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78)
878화. 멘탈공격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어진 개별 미션을.”
“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도 놓치지 마세요!”
쿡쿡 웃는 아이들.
아무래도 나는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미션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전부 웃고만 있는 건 아니다.
연두와 레나는 생긋 웃고 있지만, 지우는 왠지 모르게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시은이는 포커페이스를 유지 중이고.
‘다들 주어진 미션이 다른 건가?’
생각해보니 당연하다.
개별미션이라 했는데 같은 미션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일단 나는 개별적으로 미션을 받은 게 없었다.
“우영아.”
“네.”
“너 미션 받은 거 있어?”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우영이가 허공을 응시하며 입을 뗀다.
“아니요.”
“……!”
어색했다.
그냥도 아니고 굉장히 어색했다.
우영이까지 시크릿 미션이 있다는 건 오로지 나만 주어진 미션이 없다는 걸 뜻한다.
나는 손을 들고 말했다.
“너무한 거 아닌가요!”
“뭐가 말이죠?”
“저만 미션이 없는 거 같은데요?”
서러워서 살겠나.
그런 나를 향해 준태씨는 얘기했다.
“초록님은 깍두기입니다.”
“깍두기요?”
“미션이 없는 대신 좀 더 다른 사람의 미션에 집중할 수 있겠죠. 맞히는 개수에 따라 따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대충 알겠다.
그러니 내 역할은 탐정이라고 봐도 되겠군.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깍두기보다는 낫잖아.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준태씨는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의 눈을 피해 비밀미션을 수행해주셔야 합니다. 하루가 끝나는 시점에 모두의 미션을 공개할 겁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미션을 수행한 분에게는 보상이 주어질 겁니다.”
완전히 이해했다.
그러니 개별미션이라는 건 비밀스럽게 수행해야 하는 말 또는 행동이 되겠지.
미션을 수행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미션을 파악해야 한다.
‘나는 밝혀내기만 하면 되고.’
재미있을 거 같다.
지금까지가 준비운동이었다면 진짜 예능다운 예능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탐정으로서 활약할 자신은 있었다.
왜냐고?
‘메커니즘은 간단해.’
아이들을 주시하다가 평소와 다른 말이나 행동을 하는 모습을 포착하면 된다.
그게 곧 정답이 될 테니.
내 눈을 피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히히.”
“재밌겠다……”
“내 미션은 아무도 못 맞힐걸?”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미션을 수행할 생각에 설레하는 반응부터, 미션 성공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반응까지.
이제 지우가 보인 반응도 이해가 갔다.
개별 미션인 만큼 개개인에 따라 맞춤으로 미션이 주어졌을 테니까.
‘수행하기 쉽지 않은 거겠지.’
그래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거 아닐까.
뭐, 곧 알게 되겠지.
레나는 생긋 웃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 중인 시은이를 바라봤다.
“난 시은이만 볼 거야!”
그 말에 시은이가 나지막하게 입을 뗀다.
“미션이야?”
“응?”
“내 눈 보면서 나만 볼 거라고 말하는 거.”
화들짝 놀란 레나가 뒷걸음질 친다.
“아, 아니야!”
반응을 보니 아닌 거 같긴 하다.
그러나 시은이의 말은 확실히 경각심을 심어줬다.
미션은 이미 시작됐다는 거.
“흐흐.”
나는 소리 내어 웃으며 연두를 향해 말했다.
“아빠 눈을 피할 수는 없을걸……”
침을 꼴깍 삼키는 연두.
그렇게 시크릿 미션을 안고서 마을 탐방이 시작됐다.
***
마을 탐방이 시작됐다.
갈림길.
왼쪽으로 향한 건 시은이와 레나, 그리고 지우가 있는 팀이었다.
“카메라는 네가 들어.”
“응.”
역할 분담은 스무스하게 이루어졌다.
소위 말하는 카메라맨 역할은 김준태로 교체되고, 아랑은 사진작가 역할을 맡았다.
주원과의 대결 구도도 있었으니까.
슥.
이번에도 아이들은 주도적으로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게 감천문화마을 스탬프 지도도 시은이의 손에 들려 있었으니까.
리드하는 건 시은이의 몫이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거든?”
“응.”
“이 길을 따라 쭉 가서 여기서 만나는 거야. 지도에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와있어.”
각 팀의 코스가 다른 것도 재미있는 점이었다.
잔뜩 신이 난 레나.
“빨리 가자! 빨리!”
반드시 시은이 미션을 간파해 내겠다는 의지는 벌써 사라진 상태였다.
그저 신이 난 모습이다.
시은이는 웃으며 그런 레나의 모습을 바라봤다.
‘아쉽네.’
안타깝게도 시은이 미션은 지금은 수행할 수 없는 미션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같이 가, 레나야.”
