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48)
화. 내 사랑 내 곁에
자연스레 준태의 입이 벌어졌다.
포르셰 마크에 놀란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일찍 왔네?”
멋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주아랑의 모습이.
자켓을 입었는데 첫만남 때 봤던 이미지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왜 그렇게 불편하게 입고 왔어?”
“.. 어?”
멋쩍은 얼굴로 준태가 대꾸했다.
“첫 출근이라……”
“앞으로는 편하게 입고 와. 우리 둘만 있는데 차려입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 뒤에 주아랑은 발을 옮겼다.
“근데.. 차 저기다 세워도 돼?”
“상관없어.”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주차장은 아닌 거 같았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향한 곳은 7층이었다.
삑.
카드를 대자 열리는 문.
주아랑이 내부로 들어가고 얼떨결에 준태가 그 뒤를 따랐다.
아직 준태는 몰랐다.
이 곳이 어떤 장소인지.
슥.
준태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봤다.
내부는 넓었다.
오피스 느낌의 인테리어인데, 얼핏 보기에 열 명 이상은 수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 와중에 주아랑은 창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자리는 여기야.”
그제야 조금은 감이 왔다.
애초에 쪽지를 건넬 때도 작업실 이야기를 했으니까.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작업실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정 금액씩 사용료를 내고 함께 사무실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여기도 그런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소위 말하는 ‘공유 오피스’ 같은 장소겠지.
‘생각이 있긴 했구나.’
아무 생각없이 초록님의 제안을 거절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이미 작업실을 구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같은 장소에서 일해야 시너지가 나는 동료 관계에서 의견이 엇갈리면 곤란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막무가내인 건 변함없지만.
‘.. 감수해야지.’
원래 아쉬운 쪽이 숙이고 들어가는 법이다.
동료 관계라고 해도 둘 사이에서 더 아쉬운 쪽은 명백히 준태였다.
이유는 하나다.
편집에 있어서 배울 게 많다는 것.
‘좋아.’
그렇다면 여기도 괜찮았다.
집에서 가까운 데다가 시설도 무척 좋아보였으니까.
이용료만 합리적이라면 말이다.
“고마워. 내 자리까지 예약해줬구나.”
“예약?”
“응.”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었지만 주아랑은 얘기했다.
“됐고 앉아봐.”
“어디?”
“어디긴. 네 자리지.”
앉으라니 앉았다.
“앞에 있는 노트북 보이지?”
준태와 주원이 비슷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사치에 관심은 없으나 특정 분야의 장비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엄청나다는 것.
주원의 경우에는 미술과 촬영장비였다.
연두튜브 초창기에 로이카 카메라 협찬을 받았을 때 엄청나게 기뻐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준태도 마찬가지였다.
‘노트북이 사고 싶어.’
오랜 열망이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준태에게 노트북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웬만한 건 모델명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지만, 막상 지금 쓰고 있는 건 4년 전에 산 구형 노트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싸서 살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응, 보여.”
앞에 놓여있는 노트북 모델명도 알고 있었다.
‘아이맵 27인치.’
그것도 최신형이었다.
S1 칩을 사용해서 성능은 웬만한 데스크톱을 압도하는, 가격은 무려 400만원에 달하는 현존 최고성능의 노트북.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롱해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그 노트북으로 일하면 돼.”
“……?”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멍하니 있다가 준태는 바보같이 입을 뗐다.
“여기서는 노트북도 빌려줘?”
들은 적이 있긴 했다.
그런 복지를 제공하는 대기업이 있다는 건.
하지만 여기는 대기업이 아닐뿐더러, 그저 작업실일 뿐이었다.
“왜. 싫어?”
“아니……”
“네 노트북은 너무 성능이 낮아. 편집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갑자기 다운돼서 데이터가 날아가면 어쩔 거야?”
4년을 함께한 노트북이다.
시간이 흐른 만큼 애정도 생겼고, 많은 추억이 담겨있기도 했다.
