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74)
874화. 오해
“.. 걸리는데요, 초록님?”
“……?”
그럴 리가 없었다.
방금 두 번이나 시도했는데도 먹통이었는데 전화가 걸린다고?
그러나 통화연결음은 분명히 울리고 있다.
뚜. 뚜.
당황한 얼굴로 나는 입을 뗐다.
“잠깐만요, 준태씨.”
준태씨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화면에 떠오르는 번호와 종이에 적혀있던 번호를 대조해 봤다.
완전히 일치한다.
번호에는 오류가 없다는 뜻이었다.
‘내 핸드폰이 고장 난 건가?’
아니, 그럴 리도 없다.
불과 아까 전까지만 해도 다른 통화를 했었으니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내가 벙쪄있는 사이에 통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유리 목소리였다.
당황한 나머지 대답하는 것도 잊고서 핸드폰을 들고만 있었다.
재차 들려오는 목소리.
“여보세요?”
뒤늦게 월이가 내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갔다.
“여보세요.”
“누구?”
“나 월이다. 남궁월.”
우습지만 그 타이밍에 우습게도 영화 명대사가 떠올랐다.
나 하얼빈 장첸이야.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닌데.
“무슨 일?”
“깜빡하고 말 못 한 게 있어서. 지금 어디니?”
월이는 다시 어설픈 표준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또 웃음을 참았겠지만 지금은 왠지 모를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왜일까.
왜 전화가 걸리지 않았던 걸까.
‘번호에 오류는 없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안 걸릴 이유가 없다.
왜 그렇지 않은가.
어떤 핸드폰으로는 전화가 걸리는데, 어떤 핸드폰으로는 안 걸리는 경우가 어디 있어.
아니, 잠깐만.
그런 경우가 있긴 하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는 사이에 월이와 유리의 대화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막 도착했어. 마트.”
내 표정과 상반되게 월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진짜니?”
아무래도 표준어 끝에는 ‘니’를 붙이면 된다고 어디선가 배운 모양이다.
틀린 건 아니다.
감출 수 없는 억양이 문제인 거지.
“다행이다.”
“왜. 뭐가 필요한데?”
“감자.”
월이는 서둘러 필요한 재료를 전달했다.
“감자수제비 만들려 했는데 깜빡하고 감자를 못 말했다. 아니, 못 말했어.”
“감자만 사 가면 되는 거야?”
“잠깐만.”
월이가 옆을 돌아봤다.
“너네는 뭐 필요한 거 없나?”
“나는 괜찮아.”
이미 시은이는 구상이 끝난 상태였다.
빼먹은 것도 없었고.
그런데 레나는 순간 뭐가 떠오른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있서!”
“뭔데? 지금 말해야 된다.”
“아이스크림!”
시은이가 살짝 고개를 돌린다.
“아이스크림은 재료가 아니잖아.”
“후식이야!”
“후식?”
“응! 밥 다 먹고 먹는 거니까 아이스크림도 재료로 사도 돼!”
꽤나 그럴듯한 논리를 앞세우며 레나가 고개를 돌려 준태씨를 바라봤다.
허락을 구하는 제스처였다.
흔들릴 법도 했지만 어느새 준태씨는 교관 모드로 들어간 상태였다.
“안 됩니다.”
철벽이었다.
충격받은 표정의 레나를 향해 준태씨는 얘기했다.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이번 식사 미션의 취지입니다. 아이스크림은 완제품으로 그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허락할 수 없습니다.”
“……”
단호했다.
이미 매뉴얼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답변이었다.
이것도 아랑씨가 일러준 걸까.
고개를 푹 숙이고 레나는 납득한 듯이 대답했다.
“.. 네.”
목소리를 들은 걸까.
핸드폰을 타고 외마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풋.”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유리였다.
“그럴 줄 알았어.”
“뭐?”
“근데 실망할 필요 없어. 어차피 아이스크림은 사도 된다고 해도 안 살 생각이었으니까. 바보 이레나.”
아까 ‘바보 미뉴리’에 대한 복수인 걸까.
부글부글.
레나 머릿속이 주전자처럼 끓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나도 네가 사 오는 아이스크림 안 먹을 거거든!”
시골에서 조금 관계 개선이 되는 듯했으나 금세 원래대로 돌아온 두 아이였다.
이쯤 되니 이게 더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자주 다툰다고 안 친한 건 아니니까.’
그런 거라면 나랑 친구 녀석들은 철천지원수였어야 한다.
