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67)
867화. 필름
“마이크 주이소.”
처음으로 나선 용자는 월이였다.
의외였다.
내가 지금껏 봐 온 월이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부끄러워하는 아이였으니까.
‘마음도 여리고.’
그걸 알게 된 건 운동회 때였다.
압도적인 스피드로 팀을 승리로 이끌고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
여린 아이구나 하고.
“네, 초록님! 마이크 건네주시겠어요?”
어쨌거나 노래자랑의 포문을 연 건 월이였다.
처음으로 나선 걸 보면 노래에 꽤나 자신이 있는 거 아닐까.
그렇다고 한다면 반전 매력이다.
스포츠맨에 까리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월이가 노래를 잘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으니 말이다.
기대감 속에 나는 곧바로 마이크를 건넸다.
“아, 아.”
준비 다는 듯이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남궁월 학생, 어떤 노래 불러볼래요?”
이걸 묻는다는 건 MR까지 지원하는 걸까.
월이는 얘기했다.
“.. 내 사랑 내 곁에.”
깜짝 놀랐다.
그야, 이 노래는 최근에 내가 빠진 노래였으니까.
생각지도 못한 선곡이었다.
‘옛날 노래잖아.’
월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 노래였다.
어떻게 이 노래를 아는 걸까.
물을 틈도 없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빵빵한 사운드가 귀를 채웠다.
“.. 기가 막히네.”
몇 번을 들어도 전주가 기가 막힌다.
투박한 듯하면서도 곡의 정서에 빨려들게 만드는 멜로디였다.
그 시절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라 해야 할까.
그리고……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
월이의 노래가 시작됐다.
두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서 글자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어 부른다.
다른 의미로 충격이었다.
왜냐고?
‘.. 음치잖아!’
기대와 달리 월이는 나에 비견될 정도의 음치였다.
그러나 진심이었다.
들쑥날쑥한 음의 높낮이와 별개로 두 눈을 꼭 감고서 노래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 월이의 노래는 의외의 인물의 취향을 저격했다.
“.. 흣.”
다름 아닌 우영이였다.
소리 내어 웃는 우영이의 모습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옛날 노래 하면 우영이도 일가견이 있었다.
‘노래방에서 불렀으니까.’
딱 한 번.
노래방에서 우영이가 부른 곡의 이름은 고장 난 벽시계였다.
심지어 상당히 잘 불렀지.
반응을 보니 이 노래도 아는 거 같았다.
워낙 명곡이라 아는 게 딱히 이상한 건 아니지만.
“이 노래 알아, 우영아?”
“네.”
우영이는 웃으며 얘기했다.
“할머니가 좋아했거든요.”
“아.”
아이들은 잘 모르면서도 노래의 흥취에 빠져들고 있었다.
신기한 듯이 월이를 바라보기도 하고.
어느새 후렴구였다.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 줘~ ♪”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
비록 음정은 들쑥날쑥 널뛰기를 했지만 디테일은 살아있었다.
허스키하게 긁어줘야 하는 파트였다.
월이는 디테일을 살려서 그 애절함을 표현해냈다.
“푸핫!”
우영이 녀석.
잘 웃지 않는 만큼 한 번 터지니 주체하지 못한다.
이쯤 되면 거의 폭소였다.
“아하하.”
노래가 끝나고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다 부르고 난 뒤에야 월이는 쑥스러운지 조심스레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한 명은 필요했다.
멋지게 스타트를 끊어줄 사람이.
정적이 길어지면 내가 희생할 생각이었는데 월이가 훌륭하게 스타트를 끊어줬다.
“우와..”
“잘했어, 월아! 짱!”
수줍은 얼굴로 월이가 답한다.
“개, 개안았나.”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에 나서는 건 쉬웠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자, 월이의 멋진 무대였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내가 부르고 싶다! 하는 친구 있나요?”
스무스한 진행.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손을 드는 레나였다.
“저요!”
본격적인 노래자랑의 시작이었다.
***
주원과 마찬가지로 준태도 잔잔한 부산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잔잔함도 좋았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러나 잔잔함만으로 메우기에 부산은 너무 멀었다.