만약 누군가 신형 노트북을 줄 테니 바꾸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답은 정해져 있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오래된 노트북을 서랍 깊숙한 곳에 처박을 자신이 있었다.
진심으로.
“알겠어. 그런데……”
하지만 말해야겠다.
“여기 이용료가 얼마야?”
아무리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해도 준태가 바보는 아니었다.
대기업도 아니고 이런 복지를 제공하는 작업실 이용료가 저렴할 리가 없었다.
준태는 결심했다.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어.’
주아랑은 부자다.
본인 스스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포르셰를 타고 온 거로 미루어 볼 때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준태는 달랐다.
월세 내기도 빠듯한 판국이었다.
개처럼 일할 자신은 있지만 이런 것까지 휘둘릴 수는 없었다.
“신형 노트북을 빌려줄 정도면 저렴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합리적인 지적이었다.
여기서 강하게 나가야 끌려다니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용료는 없어.”
“.. 어?”
한차례 눈을 끔뻑인 후에 준태가 말했다.
“노트북 사용료 말고 여기 사용료 말한 건데.”
“그러니까 없다고.”
다음에 들려온 한 마디는 준태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 건물은 내 거야.”
***
한동안 정신이 안 돌아왔다.
“안 말해도 알겠지만 내가 부자라는 건 초록님과 연두씨한테는 비밀이야.”
“.. 네.”
“왜 갑자기 존댓말?”
“아, 아니.. 응.”
너무 자연스럽긴 했다.
차를 건물 앞에 그냥 세워두고 들어간 것부터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모습까지.
그러고 보니 경비아저씨도 깍듯이 인사했지.
의외로 주아랑도 마주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긴 했지만.
“그럼 노트북은……”
“산 거야. 너 노트북은 아무래도 무리일 거 같아서.”
살짝 입이 벌어지고 준태는 말했다.
“개처럼 일하겠습니다.”
모든 상념은 사라졌다.
그런 준태를 보며 실소를 뱉더니 주아랑은 말했다.
“주는 건 아니야.”
“아무렴요.”
“언제든 다시 가져갈 수 있으니까 이상한 거 볼 생각은 하지 마.”
“.. 예?”
피식 웃는 주아랑.
의외로 한 번씩 장난기가 튀어나오는 편이었다.
“그럼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또 없는 거야?”
“뭐, 그렇지.”
아직도 현실감이 없었다.
신분상승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이제 일어나 봐.”
준태가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벽에 붙어있는 종이를 가리키며 주아랑이 말했다.
“여기 규칙이야. 잘 보고 숙지하도록 해.”
총 열 개의 규칙.
조금 긴장한 채로 준태는 규칙을 하나씩 읽어내려갔다.
[규칙]1. 지각하지 않는다.
2.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피운다면 오늘부로 끊는다.
3. …………
다소 강압적인 규칙이었다.
특히나 담배를 끊으라는 건 흡연자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난도의 규칙이었다.
다행히 준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안 배우길 잘 했네.‘
군대에서 배웠으면 애를 먹을 뻔 했다.
살 돈도 없긴 하지만.
안구에 차오르는 습기를 느끼며 준태는 다음 규칙들을 읽어내려갔다.
대체로 납득할 만 한 규칙이었다.
못 지키겠다는 생각이 드는 규칙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공평해.’
비록 규칙을 정한 건 주아랑이지만 그 규칙은 둘 모두에게 적용된다.
신형 노트북과 작업실을 제공하면서 이 정도의 규칙을 지키라는 건 준태에게 있어서 천사였다.
9. 편집에 있어서 김준태는 전적으로 주아랑의 말을 따른다.
이것도 불만은 없었다.
만약 의견이 갈린다면 주아랑의 의견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제 마지막이었다.
준태의 시선이 열 번째 규칙을 향했다.
10. 절대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지막 규칙을 보니 저번에 주아랑이 한 말이 떠올랐다.
‘너랑 나는 친구가 아니야. 비즈니스 파트너지.’
친구가 될 생각은 없다.
그게 첫만남 때 주아랑이 못 박아 했던 얘기였다.