지우 손을 잡고 시은이가 레나 뒤를 쫓았다.
첫 코스는 ‘작은박물관’이었다.
감천의 옛 사진과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마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말 그대로 ‘작은’ 박물관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피난민의 삶의 터전으로 처음 자리잡은 곳으로……
레나와 달리 이런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시은이였다.
한 번 눈에 들어온 건 꼭 알고 넘어가야 하니까.
“‘모든 길이 통하는 미로 같은 골목길과 벽화들, 그리고 파란 지붕이 감천문화마을의 상징이다’.”
마을이 예쁜 이유가 있었다.
마을의 특색과 역사적 가치를 살리기 위해 지역 예술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옆에서 함께 보던 지우가 짤막한 감상을 뱉었다.
“.. 멋지다.”
“응?”
“전쟁은 아프고 힘든 거잖아.. 그런데 그 아픔을 이겨내고 이렇게 예쁜 마을을 만들었다는 게 멋져서……”
고개를 끄덕이는 시은이.
지우와는 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나는 진작에 혼자 앞으로 가서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이런저런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다.
반짝이는 눈으로.
“예쁘다……”
옛날 물건이라고 고리타분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오히려 더 예뻤다.
그 모습들을 담으며 준태는 중얼거렸다.
“힐링되네..”
교관의 직분은 잠깐 벗어던진 채로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다.
박물관 자체가 마음의 안정을 주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미소가 번졌다.
신기할 정도였다.
‘특별한 말도 아닌데.’
순수함 때문일까.
아이들의 사소한 감상들이 마치 ASMR처럼 속삭이듯 귀에 들어온다.
박물관을 나섰다.
골목에 들어서니 나오는 벽화들.
“우와……”
벽화 제목은 골목을 누비는 물고기였다.
그 제목처럼 벽을 따라 거대한 물고기가 독특한 모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아랑은 놓치지 않았다.
찰칵.
따로 포즈를 지시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런 사진은 자연스러움이 느껴질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
“지, 진짜 크다..”
“응.”
“우리 세 명 합친 것보다도 더 커.”
“아랑 편집자님이랑 교관님까지 합쳐도 더 클걸?”
“서 보자, 우리!”
행동력 하면 레나였다.
“교관님! 편집자님!”
“네?”
“자, 잠깐만……”
둘의 손을 잡고 끌고 와서는 물고기를 따라 나란히 선다.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진짜 물고기가 더 크다!”
물고기가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한 레나는 미련 없이 발을 옮겼다.
그러나 곧이어 오르막길이 등장했다.
“헉..”
“너, 너무 높아……”
꽤나 긴 행진이었다.
준태도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체력 뭔데……’
아랑은 놀라울 정도로 태연했지만.
그렇게 긴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니 등장한 곳은 하늘마루라는 장소였다.
“여기야, 시은아?”
“응.”
하늘마루는 전망대였다.
“여기 올라가면 감천문화마을이랑 감천항, 용두산이랑 부산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대.”
이윽고 올라선 전망대.
그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정말이지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괜히 전망대가 아니었다.
처음 내려다본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으니까.
“우와……”
“연두는 이거 못 보겠지? 월이랑 미뉴리도.”
“아마도.”
“아, 아쉽다.. 다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으응.”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이 레나가 입을 뗐다.
“사진!”
“응?”
“사진 예쁘게 찍어서 보여주자! 사진 많이 찍어서 보여주기로 햇스니까!”
아이들이 모여든 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아랑 곁이었다.
“편집자님……”
아이들의 눈빛에 아랑은 무심하게 앵글 안에 전망대의 풍경을 담았다.
이어지는 셔터음.
찰칵.
사진을 본 시은이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저씨와의 승부에서 편집자님이 이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
연두와 유리, 월이, 그리고 나랑 우영이가 속한 팀.
우리는 오른쪽 길이었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선물처럼 우리를 반기는 녀석이 있었다.
“컹!”
강아지였다.
자그마한 주제에 제법 야무지게 짖는다.
“강아지다.. 귀여워……”
“우리 보고 짖는데?”
“개안타.”
월이의 말에 유리가 미간을 찡그리며 묻는다.
“괜찮은지 어떻게 알아? 물 수도 있잖아.”
“우리 할미 집에서 키우는 황구랑 똑같이 생깃다. 황구는 안 문다.”
“흥. 똑같이 생겼다고 안 무니?”
길이 좁은데 그 중앙에 우뚝 서 있어서 지나갈 수가 없었다.
잠깐 아이들을 멈춰두고서 강아지를 향해 걸어갔다.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다.
‘무서운 건 나뿐인가.’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하는 몸빵이다.
무는지 안 무는지 확인해보는 거다.
