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83)
883화. 첫 승
“뭐야, 그 썰렁한 아재개그는. 미션이니?”
털썩 주저앉는 지우.
생각지 못한 반응에 깜짝 놀란 유리는 난처한 어투로 말했다.
“야, 왜 그래. 그냥 물어본 건데.”
“미, 미안..”
“뭐가 또 미안해.”
“나는 재미도 없고…… 바보 같고……”
유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보아하니 적잖게 당황한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다.
썰렁하다고 한 것도 유리고, 바보 같다는 것도 유리가 습관처럼 뱉는 말이었으니까.
이럴 의도까지는 없었겠지만.
“야, 네가 왜 바보야. 빨리 일어나!”
유리가 손을 내밀었다.
“장보기 할 때도 너 때문에 빨리 봤잖아. 그 콧구멍그램인가 뭔가로. 바보는 이레나 같은 애 보고 바보라 하는 거고.”
“뭐! 너 뭐라 그랫서, 미뉴리!”
자기 얘기는 귀신같이 듣는 레나.
유리는 들은 체도 안 하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그렇게 재미없지도 않아.”
옆을 본 유리가 연두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봐.”
“응?”
“쟤는 너 썰렁한 개그에 웃고 있잖아. 이해는 안 가지만.. 아니, 재밌어서 그런 거겠지. 재밌어서.”
실제로 연두는 지우가 회심의 아재개그를 날린 시점부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역시 아재개그 마스터 연두다.
방학 때 아재개그에 빠져서 책까지 섭렵했을 정도니까.
살며시 고개를 드는 지우.
“.. 재, 재밌어?”
황당한 얼굴로 유리는 말했다.
“그래. 재밌다, 됐냐?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기나 해.”
“고, 고마워..”
지우가 유리 손을 잡고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꺅!”
그대로 유리가 중심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세상 당황한 지우.
“어, 어떡해. 괜찮아?”
“아야……”
“미, 미안해.. 내가 털어줄게……”
어쩔 줄 몰라 하며 유리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지우.
유리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됐어.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바보같이 풀 죽어 있지도 말고.”
“……”
“.. 바보는 취소.”
결국 웃음이 나왔다.
할 말 다 하면서도 상처받지는 않을까 눈치를 보는 유리의 모습에.
“고, 고마워..”
착각일까.
둘 사이에도 천천히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 거 같았다.
***
시장 이곳저곳을 한참 구경하다가 출출해질 즈음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돼지국밥이었다.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후아……”
“배불러.”
“진짜 맛있서. 돼지국밥.”
돼지국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동 수단은 차였다.
유리의 말에 용기를 얻은 건지 지우는 그 뒤에도 계속해서 아재개그를 시도했다.
‘아하하.’
‘재밌다.’
‘너무 재밌어서 배꼽 빠질 거 같아.’
영혼이 1도 느껴지지 않는 유리의 리액션에도 지우는 기뻐하며 계속 아재개그를 날렸다.
애꿎은 연두 웃음 버튼이 계속 눌리긴 했지만.
그 결과 두 가지 경우의 수로 압축됐다.
‘유리 웃게 만들기, 아재개그 하기.’
대충 이 두 개가 아닐까.
한 번에 맞혀야 하는 건 아니니 웬만해서 못 맞히는 일은 없을 거 같다.
내 탐정 노트는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중이다.
“그, 그럼.. 왕이 넘어지……”
“킹콩.”
“.. 어어.”
“좀 신박한 거 좀 해. 그건 누구나 아는 거잖아.”
신나 있다가 고개를 푹 숙이는 지우.
“아, 아는구나……”
그런 지우를 본 유리가 아차 싶었는지 입을 뗀다.
“아니…… 충분히 재밌으니까 더 재밌는 걸 듣고 싶다는 말이지!”
“그, 그래?”
결국 유리는 도합 일곱 번의 새로운 아재개그를 들어야 했다.
진이 빠진 표정.
그 타이밍에 지우는 주위를 살피더니 세상 뻣뻣하게 굳어서는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얘들아.”
“응?”
“.. 나 오늘 좀 웃기지 않아?”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간신히 참아 냈다.
그랬다가는 매우 상처받은 지우의 표정을 보게 됐을 테니.
