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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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화. 선동이오빠의 도망
학부모 친목 도모.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종종 이런 자리가 있었으면 했다.
성향은 달라도 부모라는 공감대 속에서 나눌 수 있는 얘기들이 많았으니까.
그런 대화 속에서 부모로서 더 발전할 수도 있고.
‘다행이야.’
가장 다행인 건 지우가 밝아졌다는 점이었다.
음악동아리와 아이들이 그런 좋은 영향을 줬다는 게 뿌듯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연두를 데리러 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냐아..”
누렁이 밥을 챙겨주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핸드폰을 꺼냈다.
-드림 큐!
떠오르는 기사와 각종 게시글.
비록 휴가 기간이긴 하지만 ‘드림 큐!’는 지금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하루하루 상승가도를 오르고 있으니까.
-올해의 띵작.
└님들아. 드림큐 하세요. 두 번 하세요.
└진짜 너무 재밌자너 ㅠㅠ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거 같음.
└뭔가 하고 나면 동기부여 됨. 웬만한 동기부여 영상 봐도 별 감흥 없었는데.
└ㅇㅈ
그럴 만도 했다.
‘드림 큐!’는 각자 다른 환경에 놓인 수많은 연습생들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좌절하고, 환호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동기부여가 안 될 수가 없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걸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부정할 수 없었다.
‘드림 큐!’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다는 걸.
그런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꼭 변화를 줘야 할까.’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데 굳이 변화를 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바로 그 생각이 위험하다.
현재에 만족하게 되면 그 이상을 꿈꿀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
이미 내가 생각한 변화의 씨앗은 마련됐다.
막 작화팀을 만들었을 때는 ‘스튜디오 초록’ 밑에 적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두 개의 프로젝트가 성공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성과를 인정해주고 있었다.
변화를 줄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었다.
‘팀원을 뽑을 거야.’
추가적으로 팀원들을 영입할 생각이다.
좀 더 ‘스튜디오 초록’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팀원들을 말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변화였다.
***
음악동아리.
오늘도 연두는 지우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잘했어, 지우야..!”
“.. 헤.”
연두선생님의 칭찬에 입가에 번지는 미소.
“아!”
무언가 떠오른 듯 지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여, 연두야. 잠깐 나 유준이오빠한테 갔다 올게.”
“응!”
그대로 달려간 지우는 수학 문제집을 펼쳤다.
“유준이오빠.”
“킁!”
“이 문제 푸는 법 좀 알려줄 수 있어?”
그렇다.
지우에게 있어서 음악동아리는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장소였다.
피아노 선생님인 연두와 수학 선생님인 유준이가 한 교실 안에 있었으니까.
끝이 아니었다.
곧 영어를 배우게 되면 영어 선생님도 있었다.
“Yo! 오늘 받았지, 용돈. 점점 늘어나는 잔고! 체킷!”
선재의 주머니에는 이천 원이 있었다.
한편 지우가 자리를 뜬 뒤에 피아노 앞에는 연두 혼자 남았다.
건반에 올라가는 손.
딴. 따단.
최근에 피아니스트로서 연두에게 나름 큰 변화가 하나 있었다.
그게 뭐냐고?
‘작곡.’
그건 바로 연두가 작곡을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첫 계기는 시은이였다.
독서광이었던 시은이는 언제부터인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읽는 것과 달리 글을 쓰는 건 창작의 분야였다.
‘멋있어..’
연두는 그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 속에서 생각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러나 실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었다.
시은이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그만한 독서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는 자각 못했지만 그동안 콩쿠르 준비를 포함해 많은 경험이 쌓인 상태였다.
수많은 곡을 접하기도 했고.
‘.. 만들어보고 싶어.’
그래서일까.
연두도 곡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사실 연두가 작곡을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우리집 고양이 추르를 좋아해~ 우리집 누렁이 뱃살이 짱 많아~ ♪’
누렁이가 추르를 먹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즉석으로 연주까지 했고.
끝이 아니다.
독일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연두는 떠오르는 음을 흥얼거려서 유리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작곡의 일환으로 볼 수 있었다.
작곡하는 법은 뚜렷한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고양이가 추르 먹는 모습, 태어나서 처음 탄 비행기 안에서 든 기분.’
보다시피 악상은 어느 순간에든 떠오를 수 있었다.
거장으로 꼽히는 음악가들의 곡도 깊이 파고들면 아주 사소한 상황이나 장면이 악상이 되어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따다단. 딴.
때때로 떠오르는 음들이 있었다.
전에는 즉석으로 연주하거나 흥얼거리는 데에 그쳤다면 지금은 아니었다.
음표를 적었다.
그리고 피아노가 있다면 즉석으로 쳐 보기도 했고.
가장 최근에 악상이 떠오른 건 시골에 갔을 때였다.
연두는 여러 감정을 느꼈다.
낚시하다가 물고기를 잡았을 때는 쾌감을, 귀신과 마주했을 때는 공포를, 친구들과 함께 선동이오빠의 비밀장소에 갔을 때는 행복을.
그 감정과 마주하면 떠오르는 선율이 있었다.
그렇다.
연두는 작곡에 재능이 있었다.
‘.. 재밌어.’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콩쿠르에 나가서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도 떨리지만 보람찼다.
그리고 작곡은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었다.
딴. 따다단. 딴.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표현해내는 게 너무 즐거웠다.
그렇게 연주하다 보면 즐거웠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기분도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톡.
천천히 손을 뗐다.
