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68)
868화. 공공의 적
부산 여행.
여전히 끊기지 않는 대화 속에서 레나가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 잠깐만.”
무언가 중대사가 떠오른 표정.
얼마 지나지 않아 레나의 입이 재차 벌어졌다.
“나 쉬 마려……”
그렇다.
레나의 중대사는 생리현상이었다.
그 말에 유리가 얼굴을 찡그리며 반응했다.
“그런 건 조용히 얘기해. 부끄럽지도 않니?”
“쉬 마려운 게 왜?”
레나는 지지 않고 말을 받았다.
“생리현상은 부끄러운 거 아니야! 너도 쉬 사잖아, 민유리!”
“조, 조용히 해!”
“흥.”
웬일로 둘 사이에 불이 안 붙는다 했더니.
부산 여행 제1호 다툼이었다.
그와 별개로 위기가 찾아온 건 레나만이 아니었다.
“……”
실은 아까부터 신호가 온 지우였다.
소심한 성격 탓에 계속 눈치만 보다가 말하지 못했지만.
옆에서 주원이 입을 뗐다.
“휴게소 한 번 들러야겠네.”
장거리 여행이었다.
화장실도 화장실이지만 식사도 한 끼 정도는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주원이 소리를 높여 얘기했다.
“기사님.”
“네.”
“다음 휴게소 잠깐 들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기사님은 친절하게 얘기했다.
“다음 휴게소까지 4km 남았으니까 금방 도착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자연히 아이들의 대화 주제도 옮겨갔다.
휴게소 이야기였다.
“나는 휴게소 엄청 좋아해!”
“나도.”
“왜?”
“화장실도 갈 수 있고, 맛있는 것도 짱 많으니까!”
“근데 나는 휴게소 많이 안 가봤서.”
그 사이에 버스가 휴게소로 향하는 갓길로 접어들었다.
곡선의 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 커다란 휴게소였다.
버스 전용 주차 공간이 따로 있었다.
끼익.
베스트 드라이버인 기사님이 주차를 마치고 시동을 끈 뒤에 얘기했다.
“네, 이제 안전벨트 풀고 내리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둘 안전벨트를 푼다.
주원도 벨트를 풀고 일어나 아이들을 차례로 통솔했다.
“얘들아.”
“네.”
“절대 따로따로 다니면 안 되고 아저씨랑 언니오빠 잘 따라다녀야 해. 알겠지?”
여기서 언니는 주아랑이었다.
아이들이 화장실을 갈 때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으니까.
무려 여섯 명이다.
휴게소 같은 공간에서는 자칫하면 아이를 잃어버릴 우려가 있었다.
“네!”
당부의 말을 건네고 난 뒤에야 주원은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
“.. 하아.”
착각인가.
벌써부터 서울과는 공기가 사뭇 다른 거 같았다.
“우와, 휴게소다!”
“엄청 커!”
“우리 버스 진짜진짜 크다.. 여기서 제일 커!”
바깥공기를 맡으니 아이들도 신이 나는 모양이다.
착각이라도 좋았다.
그만큼 여행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다는 소리니까.
“그럼 다들 화장실 들렸다가 그 앞에서 모이는 거로 하자.”
“네.”
“잘 부탁드릴게요, 아랑씨.”
그렇게 우리는 화장실로 향했다.
***
드림휴게소.
휴게소 중에서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휴게소였다.
특히 식당이 유명했다.
휴게소 식당이 명성을 떨치는 건 흔치 않은 경우였다.
그렇다 보니 다른 휴게소는 안 들러도 이 휴게소만큼은 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록 주원은 그걸 알고 들른 건 아니었지만.
“햐, 시원하네!”
홍명석도 그중 하나였다.
혼자 여행을 하던 도중에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휴게소에 들렀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차에서 내려서 기지개를 켜던 그의 눈에 믿기 힘든 장면이 들어온 건.
슥.
고개를 돌렸는데 눈에 들어온 건 버스에서 내리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었다.
단체로 소풍이라도 가나 보네.
시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그 정도의 생각에서 그쳤다.
그런데 왜일까.
이상하게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지? 얼굴은 안 보이는데……’
멀리서도 빛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런 탓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동안 아이들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에 따라 흐릿하던 얼굴도 점점 선명해졌다.
얼마 걸리지 않았다.
멍하니 바라보던 명석의 얼굴에 경악이 들어찬 건.
