펙들이 전부 다 팩트이고.
아직 끝이 아니었다.
“성격은 또 어때요. 할머니 성격에서 좋은 부분만 쏙 빼 놓은 게 삼촌 성격이잖아요. 여자들이 딱 좋아하는…… 억!”
결국 한 대를 얻어맞았다.
옆에서 삼촌은 멋쩍은 듯 웃음짓고 있고.
“이게 장난치는 줄 알어!”
“아니……”
“그리고 생판 남 말하듯이 말하는데.. 너도 똑같아, 이 놈의 새끼야!”
“.. 네?”
이건 변수였다.
갑자기 타겟이 나를 향할 줄이야.
“조급할 필요 없긴 개뿔. 그럼 가만히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고 있으면, 너한테 딱 맞는 신붓감이 운명처럼 찾아오디?”
“아니, 저는……”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삼촌을 칭찬했을 뿐인데 화살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고 있다.
“그리고 윤호, 너!”
“.. 응?”
“마흔이 코앞인데 평생 혼자 살 거야?”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면 몰라도 결혼에 대해 할머니가 이렇게 얘기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삼촌도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조급하긴 개뿔. 누가 조급하랬어? 운명도 잡을 마음이 있어야 잡히는 거야.”
운명도 잡을 마음이 있어야 잡힌다.
상당히 임팩트가 있었다.
연두를 만난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운명을 잡은 건 나였으니까.
반대로 연두도 내 손을 잡았고.
슥.
이번에는 할머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네?”
“언젠가 쥐방울도 시집가고 나서, 네 옆에 아무도 없어도 돼?”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미뤄뒀다는 게 더 맞을 거 같다.
“.. 적어도 마음은 열어두라는 얘기다.”
할머니의 조언이었다.
***
얘기를 마치고 난 뒤에 방으로 들어온 나는 연두 옆에 몸을 뉘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생각이 많아졌어.’
싱숭생숭하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거 같다.
미뤄둔 생각과 마주했다.
현재 생활에 너무 만족하는 나머지,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 안에서 결론을 내야 하는 문제였다.
‘.. 적어도 마음은 열어두라는 얘기다.’
할머니 말처럼 나는 마음을 열어두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르는 인연을 잡지 않아서 놓쳐버린 걸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이성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대해.
친구들이 애인 얘기를 할 때도 놀라울 정도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성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야.’
누군가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 적은 여러번 있었다.
짝사랑도 해 봤다.
그런 내 마음이 닿지 않아서 사춘기 소년처럼 속을 앓기도 했다.
그러나 연두를 만난 뒤에는 한 번도 그런 일로 속앓이를 하기는커녕 신경을 쓴 적도 없었다.
왜일까.
‘배제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다.
내게는 연두가 전부였다.
연두와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 행복해서, 그 안에 다른 누군가를 들여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만약 들여보낸다고 해도 그 변화를 마주할 자신 또한 없었다.
‘굳이 이 일상을 깨고 싶지 않았던 거지.’
사실 그랬다.
현재만 생각하면 이 행복한 일상을 깰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말대로 언젠가는 수많은 연두부들과 내 기준마저 충족하는 연두의 신랑후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생각하기도 싫고 아직 먼 미래이지만 말이다.
‘믿어 주십시오. 연두를 평생 행복하게 해 줄 자신 있습니다.’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긴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그런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말했다.
그런 날이 오면 네 옆에 아무도 없어도 되냐고.
‘대답은 안 했어.’
굳이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 대답은 ‘상관없다.’였다.
연두만 행복하다면 내 옆에 아무도 없더라도 웃으며 매일을 살아갈 자신이 있으니 말이다.
허나 그런 나를 보는 연두의 마음은 어떨까.
‘걱정할 거야.’
연두는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아이였다.
미래에도 그렇겠지.
그렇다. 이렇게 먼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에도 내 생각의 초점은 연두를 향해 맞춰져 있었다.
생각은 점점 복잡해져갔다.
이런 생각으로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게 맞는 걸까.
“.. 하하, 연두야.”
옆으로 누운 채로 나는 보이지 않는 연두의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시골에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