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46)
화. 아빠도 사랑을 해요!
“그런데 제가 여자 화장품에 대해서는 잘 모르다 보니, 여자친구랑 같이 가서 골랐습니다.”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니까.
“방금.. 방금 뭐라고 했어?”
준수와 윤우도 적잖게 놀란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마치 내가 딸이 생겼다는 걸 밝혔을 때만큼이나 놀라운 소식이었으니까.
윤우의 물음에 성현이는 되물었다.
“어?”
“방금 뭐라고 했냐고.”
“방금이면.. 여자친구랑 같이 가서 골랐다는 거?”
태연하게 되묻더니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덧붙였다.
“아, 내가 말 안 했나? 여자친구 생겼다는 거.”
다른 건 모르겠고 그 태연함에 약이 올랐다.
마치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내게는 아무렇지 않다는 걸 의미하는 듯한 말투.
몰랐을 리가 없다.
‘이 녀석이 준수도 아니고.’
준수는 그랬다.
학창 시절 때부터 여자친구가 끊이질 않았다.
잘 맞으면 오래 사귀다가도, 사귀고 헤어지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타입이었으니까.
나랑은 정반대였지.
헤어지는 게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않는 나와는 달랐다.
성현이는 어떻냐고?
‘고마운 녀석이지.’
내가 묻히게 해준 장본인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처지인 나와 성현이는 서로 다른 이미지가 박혀있었다.
여자친구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녀석은 말하곤 했다.
‘아니, 또 나야? 그렇게 따지면 얘는 뭔데!’
여기서 말하는 ‘얘’가 나였다.
‘얘도 나랑 똑같잖아!’
그 말에 준수와 윤우는 늘 녹음기라도 틀어놓은 듯이 답했다.
‘명백한 차이가 있지.’
‘이주원은 안 하는 거고, 너는 못 하는 거고.’
사실 동의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는 나도 못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표적이 성현이인데, 굳이 내가 나서서 변호해 줄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서로 물고 뜯는 사이였으니까.
그런 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나는 씩 웃어줄 뿐이었다.
‘아오..’
그럴 때마다 성현이의 똥 씹은 표정을 보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이제는 그것도 못 하게 된 건가.
“얼마나 만났는데?”
“얼마 안 됐어. 이삼 주 된 거 같은데.”
“투투 챙기냐?”
“장난하냐? 그런 건 애기들이나 챙기는 거지. 내 나이가 몇인데.”
여자친구가 생긴 건 축하해줄 일이다.
그러나 연애에 대한 내공이 깊은 것처럼 얘기하는 이 스탠스는 참을 수 없었다.
우리가 누군가.
학창 시절 때부터 녀석을 봐 온 친구들 아닌가.
‘다 알고 있는데.’
녀석의 일대기는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건 패가 훤히 보이는 도박꾼들 앞에서 밑장빼기를 하는 격이라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옆을 보니 윤우와 준수도 약이 바짝 올라있었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군.
정확히는 이 타이밍에 내가 나서는 건 자살행위였다.
‘상황이 바뀌었어.’
녀석은 여자친구가 생겼고 나는 여자친구가 없다.
이제는 그 주제에 있어서 내가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성현이와 준수가 차례로 입을 뗐다.
“와.. 이런 날도 오는구나.”
“그니까.”
그런 둘의 말에 성현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언제까지고 솔로일 줄 알았냐?”
“그랬지.”
“뭐?”
준수는 말했다.
“우리가 널 볼 때는 어제도 솔로였고, 오늘도 솔로였으니까. 그럼 앞으로도 솔로일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잖아.”
“……”
어설픈 귀납적 추론인데 설득력이 있다.
“.. 말 그렇게 할래?”
“하하, 미안. 아무튼 축하한다.”
윤우도 축하의 말을 건넸다.
“오래 가라.”
“아니지, 아니지.”
성현이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정했다.
“평생 가라고 해야지. 평생 갈 건데. 흐흐.”
“……”
덕담을 건네야 하는 타이밍이다.
그런데 녀석의 방정맞은 모습을 보니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냐, 이러지 말자.
남의 행복은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게 대인배의 자세였다.
그렇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려는 참이었다.
“주원이는……”
성현이 목소리였다.
“뭐, 힘내라.”
녀석은 씩 웃고 있었다.
