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33)
화. 1%의 영감
밤하늘, 별.
영상 속에서 흘렀던 그대로의 선율이 연두의 손끝에서 흘렀다.
주원은 응시했다.
그런 연두를 바라보고 있는 이은경의 표정을.
‘.. 뭐지?’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주원이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조금은 놀랄 줄 알았다.
‘안 좋은 반응은 아니야.’
이은경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혹시 연두튜브 영상에서 미리 음악을 접한 걸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도 그 곡의 주인공이 연두라는 건 알 수 없었을 텐데.
“……”
평소라면 생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중간에 레나가 있다는 걸.
워낙 이은경의 반응에 집중한 나머지, 그 점을 주원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주원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설레발이었던 건가.’
상대는 이은경이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이자 한국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이은경.
피아노에 한해서는 자신을 포함해 일반 사람들의 기준보다 월등하게 높을 수밖에 없다.
주원은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의 귀에는 그리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딴. 따단.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슬퍼졌다.
이렇게나 좋은데.
그리고 이은경은 알게 모르게 그런 주원을 계속해서 살피고 있었다.
자칫하면 웃음이 나올 거 같았다.
‘생각한 반응이 아니었나 보네.’
의도한 건 아니었다.
미리 음악을 들었기에 이은경은 곡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가벼운 미소를 머금는 건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리액션이었다.
콩쿠르 때도 그랬다.
수준 높은 참가자가 등장할 때마다 그녀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그녀의 성향상 아무리 훌륭한 연주라고 해도 거창한 리액션을 보이는 경우는 없다시피 했다.
그녀 자신이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으니까.
‘몰랐으면 어땠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두가 만든 곡이라는 걸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자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암묵적인 룰이 깨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랬다.
학교에서 이 곡을 접했을 때, 연두의 자작곡이라는 걸 유추해내고서 입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딴. 따단. 딴.
지금은 그저 연주에 집중할 뿐이었다.
귓가에 흐르는 선율.
확실히 직접 만든 곡이라 그런지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곡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확실히 있어야 선보일 수 있는 연주였다.
툭.
연주가 멎었다.
건반에서 손을 뗀 연두는 살짝 고개를 돌려 이은경을 바라봤다.
이은경이 입을 뗐다.
“그래. 이게 선생님한테 들려주고 싶었던 연주니?”
“네에.”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는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여..”
멈칫하는 이은경.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일부러라도 놀라는 반응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원래는 말이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그럼 들려줄래?”
또 하나의 자작곡.
앞서 연주한 곡과 달리 아직 들어보지 못한 곡이었다.
제목은 알고 있지만.
‘선동이오빠의 도망.’
제목만 봐도 ‘밤하늘, 별’이라는 곡과는 아예 다른 분위기의 곡일 거 같았다.
궁금했다.
연주를 먼저 들어보고 싶었다.
리액션은 그 뒤에 해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 네!”
악보를 다음 장으로 넘기고 연두는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바로 연주가 시작됐다.
딴. 딴. 따단. 딴.
역시나 시작부터 격정적인 연주였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이은경은 적잖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계산된 리액션이 아니었다.
‘느낌이 전혀 달라.’
예상은 했다.
그러나 첫 곡에 비해서는 많이 어설플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고?
우선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곡은 연두가 확실하게 강점을 보이는 분야였다.
그만큼 좋아하기도 하고.
‘놀란 건 매한가지지만.’
어찌 보면 잘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셈이다.
작곡이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런데 이번 곡은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되려 격정적이다.
그 격정도 앞선 곡 못지않게 소화해내는 연두를 보니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콩쿠르 때가 떠올랐다.
‘폭풍.’
부르크 뮐러의 폭풍을 연주했던 때.
어떻게 보면 약점이라고 생각할 만 한 선곡을 하고서, 연두는 그 약점을 극복해내고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다.
그게 밑거름이 된 걸까.
따단. 따단.
눈앞에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선동이가 보이는 거 같았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방음실 문이 열린 건.
끼익!
아직 연주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깜짝 놀란 연두가 연주를 멈추고, 주원과 이은경도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문을 연 건 레나였다.
“.. 레나야?”
“엄마!”
해맑은 표정으로 레나는 말했다.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있서서!”
“응?”
“내가 저번에 말한 연두 자작곡 들어봤서? 밤하늘 별이랑 선동이오빠의 도망! 안 들어봤스면……”
주원의 입이 떡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
“.. 알고 계셨나요?”
“네.”
충격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야 모든 상황이 파악이 됐다.
‘왜 생각 못했지?’
확실히 들은 기억이 있었다.
음악동아리 친구들에게 자작곡을 들려줬다는 걸.
그걸 듣고도 레나를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다는 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혼자 쌩쇼를 했네.’
실소가 흘러나온다.
우선 이은경을 향해 사과의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바로 연두 자작곡이라는 걸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어차피 밝혀진 마당에 숨겨서 뭐 하겠는가.
반응이 궁금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솔직하게 말하니 그녀는 웃으며 얘기했다.
“아니에요. 저라도 그럴 거 같은데요.”
그녀는 넌지시 말을 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레슨이 끝나고 잠깐 얘기 나누는 거로 할까요?”