‘.. 어?’
엎친 데 엎친 격으로 주원이 꺼낸 과거 얘기는 아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예상치 못한 흐름이었다.
바로 그 타이밍에 아랑이 입을 뗐다.
“이거 받아.”
톡.
아랑이 내민 건 대본 형식의 무언가였다.
“이제부터 넌 유지석이 되는 거야.”
“.. 유, 유지석?”
“응.”
그렇게 시작됐다.
난생 첫 준태의 MC 도전기가.
“이것도 네 일이야.”
당연한 얘기지만 처음에는 어색했다.
유지석을 머릿속에 그리며 울며 겨자 먹기로 운을 뗐으니까.
그런데 점점 적응이 됐다.
월이를 시작으로 아이들의 노래를 연달아 들으니 점점 긴장감은 사라지고 흥이 올랐다.
“이야.. 박빙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누구죠?”
애드리브까지 칠 정도였다.
이 순간만큼은 소심한 김준태가 아니라 정말 유지석이 된 기분이었다.
들뜬 마음에 뇌절을 치기도 했지만.
“이 타이밍에 초록님 한 곡 뽑으시는 거 어떤가요!”
“.. 예?”
순간 흠칫한 준태는 슬쩍 고개를 돌려 아랑의 눈치를 봤다.
별다른 코멘트가 없다.
그 정도의 뇌절은 괜찮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가슴을 찢던 그 기억이 달력을 찢고~ 한해처럼 저물어가 너를 잊고~ ♪”
당황한 듯했지만 주원이 더한 뇌절로 보답을 했으니까.
엄청난 랩이었다.
그 정도의 뇌절은 용인될 정도로 분위기가 올라 있었다.
“우와아!”
“아빠 멋있어여..!”
환호하는 아이들.
모든 걸 쏟아부은 주원은 머쓱한 얼굴로 다음 타자에게 바통을 넘겼다.
옆에 있는 우영이었다.
“너도 한 곡 뽑아야지.”
“와아!”
빼도 박도 못하게 환호성이 쏟아졌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우영이는 신청곡을 입 밖에 뱉었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분위기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선곡.
우영이다웠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잔뜩 올라 있던 텐션은 구슬픈 곡조에 한층 사그라들었다.
노래 자체는 훌륭했다.
전에 들었던 미성이 조금도 죽지 않았으니까.
툭.
노래를 마친 우영이는 팔을 뻗어 마이크를 건넸다.
“어이, 꼬맹이.”
“으, 응?”
우영이 마이크를 건넨 대상은 지우였다.
“너도 한 곡 해.”
“저, 저는……”
얼떨결에 건네받은 마이크.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우를 향해 손을 내민 건 연두였다.
“같이 하자, 지우야!”
“가, 같이?”
“응!”
혼자는 몰라도 함께라면 지우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둘은 듀엣을 선보였다.
“어떤 단어로 널~ 설명할 수 있을까~ ♪”
“아마 이 세상 말로는 모자라~ ♪”
선곡은 주연이의 자작곡인 봄꽃.
연두가 선창하면 지우가 작고 귀여운 목소리로 음을 얹었다.
좋은 호흡이었다.
“우와!”
“진짜 잘했다.”
“지우 니, 노래 쫌 하네.”
월이가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환하게 웃는 지우.
이제 남은 건 유리와 시은이뿐이었다.
“나는 노래 못 해요!”
유리가 선수를 쳤다.
그러나 그 정도로 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 윽.”
결국 유리도 못 이기는 척 마이크를 손에 들었다.
하면 제대로 하는 유리였다.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고~ ♪”
유리가 부른 건 엄마인 은주아의 애창곡이었다.
엄청난 호응.
그럴 만도 한 게 아이들 모두 아는 곡이었다.
전에 단비음악대 활동을 하며 들은 적이 있는 곡이니까.
“돼, 됐죠?”
그리고 드디어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사실상 이 콘텐츠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단비음악대 보컬 시은이가.
선곡도 기가 막혔다.
