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70)
870화. 방 정하기
터널을 지나는 동안 숨을 참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출처는 월이 할머니.
그에 따라 부산행 버스 내에서 숨 참기 대회가 개최됐다.
참가하는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흡!”
터널에 진입함에 따라 나도 숨을 멈췄다.
왜냐고?
물을 것도 없이 당연히 소원을 빌고 싶어서였다.
아무리 많아도 더 있으면 좋은 게 몇 가지가 있다. 소원도 그중 하나였다.
시끌벅적하던 버스 안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으읍.”
“흡.”
그러나 무언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1초, 5초, 10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슬슬 한계가 오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입을 열 수는 없으니 아이들은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현재 심경을 표현했다.
그중 하나가 손바닥으로 의자 손잡이 때리기였다.
퍽! 퍽!
가장 먼저 위기가 온 건 월이와 레나였다.
월이는 의외였다.
선화초 대표 스포츠맨인 만큼 폐활량도 장난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한계에 다다른 걸 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 못한 이유가 있었군.
퍼퍼퍽!
양손으로 손잡이를 내리치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포기하고 만다.
“.. 파하! 나는 한계다.”
“푸하!”
거의 동시에 레나도 한계를 맞이했다.
울상이 돼서 말한다.
“히잉.. 나 소원 잃었서……”
아직 호흡이 충분한데도 하마터면 실패할 뻔 다.
레나 반응에 웃음이 터질 뻔했으니까.
“.. 푸흣!”
그 피해자가 된 건 유리였다.
“.. 아!”
숨을 쉬어버린 걸 깨달은 유리는 소리쳤다.
“이레나! 너 때문에 웃겨서 숨 쉬었잖아! 더 참을 수 있었는데!
“내가 뭘!”
“숨 쉬었으면 조용히 있어야지 왜 웃기냐구!”
“안 웃겼거든! 나 소원 잃었는데 그거 보고 우서서 벌 받은 거야! 나쁜 미뉴리!”
“뭐라고?”
불이 붙은 두 아이.
숨을 참고 있는 중이라 말릴 수도 없었다.
다행히 유리가 고개를 돌렸다.
“흥! 상관없어! 어차피 이런 거로 소원 이루어질 리 없으니까!”
그러자 월이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할머니가 말했는데……”
“아, 아니……”
의도치 않은 탈룰라.
숨 참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웃음 참기였다.
용케 아이들은 잘 참고 있지만.
‘그나저나 다들 정직하네.’
연두와 지우는 손으로 코까지 틀어막고 있다.
슬쩍 코로 숨을 쉴 법도 한데 반칙을 사용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시은이도 탈락대열에 발을 올렸다.
“하아……”
“터널이 너무 길었다. 맞제?”
“응.”
확실히 터널운이 좋지 않았다.
체감상 30초는 지난 거 같은데 터널은 끝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로써 남은 건 나와 연두, 그리고 지우뿐이었다.
‘버틴다.’
슬슬 숨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지우는 눈을 꼭 감고서 미동도 없이 버티고 있었다.
괜찮은 걸까.
연두는 어떻냐고? 한계가 온 거 같은데도 발을 동동 구르며 버티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갔다.
“.. 으.”
나도 이제 한계였다.
예전에 수영장에서 극한까지 숨을 참았을 때에 느꼈던 감각이었다.
알 수 있었다.
이대로면 앞으로 5초도 버티기 어렵다는 걸.
그래서 연두가 더 대단했다.
‘아까 한계가 왔는데도.’
어떻게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의지력이 장난이 아니다.
꼭 빌고 싶은 소원이 있는 걸까.
하지만……
“.. 파하!”
결국 연두는 못 참고 숨을 내뱉었다.
“안 돼.. 연두는……”
허망한 표정으로 뭐라 말하려는 연두.
나도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숨 참기를 멈추려던 참이었다.
한순간에 창밖이 환해졌다.
파앗-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딱 3초만 더 버텼어도 탈락하지 않고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는데.
