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41)
화. 리틀 초록
편집자로서의 여정이 끝이 났다.
시원섭섭한 기분.
그런 내 옆에 연두가 살며시 다가와서 앉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 얼굴을 봤는데 평소의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짐작 가는 이유는 있었다.
‘아까 영상을 같이 봐서겠지.’
마지막 영상.
업로드 이후에 연두의 자작곡이 들어간 납량특집 영상을 함께 봤다.
처음에는 웃었다.
영상이 재미있어서 웃었고, 선동이의 도망이 BGM으로 흘러나오는 장면에서는 박장대소를 터트릴 정도였다.
음악의 힘이었다.
연두의 자작곡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살릴 수 없었을 테니.
틱.
연두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진 건 영상이 끝날 때였다.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연두는 말했다.
‘물.. 마시고 올게요.’
연두는 터덜터덜 걸어갔다.
부엌에 가서 물을 따라 마시고 가만히 서 있다가 다시 힘없이 걸어와서 앉았다.
그게 지금이었다.
그 모습을 나는 가만히 바라봤다.
마음을 쓰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해서.
“연두야.”
결국 나는 입을 뗐다.
계속 딸이 이런 표정을 짓고 있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것도 내 문제로.
“.. 네에.”
힘없는 대답.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서운한 일 있어?”
굳이 내가 꼬집어 얘기하기보다는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편이 좋았다.
나는 알았다.
연두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아이라는 걸.
“조금.. 조금 슬퍼서요.”
“슬프다고?”
“네.”
슬픔.
그게 지금 연두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왜일까.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연두가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나랑 비슷한 감정이라고 생각했지.
“잊어버리는 거……”
그렇다.
그게 연두가 슬퍼하는 이유였다.
내가 편집자를 그만두면, 편집자 초록의 존재가 아예 사라져버릴까 봐.
연두부들이 나를 잊게 될까 봐.
마지막 영상을 보고 나니 그런 감정이 연두의 마음속에 휘몰아친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네.’
작게 번지는 웃음.
그게 두려웠던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지에 연두부들에게 잊지 말아 달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고.
“그랬구나.”
“이제 아빠 영상이 너무 재미있다는 연두부들 댓글도 못 봐여.. 빨리 다음 영상 올려달라고 하는 댓글도 못 보고.. 또……”
나한테 안긴 연두는 반쯤 울먹이면서 덧붙였다.
“히읗도 못 봐여……”
“.. 켁.”
여기서 히읗이 나올 줄이야.
왜 갑자기 연두 입에서 히읗이 나왔냐고 묻는다면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댓글에 유독 많은 히읗을 보고 연두가 물은 적이 있다.
히읗의 의미를.
그게 갖는 의미를 전부 전달하기는 어려웠기에 나는 설명해줬다.
‘그건 영상이 너무 재밌어서 빨리 다음 영상을 올려달라는 신호 같은 거야. 아빠랑 연두부들 사이의 신호.’
‘우아……’
그 말에 연두는 눈을 반짝이더니 얘기했다.
‘연두도 할래여, 히읗..!’
그때부터 연두는 히읗을 좋아하게 됐다.
아마 그런 것들이 떠올라서 연두의 서러움을 증폭시킨 모양이다.
나는 미소를 띠며 얘기했다.
“그래서 속상했구나?”
“네.”
“근데 연두야.”
나는 꽤나 자신 있는 어투로 얘기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빠는, 편집자 초록은 안 잊혀져.”
“.. 왜여?”
“생각해봐.”
연두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연두는 편집자 초록을 잊어버릴 거야?”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연두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안 잊어버릴 거에여..!”
“그치?”
편집자 초록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연두의 마음속은 물론이고 연두튜브 속에도 내가 편집한 수많은 영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소중한 시간들이.
그리고……
“연두부들도 마찬가지야.”
나를 잊지 않을 거다.
나와 연두의 추억은 연두부들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다.
한 번씩 지난 추억을 꺼내 보고 싶을 때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영상을 꺼내 볼 거다.
그리고 편집자 초록을 기억할 거다.
