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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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화. ..주원씨
월요일 오전.
집에만 있는 건 세연도 마찬가지였다.
주원과 마찬가지로 드림 큐 출시 이후 그녀도 휴식기를 갖고 있었으니까.
메일이 날아온 건 오전쯤이었다.
-저는 요즘 휴가중이라 한가합니다. 연두가 학교에 간 동안에는 집에만 있는데 그 시간이 따분한 게 문제죠. 제가 이렇게 혼자 있을 때 따분함을 느끼는 사람인지 요즘 들어 처음 알았거든요.
그런 내용의 메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끊길 거라고 생각했던 메일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세연은 알게 됐다.
휴가 기간 동안에 주원이 어떻게 지내는지.
‘.. 따분하구나.’
그러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가볍게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는 큰 부담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
데이트 신청같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저번에도 그랬다.
학부모 친목 도모라는 명목으로 갑작스레 불러냈을 때 주원씨는 불편한 기색 없이 나와줬다.
말 그대로 명목이긴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던 세연은 머리를 헝클었다.
‘.. 이게 맞는 걸까.’
일종의 죄책감이 들었다.
만약 지금 연락한다면, 메일로 심심하다는 걸 확인하고 연락을 하는 거니 말이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가 세연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이게 탈이야.’
늘 그랬다. 생각이 많아서 탈이었다.
그건 작가로서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막상 생각만 잔뜩 하고 행동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었다.
단점을 없앨 방법은 하나였다.
일단 하고 보는 것.
틱.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목소리.
“여보세요.”
웬 노랫소리가 겹쳐서 당황한 세연은 입을 뗐다.
“어, 저기……”
“세연씨?”
“네. 근데 이건 무슨 소리예요?”
“아.”
노래가 멎었다.
주원은 실소와 함께 얘기했다.
“미안해요. 노래를 듣고 있었거든요.”
“제가 음악감상을 방해한 건 아니죠?”
“아니에요. 그냥 쉬고 있었거든요. 음악은 틀어두기만 한 거고.”
“다행이네요.”
왜일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입을 뻥긋하다가 세연은 눈을 꾹 감고 얘기했다.
“조, 조금 심심해서요!”
“네?”
망했다.
이게 무슨 급전개인가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수습하는 수밖에.
횡설수설하며 세연은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뱉었다.
“저 휴가라고 했던 거 기억하시죠?”
“네, 기억하죠.”
“집에만 있으니까 따분하더라구요. 청소도 했고, 빨래도 널었고…… 그러고 나니까 할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거짓말은 하나도 없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집에만 있는 건 세연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고 나니까 주원씨 생각이 나더라구요.”
또 망했다.
주원씨 생각이 났다는 건 상대 입장에서는 그렇고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다시 세연은 수습을 시작했다.
“주, 주원씨도 심심할까 해서요! 휴가라고 했으니까……”
스스로도 어설프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나 이주원이 누군가.
비록 직접적인 표현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무려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성적인 호감을 조금도 캐치하지 못한 눈치의 소유자였다.
학창시절 때부터 그랬다.
아직도 최서아를 향한 마음이 짝사랑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 세연씨.”
어찌보면 비극이었다.
그런 사람을 마음에 둔다는 건.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알아차릴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 말이다.
하지만……
“.. 네?”
세연의 입장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원은 나지막이 입을 뗐다.
“저 지금 소름돋았어요……”
눈앞이 하얘졌다.
소름이 돋을 정도인 걸까.
그런 세연의 생각은 이어지는 주원의 말에 산산이 부서졌다.
좋게든, 나쁘게든.
“저도 정확히 똑같은 상황이거든요. 할 일 다 끝내서 할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 와, 진짜 얼마나 심심한지…… 창문 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니까요?”
“……”
역시 주원은 주원이었다.
***
즉석으로 약속이 잡혔다.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하교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로 했다.
“다행이다.”
주원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연두 하교 때까지 누워만 있겠구나 했거든요.”
세연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졌다.
생각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잔뜩 신이 난 목소리를 들으니 웃음이 나왔다.
왜일까.
왜 항상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 이런 적이 있나?’