“……”
망연자실한 연두의 표정이었다.
***
이걸 어쩐다.
속상해하는 연두에게는 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방금 스쳐지나간 장면이 너무 재미있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연두가 실패한 게 재미있다는 게 아니다.
‘표정이 엄청 리얼했지.’
창문을 타고 환한 빛이 들어올 때 화들짝 놀란 연두의 표정 변화.
1초도 아니었다.
0.1초 간격으로 바뀌는 표정을 나는 봤다.
얼마나 귀엽던지…… 이건 직접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었다.
아니, 잠깐만.
‘다 찍혔잖아.’
생각해보니 우리의 모습을 한순간도 빠짐없이 담고 있는 카메라가 있었다.
다 찍혔을 터였다.
나를 웃게 만든 방금의 장면도.
“.. 후으.”
그리고 지금 나를 웃게 만드는 장면도 말이다.
연두는 침울했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다.
극적으로 미션을 실패했기에 아쉬움과 실망감이 더 큰 거 같았다.
‘지금은 아니겠지?’
어지간해서는 장난을 칠 텐데 지금은 타이밍이 아닌 거 같았다.
아빠는 성공!
이런 식으로 장난쳤다가는 최소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는 연두 눈을 못 볼지도 모른다.
아이들도 입을 모아 위로해줬다.
“괜찮아, 연두야.”
“그래! 서울 갈 때 또 기회 있다! 그때 성공하면 된다!”
“맞아! 나보다 훨씬 잘 참았서!”
비록 레나의 말은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 거 같지만.
나도 위로를 보태기로 했다.
친구들도 다 위로해주는 마당에 아빠가 돼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 거치고 장난칠 궁리 중이지 않았냐고?
‘생각만 한 거지.’
나도 분위기라는 걸 읽을 줄 아는 녀석이었다.
어떻게 속상해하는 딸을 향해 진짜로 짓궂은 장난을 치겠는가.
그런 아빠는 아주 혼쭐을 내줘야지.
“친구들 말이 맞아, 연두야. 또 기회가 있으니까.”
“으응.”
연두는 말했다.
“아빠는 성공했어요..?”
“응.”
“부럽다……”
확연히 처지긴 했다.
그런 연두를 향해 나는 미소를 띠며 물었다.
“꼭 빌고 싶은 소원이 있었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잘 생각해둬.”
“.. 네?”
“아빠는 성공해서 소원권을 얻었으니까. 연두 소원을 아빠가 대신 빌어줄게.”
그러자 연두가 고개를 휙휙 젓는다.
“아니에요! 아빠 소원은 아빠 거니까..!”
다행히 연두는 힘을 내고서 의지를 드러냈다.
“다음에는 꼭 성공할 거에여!”
“하하, 그래.”
나 말고도 성공한 아이가 있었다.
“축하해, 지우야!”
연두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으, 응.”
“지우는 어떤 소원 빌지 정했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지우.
소원은 비밀이었다.
그러나 소원권을 얻은 지우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
숨 참기 대회.
그 이후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던 아이들은 하나둘 잠에 빠져들었다.
이른바 낮잠타임이었다.
마침 잠에서 깬 우영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목적지를 향했다.
“.. 푸흣.”
그러다 문득 옆을 바라본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레나 때문이었다.
긴 앞머리를 마치 암막 커튼처럼 얼굴에 펼쳐두고 잠들어 있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우으..”
잠에서 깨어나는 아이들.
레나도 눈앞에 있는 커튼을 양옆으로 펼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얘기한다.
“얼마나 남았서요?”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빙긋 웃으며 나는 얘기했다.
“거의 다 도착했어.”
정말이었다.
고속도로는 벗어난 지 오래다.
목적지까지 거리를 생각하면 앞으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눈을 번쩍 떴다.
“거의 도착했대, 얘들아!”
“.. 헤.”
“도착이다!”
“그럼 여기 부산이에요, 아저씨?”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 부산이야.”
부산에 도착했다.