준태는 입을 열었다.
“마지막 규칙은 저번에 한 얘기랑 같은 맥락이야?”
“아니.”
주아랑은 말했다.
“그건 그거대로, 이 규칙은 이성적으로 좋아하지 말라는 거야.”
이렇게 된 이상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아랑은 입을 뗐다.
“기분 나빠할 거 같아서 서로라고 하긴 했지만 내가 널 좋아할 가능성은 없어.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성적으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 없으니까. 그런데 나를 좋아했던 사람은 많았어.”
의외로 주아랑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에 익숙했다.
따라서 자주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는 건.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기에 여러 태도를 취해봤다.
결론은 하나였다.
‘소용없어.’
좋게 대하면 상냥하다는 이유로, 차갑게 대하면 그게 매력있다며 호감을 표했다.
싫증이 났다.
따라서 10번 규칙은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이렇게 못을 박아두면, 좋아하게 된다고 해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테니.
왜인지 준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조금 놀랐어.”
“뭐?”
“내가 기분 나빠할 거 같아서 서로라고 했다는 거. 의외로 그런 거 생각하는구나.”
“그건……”
“걱정하지 마.”
준태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약속할게. 절대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 다행이네.”
그렇게 둘 사이에 열 개의 규칙이 합의됐다.
***
다시 찾아온 일상.
그래도 조금은 할 일이 생겼다.
편집자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원본을 보내줬지.’
두 편집자에게 다음 영상의 원본을 보내줬다.
연두가 작곡하고 연주하는 모습이 담겨있는 영상이었다.
다음 영상으로 모두가 알게 되겠지. 앞선 두 영상에 삽입된 두 곡이 전부 연두가 작곡한 거라는 걸.
나는 주아랑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주원 : 그래서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편집해주시면 될 거 같아요.
주아랑 : 알겠습니다.
편집의 방향성 정도는 얘기해줄 필요가 있었다.
구조는 간단했다.
내가 부탁하는 방향성대로 편집을 진행하고, 그 편집본을 내게 보내면 최종 컨펌을 한다.
그 과정에서 수정을 요청할 수도 있고.
이주원 :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조금 미안하긴 했다.
첫 영상부터 의도치 않게 꽤나 난도가 있는 편집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만큼 기대도 됐다.
과연 두 사람이 정식으로 만들어내는 첫 영상은 어떨지.
‘첫술부터 배부를 생각은 안 해.’
그래도 나는 둘을 믿었다.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 명확한 장점들이 있으니까.
조금 헤매더라도 결국 둘은 정답을 찾아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기다릴 시간이었다.
틱.
노트북을 켜니 메일이 와 있었다.
드림 큐.
게임을 출시한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요즘도 시나리오 작가인 ‘JUNE’과 간간이 메일을 주고받고 있었다.
유일한 넷상 친구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오히려 그래서 더 편한 것도 있었다.
‘공감대도 맞고.’
부모라는 점에서 오는 공감대도 많았다.
마지막에 온 메일을 보니 요즘 이렇다 할 고민거리는 없냐는 물음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모르겠지.
베일에 싸인 작가 ‘JUNE’의 이런 모습을.
-저는 요즘 휴가중이라 한가합니다. 연두가 학교에 간 동안에는 집에만 있는데 그 시간이 따분한 게 문제죠. 제가 이렇게 혼자 있을 때 따분함을 느끼는 사람인지 요즘 들어 처음 알았거든요.
대충 그런 내용을 적어보냈다.
보다시피 준과는 부담없이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곤 했다.
메일을 보낸 뒤에 소파에 누웠다.
음악도 틀어뒀다.
-내 사랑 내 곁에
요즘은 옛날노래가 끌렸다.
반복재생을 해 둔 뒤에 그 감성에 젖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음악 소리 틈에 섞여드는 진동음에 눈을 떴다.
슥.
손을 뻗어 핸드폰을 가져왔다.
화면에 떠오르는 이름.
-신세연
세연씨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