전과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
“뭐, 힘내라.”
큰일이다.
그 한 마디는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대놓고 놀리는 것보다 훨씬 더 내 멘탈을 뒤흔드는 한 마디였으니까.
“……”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먹잇감을 포착한 하이에나와 같은 눈빛들이.
자연히 나는 직감했다.
표적이 성현이에서 나로 옮겨갔음을.
“오오! 힘내라 뭐냐고!”
“뿌뿌뿌뿌!”
이런 각은 기가 막히게 보는 녀석들이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 수찬쌤의 개입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야, 축하한다! 어떻게 만났냐!”
“직장 동료예요.”
성현이는 얘기해줬다.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튼 이야기를.
“그러니까 썸이 좀 길었다고 볼 수 있죠. 서로 호감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그게 확신까지는 아닌 상태였거든요.”
“호오..”
흥미진진하다.
어느샌가 나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만나게 된 거냐?”
그 물음에 녀석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이건 연두가 듣기에는 조금 으른연애라 곤란한데……”
으른연애.
그게 뭐든 간에 말하다 끊는 건 참을 수 없다.
“왜. 연두가 들으면 안 되는 정도야?”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그 정도였으면 애초에 얘기도 안 꺼냈지.”
결국 말할 생각이었구먼, 이 녀석.
윤우가 물었다.
“근데 여자친구가 말해도 된대?”
“당연하지. 여자친구도 지인들한테 많이 얘기했대.”
“아, 진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현이는 말했다.
“우리 서사가 좀 알아주거든.”
녀석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때는 어느 평일 날 저녁이었어. 둘 다 야근을 해서인지 그녀와 나는 퇴근 시간이 겹쳤지. 자연스럽게 함께 퇴근하게 됐고. 밖으로 나왔는데 밤공기가 선선했어.”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진다는 건 그만큼 흡입력이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연두도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서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수찬쌤과 정윤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말없이 걸었어.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지.”
“뭐가 있었는데?”
“글쎄. 미묘한 설렘이라고 해야 할까?”
윤우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성현이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만약 그랬다면 누구보다 신랄하게 디스했을 거다.
으스대듯 얘기하는 말투부터 약이 바짝 오르는 표정까지.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서로에 대해서는 뭘 해도 상관없지만 제삼자를 농담거리로 삼지는 않는다는 룰이었다.
“말없이 걷던 와중에 그녀가 말했어. ‘조금 산책하다 들어갈래?’라고. 떨리는 목소리에서 느껴졌지. 그녀가 용기를 냈다는 걸.”
“그래서?”
“좋다고 말했지.”
덥석 물었다는 이야기였다.
“마침 근처에는 산책로가 있었어. 산책로가 아닌 사막을 걸었더라도 우리한테는 산책로였겠지만. 우리는 서로한테 오아시스 같은 존재거든.”
어젯밤 문학책을 읽고 잔 걸까.
사막을 걸었더라도 산책로였을 거 같다는 둥, 서로한테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는 둥.
표현이 아주 세계적인 거장 뺨치는 수준이었다.
“.. 사족 적당히 붙여라.”
결국 성현이가 한마디했다.
전혀 개의치 않고 성현이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산책로는 마치 통째로 빌린 것처럼 우리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어.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걷다 보니 조금 숨이 찼어. 몸도 추워지기 시작했고. 고개를 살짝 돌려서 보니 그녀도 추워 보였어. 마침 나는 쉽게 벗을 수 있는 코트를 입고 있었지.”
“그래서 벗어줬어?”
“고민했어.”
“뭐?”
“나도 추웠거든. 겉옷을 벗어주면 더 추워지겠지. 그 뒤에 오들오들 떠는 내 모습이 바보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심리 묘사까지 하는 걸 보니 기억이 정말 생생하게 남은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겉옷을 벗어서 걸쳐줬어.”
“왜?”
“추위에 떠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아 보인다 해도 그게 내 ‘진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잘했다는 의미의 끄덕임이 아닐까.
“생각보다 더 추웠어. 추운 게 감춰지지 않았지. 그런 나를 보면서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쿡쿡 웃었어. 조금 발끈한 나는 ‘내가 웃겨?’라고 물었어.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어.”
“어떤 대답이었는데?”
“아니, 귀여워. 그녀는 그렇게 말했어.”
