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73)
873화. 귀신이 곡할 노릇
“이, 이겼서..”
“지우야! 연두가 이겼어!”
“우와아!!”
환호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김준태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비록 과정은 험난했지만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
그런 준태의 노력을 알아챈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
아랑은 알아챘다.
김준태가 아슬아슬하게 일부러 게임에서 졌다는 걸.
그리고 또 하나, 준태의 필패법을 완벽하게 간파해낸 존재가 있었다.
바로 카메라였다.
아무리 뛰어난 연기라고 해도 카메라를 피할 수는 없었으니까.
“제법이네요.”
언젠가부터 김준태는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좋습니다! 연두양이 저와의 게임에서 이겼으니 다 함께 숙소를 쓰는 걸 허락하겠습니다!”
“와아!”
지우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고마워, 연두야..”
주원도 미소를 띠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향한 곳은 김준태였다.
‘.. 이건 반전인데.’
그럴 만도 했다.
아랑이 부여한 MC 역할을 김준태는 생각 이상으로 잘 소화했으니까.
수련회 교관처럼 진행하라는 디테일까지.
지금만큼은 평소의 소극적인 김준태가 아닌 MC 김준태였다.
“그럼 빠르게 짐을 옮기고 다시 모이겠습니다! 출발!”
“출발!”
아이들도 MC로서 김준태의 역할에 완전히 적응한 상태였다.
숙소로 달려가는 아이들.
그제야 긴장을 놓은 준태가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후아……”
어떻게든 해냈다.
그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이었다.
“제법인데요?”
그런 준태에게 말을 건넨 건 주원이었다.
“진짜 예능 보는 거 같았어요. 그치, 우영아.”
우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컨셉을 내려놓은 준태는 헤벌레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주원과 우영도 숙소로 발을 옮기고 남은 건 아랑이었다.
조금은 불안한 얼굴로 준태가 말했다.
“괜찮은 거야?”
“뭐가?”
“나 때문에 생각한 구도가 망가진 거 아닌가 해서. 세 명, 세 명으로 나눌 생각 아니었어?”
“괜찮아.”
아랑은 얘기했다.
“오히려 더 좋은 그림이 나왔으니까.”
“.. 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반응을 보니 트롤링을 한 건 아닌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그런 준태의 귀에 들려온 건 짧은 한 마디였다.
“잘했어.”
명백한 칭찬이었다.
***
얼마 후에 아이들이 다시 모였다.
“다 모였습니까!”
“네!”
“이제부터 저를 교관님이라 부르도록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교관님!”
다시 교관에 빙의한 김준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준태는 동경하는 주원에게 칭찬을 받은 것도 모자라 아랑에게 시즌 1호 칭찬을 받은 상태다.
절호조라는 뜻이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두 팀으로 찢어질 겁니다.”
아이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럴 만도 했다.
방금 한 팀이 돼서 좋아했는데 또 팀을 나눈다는 게 이상했으니까.
“이번에는 방을 정하는 게 아닙니다.”
슬슬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계획표에 따르면 저녁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그럼 점심은 어떻게 하냐고?
“지금부터 점심 스스로 해결하기 미션을 시작하겠습니다!”
바로 그게 미션이었다.
여섯 명의 아이들을 장보기팀과 요리팀으로 나눈다.
그렇게 해서 점심 식사를 스스로 해결하는 게 이번 미션이라고 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활동은 그 후에 이루어질 예정이고.
‘예능이니까.’
시간은 충분했다.
예능적인 재미도 잡되 부산의 명소들도 구경하는 거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고 볼 수 있었다.
“자신 있습니까!”
“네!”
월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교관님.”
“네.”
“팀은, 어떻게, 정하나요?”
하마터면 또 컨셉이 무너질 뻔했다.
주원과 같은 이유였다.
월이가 또 혼자만 진지한 표준어를 구사했으니까.
가까스로 웃음을 참고서 얘기했다.
“이번에 팀을 정하는 건 자유입니다. 장보기 팀으로 가고 싶으면 왼쪽으로, 요리팀으로 가고 싶으면 오른쪽으로 이동해주시면 됩니다.”
혼자가 될 걱정은 없었다.
