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69)
869화. 터널
돈가스 한 조각.
로봇처럼 씹고 있긴 한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맛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왜냐고?
“.. 저 사람은 누구야?”
편집자 김준태.
그를 향한 말이 한두 마디가 아니긴 했지만 그런 말들만 선명하게 귀에 들어왔다.
레나가 손수 먹여준 돈가스를 씹고 있다.
그 사실이 벅차오르면서도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공공의 적이 된 게 이런 기분일까.
‘가만히 있을 걸 그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돈가스를 못 썰어서 곤욕을 겪고 있는 레나를 보고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한 명의 연두부로서.
그래. 생각해보면 연두부끼리 충돌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연두튜브 댓글창만 봐도 그랬다.
‘개의치 말자.‘
같은 연두부였다.
따가운 시선 좀 받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쫄아 있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준태의 귀에 들어오는 목소리.
“.. 맛있서요?”
레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어본다.
왜일까.
늘 연두튜브 속에서 듣던 이 말투가 이렇게나 귀여워 보이는 건.
시옷 발음이 새는 레나 특유의 말투.
‘.. 다르구나.’
당연히 김준태는 레나의 팬이었다.
팬심이 특정 인물 하나에 국한되는 연두부는 거의 없었으니까.
김준태도 마찬가지였다.
주원이 롤모델인 동시에 연시레와 그 밖에 연두튜브에 자주 출연하는 모두를 아꼈다.
레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평소 말투와 성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 몰랐다고.’
하지만 몰랐다.
이렇게 사랑스러울 거라고는.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가시거리 내에서 보는 건 차원이 달랐다.
그냥 인형보다 더 귀여운 인형이 말을 하는 기분이라 해야 하나.
그야말로 덕업일치의 현장이었다.
“엄청.”
새삼 연집자가 된 사실에 감사하며 김준태가 말했다.
“얼른 먹어봐. 진짜 맛있어.”
“.. 헤.”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레나가 돈가스 한 조각을 포크로 집었다.
그대로 입속에 투하한다.
“아암.”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맛이었다.
사과를 갈아 넣은 소스의 상큼함이 육즙을 가득 담은 돈가스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역시 드림휴게소의 명물이었다.
황홀한 표정으로 레나는 돈가스를 음미했다.
“맛있서……”
다른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저마다 각자 고른 메뉴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다.
후릅.
갈비탕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은 연두의 눈이 동그래진다.
마치 개안을 한 듯한 표정.
비빔밥을 선택한 월이는 가장 빠른 페이스로 그릇을 해치우고 있다.
지우는 천천히 꼭꼭 씹어먹고 있고, 시은이와 유리도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식사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의 먹방은 주아랑이 거치해 둔 카메라 속에 그대로 담기고 있었다.
“맛 괜찮아, 우영아?”
“나쁘지 않네요.”
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퀄리티였다.
휴게소인 만큼 큰 기대 없이 배를 채우려 했던 거라 만족도가 더 높았다.
“얘들아. 이거 하나씩 먹어봐.”
나중에는 각자 메뉴를 쉐어해서 나눠 먹기도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다들 앞에 놓인 접시를 깔끔하게 비워냈다.
“아직 배고픈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주원은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그럼 음료수랑 간식거리 정도만 사서 버스로 귀환할까?”
“.. 귀한?”
“귀환. 돌아가자는 뜻이야.”
“아.”
연두가 힘차게 얘기했다.
“좋아요!”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식당을 나선 뒤에 음료와 더불어 호두과자 등의 쟁여두고 먹을 수 있는 간식을 구매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별도의 식사 없이 부산까지 도착하기에.
“좋아. 그럼 가 볼까?”
“네에!”
배도 채웠겠다.
다시 부산행(영화 아님) 버스에 오를 시간이었다.
***
홍명석.
그는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아직 연두를 마주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으니까.
다시 연두가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50분가량이 지난 후였다.
‘어떡하지?’
홍명석은 연두부였다.
아까 인사를 나눈 뒤에 멀어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혹시 뒤에 누가 있나 하고.
아무도 없었다.
그 말은 진짜 자신이 연두와 초록님과 인사를 주고받았다는 뜻이었다.