굵직한 목소리로 여자 말투를 재현하는 게 열이 받았지만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빨리 결말을 듣고 싶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어. 인터넷에서 봤던 정보가 떠올랐거든. 그래서 그녀한테 말했어. 여자가 남자한테 귀엽다고 하는 건 칭찬이 아니라 욕 아니냐고. 그러니까 그녀가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뭐라 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래. 귀엽다는 건 여자가 남자한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라고. 다른 건 금방 질리거나 사라져도 귀여운 건 헤어나올 수 없다고.”
어떤 의미인지 알 거 같았다.
성현이가 귀엽다는 건 동의하지 않지만, 그녀가 어떤 의미로 귀엽다고 한지는 감이 오니까.
이제 클라이맥스였다.
“우리는 잠깐 쉴 겸 벤치에 앉았어. 살짝 떨어진 채로. 또 달콤한 정적이 흘렀어.”
“그냥 할 말이 없었다고 해.”
윤우의 트집에도 녀석은 말했다.
“그때 그녀가 말했어. ‘누울래?’라고. 당황한 나는 ‘어디에?’라고 되물었지.”
잠깐만.
이런 전개는 연두와 함께 듣고 있는 내 입장에서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녀가 가리킨 건 무릎이었어. 나는 홀린 듯이 그녀의 다리를 베고 옆으로 누웠지. 내색은 안 했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 그리고.. 귓가에 들려왔어.”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 한 마디였다.
“.. 우리 사귈래, 오빠?”
***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원성이 쏟아졌다.
성현이를 향해.
“와.. 뭐냐, 넌?”
“으스대길래 뭐라도 했나 했더니 고백도 여성분이 했네. 니가 옷 벗어준 거 말고 한 게 뭐냐?”
“심지어 옷도 고민하다 벗어줌.”
“에라이……”
“진짜 잘해라, 넌.”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는지 성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른연애 같은 소리 하네. 애처럼 떠먹여 주는 거 받아먹기만 했구먼.”
“한 줄 요약. 산책하자고 해서 산책하다가 누우라고 해서 눕고 고백받음. 어휴, 이놈아!”
성현이는 반박했다.
“아니, 너네가 모르는 스토리도 많다고! 설마 이게 다겠냐?”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야, 이놈아!”
“야, 나와. 맞짱 뜨게.”
그런 장면이 재미있는지 정윤쌤이 웃음을 터트린다.
준수가 입을 뗐다.
“근데 보기 좋긴 하네.”
“응?”
“주인공이 유성현이라는 걸 제외하면 보기 좋긴 해. 뭔가 학창 시절 풋풋한 연애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나이에 그렇게 연애하기 쉽지 않은데.”
동감이었다.
확실히 성현이 이야기에서는 풋풋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성현이는 말했다.
“그래.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고. 내 사랑을 매도하면 누구든 가만 안 둬.”
줄곧 가만히 있던 내가 입을 뗐다.
“근데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뭐.”
“전에 이주 사귀고 그랬던 건 사랑 아니었냐?”
“그건 사랑이 아니야. 사랑보다는 소꿉놀이에 가깝지.”
“전에는 짧지만 사랑이었다고 모쏠 아니라면서 이를 악물더니……”
내 말에 어깨를 들썩이더니 성현이는 쏘아붙였다.
“야! 조용히 해! 니가 사랑을 알아?”
서러웠다.
이제는 이런 말을 들어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물론 연두를 사랑한다.
그러나 지금 이 대화에서 그건 논점 흐리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때였다.
“사랑……”
자그맣게 연두가 입을 뗐다.
“.. 성현이삼촌.”
“으, 응?”
조금 불안한 표정이다.
나한테 쏘아붙여서 연두한테 한소리 들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나도 궁금했다.
연두는 어떤 말을 하려나.
“사랑하면.. 행복해여?”
연두의 물음에 성현이는 답했다.
“그럼! 연두는 아직 모르고 한동안 알아서도 안 되겠지만.. 사랑을 하면 세상이 환하게 보이는 기분이 들어. 너무 행복해서.”
“……”
얼마간 이어지는 침묵.
그러다 연두는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맞닿았다.
“아빠..”
“응, 연두야.”
눈에 꾹 힘을 주고서 연두는 입 밖에 뱉었다.
생각지도 못한 한 마디를.
“아빠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