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77)
877화. 시크릿 미션
부산에서의 첫 식사가 시작됐다.
메뉴는 월이표 감자수제비와 우영이가 생사를 오가며 만든 해물파전.
‘분위기가 딱 잡히네.’
마당 테이블에서 식사하기로 한 건 탁월한 선택인 거 같았다.
운치가 있다고 해야 하나.
냄비째로 들고 와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제비지만 호호 불어가며 먹을 필요가 없었다.
왜냐고?
숟가락으로 잠깐 들고 있기만 해도 선선한 바람이 식혀주니까.
후릅.
큼지막한 수제비 하나를 국물과 함께 올려서 5초가량을 세고 인정사정없이 입 안에 넣는다.
그야말로 극락의 맛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빼놓을 수 없는 주연 중 하나인 감자까지 입 안에 넣어준다.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식감.
“.. 진짜 맛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너는 뭔데 은근슬쩍 숟가락을 얹고 있냐고.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지.’
조수로서 셰프님들의 손발이 되어 쉴 틈 없이 일했다.
그 보상으로 수제비 한 그릇 정도는 먹을 수 있는 거 아닌가?
해물파전은 덤이고.
찌직.
젓가락으로 슉슉 찢어서 시은이가 만든 특제 양념장에 콕 찍어서 입 안에 넣는다.
“……!”
눈이 번쩍 뜨이는 맛.
겉바속촉 그 자체, 아니 잡채였다.
반죽을 봤을 때 파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오징어랑 새우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하구나.’
확실히 토핑은 많았다.
반죽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쪽파와 해물이 도배되어 있었으니까.
오히려 그 투머치함이 좋았다.
바삭바삭 코팅된 파와 해물이 입 안에서 다양한 식감을 내며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
“기가 막히네.”
절로 나오는 찬사.
나름 미식가임을 자부하는 내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제비 진짜 맛있서……”
“응, 응.”
“해물파전도! 새우랑 오징어 진짜 많아서……”
밝은 표정의 요리팀.
모두가 협동해서 완성한 식사인 만큼 맛도 뿌듯함도 배가 되는 느낌이다.
숟가락을 얹은 게 나뿐만은 아니었다.
“아랑 편집자님도 드세여..!”
“교관님도요!”
어느새 아이들은 김준태를 교관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저는……”
아랑씨는 사양하려는 듯 보였으나 그릇에까지 떠주는 걸 거부하지는 못했다.
준태씨도 마찬가지였다.
“.. 그럼 잘 먹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미션 성공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맛 평가를 위해서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이 길었다.
한 입 먹고서 교관으로서 위엄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 표정이 떠오르긴 했지만.
“맛있서요, 교관님?”
“.. 맛있습니다.”
“히히.”
거짓말은 못 하는구나.
한편 아랑은 누가 봐도 교양 넘치는 모습으로 수제비를 떠먹고 있다.
입에 맞는 거 같아 다행이다.
슥.
옆을 보니 우영이는 해물파전을 공략 중이다.
괜히 말을 붙여봤다.
“맛있어, 우영아?”
잠깐 정지한 우영이가 파전을 가져가며 말한다.
“파전 맛있네요. 누가 만든지 모르겠지만.”
실소가 나왔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자기 공적을 이야기하는 녀석을 보니.
그러자 들려오는 레나의 웃음 섞인 목소리.
“.. 흣. 우영이오빠 도망갔서요.”
“뭐?”
“기름 무서워서 도망갔는데 진짜 웃겼서……”
천진난만하게 일침을 꽂는다.
갑작스레 디스를 당한 우영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한다.
“도망이라니.”
시작됐다.
이렇게 디스를 당할 때면 우영이의 정신연령은 잠깐 동안 일곱 살 정도로 회춘하니까.
맞는 표현인가, 회춘이.
“기름은 누구한테나 무서운 법이야. 셰프라고 기름이 안 무서울 거 같아? 무서워. 그 무서움을 견디고 나는 파전을 뒤집었고. 그걸 어른이라고 하는 거야.”
정말 어른답지 않은 모습이다.
의외로 납득하는 건지 레나는 입을 헤 벌리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일까.
우영이는 멈추지 않았다.
“기름이 끓는점이 몇 도인지 알아?”
대답을 듣기도 전에 덧붙인다.
“모르겠지. 꼬맹이니까.”
“……”
발끈한 걸까.
정적 속에서 레나는 한참 후에야 입을 뗐다.