다시 텐션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버스가 갓길로 들어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차했다.
“도착했습니다! 아직 안전벨트는 풀지 마시고요.”
“네!”
나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조금 우습긴 하지만 숙소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제 내리셔도 됩니다!”
바로 안전벨트를 풀었다.
아이들도 벨트를 풀고 의자에서 일어선다.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기사님을 향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렸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에 벌어지는 입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기인가요, 아랑씨?”
“네.”
별장이었다.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경관 속에 고즈넉한 한옥 느낌의 별장이 우뚝 세워져 있었다.
놀라운 건 크기였다.
“우와..”
“엄청 커! 버스보다 더 커!”
“예쁘다……”
아이들도 이미 숙소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제껏 내가 누군가의 집을 보고 가장 놀랐던 걸 꼽으라면 독일에 있는 레나네 집 본가에 갔을 때였다.
그건 집보다는 성이었지.
‘규모도 규모지만.’
이국적인 집의 형태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본가가 있는 레나조차 숙소를 세상 설레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준태씨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별장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지금 태연한 건 우영이뿐이었다.
“하암..”
대단한 녀석이다.
그나저나 이 숙소는 확실히 특별했다.
아까 확인해 본 결과 주위 어디로든 손쉽게 이동이 가능한 장소에 위치해있다.
바다든, 시장이든, 그 밖의 명소든.
‘그런데 이런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어.’
일반적인 숙소와는 달랐다.
여기만 놓고 보면 숲속에 지은 별장이라 해도 이질감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숙소를 돈을 내고 이용하려 한다면 1박에 얼마를 내야 할지.
그리고 그건 내 문제였다.
당연했다.
이런 숙소를 공짜로 이용하려는 건 도둑놈 심보였다.
숙소 퀄리티가 내 예상을 한참 상회한다는 게 변수이긴 했지만.
“별장 내 시설은 편하게 이용하시면 돼요.”
주아랑의 말에 혹시나 해서 물었다.
“여기 살고 계신 분은 없는 건가요? 관리해주시는 분이라거나.”
“거주하는 사람은 없고 관리해주시는 분은 있어요. 평소에는 비워뒀다가 한 번씩 이용하는 별장이라서요.”
“……”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돈을 받고 빌려주는 등의 수익활동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말 그대로 별장이다.
부산에 이 정도 규모의 별장이 있는데 그게 단지 휴양의 목적이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휙. 휙.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거나 여기 온 이상 선택지는 없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이용하는 수밖에.
툭.
챙겨온 캐리어를 내렸다.
아이들도 각자 챙겨온 가방과 캐리어를 손에 들었다.
잠깐만.
‘어디 갔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기사님을 제외하면 총인원은 열 명이었다.
그런데 한 명이 부족했다.
그게 누구인지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준태씨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릴 때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고 보니 표정이 미묘하게 평소와 다르긴 했다.
혹시 화장실이 급했던 걸까.
“여기로 들어가면 되죠, 아랑씨?”
“네.”
입구로 들어가니 보이는 건 드넓은 마당이었다.
놀란 나는 그대로 멈췄다.
‘.. 이게 다 뭐야?’
마당이 넓은 건 둘째치고 버스와 마찬가지로 마당에도 카메라가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앉아있었다.
선글라스를 착용한 준태씨가.
“자, 다들 모여주세요!”
늦가을에 선글라스라니.
물론 낄 수도 있지만 준태씨 성격에는 맞지 않았다.
뭔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감이 잡혔다.
‘계획표.’
아랑씨가 보냈던 여행 계획표에는 2박 3일간의 일정이 상세하게 나와있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은 시작점이다.
숙소에 도착한 이후부터 일정이 시작되니까.
캐리어와 가방을 들고서 나란히 선 아이들, 그 옆으로는 나와 우영이가 차례로 섰다.
일정표의 시작이 뭐였더라.
‘맞아.’
떠오르는 동시에 준태씨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방 정하기 미션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첫 미션을 시작으로 부산 여행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