‘.. 실화냐고.’
그 사실만으로 감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두 번은 잡을 수 없는 우연이다.
이대로 만족하고 한여름 밤의 꿈처럼 추억하기에는 이 기막힌 우연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였다.
오매불망 서서 돌아오기를 기다린 건.
“.. 온다!”
기다림은 응답받았다.
식사를 마친 주원과 아이들이 걸어오기 시작한 거다.
홍명석은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연두부로서 이 우연을 좀 더 행복한 꿈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거, 사인해 달라는 거.’
강요하는 건 몰라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민폐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요청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다.
여행 중에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면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저기!”
고심 끝에 홍명석은 눈앞을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서 목소리를 냈다.
돌아본 건 주원이었다.
“네?”
“호, 혹시.. 단체 사진 찍으셨나요?”
“단체 사진이요?”
“네. 여행 중이신 거 같아서요.”
연두부라는 것도 밝히지 않았다.
그런 명석을 향해 주원은 얘기했다.
“아뇨. 단체 사진은 아직 안 찍었는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 장 찍어드려도 될까요? 휴게소가 예뻐서 저쪽을 배경으로 찍으면 괜찮을 거 같은데……”
홍명석이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사진을 좋아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것들을 카메라 속에 담는 게 그의 취미였다.
명석의 말에 주원이 고개를 돌렸다.
“오..”
배경을 본 주원은 얘기했다.
“괜찮네요.”
같은 사진가라면 통하는 게 있었다.
배경만 봐도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온다고 해야 하나.
주원은 웃으며 얘기했다.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명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물론입니다!”
“네, 그럼 카메라는……”
주원이 목에 건 카메라를 건네려는 참이었다.
앞으로 나서는 한 아이가 있었다.
바로 유리였다.
“여기요!”
유리는 명석에게 카메라를 건네며 얘기했다.
“이거로 찍어주세요!”
“이건……”
보는 즉시 알 수 있었다.
촬영과 동시에 인화되는 형식의 필름 카메라였다.
몇 번을 연달아 찍어도 되는 카메라와 달리 두 번의 기회가 없다는 뜻이었다.
필름의 개수는 유한하니까.
꿀꺽.
카메라를 받아든 명석이 침을 삼켰다.
“그럼 이쪽에 서 보시겠어요?”
슬쩍 옆으로 빠지려는 김준태와 주아랑을 각각 다른 손이 가로막았다.
주원과 연두였다.
“왜 빠지려고 해요. 같이 찍어요, 준태씨.”
연두는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옆으로 빠지려는 아랑의 손을 붙잡은 거다.
아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같이 찍어여.. 아랑 편집자님……”
“……”
굳은 표정이었지만 아랑은 연두가 잡은 손을 빼며 발길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편집자까지 합류한 단체촬영.
나란히 서는 동안 명석은 구도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좋아.’
그러다 구도가 잡혔다.
배경이 적절히 드러나면서도 모두가 앵글 안에 잘 들어오는 구도였다.
명석은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하나둘셋을 할 건데요. 둘을 할 때부터 눈을 떠야 해요!”
역시 내공이 깊었다.
단체샷인 데다가 기회가 한 번이다 보니 눈을 감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곤란했으니까.
“네!”
월이가 연두를 향해 물었다.
“저게 무슨 말이노.”
“눈을 감고 있다가 하나, 둘 할 때 뜨면 돼. 그래서 셋 할 때까지 뜨고 있는 거야..!”
“아, 알았다.”
이해한 표정.
이윽고 포즈를 취한 홍명석의 입이 움직였다.
“하나, 둘..”
둘에 맞춰서 모두가 눈을 뜨고,
“…… 셋!”
찰칵-
셔터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밑으로 사진이 인화되어 나왔다.
긴장한 얼굴로 홍명석은 사진을 확인했다.
“……!”
상기되는 표정.
이윽고 그의 주위로 주원을 포함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봐도 될까요?”
“아, 네!”
사진을 본 주원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엄청 잘 나왔네요. 평소에 사진을 좋아하시나 봐요.”
“하하, 취미입니다.”
그렇다.
표정이 상기됐던 이유는 사진이 너무 잘 나와서였다.