“그러니까 편집자 초록은 안 사라져. 아빠는 편집자에서 물러나는 거지 연두튜브를 그만두는 게 아니니까. 계속 연두부들은 아빠를 초록이라고 부를 테고.”
“사라지지.. 않아여..?”
“그럼.”
이윽고 연두는 중얼거리듯 한 마디를 입에 담았다.
“.. 다행이다.”
“히읗도 사라지지 않을 거야.”
나는 확신한다.
훌륭한 두 편집자를 뽑았으니 히읗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다.
비록 이제는 그 히읗이 내가 아니라 두 사람을 향하겠지만.
‘어쩔 수 없어.’
연두튜브 편집자라면 감당해야 하는 무게였다.
짊어져 줄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제는 연두부의 입장에서, 영상이 재밌을수록 댓글을 남길 생각이다.
히읗을 난사해 주지.
“흐흐.”
생각만 해도 즐겁다.
이제야 비로소 무수히 많은 히읗을 쏟아내던 연두부들의 마음을 알 거 같았다.
역시 그 입장이 돼 봐야 안다니까.
“이제 괜찮아, 연두야?”
“.. 네.”
옅은 미소와 함께 연두는 말했다.
“잊어버리지 않으면.. 괜찮아요..”
“하하, 그래.”
나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말한 대로 편집자 초록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을 거다.
허나 만약에 모두가 잊는다고 해도,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해 줄 한 사람이 내 옆에 있었다.
그렇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아빠 빈자리는 연두랑 아빠가 직접 뽑은 두 편집자님이 완벽하게 대신해 줄 테니까.”
“준태 편집자님이랑 아랑 편집자님이요?”
“응.”
그러니 우리는 더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된다.
연두튜브가 더 반짝일 수 있도록.
기대가 됐다. 앞으로 연두튜브는 또 어떤 새로운 빛깔로 채워지게 될지.
***
시간이 지나 다시 연두튜브에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건 영상이었다.
[연두의 납량특집!(feat. 선동이오빠의 도망)]기대감을 가지고 나는 댓글창을 클릭했다.
이번에는 어떨까.
과연 연두의 자작곡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을까.
‘그럴 수도 있어.’
저번과는 상황이 달랐다.
밤하늘, 별.
음악 이름이라 예상하는 연두부는 있었지만, 연두의 자작곡이라는 걸 눈치챈 연두부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본 댓글 중에서는.
‘선동이오빠의 도망.’
제목이 좀 더 노골적이다.
게다가 연두 시점으로 지어진 제목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연두부들이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느 쪽이든 괜찮긴 했다.
‘다음 영상은 정해져 있으니까.’
연두의 자작곡임을 드러내는 장면 일부와 자작곡 녹음.
그게 다음 영상의 내용이었다.
납량특집을 제외하면 사실상 두 편집자의 데뷔영상이 될 테고.
달칵.
댓글창이 떠올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쳤냐고.
└아니 초반에 분위기 시니컬하게 가져가서 긴장하고 봤는데 분위기 전환 뭔데.
└선동이 나올 때 진짜 육성으로 터졌다.
└알면서도 당하는 게 이런 건가…
└ㄹㅇ 원본이랑 편집본 두 개 다 봤는데 또 터지네.
-음악 진짜 뭐임??
└이번 영상도 음악이 하드캐리했는데.
└출처 이번에도 없네. 원래 초록님 음악 쓸 때 출처 밝히지 않냐. 저작권 없는 거 쓰거나.
└ㅇㅇ 진짜 뭐지.
└근데 진짜 찰지다 ㅋㅋㅋㅋㅋㅋㅋ
└ㄹㅇ ㅋㅋ
의외였다.
생각과 달리 연두의 자작곡일 거라 예상하는 연두부는 보이지 않았다.
선동이오빠의 도망.
말 그대로 선동이가 도망치는 장면이 나와서 붙인 제목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더 매치가 안 되긴 하지.’
밤하늘, 별.
감성적인 멜로디인 만큼 연두의 자작곡이라 해도 매치가 안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곡은 다르다.