그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뭘 하든간에 좋게 보인다고.
전문용어로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세연은 생각해봤다.
자신이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 있네.’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건 시은이의 얼굴이었다.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언제나 시은이가 칭찬받을 일만 골라서 한 건 아니었다.
반찬투정을 하기도 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없었다.
시은이가 미웠던 적은.
“뭘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나려나.. 세연씨는 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또 한 명이 생겼다.
뭘 해도 밉지 않은 사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 잘 해 주고 싶은 사람.
이제는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아니, 원래 알고 있었어.’
단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호감에 불과하다며 자신을 속였을 뿐이다.
주원이 눈치가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세연은 한 번도 그런 주원을 원망한 적 없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 누구보다 두터운 벽을 세우고 있는 건 다름아닌 자신이었으니까.
‘.. 안 돼.’
이유는 수없이 많았다.
누군가를 좋아해서는 안 되는 이유.
그 모든 이유들이 발목을 잡아 세연으로 하여금 사랑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눈치가 없는 게 아니야.’
적어도 세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한 적 없는 건 자신이었다.
꾹 눌러둔 진심이 넘쳐서 새어나오려 할 때마다 억지로 틀어막았다.
이러면 안 된다고.
‘어울리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비슷해보이는 입장이지만 자신과 주원은 전혀 달랐으니까.
그런데 생각이 달라졌다.
부딪혀보고 싶어졌다.
결과가 정해져있다고 해도 이제는 진심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주원이 말했다.
“아! 전시회 어때요?”
그렇다고 당장 좋아한다고 말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전에는 입 밖에 내지 못하고 꾹 삼켰던 이야기들을 이제는 하려는 거다.
용기를 내서, 진심을 담아.
“가 보고 싶은 전시회가 있었거든요. 아마 지금 전시기간일 텐데……”
전시회.
그 말을 들은 세연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
“좋죠, 전시회.”
“오, 정말요? 잠깐만요. 예매해야 되는지 알아볼게요.”
“네.”
세연은 말했다.
“전시회 구경하고 나서 시간 남으면 카페에 가는 것도 괜찮겠네요.”
“하하, 좋아요.”
***
전시회 구경이 시작됐다.
미술 전시회인 만큼 그림은 주원의 전문분야였다.
“우와……”
생각과는 달리 세연은 전시회 그 자체에 빠져들었다.
의외로 세연은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른 나이부터 딸을 키우며, 많은 것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이 그림은 어떤 그림이에요?”
“우주를 표현한 그림인데……”
주원은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였다.
거의 전시 설명을 해 주는 가이드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전시회가 이런 느낌인 줄 몰랐어요. 전에 가 보긴 했지만……”
“그때랑은 또 느낌이 다르죠?”
“네.”
어두운 방 안에 펼쳐진 우주.
엄청난 규모의 작품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정말 우주 속에 들어온 기분이라 해야 할까.
“여기서 사진 찍어도 되나요?”
“물론이죠. 여기는 사진촬영 허용되는 전시회거든요. 사람도 없고요.”
좋은 점이 하나 더 있었다.
평일 오전이다 보니 전시회를 통째로 빌리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이 없었다.
주원의 전문분야가 하나 더 튀어나왔다.
“저기 서 보세요. 찍어줄게요.”
“그, 그럼……”
다소 어색하게 포즈를 취하는 세연.
빙긋 웃으며 배경이 들어오게 구도를 잡은 주원은 촬영버튼을 눌렀다.
찰칵!
“푸흣!”
“.. 왜 웃어요?”
카메라를 내밀며 얘기했다.
“뭔가 우주 속을 허우적대는 거 같지 않아요?”
정말이었다.
어색한 손이 꼭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공간을 허우적대는 거 같았다.
얼굴이 빨개진 세연은 말했다.
“저, 저도 찍어줄게요!”
“사양하겠습니다.”
“.. 그렇게 단호하게 사양한다고요?”
“알고 있으니까요. 세연씨 사진 실력은.”
그 말에 세연이 얘기했다.
“저도 좀 늘었거든요, 이제……”
결국 주원이 카메라를 건넸다.