눈을 감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구도도 완벽했고.
“잘 나와서 다행이네요. 사실 제가 연두부거든요.”
“그러셨군요.”
“그래서 단체 사진 한 장 꼭 멋지게 찍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뒤늦게 그는 연두부임을 밝혔다.
한편 유리는 인화된 필름 속 사진을 바라보며 밝게 웃음 지었다.
남의 손을 빌리기는 했지만 성공적인 첫 개시였다.
“사진 잘 찍네요, 아저씨.”
“고, 고마워.”
“저도요.”
그때였다.
뿌듯해하던 명석을 향해 주원이 말을 건넨 건.
“괜찮으시면 저도 한 장 찍어드릴까요?”
“저를요?”
고개를 끄덕이며 주원은 씩 웃으며 얘기했다.
“네. 배경은 연두랑 아이들로 하구요. 괜찮지, 얘들아?”
“……?”
어안이 벙벙한 표정.
아이들이 힘차게 대답하고 주원은 유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카메라 좀 잠깐 빌릴 수 있을까, 유리야?”
유리는 별 고민 없이 카메라를 건넸다.
명석의 주위로 연두를 포함해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둘러싸인 명석.
‘.. 이게 무슨 상황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 명석을 향해 주원은 포즈를 취하며 얘기했다.
“표정이 너무 딱딱해요. 좀 웃으셔야 할 거 같은데……”
“.. 아.”
그제야 명석은 감이 왔다.
사진을 찍는 거다.
연두와, 시은이와, 레나와, 유리와, 지우와, 월이랑 사진을 찍는 거다.
“흐허허.”
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
얼마 지나지 않아 카메라에서는 두 번째 사진이 인화됐다.
“자, 여기 있습니다.”
사진 속 명석은 행복사하기 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
다시 버스가 출발했다.
기력을 얻어서인지 버스 안은 또다시 시끌벅적했다.
‘지우도 잘 어울리네.’
편한 친구들이라 그런지 평소의 조심스러운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카메라를 보며 꺄르르 웃는다.
그렇게나 즐거운 걸까.
“하하.”
우영이는 혼자 취침 모드에 들어갔다.
어제 꿀잠을 잔 내 시선은 줄곧 아이들을 향하고 있고 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 또다!”
“깜깜해..”
“하나, 둘, 셋, 넷……”
우리는 터널구역에 들어갔다.
터널구역.
따로 있는 말은 아니고 방금 내가 생각해 낸 용어다.
굳이 설명을 덧붙이자면 도로에서 터널이 반복해서 나오는 구간을 뜻한다.
아이들은 터널을 좋아했다.
“삼십삼!”
환해지는 창문 밖.
33초 만에 끝난 걸 보면 이번 터널은 그리 긴 편은 아니다.
그때였다.
무언가 떠오른 듯이 월이가 운을 뗀 건.
“.. 터널.”
“응?”
“너네들 그거 아나.”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도입부였으니까.
“할매가 그랬다. 터널이 끝날 때까지 숨을 참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소원이?”
“그래, 소원. 근데 기회는 하루에 딱 한 번이다.”
한 번 시도하고 나면 두 번의 시도는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최소 하루 동안은.
아이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 그럼.. 월이는 성공해서 소원 빈 적 있어?”
지우의 물음.
아마 소원이 진짜 이루어졌는지가 궁금한 거 같았다.
월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숨 잘 못 참아서 소원 못 빌었다.”
“아.”
“그럼.. 다 같이 해 보자..!”
연두가 번쩍 손을 들었다.
“같이 숨 참아서.. 소원 빌자!”
“좋아!”
“다음 터널 나오면 하는 거야!”
잔뜩 신이 난 아이들.
흥미진진하구먼.
창가쪽에 앉은 나는 빙긋 웃으며 다음 터널이 나오길 기다렸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보인다, 터널! 얘들아, 준비해!”
터널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 터널의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가 관건이긴 했지만 지금으로서 알 방법은 없었다.
시도하는 수밖에.
놀라서 준비하는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나, 둘, 셋!”
“.. 흡!”
암전되는 주변.
그렇게 시작됐다.
소원이 걸려 있는 터널 속 숨 참기 대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