연두가 작곡했다기에는 엄청나게 파워풀하고 곡의 템포도 빠르다.
매치가 안 될 만도 하다.
‘이게 더 나을 수도.’
다음 영상으로 밀리고 수많은 히읗이 쏟아지긴 할 테지만 괜찮았다.
이제 그걸 감당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다음은 공지란이었다.
-안녕하세요, 연두튜브 편집자 초록입니다.
내가 쓴 공지 밑으로 무수히 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슬프지?
└그니까. 공지 내용은 밝고 희망찬 내용뿐인데 눈물 나오려 그래 ㅠㅠ
└고생 많으셨어요 ㅠㅠ
└덕분에 행복한 연두부의 삶이었습니다..
└초록.. 죽어도 못 보내……
-진짜 유투브 덕후인 내가 지금껏 본 편집자 중에 가장 완벽한 편집자였다.
└ㅇㅈ
└어떻게 잊어요 ㅠㅠ 편집자 초록은 연두부 마음속에 영원합니다.
└포에버 초록……
└여러분, 슬퍼하지 맙시다. 초록님도 그걸 바라실 거임.
└ㅇㅇ
└응원해 주자. 리틀 초록과 알파고 편집자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틀 초록과 알파고라니.
벌써 별명이 생겼다.
두 사람이 마음에 들어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참 동안 연두부들이 남긴 댓글을 보다가, 나는 입 밖에 짤막하게 한 마디를 뱉었다.
“고마워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나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닿지 않는다 해도.
***
편집자 초록.
그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준태였다.
차기 편집자가 아닌 한 명의 연두부로서 댓글을 작성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초록님.
댓글을 남긴 뒤에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다.
‘완벽한 마무리네.’
초록님의 마지막 영상을 봤다.
리틀 초록.
연두부들이 붙여준 그 별명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퀄리티 높은 영상이었다.
비슷하지만 내공이 달랐다.
4년간의 내공이 축적된 데다가, 자신에게 부족한 기본기 또한 갖추고 있었다.
한 마디로 상위호환이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영상편집에 대한 이해도가 턱없이 부족해요. 초록님이랑 비슷하지만, 초록님보다 훨씬 뒤떨어지죠.’
어떤 의미로 주아랑이 그렇게 말한 건지 알 거 같았다.
틀린 말은 없었다.
유일한 장점은 초록님과 비슷하다는 것.
달리 말하면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 할 수 있을까.’
초록님은 사랑받는 편집자였다.
수천만에 달하는 연두부로부터 사랑받는 편집자.
중압감이 찾아왔다.
마지막 영상을 보고 나니, 그 빈자리를 메꿔야 한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실감이 갔으니까.
자연히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주아랑이었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처럼 떨고 있을까.
‘모르겠어.’
확실한 건 하나였다.
그녀가 무척 의지가 된다는 점이었다.
막무가내인 사람이지만 이렇게나 의지가 된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혼자였다면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을 거다.
‘의지만 해서는 안 돼.’
주아랑.
그녀는 뛰어난 편집자다.
허나 의지하려고만 해서는 발전할 수 없었다.
슥.
마우스를 쥐었다.
편집 프로그램을 띄운 뒤에, 그녀가 했던 피드백을 머릿속에 상기했다.
‘제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말고 흡수하세요. 안 돼도 되게 하세요.’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미친 노력.
밑 빠진 독을 채우는 방법이 뭘까.
구멍을 메우면 된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실 방법은 한 가지가 더 있다.
물을 퍼붓는 거다.
구멍으로 물이 새어 나가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물을 미친 듯이 퍼붓는 거다.
그럼 밑 빠진 독을 가득 채울 수 있다.
다소 무식한 방법일지라도, 지금 준태에게는 그게 필요했다.
‘떠올려.’
한 마디도 빠짐없이 떠올려서 흡수한다.
준태는 알았다.
그게 발목이라도 붙잡을 수 있게 만드는 최소조건이라는 걸.
마우스를 쥔 손은 새벽까지 멈추지 않았다.
탁. 타닥.
멈춰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