그때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시은이가 뒷자리에서 입을 뗀 건.
“.. 윤지우 이상하다.”
뭔가를 감지한 듯한 표정.
흠칫한 지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창문을 바라보며 자연스러운 행세를 했다.
혼자만 자연스러운 게 문제였지만.
“으, 응? 나 오늘 좀 웃긴 거 같은데……”
재밌긴 했다.
미션 수행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맞히기 미안할 정도다.
‘자비는 없지만.’
어쩔 수 없다.
탐정에게 있어서 정답 하나하나는 실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션은 수행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들키지 않고 미션을 수행하는 거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
이러면 안 된다는 거다.
숙소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월이는 착실하게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매우 티 나게.
“팔 베고 스르르르~ ♪”
연두는 열심히 따라부른다.
미션이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
슥. 슥.
노래를 부르고 나서는 눈치챈 사람은 없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도 여전했다.
안도의 한숨까지 내쉰다.
아이고, 월아.
‘눈치 못 챈 사람이 있을까.’
그걸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내려놓고 나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거실 마루에 모였다.
귀여운 잠옷 차림의 아이들.
‘이러니까 꼭 파자마 파티라도 하는 기분이네.’
이제 하루를 정리할 시간이었다.
다소 시간이 이르긴 하지만 내일을 위해서는 일찍 잠자리에 들 필요가 있으니까.
물론 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미션 공개다.
“네, 여러분. 다 모였나요?”
“네에!”
“다 모엿서요!”
궁금해서라도 그냥은 못 잔다.
“오늘 하루 고생 많았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하루 동안 열심히 주어진 미션을 수행했을 텐데요. 맞나요?”
“네!”
“지금부터, 그 미션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미션 공개 시간이었다.
***
미션 공개 시간이었다.
“지금 앉아있는 대로 왼쪽부터 공개하도록 하죠.”
확실히 순서가 큰 의미는 없었다.
김준태가 서 있는 곳을 기준으로 가장 왼쪽에 앉아있는 건 월이였다.
자신만만한 표정.
벌써부터 미안해지려 한다.
“자, 월이 미션을 알 거 같은 사람은 손을 들어주세요.”
실소가 나왔다.
나를 포함해서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손을 들었으니까.
눈이 휘둥그레지는 월이.
“자유롭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횟수 제한은 없지만 미션 내용을 정확하게 말해야 정답이 인정됩니다.”
방향성만이 아니라 디테일까지 보겠다는 의미였다.
“그 전에 먼저 묻겠습니다.”
월이를 향해 김준태가 물었다.
“미션에 성공했나요?”
“네.”
그것만으로 리스펙한다.
내 옆에는 시도도 하지 않고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녀석도 있으니.
우영이라고는 말 안 했다.
탑정답게 스타트를 끊었다.
“정답! 친구들 앞에서 바다 관련된 노래 부르기.”
정답을 확신했다.
나는 꽤나 치밀한 스타일이었다.
월이가 부른 노래는 전부 노트에 적어뒀다.
-여수밤바다
-언더더씨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엄마가 섬그늘에
제목을 모르는 건 가사를 적어뒀다.
보다시피 전부 바다가 관련된 노래다.
세상 당황한 월이의 표정을 보고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연두는 몰랐던 모양이네.’
이제야 미션이었다는 걸 깨닫고서 입이 벌어진다.
그러나……
“땡입니다!”
“엥?”
반전이었다.
내 오답을 시작으로 마구 답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다 관련된 노래 네 번 부르기!”
“바다 관련된 노래 다섯 번 부르기! 다섯 번 부르기!”
정답을 뺏기기 싫었던 나는 추하게 외쳤다.
“여섯 번! 여섯 번이요!”
옆을 보니 우영이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괜히 무안해지네.
꼭 벌칙이 굉장한 거였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내가 확실히 들은 건 네 번이었다.
“숫자는 네 번입니다. 그런데 뒤에 뭔가가 더 있는데요.”
역시 네 번인가.
그나저나 뒤에 들어갈 거라니.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런 상황 속에서 골똘히 생각하던 시은이가 입을 뗐다.
“바다 관련된 노래 친구들이랑 네 번 이어 부르기.”