유리랑 레나 관계도 그런 거겠지.
열을 올리는 레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유리는 말했다.
“어쨌든 감자만 추가로 사 오면 되는 거지? 있으면 지금 말해. 나중에 얘기하면 사고 싶어도 못 사니까.”
“다 말했다. 감자만 사면 되니. 아니, 돼.”
이건 못 참았다.
임기응변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틀어막고 웃긴 했지만.
‘감자만 사면 되니’는 뭔데.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가.’
그래서일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어. 근데 너.”
“응.”
“그렇게 말하는 거 그만해 줄래?”
고개를 갸웃하는 월이가 향해 덧붙인다.
“서울말 하는 거 이상해. 그냥 너처럼 얘기해. 그게 어울리니까.”
“……”
결국 터졌다.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묵직한 돌직구를 날리는 유리였다.
***
“그럼 끊는다.”
달칵.
끊기는 전화.
세상 충격받은 얼굴로 월이가 끊어진 핸드폰 화면을 바라본다.
아이들도 준태씨도 당황한 표정이다.
수습은 우리 몫이었다.
“저기.. 월이 셰프님?”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월이가 착잡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 그렇게 이상합니꺼.”
어미에 ‘니꺼’를 붙이는 건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였다.
이걸 어쩐다.
바로 사투리로 돌아온 걸 보니 유리의 말에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나는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색할 수는 있으나 내 기준에서 월이가 쓰는 표준어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귀엽다고 생각하는데.”
“예?”
“월이가 쓰는 표준어.”
진심이었다.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것도 귀여워서 그런 거니까.
앞으로 못 듣게 된다고 하면 엄청 아쉬울 정도다.
그리고……
“연두가 말한 것처럼 아저씨도 월이가 꼭 표준어를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사투리도 멋지고 매력 있으니까. 근데 월이가 표준어를 쓸 줄 알고 싶은 거면……”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좀 이상하면 어때.”
“……”
“처음부터 잘하는 게 어디 있겠어. 어색하더라도 그렇게 계속 말해야 느는 거지. 안 그래?”
옆에서 시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탠다.
“아저씨 말이 맞아. 그러니까 민유리 말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걔도 진짜 이상해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사투리도 충분히 좋은데 왜 굳이 서울말을 쓰려고 하냐는 의도로 말한 걸 테니까. 월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언변이 더 늘었다.
과장이 아니라 이제는 시은이가 나보다 더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거 같다.
지금도 열심히 소스를 조리하고 있고.
레나도 말을 보탰다.
“맞아! 나도 한국인인데 한국말 못 해! 그래서 시옷 발음 못한다고 김민우가 맨날 놀렸서. 어린이집에서는 초등학교 가면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도 못해! 헤헤..”
레나식 위로였다.
심지어 그 위로의 말조차도 시옷 발음이 완벽하게 새고 있다.
레나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 이 발음은 영원히 고치지 않았으면 한다.
무진장 귀여우니까.
그런데 그 레나식 위로가 상당한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 흣.”
어느새 월이의 얼굴에 착잡함은 사라지고 웃음기가 가득 차올랐다.
“뭐고, 그게. 와 이리 웃기노.”
돌아온 분위기.
꽁냥대던 아이들, 아니 세 명의 셰프님들은 다시 조리를 시작했다.
***
아이들 문제는 해결했으니 이제 내 착잡함을 해결할 차례였다.
“준태씨.”
한쪽으로 빠져서 준태씨와 대화를 나눴다.
보이지는 않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 대화를 나누는 내 표정은 꽤나 심각할 거라는 걸.
“만약에 말이에요.”
“네, 초록님.”
“다른 사람 폰으로는 전화가 걸리는데 제 폰으로는 전화가 안 걸린다면 그건 어떤 경우일까요? 제 폰이 고장 났다는 경우의 수는 제외하고요.”
경우의 수가 한 가지 있긴 했다.
그럼에도 준태씨에게 물어보는 건, 혹여나 다른 경우의 수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더 정확히는 있길 바라서.
조금 생각하던 준태씨는 천천히 입을 뗐다.
“두 가지 중 하나일 거 같은데요.”
“두 가지요?”
희망의 불씨가 생겼다.
두 가지라고 한다면 내가 생각한 것 말고 하나가 더 있다는 거니까.
“그게 뭔데요?”
내 이야기라는 걸 눈치챈 걸까.
하기야 다 지켜보고 있었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나랑 유리 얘기라는 건 알아챘겠지.