“네, 그러시죠.”
의도는 알 거 같았다.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연두가 없을 때 얘기를 나누는 게 좋을 거 같았으니까.
“그럼 저는 나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자작곡에 관해 연두와도 할 얘기가 많을 거 같아서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소심하게 방음실을 나섰다.
그러자 마침 돌아온 하파엘이 소파에 앉아서 과일을 먹고 있었다.
“오, 연두 아버님!”
여전히 쾌활하다.
나를 보고서 눈이 동그래진다.
“여기 와서 과일 같이 먹어요!”
“아, 네.”
“연두 아버님 풀 죽었습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풀이 죽었다니.
조금 우습긴 하지만 어쩌면 지금 내 상황에 딱 알맞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파엘..”
그렇게 나는 운을 뗐다.
내 표정 때문인지 하파엘이 진지하게 말을 받는다.
“네, 연두 아버님..”
뭐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니 얘기하라는 표정이다.
그래서 얘기할 생각이다.
오늘 내 바보같은 실태에 대해.
딸의 칭찬이 듣고 싶었던 나머지 되지도 않는 연기로 당신의 아내를 시험했다는 걸.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여기서 ‘당신’은 ‘너’가 아닌 극존칭이다.
‘어차피 부부는 모든 걸 공유해.’
그러니 내가 먼저 얘기하는 편이 나았다.
내 말을 진지하게 듣던 하파엘의 얼굴에 점점 웃음이 드리웠다.
마침내 이야기가 끝나자 그가 입을 뗐다.
“하하! 이해합니다, 연두 아버님! 그래서 와이프는 뭐라고 하던가요!”
“그게.. 아직 잘 모르겠네요.”
레슨이 끝난 뒤 얘기를 나누기로 했으니 아직은 모르는 일이었다.
하파엘은 말했다.
“궁금하네요. 연두 자작곡이라……”
“들어보실래요?”
“오, 들을 수 있습니까?”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 하파엘은 연두튜브 영상을 보지 못한 거 같았다.
오히려 좋았다.
나는 핸드폰에 받아둔 녹음본을 열었다.
“그럼 재생하겠습니다.”
“네.”
하파엘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지금 보이는 모습과 달리, 그 역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점이었다.
자연히 나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딴. 따단.
흐르기 시작한 선율.
귀 기울여 듣던 그가 목소리를 낸 건 연주가 끝나고 난 뒤였다.
“이건……”
“네?”
“연두 아버님을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뭔가 아리송한 감상이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하다가 그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역시 저보다는 와이프에게 듣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다니.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얼마 뒤에 레슨이 끝나고, 드디어 이은경과의 개인 면담 시간이 찾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레슨 외에도 연두랑 할 얘기가 조금 많았거든요. 궁금한 것도 있었고.”
그건 작곡에 관련된 이야기였을까.
물어볼 틈도 없이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저는 노력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이에요. 식상하지만 그런 말이 있잖아요.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잘 알고 있다.
천재 과학자인 에디슨이 남긴 명언으로 유명하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말했다.
“얼핏 보기에는 노력만을 강조하는 듯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말이죠.”
“어떤 관점인가요?”
“1%의 영감이 있어야 99%의 노력을 통해서 천재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1%의 영감.
그걸 재능이라고 하는 거겠지.
아직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저는 감사하게도 연주가로서 1%의 영감을 가진 거 같아요. 하지만 작곡가로서는 아니었죠. 그런데……”
그녀는 입에 담았다.
“연두는 가진 거 같네요, 1%의 영감.”
절로 벌어지는 입.
지금껏 그녀에게 들은 얘기 중 가장 직접적인 칭찬이었다.
***
준태는 며칠 전에 초록님과 통화를 했다.
팬심과 이런저런 감정이 얽혀서 세상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지.
‘축하드려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너무 영광입니다!’
왜 자기를 뽑은 건지, 혹시 착각을 한 건 아닌지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간신히 참아냈다.
주원은 말했다.
조만간 편집자 두 명과 만남을 가질 거라고.
그리고 오늘, 준태는 주원으로부터 연락처를 하나 건네받았다.
“흐어어……”
그게 지금 준태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가 건네받은 건 또 한 명의 편집자 연락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리 인사를 나눌 수 있으면 나누라는 의도였다. 그 밖의 대화를 나눠도 좋고.
‘.. 그냥 하지 말까?’
문제는 김준태가 주원 이상으로 소심한 편이라는 점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데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편집자로서 해야 할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할까, 문자로 할까. 시간이 너무 늦었나?’
그런 핑계를 대기에는 대낮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는 무리다.
문자를 하기로 결심하고 준태는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안녕하세요, 김준태입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김준태가 누군지 알고.
준태는 문자를 지웠다.
몇 번을 지웠다 작성한 첫 멘트는 이러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함께 연두튜브 편집자로 일하게 된 김준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좋아, 깔끔하다.
연두부콘을 넣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면 좀 센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희망적인 관측도 잠시였다.
“무서운 사람이면 어떡하지?”
덜컥 겁이 났다.
그런 상황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온갖 호들갑을 떨며 준태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
그리고 준태는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숨이 턱 막히는 문자 하나가 떠올랐으니까.
-연두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