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63)
863화. 주아랑 제공
지우네 집.
이희영은 줄곧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름 아닌 지우 때문이었다.
“……”
힘이 없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연필을 움직이며 중얼거린다.
“콧구멍 빼기……”
여전히 유준이한테 전수받은 콧구멍 풀이법을 고수하고 있는 지우였다.
이제 좀 바꿀 법도 한데 말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이희영도 타협한 상태였다.
그만큼 성과가 좋았으니까.
슥.
이번에도 답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함을 느끼는 건 세상 무기력한 딸의 상태 때문이었다.
답이 맞아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다.
‘어제도 그랬지.’
그저께도 그랬다.
문제는 마치 계단을 오르듯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항상 같은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이대로면 내일은 더 심각해질 터였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이희영은 입을 열었다.
“윤지우.”
“.. 응.”
“왜 그러는 거니?”
다소 직설적인 물음에 당황한 지우가 답했다.
“트, 틀렸어..?”
답이 틀려서 엄마가 화가 난 거라 생각했다.
이상했다.
분명히 콧구멍 풀이법대로 풀었는데.
“다, 다시 풀어볼게.. 콧구멍 빼기……”
“아니야.”
딸의 말을 가로막은 이희영은 말했다.
“힘이 없어 보여서 그래.”
“으, 응?”
“어제도 그렇고 오늘은 더 힘이 없어 보이는구나.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니?”
살짝 미간을 좁히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니면 공부가 하기 싫어서 그러니?”
스스로는 자각 못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추궁하는 듯한 말투가 탑재되어 있었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딸을 아끼는 만큼 친절하게 말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거다.
안타깝게도 주변에는 그런 점을 피드백해줄 사람이 없었다.
악순환이었다.
엄마의 말에서 그런 느낌을 받고서 지우가 솔직하게 말할 리 없으니까.
“아, 아니야..”
이미 지우는 속마음을 감추는 데 익숙해진 상태였다.
이희영은 말했다.
“그럼?”
근래 며칠을 제외한다면 지우의 상태는 무척 좋았다.
놀라울 정도로.
묻지도 않았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재밌는 일을 말해주기도 하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공부를 하면서도 웃음꽃이 떠올라있었다.
왜 그런 지우의 상태가 갑자기 변한 걸까.
순간 이희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동아리.’
그녀가 생각하기에 지우가 밝아진 데는 동아리의 역할이 컸다.
동아리에서 친구들과 교류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았으니까.
그래서였다.
동아리 때문에 밝아졌다면 어두워진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건.
자연히 떠오르는 기분 나쁜 기억.
휙. 휙.
이희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동아리 때문이니?”
“.. 으, 응?”
“친구들이랑 싸우기라도 한 거니?”
전혀 아니었다.
진짜 힘이 없는 이유를 꼽으라면 정확히 그 반대였으니까.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어서.
그러나 그걸 엄마가 허락해 줄 리 없다는 생각에 울적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지우였다.
엄마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아, 안 싸웠어!”
그런 지우의 말에도 이희영은 쉽사리 의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지우의 눈에도 그게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친구들과 사이가 나빠졌다는 오해를 받기는 싫었다.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나, 나는……”
그래서였다.
지우가 용기를 내기로 결심한 건.
계속 꿍한 상태로 오해를 키우는 것보다는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하는 걸 선택하기로 했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에 가고 싶다고.
‘안 된다고 할 거야.’
엄마가 어떻게 대답할지는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단번에 일축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엄마가 가지고 있는 오해만큼은 없앨 수 있었다.
“치, 친구들이랑……!”
그때였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따단. 딴.
옆에 놓아둔 이희영의 핸드폰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전화가 온 거다.
기본 음악이 아니었다.
이희영이 직접 설정해 둔 핸드폰 컬러링이었다.
-차이코프스키 사계 중 10월 : 가을의 노래
클래식을 좋아하는 그녀이기에 주기적으로 컬러링을 바꾸곤 했다.
지금 계절에 맞는 컬러링이었다.
지우의 용기는 사그라들고 이희영은 입을 뗐다.
“잠깐만.”
그 말과 함께 핸드폰을 집어 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동시에 입이 벌어졌다.
-이은경
컬러링을 작곡한 음악가는 세계적인 거장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전화를 걸어온 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이은경이었다.
***
놀란 이희영이 전화를 받은 뒤, 얼마간 통화가 이어졌다.
옆에 있는데도 대화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핸드폰을 귀에 댄 엄마가 입 밖에 뱉는 말은 거의 짤막한 대답뿐이었으니까.
“네.”
“그런가요.”
“네, 그렇죠.”
거의 추임새 수준이었다.
스피커폰이 아니었기에 누구랑 통화하는지도 지우는 알 수 없었다.
그 상태로 시간이 흘러갔다.
마지막으로 이희영은 한 마디를 뱉었다.
“네, 알겠습니다.”
대체 누굴까.
전화를 끊고서 이희영은 지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다녀오렴.”
“으, 응?”
주어가 없기에 지우로서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숨은 주어가 ‘부산’일 거라고는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현실이 됐다.
“부산에 가고 싶었던 거 아니니?”
“……”
지우는 잠깐 동안 숨이 멎었다.
그러니까 엄마의 말을 조합하면 부산에 다녀오라는 이야기가 된다.
믿기지가 않았다.
“.. 가, 가도 돼?”
“그래.”
알 수 없었다.
통화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고 어떤 말이 엄마를 설득한 건지.
그러나 중요한 건 하나였다.
꿈이 이루어졌다. 절대 실현되지 않을 거 같은 꿈이 말이다.
“지, 진짜 가도 되는 거지..?”
