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64)
864화. 차단
때는 통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산은 잡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제 소유의 별장이라서요.”
“……”
주아랑 제공.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그걸 웬 떡이냐 하고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우선은 받아들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산에 아랑씨 소유의 별장이 있다는 거죠?”
“네.”
“저희를 위해 운전해주실 기사님과도 친분이 있고요.”
“맞습니다.”
규모는 잘 모르겠다.
허나 별장이었다.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밥벌이만 해도 칭찬해 줄 나이인데 별장이라니.
대체 어떻게 하면 스물네 살에 본인 소유의 별장이 있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또 한 가지.
‘.. 기사님.’
이쯤 되니 내 상상력이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내 ‘MBTI’인 ‘INFP’에서 N의 특성이 발현된 거다.
기사님과 과연 친분만 있는 걸까.
드라마에서 봤다.
재벌가 도련님 아가씨들이 나올 때마다 함께 등장하는 게 기사님이었다.
그렇다면 또 의문이 생긴다.
‘…… 왜?’
만약 그 가설이 맞다면 주아랑은 왜 연두튜브 편집자에 지원한 걸까.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연두튜브 편집자라는 자리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었다.
많은 연두부들이 원했던 자리였다.
오직 실력만으로 그 자리를 쟁취한 준태씨와 아랑씨를 진심으로 리스펙한다.
그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휙. 휙.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만약 내 생각이 맞다고 해도, 그건 주아랑의 사적인 영역이었다.
그 영역을 침범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으로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한 가지였다.
‘주아랑은 연두튜브 편집자다.’
그녀는 내가 고용한 편집자였다.
다른 건 생각할 필요 없이 편집자로서 그녀를 대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주아랑의 말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그녀가 제공하는 교통수단과 숙소를 이용하면 더 즐겁고 촬영에 용이할 거 같다고.
나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인원이 많은 만큼 나눠서 가는 것보다는 다 함께 가는 게 훨씬 즐거울 테니까.
수학여행 느낌도 나고.
‘숙소도 마찬가지야.’
규모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별장이라 하면 어느 정도 인원을 전부 수용할 정도는 되겠지.
게다가 촬영에도 용이했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래도 버스와 숙소를 이용하는 비용은 지불하겠습니다.”
비용은 다른 문제였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어떤 숙소를 이용하더라도 비용은 발생한다.
그건 나의 몫이었다.
편집자인 그녀에게 부담하게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정말 괜찮습니다. 저는 편집자로서 추천을 드린 거니까요. 초록님이 부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실소가 나왔다.
지금 보니 그녀는 ‘편집자로서’를 무적의 기술로 활용하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편집자로서의 역할은 넘칠 정도로 잘해 주고 있습니다.”
우스운 상황이었다.
한쪽은 어떻게든 돈을 내려고 하고 한쪽은 어떻게든 돈을 받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돈을 내려는 게 고용주인 나고, 돈을 받지 않으려는 건 피고용자인 주아랑이다.
결국 결론이 났다.
내가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기로.
‘질려서 수긍한 거 같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입장에서도 타협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그렇게 결론이 난 뒤에, 나는 다소 늦은 감사를 전했다.
“정말 고마워요.”
“네?”
“계획표 보고 감탄했거든요. 그 정도로 세심하게 잘 짠 계획표는 살면서 본 적이 없는데……”
“감사합니다.”
실제로 그랬다.
그녀 덕분에 거의 모든 부분이 해결됐다.
이제 막 정하려던 숙소와 교통수단 문제도 말끔히 해결됐으니 말이다.
‘..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편집자의 기준에 이런 일은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그런 일을 주아랑은 스스로의 의지로 해주고 있었다.
“아랑씨.”
아까 말했듯 사적인 걸 물을 생각은 없다.
세연씨와 마찬가지였다.
정략결혼.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런저런 생각이 들긴 했다.
허나 묻지 않았다.
‘그러는 편이 나아.’
상대가 먼저 말해주기 전까지는 캐묻지 않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참을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규칙을 깨고 사적인 질문을 해야겠다.
“MBTI 검사 해보셨나요?”
생각지 못한 물음이었는지 잠깐 동안 침묵이 일었다.
“해봤습니다.”
“마지막에 제이 맞죠.”
“네.”
역시나.
예상이라 할 것도 없지만 내 생각이 맞았다.