그럴 때가 있다.
듣는 순간 정답인 게 확신이 가는 순간이.
그게 지금이었다.
“정답입니다!”
디테일이 부족했다.
돌이켜보면 항상 월이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다름 아닌 연두였다.
어떤 노래를 불러도 옆에서 따라불러 줬으니까.
‘계속 옆에 있던 이유가 있었어.’
알고 있었음에도 그 정도의 디테일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걸 캐치하다니.
역시 시은이였다.
한편 월이는 세상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모르는 줄 알았는데……”
“월이양. 그래도 미션을 수행했으니 절반은 성공으로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융통성이 있다.
확실히 미션을 수행하려 노력조차 하지 않은 사람과는 차등을 둬야지.
이번에도 우영이라고는 말 안 했다.
“다음은 레나양. 미션 수행에 성공했나요?”
아쉬운 듯이 레나가 고개를 젓는다.
“.. 실패했서요.”
반응을 보니 시도는 했지만 실패한 거로 보인다.
일단 나는 조금도 감이 오지 않는다.
뒤이어 아이들도 이런저런 답을 뱉어봤지만 전부 오답이었다.
‘역시 뻥이었구나.’
이로써 레나 미션을 안다는 유리의 말은 거짓으로 판명됐다.
이윽고 공개되는 정답.
“저 미션은 이거에요..”
뒤이어 꺼낸 카드.
카드 안에는 미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친구들 액세서리 하나씩 빌려서 착용하기
생각지도 못한 미션이었다.
미션을 알고 나서 생각하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시은이에게 목걸이를 빌려서 착용하던 장면.
슥.
레나는 손을 뻗었다.
손가락에는 무려 반지가 두 개나 끼워져있었다.
“이건 연두 반지에요. 월이랑 지우는 액세서리가 업서서 못 빌렷서요. 시은이 목걸이는 아까 했서요.”
남은 건 한 명이었다.
유리가 착용하고 있는 액세서리는 목걸이.
납득이 갔다.
유리가 레나한테 목걸이를 빌려줄 리 없으니.
“미뉴리만 하면 됐는데……”
아쉽긴 하네.
어떻게 보면 유리 덕분에 미션 성공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었다.
미션을 성공했다면 아무도 눈치 못 챘을 테니까.
“훗.”
그래서인지 유리 어깨가 꽤나 올라갔다.
“쉽게 성공하게 둘 줄 알고?”
“미뉴리 거짓말 쳤서. 내 미션 안다면서.”
“바보구나?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 심리전이라는 거야.”
다행히 이번에도 융통성이 발휘됐다.
“미션 성공은 못 했지만 미션 수행을 위해 노력했고 아무도 미션 내용을 맞히지 못했으니 역시 절반은 성공으로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와!”
금세 해맑은 표정이 된 레나.
아직까지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하다.
생각보다 미션 난이도가 더 어려웠으니까.
“이제 지우양이네요. 미션에 성공했나요?”
“서, 성공했어요..”
지우도 미션은 성공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정답은 뻔했다.
역시 호기롭게 나섰다.
“친구들 앞에서 아재개그 하기!”
이건 숫자와 연관이 있지는 않을 거 같았다.
그러기에는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난사하다시피 개그를 날렸으니까.
“땡입니다!”
하지만 또 땡이었다.
“유리 웃기기!”
“연두가 좋아하는 아재개그 하기!”
여러 답변이 쏟아졌다.
위기감 느껴지는 지우의 표정을 보니 방향성은 맞는 모양이다.
그때였다.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유리가 입을 뗀 건.
“재미없는 아재개그 하기?”
“……!”
충격받은 지우의 표정.
“재, 재미없었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재밌었는데 일단 정답은 맞혀야 하니까 그러는 거지.”
의외로 다들 고전하는 상황 속에서 불현듯 떠올랐다.
정답의 기운이 스치는 문장이.
“정답! 친구들한테 재밌다는 말 듣기!”
아재개그에 집착할 필요 없었다.
아재개그는 재밌다는 말을 듣기 위해 지우가 생각해 낸 걸 수도 있으니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초록님.. 정답입니다!”
“와악!”
절로 나오는 탄성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탐정으로서 첫 승을 챙겨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