허락이 어려울 뿐.
이희영은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스스로 납득해서 오케이를 했다면 그 문제로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일은 없었다.
“고, 고마워.. 고마워, 엄마……”
“가서 많이 배우고 오렴. 그렇게 멀리 가 보는 건 처음이니까.”
배우고 오렴.
정확히는 몰라도 그 말에 단서가 있을 듯했다.
이희영이 아무리 이은경의 팬이라 해도, 그 사실만으로 딸의 부산 여행을 허락해 줄 사람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녀가 우선순위에 두는 건 딸의 교육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교육상 도움이 되겠지.’
방금의 통화로 이희영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부산 여행이 지우의 교육상 도움이 될 거라고.
그렇다고 해도 외부와의 교류를 틀어막다시피 했던 과거에 비하면 많이 유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스스로는 자각 못 하는 일이었지만.
“대신 여행에 갈 때까지 더 열심히 해야 해. 알고 있지?”
“으, 응!”
지우가 연필을 쥐었다.
축 처져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다음 문제! 83을 콧구멍으로 두고……”
그렇게 지우의 합류가 결정됐다.
***
드르륵.
다시 이은경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30분가량이 지난 후였다.
“지우 어머님께 허락 받았어요.”
“.. 어떻게요?”
조금 바보같긴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반응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혹시나였으니까.
그런 나를 향해 이은경은 말했다.
“친구들이랑 함께하는 부산 여행이 지우의 교육상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드리니까 허락해주시던데요.”
“교육상……”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표현이 허락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거라는 걸.
말하는 사람이 이은경이라는 게 설득력을 더했을 테고.
어쨌거나 최상의 결과였다.
‘마음 편한 여행은 아니었을 테니까.’
아이들은 봤다. 여행을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처져있는 지우의 모습을.
부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생각했을 거다.
지우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이제 그럴 걱정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항상 아이들한테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시는데.”
“하하, 아닙니다.”
그 뒤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인원이 확정됐으니 거리낄 게 없었으니까.
현재로서 확정된 인원은 나랑 연두, 시은이, 레나, 월이, 지우, 그리고 주아랑이었다.
주아랑에 관해서는 할 말이 있다.
‘계획표를 보내왔지.’
그녀가 아이디어를 냈던 만큼 인원이 확정되자마자 그 소식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부산 여행 계획표
계획표를 본 나는 경악했다.
부산에서의 일정이 하나부터 열까지 나열되어 있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편집자의 일을 넘어섰다.
편집자의 일.
사실 고용주의 의도대로 편집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편집자라고 볼 수 있었다.
나는 더 많은 걸 요구하는 편이었다.
‘동행과 촬영 보조까지 부탁하니까.’
추가수당을 챙겨준다고는 하지만 나는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부산 여행 계획표라니.
원래는 내가 해야 했을 일이었다.
문제는 쭉 읽어본 결과, 그녀가 짠 계획이 너무 완벽하다는 점이었다.
‘난처했을 거야.’
만약 납득하기 어려운 계획이었다면 상당히 난처했을 거다.
그런데 계획표는 보는 것만으로도 설득력이 있었다.
뭐 하나 빼놓은 게 없으면서도 과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으니까.
허나 걸리는 점이 있었다.
교통수단 : 버스(주아랑 제공)
숙소 : 별장(주아랑 제공)
주아랑 제공.
이게 도통 무슨 뜻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보이는 그대로만 생각하면 교통수단과 숙소를 편집자 주아랑이 제공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함께 간다고는 하지만.’
나와 연두의 여행이었다.
주아랑은 조력자로서 동행하는 거고.
그런데 숙소와 교통수단을 제공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내가 꼰대는 아니지만, 주아랑의 나이는 이제 스물네 살이었다.
그런 의문 속에 전화를 걸었지.
‘여보세요.’
나는 하나씩 차례로 얘기했다.
의문을 쭉 나열하기에는 너무 길었으니까.
먼저 계획표를 보고 놀랐다는 말을 전하니 그녀는 이야기했다.
‘아닙니다. 편집자로서 할 일을 한 건데요.’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무턱대고 압도적 감사를 표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했고.
‘근데 계획표를 쭉 보니까 ‘주아랑 제공’이라는 게 보이던데요. 교통수단도 그렇고요. 무슨 의미인지……’
‘아는 기사님이 계셔서요.’
‘네?’
‘인원이 많은 만큼 나눠서 가는 것보다는 버스로 한 번에 가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촬영에도 용이할 테고요.’
‘……’
전부 맞는 말이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차를 나눠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더더욱 납득이 갔다.
그런데 뭘까.
아는 기사님이 계신다는 건.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음 의문을 던졌다.
‘숙소는 별장이라고 쓰여있던데요.’
‘부산에 별장이 하나 있어서요.’
‘.. 예?’
그야말로 벙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는 기사님이 있다는 건 오케이, 납득할 수 있다고 치자.
별장이 있다는 건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위치도 좋고 역시 촬영에도 용이할 거라……’
‘아니, 잠깐만요.’
부득이하게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부산에 아랑씨가 아는 별장이 있다는 거죠?’
‘맞습니다.’
‘위치적으로 좋을 거 같고 촬영에도 용이할 거 같아서 추천한다는 거고요.’
‘네.’
그럼 그렇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주아랑 제공이라는 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생각을 한 게 이상했다.
추천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럼 그 별장을 사용하면 예산은 어느 정도를 생각해야 할까요?’
결국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예산은 정확히 알아두는 게 좋으니까.
그런데……
‘예산은 잡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제 소유의 별장이라서요.’
‘……’
우리 편집자가 이상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