“여, 연두잖아!”
자기도 모르게 명석은 소리쳤다.
비현실적이었다.
연두와 함께 있는 사람들도 대체로 익숙한 얼굴이었다.
“시은이, 레나.. 초록님……”
한편 그의 목소리에 연두가 옆을 돌아봤다.
“안녕하세여..!”
옆에서 주원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홍명석은 연두부였다.
연두부 중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여행 중에 식사를 해결하려고 잠깐 들른 휴게소에서 연두를 만나게 될 거라고.
심지어 연두뿐만이 아니다.
연두부라면 모를 수가 없는 연두튜브 유명 인사들이 보란 듯이 눈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놀란 나머지 명석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 급해여!”
발을 동동 구르는 레나.
지우도 내색은 안 하지만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주원은 아차 하고 말했다.
“그래. 빨리 가자!”
유리는 왠지 트라우마가 발동되는 거 같았다.
시골에서 귀신 해프닝으로 인해 펼쳐진 흑역사가 재현되는 기분이었으니까.
다행이었다.
지금은 급하지 않아서.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화장실에 도착한 주아랑은 차분하게 아이들을 안내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 모인 거죠?”
볼 일을 해결하고 나온 뒤 주원이 인원을 체크했다.
문제는 없었다.
총인원은 열 명이었다.
출석을 부를 필요 없이 열 명에서 모자람이 있으면 비상사태라는 뜻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딱 열한 명이었다.
기사님까지 포함해서.
“좋아요. 그럼 식당으로 이동하죠.”
휴게소에서 연두를 만난 게 홍명석만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연두 혼자라도 시선을 피하기 어려운데 지금은 무려 열 명이 단체행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사실상 포기였다.
이목이 집중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헐.. 뭐야?”
“나 잘못 본 거 아니지?”
“대박……”
“연두, 레나, 시은이.. 유리도 있어! 생각보다 유리 되게 조그맣다. 귀여워……”
조그맣다.
어디선가 들려온 그 한마디가 유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실제로 현재 기준으로 여섯 명 중에서 키가 가장 작은 건 유리였다.
커다란 차이는 아니었지만.
“.. 프흣.”
레나의 웃음소리.
약이 오른 유리가 노려보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허공을 응시하며 휘파람을 분다.
그 사이에 주원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여기 앉으면 되겠다.”
저번에는 여러 간식거리로 허기를 달랬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장거리 여행인 만큼 제대로 된 식사로 속을 든든하게 해 둘 필요가 있었다.
메뉴는 자유였다.
“저기 메뉴판 보고 다들 먹고 싶은 거 얘기해볼까?”
“네.”
“와아.. 맛있겠다.”
“고르기 어려워.. 다 먹고 싶어……”
결정장애에 빠진 아이들.
그러나 주원은 선택을 도와주지 않았다.
스스로 원하는 걸 선택할 줄 아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부모로서 교육의 일환이었다.
“저는 골랐서요!”
가장 먼저 고른 건 레나였다.
“사과돈까스!”
얼핏 듣기에 조합이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나름 드림휴게소의 최대 인기 메뉴 중 하나였다.
사과와 돈까스를 같이 준다는 게 아니다.
비결은 소스였다.
사과를 갈아 넣은 소스를 사용하는 게 이 메뉴의 특징점이었다.
“나는 불고기비빔밥!”
“저는 짜글이로 할게요.”
“그럼 저는……”
차츰 정해지는 메뉴.
기호에 따라 다양한 메뉴가 튀어나오고 그 속에서 주원도 메뉴를 정했다.
김준태가 벌떡 일어났다.
“제가 주문하고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미소를 띠며 일어난 주원은 주문대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주문하겠습니다.”
처음이었다.
무려 열 한 명분의 식사를 주문해 보는 건.
***
식사가 시작됐다.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테이블 하나를 꽉 채운 상태였다.
‘낭만 있네.’
옆에 쭉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니 꼭 피리 부는 사나이라도 된 기분이다.
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니 피리 부는 사나이의 끝은 비극이잖아.
취소의 의미로 입을 툭툭 때렸다.
“……?”
그런 내 모습을 본 연두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러더니 나를 따라서 입을 툭툭 때리고선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짓는다.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툭. 툭.
마침내 그릇 열 개가 테이블 위에 전부 놓였다.
수많은 시선이 느껴진다.