“혹시 몇 퍼센트인지 기억하시나요?”
“.. 98%입니다.”
“감사합니다.”
의문이 풀렸다.
그 뒤에야 비로소 나는 편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아마 그녀도 전화를 끊으며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상한 사람’이라고.
***
핸드폰을 샀다.
“히히.”
영롱한 자태.
비록 교육 목적으로 고안되어 전화와 문자밖에 되지 않는 폴더폰이었지만 유리는 행복했다.
핸드폰이 생겼다는 사실이.
이제 더 이상 엄마 핸드폰을 몰래 가져가지 않아도 됐다.
유투브를 볼 때는 봐야 하지만.
이로써 유리는 단비음악대에서 최초로 휴대폰을 가진 아이가 됐다.
“흐흥.. 그렇게 좋니?”
그런 유리를 본 은주아가 말했다.
깜짝 놀란 유리가 웃음을 지우고서 얘기했다.
“별로. 제이폰도 아닌데.”
핸드폰을 사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유리는 제이폰을 고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디자인이 예쁘고, 또 예뻤으니까.
뒷면에 새겨진 사과 모양을 볼 때면 심장이 쿵쿵 뛸 정도였다.
유투브를 볼 수 있다는 건 덤이었고.
‘안 돼.’
한 마디로 무산됐지만 말이다.
은주아가 딸에게 핸드폰을 사주기로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출장이 잦았다.
유리를 데리고 다닐 때도 많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언제든 유리와 연락할 수단이 필요했다.
따라서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핸드폰을 사주기로 결정한 거다.
‘그렇게 투덜대더니……’
막상 손에 쥐니 좋은 모양이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의식한 유리는 핸드폰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작법은 금세 깨우쳤다.
어려서 적응이 빠른 것도 있지만 사실 조작법이라 할 게 없었다.
최소한의 기능만 있는 만큼, 그 기능만 제대로 활용할 줄 알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전화와 문자.’
방법을 깨우쳤으니 시험 삼아 한 명에게 보내보고 싶었다.
누구한테 보내볼까.
의외로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싫었다.
방금 표정도 그렇고 한집에 있는데 문자랑 전화를 할 의미가 없지 않은가.
친구들한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
친구가 없었다.
학교에서 유리는 아웃사이더였으니까.
그렇다고 단비음악대 아이들에게 연락하기에는 하나같이 핸드폰이 없었다.
결국 남은 건 하나였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떠올랐던 얼굴이 있었다.
“어, 어쩔 수 없잖아..”
괜히 혼잣말을 뱉으며 유리는 번호를 입력했다.
번호는 외우고 있었다.
조금 고민하다가 문자메시지 버튼을 클릭했다.
톡. 톡.
처음이라 타자가 조금 느리긴 했지만 괜찮았다.
-아저씨
전송 버튼을 눌렀다.
문자가 전송된 걸 확인한 유리의 눈이 괜히 동그래졌다.
띠링-
답장은 바로 날아왔다.
[누구세요?]“아!”
그제야 유리는 깨달았다.
아저씨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걸.
알 방법이 없었다.
아저씨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번호일 테고, 자신이 핸드폰을 샀다는 것도 모를 테니까.
유리는 후회했다.
‘아저씨라고 하지 말걸……’
크나큰 힌트를 준 셈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자면 주원을 아저씨라 부르는 사람이 꽤나 많다는 거지만.
유리는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최근 주원에게는 장난 전화와 문자도 자주 걸려오곤 했다.
번호를 바꿔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 헤.”
유리의 입가에 장난기 섞인 미소가 번졌다.
재미있을 거 같았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아저씨와 대화하는 건.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은 장난기로 그대로 분출됐다.
-저예요.
[누구시죠?]-ㅎㅎ 저 누군지 모르겠어요? 바보.
아직 문자 말투에는 익숙하지 않은 유리였다.
지금 구사하는 말투도 어디선가 본 말투를 어설프게 따라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일까.
장난은 오래가지 못했다.
[장난치지 마세요. 차단하겠습니다.]충격이었다.
아무리 장난을 친다고 해도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으니까.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차단을 당하면 문자도 못 하게 된다.
그 정도의 상식은 핸드폰을 처음 써 보는 유리도 알고 있었다.
-유리애ㅛ
급하게 치느라 오타도 고치지 않고 냅다 전송해버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유리라는 단어는 제대로 들어갔으니까.