이번에는 시은이가 먼저 움직였다.
“나는 요리팀으로 갈게.”
시은이는 요리에 꽤나 관심이 있었다.
엄마가 요리를 너무 잘해서 할 기회가 거의 없긴 했지만.
“나도 요리하고 싶어! 요리팀으로 갈래!”
레나는 마치 발레를 하듯 핑그르르 돌아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남은 건 네 명이었다.
“나는 장보기 팀. 요리에는 별로 관심 없어서.”
유리는 왼쪽으로 이동했다.
그 뒤에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요리팀과 장보기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건 꽤나 어려운 밸런스 게임이었다.
둘 다 재미있을 거 같았으니까.
“어려워..”
“으, 응.”
그때였다.
월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 건.
“나 요리팀 가도 개안나.”
사실 월이는 고민한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요리팀이 가고 싶었다. 꼭 만들어 먹고 싶은 요리가 있었으니까.
한 자리밖에 남지 않아서 섣불리 나서지 못했을 뿐이다.
“응, 괜찮아!”
오히려 좋았다.
연두와 지우 입장에서는 결정해 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그렇게 팀이 정해졌다.
요리팀은 시은이, 월이, 레나이고 장보기팀은 연두, 유리, 지우였다.
“그럼 맛있는 점심 식사 기대하겠습니다!”
“네, 교관님!”
또 하나의 미션이 시작됐다.
***
아이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먼저 어떤 요리를 할지에 대해서 상의하고 장보기팀은 재료를 받아적었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회의를 마치고 장보기팀이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또 필요한 재료가 떠오르면 어떡하지?”
“걱정하지 마.”
지금이다.
그렇게 생각한 유리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뭐야?”
어깨를 으쓱하며 유리는 말했다.
“이번에 샀어.”
“우아..”
“좋겠다. 우리는 핸드폰 없는데……”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유리는 얘기했다.
“문자도 되고 카메라도 찍을 수 있어. 전화는 당연히 되고. 필요한 재료 떠오르면 연락해. 번호는……”
번호를 불러준 유리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웬걸.
옆에서 듣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계획이 어긋났다.
‘오! 유리 핸드폰 샀니?’
그럼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차단을 풀 계획이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친구들에게 오픈한 거로 만족하는 수밖에.
아쉬움을 안고서 유리는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를 챙겼다.
혹시 촬영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갔다 올게!”
두 팀이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갔다 와! 우리는 요리 준비하고 있을게!”
장을 봐 올 동안에 요리에 필요한 소스를 만들어두는 것도 요리팀의 일에 포함됐다.
조미료를 포함한 기본적인 재료는 있었으니까.
장보기팀 아이들과 동행하는 건 아랑과 우영이었다.
‘우영이 너도 다녀올래?’
그냥 따라가는 건 아니었다.
운전을 비롯해서 촬영까지 겸해야 하는 아랑이었다.
또 한 명의 보호자가 필요하다.
그 역할이 우영이었다.
부우웅.
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마트로 이동했다.
주위에 시장도 있긴 했지만 점심 식재료를 사기에는 마트가 더 맞는 선택이었다.
먼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차 안은 왠지 모를 정적이 흘렀다.
“……”
어찌 보면 당연했다.
운전대를 잡은 아랑과 조수석에 탄 우영.
그리고 아랑과 우영은 말 한 번 섞어보지 않은 초면이나 마찬가지인 사이였다.
둘 다 먼저 말을 거는 타입도 아니었고.
뒷좌석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차라리 연두가 중간에 앉았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우가 중간이었다.
중간에 앉으려던 건 아니었지만, 타고 보니 중간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지우는 세상 뻣뻣하게 앞을 보고 앉아 있었다.
“야.”
그때였다.
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 으, 응?”
“그렇게 앉으면 안 불편해?”
유리는 툭 내뱉었다.
“편하게 좀 앉지?”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러나 유리 특유의 공격적인 말투에 지우는 완전히 쫄아 버렸다.
“그, 그럴게!”
툭.
그런데 자세를 고쳐앉는 과정에서 그만 유리의 팔을 건드려버렸다.
그것도 꽤나 세게.
깜짝 놀란 지우가 말했다.