심혈을 기울여 구도를 잡은 세연은 카운트다운 후에 촬영버튼을 눌렀다.
찰칵!
경쾌한 촬영음.
이후 카메라를 건네받은 주원은 실소를 터트렸다.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뒤이어 사진을 본 세연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엉망이었으니까.
“.. 미안해요.”
“하하, 아니에요. 그럼 이동할까요?”
우주공간을 벗어나 다음 공간으로 향했다.
얼핏 보기만 해도 따뜻하고 정열적인 색감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침대에서
작품명이었다.
침대 위에서 남녀가 키스하고 있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었다.
세연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켰다.
당황한 채로 살짝 고개를 돌려 주원을 본 세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야,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슥.
그림을 또렷이 바라보고 있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다소 관능적인 그림이긴 했으나, 그런 그림을 감상하는 건 주원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이 많았으니까.
한참을 유심히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주원은 고개를 돌려 세연을 바라봤다.
“……!”
놀란 세연을 향해 주원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붙였다.
“아무래도 여기는 사랑이 주제인 거 같네요. 아까는 우주였는데.”
“사랑이요?”
“네.”
확실히 그랬다.
이어지는 그림도 하나같이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었다.
주원은 웃으며 얘기했다.
“사랑 하니까 떠오르는 게 있는데……”
전시회에서 대화주제는 보통 그림의 주제로 흘러가는 법이다.
아까 우주에 관해 얘기했던 것처럼.
지금은 사랑이었다.
“얼마 전에 친구들을 만났거든요. 그래서 게임을 하나 했어요. 게임보다는 콘텐츠에 가깝긴 한데……”
“콘텐츠라면.. 어떤 거요?”
“사랑이란 뭘까. 그게 주제였어요. ‘사랑이란 ~다.’ 이 형식으로 말하는 거죠.”
주원은 얘기해줬다.
그 주제에 관해 친구들이 내놓은 답변들을.
“윤우가 첫 순서였는데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만나를 불렀다가 엄청 욕을 먹었어요.”
“.. 흣.”
세연은 쿡쿡 웃으며 얘기했다.
“저는 재미있는데요?”
“저희가 워낙 엄격하거든요. 어지간해서는 인정을 안 해 줘서.”
“아하.”
“다음은 성현이였는데.. 오! 생각해보니 아까 주제네요. 성현이는 사랑이 우주라고 말했거든요.”
주원은 말해줬다.
사랑을 우주라고 말한 이유부터, 최근에 성현이가 사랑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어김없이 욕을 먹었다는 것까지.
이번에도 세연은 웃음을 터트리며 얘기했다.
“이번에도 재밌었는데.. 그 정도면 그냥 다 욕먹는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니에요. 다음 차례인 준수는 웃겼거든요.”
“뭐라고 했는데요?”
주원은 목소리를 굵직하게 내리깔고 얘기했다.
“사랑이란.. 안개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니까.”
“헐……”
“안 웃긴가요?”
역시 남자끼리 통하는 개그코드였던 건가.
세연은 말했다.
“웃기진 않고 너무해요.. 비관적이잖아요.”
“그러게요. 아마 여자친구 생기면 바뀔 걸요. 그런 녀석이라.”
“.. 흣. 뭐예요, 그게.”
웃어보인 뒤에 세연은 얘기했다.
“.. 주원씨는요?”
“네?”
“주원씨는 뭐라고 했는데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저도 욕을 먹었거든요.”
“그래도 궁금해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주원은 얘기했다.
“사랑은 수수께끼라고 했어요. 알쏭달쏭하니까.”
“흐흣.. 그러니까 친구들이 뭐래요?”
“알쏭달쏭하게 맞고 싶냐던데요.”
한참을 웃다가 세연은 중얼거리듯 입 밖에 뱉었다.
“수수께끼…… 정말 그러네요.”
“네?”
“아니에요.”
정말이었다.
사랑은 수수께끼같았다.
허나 끝이 아니었다.
“세연씨는요? 세연씨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같은 물음이 돌아왔으니까.
그리고 마치 충동처럼 입 밖에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 주원씨.”
“네?”
기묘한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