살짝 고개를 돌린 연두는 깜짝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라졌던 지우는 물론이고, 음악동아리 친구들과 언니들이 잔뜩 모여들어 있었으니까.
“으, 으응..?”
자그마치 7분이었다.
악보도 없이 연두가 피아노에 흠뻑 빠져들어 연주한 시간은.
입을 뗀 건 레나였다.
“연두야.”
“응.”
“무슨 곡이야? 처음 들어보는 곡인데.”
중얼거리듯 레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 좋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이렇게 연두는 작곡에 있어서도 힘차게 첫발을 내디뎠다.
***
하굣길.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는 연두를 향해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연두야?”
“네에.”
“뭔데?”
그 말에 연두는 쿡쿡 웃더니 얘기했다.
“집 가서 알려줄게여..!”
재촉은 금물이다.
괜히 빨리 듣고 싶어서 재촉했다가 집 가서도 못 듣게 되는 수가 있으니.
이윽고 도착한 집.
연두는 내 손을 잡고 방으로 데리고 갔다.
슥.
그러고선 피아노 앞에 앉더니 꼬깃꼬깃한 악보를 펼친다.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
“아빠한테 연주 들려주려고?”
“네.”
바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연두의 연주다.
심지어 이렇게 연두가 내 손을 끌고 가서 들려주는 연주는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했다.
이런 적이 또 언제 있더라.
‘모닝콜을 해준다고 데려갔을 때, 그리고……’
또 어떤 장면이 떠오르려는 찰나였다.
연주가 시작됐다.
딴. 따단. 딴. 딴.
“.. 응?”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연주에 방해가 될까 봐 바로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곡이야.’
보통은 내가 들어본 곡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고?
딸이 피아니스트를 꿈꾼다면 부모도 자연스럽게 피아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물론 인정한다.
‘아무것도 몰랐어.’
처음에는 피아노에 있어서 완전히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리스너로서는 꽤 내공이 쌓인 상태였다.
거장들의 유명은 곡은 웬만해서는 다 알았고, 요즘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곡도 찾아 들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조금은 의아했다.
최근에 연두가 연습하고 연주하는 곡은 다 파악하고 있는데 말이다.
‘서정적이네.’
멜로디는 서정적이었다.
긴 호흡을 지닌 따뜻한 선율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듣는 곡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색다르게 느껴진다.
조금은 미숙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 그런데 좋아.’
그 느낌이 오히려 좋았다.
꼭 서투르지만 진심을 담아 표현하는 마음을 귀 기울여 듣는 기분이었다.
연주에 흠뻑 빠져든 연두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감상하고 싶었다.
어차피 연두의 모습은 카메라가 대신 담아줄 테니까.
딴. 딴. 따단.
궁금했다. 눈을 감으면 뭐가 떠오를지.
그렇게 감은 눈 속에 펼쳐지는 장면은 밤하늘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이 아닌, 아늑하고 조금은 신비스러운 밤하늘이다.
잠깐만.
어디서 본 거 같은……
“.. 어?”
완전히 젖어들려는 찰나에 연주가 멈췄다.
눈을 뜨니 연두가 생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궁금증은 두 가지였다.
어떤 곡인지, 왜 중간에 연주를 멈춘 건지.
“연두야.”
“네, 아빠.”
“이 곡 이름이 뭐야?”
굳이 비슷한 정서의 음악가를 꼽으라면 드뷔시를 꼽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감각을 중시한 음악가.
자연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고, 그걸 음악으로 표현하는 걸 즐긴 거장이었다.
연두가 무척 좋아하는 음악가이기도 하고.
“곡 이름은……”
자그맣게 입을 뗀 연두는 말했다.
“밤하늘, 별이에여..”
“밤하늘 별?”
“네에.”
신기했다.
눈을 감고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밤하늘이었으니까.
더더욱 증폭된 호기심에 음악가는 누군지 물으려는 참이었다.
“또 있어요, 아빠..!”
그렇게 말한 연두는 또 예고 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도입부였다.
딴!
자그마한 연두의 몸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강하게 음 하나를 누르더니 연주가 시작된다.
세상 급박하다.
연주가 급하다는 게 아니라 곡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말이다.
딴. 딴. 따단. 딴.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도망이다.
건반 위를 춤추는 연두의 손을 보고 있으면 마치 톰으로부터 도망치는 제리를 보는 거 같았다.
도망치듯 손가락이 움직인다.
‘이것도 처음 들어봐.’
역시 처음 들어보는 곡이다.
정제되지 않은 듯 거친 느낌의 선율에 또 색다른 느낌이 든다.
이쯤 되니 슬슬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달라.’
내가 알던 곡.
평소에 연두가 치던 곡들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좀 더 직설적이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투박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마음속에 깊이 와닿는다.
그때였다.
내 시선이 피아노 위에 있는 악보를 향한 건.
‘.. 잠깐만. 악보가 아니잖아.’
아까도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다.
자세히는 안 봤지만 악보가 주머니에 넣었다 빼기라도 한 것처럼 구겨져 있었으니 말이다.
연두는 악보를 그렇게 보관하지 않는다.
파일에 넣어서 구겨지지 않도록 예쁘게 보관하니까.
“……”
확실히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카메라를 놓아두고 소리 없이 발을 옮겼다.
연주에 열중하고 있는 연두 뒤로.
슥.
정면으로 악보를 본 나는 그대로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실소.
“하, 하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악보 상단에 큼지막한 여덟 글자가 연두 글씨체로 쓰여 있었으니까.
-선동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