“미,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그런 지우를 보며 유리가 말했다.
“너 이상하네.”
“.. 어?”
“아무렇지도 않은데 미안하다 그러고. 바보 같아.”
“……!”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게 하는 유리의 독설이었다.
***
장보기팀과 달리 요리팀은 순조로웠다.
주방에 들어간 아이들은 곧바로 요리 준비를 마치고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저씨.”
“네, 셰프!”
평소 초록연두구역의 셰프로 군림하는 주원이었지만 지금만큼은 훌륭한 조수였다.
그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필요한 재료를 공급했다.
“진간장 여기 있습니다! 월이 셰프님.”
“시은 셰프님은 맛술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이야, 역시 셰프님이십니다. 맛술 아무나 쓰는 게 아닌데……”
“레나 셰프님은……”
스물여덟 살 먹은 조수의 재롱에 쿡쿡 웃는 아이들.
시은이가 말했다.
“고마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또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초록연두구역과는 완전히 역전된 입장이었다.
그때는 주원이 셰프이고, 연두와 시은이가 조수 역할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시은이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토독.
한편 월이는 소스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 만드는 건 양념장이었다.
그래서 어떤 요리를 하는 거냐고?
월이가 요리팀에 지원한 건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후릅.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멸치육수를 낸 뜨끈한 국물과 쫄깃쫄깃한 수제비, 간을 맞춰 줄 특제 양념장까지.
쌀쌀한 지금 날씨에 딱 알맞은 음식이었다.
고춧가루와 간장을 포함해 갖가지 재료를 섞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됐다.”
대파만 다져서 넣으면 엄마표 수제비 완성이었다.
수제비는 엄마가 월이에게 자주 해주는 음식이기도 했으니까.
양념장을 만든 후에 월이는 다시 한번 재료를 확인했다.
“수제비가루, 애호박, 당근……”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던 월이가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빼먹은 재료가 있었다.
그것도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식재료였다.
“.. 감자!”
애초에 감자수제비였다.
다른 건 빠져도 감자가 빠진 수제비는 팥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둘러야 했다.
장보기팀이 언제 장보기를 끝마칠지 모르니까.
아까 유리가 한 말이 떠올랐다.
‘필요한 재료 떠오르면 연락해. 번호는……’
번호는 종이에 적어뒀다.
빠르게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낸 월이는 조수를 불렀다.
“아저씨.”
“네, 월이 셰프님!”
의자에 앉아 있던 주원이 벌떡 일어났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필요하신 거 있으신가요?”
“그래.”
조수가 워낙 공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월이도 말을 놨다.
“핸드폰이 필요해.”
“해, 핸드폰이요?”
“응.”
아무리 그래도 이건 권력 남용이 아닌가 싶어 소심한 말대꾸를 해 보려는 참이었다.
월이는 말했다.
“여기 전화해야 해.”
“.. 셰프님. 이건 누구 핸드폰 번호인가요?”
“유리.”
“예?”
“유리 핸드폰 번호야.”
옆에서 레나가 덧붙였다.
“미뉴리 핸드폰 샀서!”
“정말요?”
몰랐던 사실이었다.
주원은 바로 종이에 적힌 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했다.
그리고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엥?”
그런데 이상했다.
통화연결음이 울리지 않고 툭 끊겨버린다.
오류인가 싶어 다시 걸었다.
틱.
또 끊겨버리는 전화.
“저기.. 셰프님.”
“네.”
“아무래도 번호가 잘못된 거 같은데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리가 없었다.
불안한 월이의 표정.
“안 되는데.. 감자 있어야 하는데……”
아직 방법은 있었다.
유리 번호가 아니더라도 우영이나 아랑씨에게 전화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때였다.
김준태가 가까이 다가온 건.
“왜 그러시죠? 뭐가 안 되시나요?”
“하하, 별거 아닙니다. 유리 번호라는데 전화가 안 돼서요. 아무래도 번호가 잘못된 거……
뚜. 뚜.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직 번호를 누르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통화연결음이 들려왔으니까.
옆을 돌아보니 보이는 건 핸드폰을 들고 있는 준태씨였다.
“.. 걸리는데요, 초록님?”
“……?”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