볼빨강사춘기의 여행이라는 곡이었다.
“자, 이제 떠나요 부산으로~ ♪”
그 와중에 센스있는 개사까지 선보이는 시은이였다.
세상 신나는 멜로디.
전혀 묻히지 않는 시은이의 음색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지쳤어 나 완전히 나~ 떠날 거야 다 비켜~ ♪”
“다 비켜!”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
완전히 오를 대로 오르는 여행 분위기였다.
***
다소 격했던 노래자랑이 끝이 났다.
우승은 시은이였다.
다 함께 즐겼으니 순위 같은 건 의미가 없긴 했지만.
“우승한 시은양에게는 부산 도착 이후에 우승 특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축하해주는 분위기.
이후 점차 텐션이 내려갔다.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분위기가 처진다는 건 아니었다.
다시 소소한 분위기로 돌아간 거지.
“부산 가면 뭐 하고 싶어?”
“나는 바다 보고 싶어!”
“그럼 해운대 보면 된다.”
월이의 말에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해운대?”
“응. 엄청 큰 바다다.”
“월이는 해운대 가 봤어?”
“가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부산 하면 해운대라 그랬다.”
출처는 엄마였다.
오디오가 빌 틈이 없이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오갔다.
어떤 주제에 관해 얘기가 끝나고 나면, 자연스레 다음 주제로 넘어가 또 수다가 이어졌다.
그런 와중 유리는 계속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었다.
‘말해야 하는데……’
아직 핸드폰을 샀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얘기하지 못했다.
짠 하고 보여주고 싶은데 그 타이밍이 오지 않았으니까.
과제도 있었다.
‘차단, 풀어야 돼.’
핸드폰을 사자마자 거짓말처럼 주원에게 차단을 당해버린 유리였다.
주원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아저씨가 차단을 풀게 만들 수 있을지 유리는 고민중이었다.
아직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자랑은 하고 싶고 여러모로 골치였다.
“유리는?”
그런 와중 들려온 이름에 유리가 깜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응?”
“유리는 부산 가면 뭐 제일 하고 싶어?”
그때 유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아니면서 자연스럽게 새로 산 핸드폰을 뽐낼 방법이.
그게 뭐냐고?
이미 유리의 입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진.”
“응?”
“예쁜 사진 엄청 찍을 거야. 바다 사진도 찍고, 예쁜 거 있으면 다 찍을 거야. 전부.”
이건 나름의 빌드업이었다.
유리의 핸드폰.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핸드폰이지만 그중에는 사진 촬영도 있었다.
폴더폰도 카메라 정도는 있었으니까.
슥.
유리가 주머니에 살며시 손을 집어넣었다.
이제 짠 하고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 끝이었다.
그렇게 핸드폰을 꺼내기 직전이었다.
“그랬구나!”
주원이 난입했다.
손에는 처음 보는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유리가 그럴 줄 알고 아저씨가 이걸 준비했지!”
“그게 뭔데요?”
“필름 카메라!”
그렇다.
주원이 손에 든 건 다름 아닌 필름 카메라였다.
“이게 어떤 카메라냐면……”
유리가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아저씨의 설명을 들으니 폴더폰 카메라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으니까.
본의 아니게 유리의 계획을 방해해버린 주원.
애꿎은 타이밍이었다.
“자, 유리야.”
그런데 설명을 마친 주원이 필름 카메라를 내밀었다.
다름 아닌 유리를 향해.
“.. 네?”
“이건 부산에 있는 동안 유리한테 맡길게.”
“저한테요?”
“응. 대신 필름 개수가 정해져 있으니까 정말 예쁜 것만 찍어야 해. 유리를 찍어도 되고.”
그 말은 정말 예쁜 게 다른 게 아니라 유리라는 뜻이었다.
“친구들도 찍어주고.”
카메라를 건네받은 유리.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울적한 마음은 사라지고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핸드폰 자랑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됐다.
“……”
작은 두 손으로 카메라를 잡고 포즈를 취해보는 유리.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부산에서의 시간 동안 유리의 필름 카메라 속에는 어떤 장면들이 담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