그럼 상황 속에서 왜인지 다들 숟가락을 들고서 식사는 안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혹시 지금 나 대장님 같은 느낌인 건가.
민망하긴 하지만 내가 먼저 액션을 취해야 할 거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
내가 먼저 말하자 아이들도 나를 따라서 입 밖에 뱉었다.
“잘 먹겠습니다!”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됐다.
옆을 보니 아랑은 어느새 테이블 가장자리에 카메라를 놓아둔 상태였다.
하나도 놓치지 않는군.
한편 레나 옆에 있는 준태씨는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저기……”
그러다 레나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뗀다.
“괜찮으면 오빠.. 아니, 삼촌이 도와줄까?”
그 말에 옆을 바라보니 레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쥐고서 돈까스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잘 잘리지 않는 모양.
그 모습을 포착한 준태씨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거다.
‘삼촌인가.’
준태씨가 오빠에서 정정한 호칭은 삼촌이었다.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아이들에게 스물여덟인 나는 아저씨고 스물네 살인 준태씨는 삼촌이라는 게.
“아.”
인사를 나눈 것 외에 레나와 준태씨는 거의 초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조금은 어색한 듯이 포크와 나이프를 내민다.
“.. 여기요.”
“고마워. 그럼……”
준태씨는 능숙하게 돈까스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줬다.
일반적인 크기보다 더 작게 조각내서 잘라주는 데에서 섬세함이 느껴진다.
역시 리틀 초록이다.
배려심마저 나를 닮은 거 같았다.
“연두야.”
“네에.”
“아빠가 고기 발라줄게.”
연두가 선택한 메뉴는 뜨끈한 갈비탕이었다.
순살이 아니고 뜨겁다 보니 연두가 발라먹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절대 아니다.
준태씨를 보고 손길을 내민 건.
‘원래 발라줄 생각이었어.’
그야, 언제나 내 시선은 연두를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다른 아이들 메뉴는 별도의 도움이 필요한 메뉴가 아니었다.
“고마워여, 아빠..!”
“에이, 뭘.”
다시 출연한 ‘에이, 뭘.’
반대쪽에서도 훈훈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돈까스 손질(?)을 끝낸 준태씨가 포크와 나이프를 다시 레나의 손에 쥐여준다.
감동한 표정의 레나.
“고맙습니다, 준태……”
이름이 헷갈리는 걸까.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이야기한다.
“준태.. 오빠?”
레나가 부른 호칭은 오빠였다.
이로써 나와 준태씨의 격차는 두 단계가 벌어지게 됐다.
오빠, 삼촌, 그리고 아저씨.
“……”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하도 들어서일까.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아저씨라는 호칭에 꽤나 정이 들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장난문자범.’
그리고 얼마 전에 있었던 장난문자범도 포함이다.
내 호칭을 그런 녀석들이 입에 담는 건 아주 열불이 난다.
“하하, 맞아. 오빠보다는 삼촌이 맞을 거 같긴 한데.”
머쓱한 얼굴로 웃는 준태씨.
그런 준태씨를 향해 레나는 감사 인사에 더해 또 하나의 방식으로 감사를 표현했다.
그게 뭐냐고?
바로 돈까스 나눠주기였다.
포크로 돈까스 한 조각을 콕 찔러서 준태씨를 향해 내민다.
“.. 여기요!”
“어?”
세상 당황한 표정.
“나 주는 거야? 나?”
본인을 손으로 가리키며 몇 번이나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레나.
“네. 준태오빠 주는 거에요!”
“잠깐만.”
감히 이걸 받아먹어도 되냐는 표정이다.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레나가 원해서 주는 건데 뭐라 할 제삼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 그럼……”
결국 준태씨는 돈까스를 받아먹었다.
그건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우리 테이블이 아니라 근처 테이블 전체에.
“와……”
“레나가 돈까스 줬어..”
“저 사람 누구야? 누군데 같이 있는 거지?”
“아!”
“왜, 뭔데.”
“새로 뽑았다는 편집자 아니야?”
“부럽다.. 나도 레나가 주는 거 먹고 싶다……”
웅성이는 소리.
하마터면 준태씨의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로봇 그 자체다.
주위 시선 때문인지 뻣뻣하게 정면을 응시한 채로 입을 오물거리고 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 맛있서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준태씨를 응시하는 레나.
주위는 더욱 들썩였다.
돈까스 한 조각으로 모두의 시선의 표적이 된 준태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