그래서인지 조심스레 답한다.
“하나는 상대가 초록님 번호를 차단했을 경우고요.”
“.. 네.”
그렇다.
이게 내가 생각한 경우의 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가 걸리지도 않고 끊겨버리는 경우의 수는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유리가 나를 차단했다는 것.
‘근데.. 왜?’
만약 그렇다면 의문이었다.
보아하니 핸드폰을 산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거 같다.
그렇다면 거의 핸드폰을 사자마자 나를 차단했다는 건데…… 도대체 그럴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허나 그 가능성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달리 떠오르는 경우의 수가 없는 데다가 걸리는 게 있었으니까.
‘마지막 통화 때.’
왠지 모르게 유리 목소리가 엄청 풀이 죽어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고분고분 대답만 했고 그 후로는 전혀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지.
버스에서도 그랬다.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어쩌다 눈을 마주치면 피해버리기 일쑤였다.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유리가 진짜 나를 차단한 거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전부 의도된 거라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유리한테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눈도 안 마주치고 핸드폰을 사자마자 차단할 정도라면 굉장히 큰 잘못인 거 같은데.
부디 착각이길 바랐다.
“또 하나의 경우의 수는요?”
그런 마음으로 물었다.
나를 향해 준태씨는 두 번째 경우의 수를 이야기했다.
“반대로 초록님이 차단한 번호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두 번째 경우의 수는 내 핸드폰이 고장 났다는 것보다도 더 가능성이 없었다.
왜냐고?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왜 유리 번호를 차단한단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무슨 수로 유리가 개통한 핸드폰 번호를 알고 차단한단 말인가.
핸드폰을 샀다는 것도 방금 알았는데.
“..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도움이 못 된 거 같네요.”
“아니에요.”
준태씨는 최선을 다했다.
두 번째 경우의 수를 들으니 흩어져있던 퍼즐이 완전히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비록 그게 안 좋은 방향이긴 했지만.
“고마워요.”
이제는 거의 확신했다.
알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나는 유리에게 번호를 차단당했다.
아마 개통 이후 1호 차단이 아닐까.
“……”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려 한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내가 누군가를 차단하는 기준은 하나였다.
‘악질 중의 악질.’
나는 그런 녀석만 차단한다.
남을 등쳐먹으려 하는 스팸이라거나, 장난 전화를 하는 녀석이라거나, 장난 문자를 보내는 녀석 등등.
대체 나는 언제 유리한테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좋았었는데……’
유리와의 좋았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부디 나는 모르는 유리에게 저지른 실수가 용서받을 수 있는 잘못이길 바라며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착잡한 시간이 흘러갔다.
***
쌓이는 오해.
아무것도 모르는 유리는 전화를 끊고서 생각했다.
‘.. 물어볼 걸 그랬나.’
이상한 사투리를 지적하느라 아저씨가 옆에 있는지 슬쩍 물어보려던 걸 깜빡해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그걸 물어보려 다시 전화하기도 그렇고, 마트에 도착한 상태였으니까.
차에서 내린 아랑이 뒷문을 열어줬다.
“조심해서 내리세요.”
차례로 내리는 아이들.
연두, 지우, 그리고 유리 순이었다.
우영이는 이미 차에서 내려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꽤 크네. 부산의 마트도.”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부산사람이 들으면 상당히 발끈할 혼잣말이었다.
무려 최대의 항구도시인 부산인데.
“우영이오빠!”
“얼른 와라, 땅콩.”
달려가는 연두.
유리가 뒤따라 걸어가며 뒤를 돌아봤다.
“야.”
“으, 응?”
화들짝 놀란 지우를 향해 말한다.
“빨리 와. 길 잃어버리면 안 찾아준다?”
유리식 챙기기였다.
지우가 서둘러 발을 옮기며 얘기한다.
“가, 갈게!”
다시 돌아서 걷는 유리.
그리고 가장 맨 뒤에서 카메라를 들고 네 사람의 뒷모습을 담는 사람이 있었다.
아랑이었다.
이미 가게에 전화해 촬영 허가를 받아둔 상태였다.
“아랑 편집자님! 빨리 오세여..!”
손을 흔드는 연두.
살짝 멈칫한 아랑이 걸어가며 대답했다.
“네, 따라가겠습니다.”
“히히.”
스르륵.
열리는 가게 문.
우영과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뒤따라 아랑도 가게 안으로 발을 옮겼다.
장보기팀 활동 개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