이제 답장이 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유리는 핸드폰을 붙잡고 기다렸다.
“……”
시간이 지났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똑같은 자세로 유리는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 뭐, 뭐야? 나 차단당한 거야?”
유리가 고려하지 못한 점이었다.
장난 전화와 문자에 질린 주원이 가차 없이 차단해버렸을 거라는 사실은.
진짜 충격이었다.
문자 몇 번 주고받고 차단을 당하다니.
-안 돼.
-나 유리란 말이야!
-차단 풀어요!
-핸드폰 샀어요! 저 유리예요!
차단당한 걸 확신한 유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문자를 보냈다.
-제발 차단 풀어주세요……
닿을 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보낸 문자였다.
핸드폰을 땅바닥에 내려놓은 유리는 바닥을 향해 고개를 떨궜다.
“……”
핸드폰 개통 당일.
주원으로부터 차단을 당한 유리였다.
***
번호 하나를 추가로 차단하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벌써 차단 번호가 백 개가 넘어간다.
진절머리가 난다.
‘왜 내 번호가 국민 번호가 된 거냐고.’
어디서 흘러나간 건지 의문이다.
이번 장난은 신박했다.
보통은 전화를 걸어서 말 몇 마디 하고 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용트림을 날리고 끊는 녀석도 있었다.
바로 차단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자가 날아왔다.
-아저씨
첫마디부터 생각했다.
장난치는 거라고.
나를 아저씨라고 부를 사람은 연두 학교 친구들, 그리고 유리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아직은 오빠 소리를 듣고 다닌다.
한숨을 내쉬며 답장했다.
[누구세요?]-저예요.
이때 혈압이 살짝 올랐다.
이름이 ‘저’도 아니고 저라고 말하면 누군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호흡을 고르고 다시 한번 물었다.
[누구시죠?]답장이 돌아왔다.
-ㅎㅎ 저 누군지 모르겠어요? 바보.
약이 바짝 올랐다.
다짜고짜 아저씨라고 부른 것도 모자라 바보라니.
상대는 잼민이가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한 이상, 마냥 나쁘게 답장할 수는 없었다.
[장난치지 마세요. 차단하겠습니다.]그 정도로 답장하고 바로 차단 목록에 올렸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핸드폰을 든 나는 번호를 입력했다.
-은주아
부산 여행 섭외대상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유리였다.
지금 가기로 한 인원은 총 다섯 명, 기왕이면 짝수를 맞추는 편이 좋았다.
혼자 빼놓고 간 걸 알게 되면 엄청 서운해할 테고.
‘될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는 봐야지.’
그런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연결음이 울리고 은주아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이들이 다 함께 가기로 했다는 걸 말하니 의외로 은주아는 쉽게 허락해줬다.
“잠깐만요. 유리 바꿔드릴게요.”
뭐라뭐라 소리가 들렸다.
“.. 아, 아저씨?”
당황한 유리의 목소리.
이거 봐라.
나를 아저씨라 부르는 건 유리 정도였다.
어딜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이 나를 아저씨라고 부른단 말인가.
차단이라는 철퇴를 맞아야 마땅했다.
“여, 여보세요..”
왜인지 목소리가 풀이 죽어있다.
“유리야.”
“.. 네.”
“목소리 오랜만에 듣네. 근데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유리답지 않았다.
언제나 당당하고 할 말 다 하는 게 유리 성격인데.
“.. 아니에요.”
어쩔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부산 여행에 대해 설명하고 의향을 물었다.
“.. 갈게요.”
“그, 그래?”
“네..”
“알겠어. 다시 한번 일정 확인해보고 알려줘.”
“.. 어떻게요?”
“응?”
“어떻게.. 알려줘요..?”
착각인 걸까.
왠지 모르게 목소리에서 일종의 원망과 서운함이 묻어나는 거 같았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야, 어머니 통해서 얘기해주면 되지? 엄마 핸드폰으로 연락해도 되고.”
“.. 알겠어요.”
끝이 아니었다.
전화를 끊기 전에 유리는 자그맣게 목소리를 냈다.
“.. 저기.”
“응?”
“아, 아니에요. 끊을게요.”
통화가 종료됐다.
“.. 이상하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통화가 부산에 가기 전까지 유리랑 주고받은 마지막 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