가까이 다가가서 웅크려 앉아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우쭈쭈.”
다행히 녀석은 내 손에 얼굴을 비볐다.
목에 뭐가 걸려있는 걸 보니 키우는 강아지인 거 같았다.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옆에서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바둑이.”
“예?”
“갸 이름. 바둑이.”
강아지 이름이 바둑이라는 모양이다.
“바둑이 안 무나요?”
“안 물어.”
그제야 안심한 나는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조심스레 다가오는 아이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경계심을 품고 바둑이를 쓰다듬었다.
유리도 뒤늦게 손을 얹었고.
찰칵.
뜻하지 않게 좋은 사진을 건졌다.
귀여움 더하기 귀여움이 치트키라는 건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니까.
각오해라, 주아랑.
이렇게 나는 한발 앞서간다.
“헤헤.. 바둑아.”
눈이 즐거운 건 덤이었다.
바둑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길을 따라 이동했다.
예쁜 집들이 줄지어있다.
거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풍경들.
그런 와중에 등장했다.
“오오!”
연예인을 잘 모르는 나지만 모를 수가 없는 두 얼굴이 건물 외벽에 그려져 있었다.
‘BTS’의 두 멤버였다.
여기도 한류의 영향이 미친 걸까.
“우영아, 비티에스!”
“아.”
시큰둥한 반응에 혹시나 해서 물었다.
“모르는 거 아니지?“
“알죠, 빌보드.”
이어지는 말이 문제였다.
“저 사람들이 비티에스예요?”
괜히 주위를 둘러본 나는 대답했다.
“괜찮아. 편집하면 되니까.”
“……?”
“얘들아!”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여기 오빠야들이랑도 한 장 찍자!”
승부에서 이기려면 조금은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
이 사진을 찍음으로써 나는 ‘BTS’의 팬덤인 ARMY(군대 아님)를 등에 업을 수 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말이 그렇다는 거니까.
찰칵.
사진을 남기고 다시 이동했다.
다음 장소까지는 얼마간 행군이었다.
자연히 대화 주제는 정해졌다.
“우영아.”
“네.”
“너 미션 뭐냐?”
귀를 기울이는 아이들.
또다시 로봇 말투가 등장한다.
“없다니까요.”
“너 그 정적이랑 로봇 같은 말투에서 누가 봐도 티 나거든? 그리고 미션 자체는 비밀이 아니야. 안 들키기만 하면 되는 거지.”
“로봇 말투가 미션이에요.”
이 녀석이 어디서 되지도 않는 페이크를.
그런데 옆에서 연두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한다.
“우영이오빠! 미션 말하면 어떡해요..!”
“.. 너 바보냐.”
그만 웃음이 터졌다.
이런 페이크도 상대의 순수함을 이용하면 쓰기에 따라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겠군.
참고해야겠다.
“그래서 땅콩. 너 미션은 뭔데?”
“비, 비밀이에요.”
“그래. 비밀 해라. 어차피 넌 뭘 해도 티나니까.”
“우영이오빠 미션은 연두가 맞힐 거예요..!”
신경전이 벌어진다.
나는 웃으며 반대쪽에서 걷고 있는 유리를 향해 말했다.
“아저씨는 유리 미션이 궁금한데?”
“……!”
당황하는 표정.
아까도 느꼈지만 꽤나 어려운 미션이 걸린 게 틀림없다.
그러자 월이가 입을 뗀다.
“내는 자신 있다.”
“.. 진짜?”
“응. 안 들키고 할 수 있다.”
자신감을 드러내는 월이의 말에 씩 웃으며 얘기했다.
“호오.. 그렇게 말하니까 더 맞히고 싶은데?”
“맞혀 보이소.”
“이미 알 거 같기도 하고.”
월이의 어깨가 꿈틀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꺼. 아직 미션의 미음 자도 안 했는데.”
태연한 듯하지만 당황한 모습이 내 눈에는 보였다.
여기서 물러서면 하수다.
“아저씨 눈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게 보이거든. 아저씨는 알 거 같은데? 월이 미션이 뭔지.”
“거, 거짓말하지 마이소.”
“하하, 거짓말 아닌데.”
아니긴 개뿔.
정말 조금도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애초에 월이 말대로 의심 가는 말과 행동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건 궁예가 와도 못 맞힌다.
“할미가 그랬슴더. 나쁜 거 중에 제일 나쁜 게 거짓말이라고.”
“그럼 아저씨는 안 나쁜 거네. 거짓말 아니니까.”
“.. 그, 그럼 맞혀 보이소!”
“에이, 지금 말하면 재미없지.”
“……”
불쌍한 월이.
그렇게 못난 어른인 나는 한참 동안 월이에게 멘탈공격을 감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