“끓는 점? 점이 왜 끓어요? 점은 뜨겁지 않은데.. 그런데 기름은 뜨겁고……”
“……”
레나식 화법에 정신을 못 차리는 우영이였다.
***
식사가 끝났다.
점심 식사 미션은 대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지금 드는 포만감과 만족감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교관도 공인했다.
“축하합니다. 점심 식사 미션 성공입니다!”
“와아!”
환호하는 아이들.
그런 와중에 레나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하긴 그랬다.
감자 건으로 유리에게 전화했을 때부터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던 레나였다.
교관에게 단칼에 거절당하긴 했지만.
‘땡기긴 하네.’
별로 디저트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입가심할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이스크림 같은.
아이들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뭐, 어쩌겠는가.
준태씨가 야박한 교관인걸.
‘나만 아니면 돼.’
미움받는 게 나만 아니면 상관없었다.
그런 거치고 유리에게 제대로 미움받고 있는 거 같긴 하지만.
그때였다.
“저는 여러분이 얼마나 미션을 잘 수행하는지에 따라 천사가 될 수도, 악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멘트가 등장했다.
학창 시절 수련회만 가면 교관들이 하나같이 입 밖에 뱉던 극혐멘트가.
천사는 개뿔.
내 기억에 언제나 교관은 악마였다.
‘그 와중에 악마는 악당으로 순화했네.’
궁금하긴 했다.
이 타이밍에 이런 멘트를 입 밖에 뱉는 이유가 뭔지.
“여러분은 점심 식사 미션을 훌륭하게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해주기까지 했죠.”
잠깐만.
슬슬 감이 왔다.
“그러니 미션 성공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동시에 등장했다.
아이들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보상의 정체가.
아이스크림이 아니었다.
“.. 빙수다!”
그렇다.
보상의 정체는 빙수였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애플망고가 토핑된 빙수.
얼핏 보기에도 웬만한 아이스크림은 명함도 못 내미는 비주얼이었다.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빙수 가게에서 공수해 온 애플망고 빙수입니다.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다 계획이 있었구나.
아마 아이스크림을 사지 못하게 할 때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명분은 충분했다.
미션은 훌륭하게 성공했으니.
“후아아……”
숟가락을 들고 행복에 젖은 레나의 표정.
준태씨는 악마 교관이 아니었다.
필요할 때는 제대로 된 당근을 건넬 줄 아는 합리적인 교관이었다.
본체는 아랑씨일지도 모르지만.
“잘 먹겠습니다!”
미션 성공 보상은 세상에서 제일 달콤했다.
***
숙소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부산까지 와서 숙소에 박혀 있을 수는 없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조금 거창하긴 하지만 지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바다와 땅.
명확하게 경계를 나눠둔 건 아니지만 바다에 관한 일정은 내일이었다.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해산물을 공략하는 건 내일이지.’
그럼 오늘 저녁 식사는 뭐냐고?
다들 감이 올 거라 생각한다.
부산하면 바로 떠오르는 음식 중 하나니까.
‘돼지국밥.’
방금 식사했는데 벌써 저녁 식사 얘기를 하는 건 조금 돼지 같으니 이쯤 하기로 하고.
어쨌거나 오늘은 여행 첫날이었다.
내일이 바다에 관한 일정이라면 자연히 오늘은 그 반대가 된다.
그렇다.
부산의 거리였다.
부산의 거리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영화 ‘친구’와 장동근과 유오성의 우정이 떠오른다면 그 생각은 부디 접어두길 바란다.
그런 거리 감성이 아니다.
부산에는 감천문화마을이라는 명소가 있었다.
‘사진을 보고 완전히 매료됐지.’
이유는 간단했다. 마을이 너무 예뻤다.
톡톡 튀는 색감의 낮은 건물들이 미로처럼 줄지어있는데, 특히나 파란 지붕이 마을의 마스코트였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하나였다.
‘무조건 가야 한다.’
손이 간질거렸다.
막 찍어도 화보가 나올 장소라는 걸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봄에 이든 촬영지로 택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가는 길이 설렜다.
실제로 보는 마을의 풍경은 어떨까.
“.. 와.”
차를 세우고 높은 고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순간.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찰칵.
연신 셔터를 눌렀다.
미술관에 갈 필요가 없었다.
이 마을 자체가 미술이었으니까.
“유리야.”
“네?”
“꺼낼 때가 올 거 같은데? 카메라.”
생각해 보니 버스에서 카메라를 줄 때 몇 마디 주고받긴 했구나.
내 말에 유리가 카메라를 꺼낸다.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사진에 정답은 없으니까.’
물론 오답은 있다.
세연씨가 찍는 사진 같은 경우가 오답에 해당한다.
그러나 유리의 필름카메라 촬영에 훈수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유리의 감성을 보고 싶으니까.
서투르더라도 그 서투른 손끝이 만들어낼 감성을 보고 싶었다.
여행이 다 끝난 후에 말이다.
찰칵.
옆에서 들리는 촬영음.
내가 못 본 게 없다면 아마 부산에서의 두 번째 촬영이 아닐까.
“진짜 예쁘다. 그치, 얘들아.”
“네에.”
“저기 내려가는 길 있어요!”
“어디?”
“저기 계단이요!”
계단을 통해 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모양이다.
미로 같은 마을을 탐험하는 느낌이라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었다.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다웠다.
‘가까이서 볼 때는 어떨까.’
답을 알 거 같긴 하지만 역시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가볼까?”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나는 직감했다.
여기가 우리 일행의 갈림길이 될 거라는 걸.
그도 그럴 게 다 같이 이동하기에는 인원이 너무 많았다.
‘아이들만 해도 여섯 명이니까.’
어른까지 합하면 열 명이다.
좁은 길이 나오기라도 하면 거리를 꽉 채울 정도의 인원이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준태씨는 입을 뗐다.
“다들 주목해주세요.”
주먹가위를 통해 다시 두 팀으로 나뉘었다.
무려 열세 번의 엇갈림 끝에 주먹 셋 가위 셋으로 갈렸다.
연두와 유리, 월이가 한 팀이고 시은이와 레나, 지우가 한 팀이었다.
“잠깐만요.”
내가 손을 들었다.
“저랑 우영이는 깍두기인가요?”
해야 할 질문이었다.
이래서야 나랑 우영이가 어느 쪽에 껴야 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준태씨와 아랑씨도 마찬가지고.
“아닙니다.”
준태씨는 말했다.
“지금 서 있는 쪽과 한 팀이 되면 됩니다. 그럼 초록님과 우영씨는 연두 유리 월이 팀이, 저랑 아랑씨는 시은 레나 지우 팀이 되겠네요.”
“간단하군요.”
“이번에도 미션이 있습니다.”
내적 웃음을 지었다.
이 미션에 대해서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각 팀은 마을을 탐험하며 사진을 찍어오는 겁니다. 누가 더 멋진 사진을 찍는지 승부입니다.”
바로 사진 대결이었다.
웅성거리는 아이들.
“재밌겠다……”
“이번에도 이기면 보상 있을 거야! 빙수보다 더 큰 보상일지도 몰라!”
“꼭 이기자!”
“미뉴리한테는 절대 안 져!”
“흥. 누가 할 소리를.”
앙증맞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귀여운 신경전을 하는 아이들.
짐짓 모르는 척 의문을 제기했다.
“사진에 대한 평가는 누가 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 공정한 심사위원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얼마나 공정할지 기대가 되네요.”
나는 능청스레 덧붙였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뭐가 말이죠?”
“사진 미션에 있어서 제 존재는 반칙일 텐데……”
이건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짜 자신감이었다.
내 목에는 카메라가 걸려 있고 그 안에 담을 대상은 무려 연두와 유리, 그리고 월이다.
게다가 완벽한 배경까지 준비되어 있다.
‘모델은 상대도 밀리지 않지만……’
속된 말로 짬밥이 있었다.
연두 전담 사진작가와 이든 사진작가로서 다져진 내공이 있다는 거다.
사진 미션에서 내 존재는 치트키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줄곧 묵묵히 일을 수행하던 아랑이 입을 뗐다.
“네?”
“사진은 제 전문 분야이기도 하니까요.”
“……?”
머리가 띵했다.
이렇게 내 전문 분야에 겁 없이 맞불을 놓는 용자가 있을 줄이야.
효과는 굉장했다.
내 승부욕에 제대로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으니까.
“하하, 잘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죠.”
그 상황이 재미있는지 준태씨가 웃으며 입을 뗐다.
“좋습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네!”
“그 전에 잠깐!”
끝이 아니었나?
이목을 집중시킨 김준태 교관은 말했다.
“모두에게 얘기해 둘 게 있습니다!”
“뭔데요?”
씩 웃으며 김준태는 파격 발언을 내뱉었다.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어진 개별 미션을.”
“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도 놓치지 마세요!”
쿡쿡 웃는 아이들.
아무래도 나는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미션이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