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93)
893화. 흔적
[인생네컷]전국 어디에나 있는 인생네컷이지만 막상 찍어본 적은 없었다.
사진 찍는 게 일상이다 보니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집 근처에 없기도 하고.
‘그래도 찍어줘야지.’
부산까지 와서 간판이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어떤 형식인지는 알고 있었다.
스티커사진과 비슷하다.
포토부스 안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는 형식.
끼익.
곧바로 문을 열고 손짓했다.
“들어와, 얘들아.”
“네!”
무인으로 운영되다 보니 사람이 없었다.
내부에는 사진 찍을 때 이용할 수 있는 각종 소품과 액세서리가 비치되어있었다.
그래서일까.
“우와!”
“여기 봐! 예쁜 거 엄청 많아..”
“사, 사진도……”
그렇다.
벽은 사람들이 붙여놓고 간 사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빠!”
“응, 연두야.”
“둘이서 찍은 사진 엄청 많아여! 남자랑, 여자랑.”
확실히 그랬다.
남녀 둘이서 찍은 사진이 많은데 대부분은 커플로 보인다.
조금은 수줍은 얼굴로 연두가 덧붙인다.
“이렇게 뽀뽀도 하고.. 허그도 하고……”
이걸 어쩐다.
여덟 살 연두가 보기에는 조금은 선정적이다.
그렇다고 해 봐야 볼 뽀뽀와 포옹 정도긴 하지만.
“그러면.. 둘은 사랑하는 거에요..?”
“아마 그렇겠지?”
“그럼 왜 이렇게 벽에 붙여놓고 가는 거에요? 사랑하는 사진..”
연두의 질문 공세가 또 시작됐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주책이라는 의미로 묻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었으니까.
“글쎄. 아마 그런 거 아닐까?”
“어떤 거요?”
“우리 둘이 사랑해요! 하고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거 아닐까? 흔적을 남기고 싶은 거지.”
“.. 흔적?”
“응. 연두가 아까 바닷가에 발자국을 남겼던 것처럼.”
“아!”
단번에 알아들은 표정.
내 예시가 꽤 훌륭했던 모양이다.
“연두도 남길래요! 흔적!”
“.. 어?”
이건 변수인데.
흠칫한 나는 입을 열었다.
“.. 누구랑?”
“아빠랑요! 연두랑 아빠도 사랑하니까……”
그럼 그렇지.
그 대상이 미래의 남자친구일 리 없잖아.
괜한 오해를 했군.
“좋지! 잘 보이게 여기 붙여둘까?”
“네에!”
그렇게 연두랑 약속하고 옆을 돌아봤다.
각종 소품과 액세서리를 눈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인생네컷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말했다.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뭐든지 착용해 봐도 돼.”
“.. 진짜여?”
“그럼.”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전부 손님들이 착용할 수 있도록 구비해둔 것들이었다.
봉인이 해제된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소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예쁘다..”
“여기 크록 모자도 있어!”
레나는 분홍색 선글라스를 착용하더니 양쪽 허리에 손을 올리고 포즈를 취해 보였다.
“어때?”
“우, 우와……”
“레나 진짜 예쁘다..”
이든 모델의 위엄이었다.
지금 레나 모습은 외국의 유명 아역배우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히히. 부끄러워..”
막상 이목이 집중되니 수줍은 얼굴로 선글라스를 내려놓는 레나.
그때였다.
분홍색 토끼 머리띠를 한 연두가 와다다 달려온 건.
양손에는 무언가 쥐어져 있었다.
“잠깐만, 연두야.”
“네?”
“머리띠 왜 이렇게 잘 어울려. 진짜 토끼인 줄 알았잖아.”
“헤헤..”
배시시 웃더니 연두는 왼쪽 손을 내밀었다.
“아빠 거!”
아까 본 크록 모자였다.
초록색이라 나랑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고마워, 연두야.”
끝이 아니었다.
아직 연두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게 있었으니까.
“이건 우영이오빠 거에여..!”
“뭐?”
판다 머리띠였다.
역시 연두는 감각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우영이랑 찰떡인 머리띠를 가져왔는지.
“싫어. 가서 제자리에 두고 와.”
“……”
침묵은 길지 않았다.
“.. 가져와.”
이럴 거면 싫다고는 왜 하는지.
결국 머리띠를 가져가서 어정쩡하게 머리 위에 걸친다.
“됐냐?”
“우아.. 진짜 잘 어울려요..!”
“오버는.”
오버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 안에서는 우영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소품인 건 확실했다.
내 크록 모자는 어떠냐고?
‘안 어울려도 써야지.’
그런데 심지어 잘 어울린다.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겠지.
그런 마음으로 소품들을 바라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거 써 봐, 연두야.”
내가 건넨 건 선글라스였다.
알이 콩알만 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할 때 쓰는 선글라스다.
순수한 연두는 바로 착용했다.
“.. 어때여, 아빠?”
“푸흣!”
웃음이 터졌다.
아니, 근데 어떻게 이걸 써도 귀엽냐.
뒤이어 연두를 본 아이들도 끅끅 웃음을 참는다.
“.. 으응?”
결국 거울 앞에 선 연두.
잠깐 얼어붙은 상태로 거울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아, 아빠..!”
연두에게 찰떡인 소품이었다.
***
먼저 들어간 건 주원과 아이들이었다.
주원은 보호자 역할이었다.
계산도 계산이지만 인생네컷 촬영방식에 대해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다 같이 찍으면 안 돼여..?”
“아빠도 그러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부스가 좁아서.”
어쩔 수 없었다.
여러 멤버 구성으로 여러 번 촬영하는 수밖에.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주원은 들어가서 앵글에 들어오지 않는 사각지대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지시했다.
“얘들아. 타이밍을 놓치면 안 돼!”
“타이밍이여?”
“응. 숫자가 나올 거야. 그럼 그 타이밍에 맞춰서 포즈를 취하는 거야. 시작한다! 얘들아, 빨리!”
우당탕.
“어, 어떡해!”
“하트?”
“몰라. 일단 앞에 봐, 얘들아!”
주원도 처음인 건 매한가지라 다 같이 우왕좌왕했다.
뭐, 괜찮았다.
그게 인생네컷의 묘미니까.
한편 부스 바깥에서는 꽤나 싸늘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딱 봐도 많은 대화가 오갈 거 같은 멤버구성은 아니니까.
우영과 아랑,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는 불쌍한 준태.
슥.
어쩌다 우영과 아랑의 시선이 교차했다.
왜일까.
“.. 풋.”
아랑이 작게 웃음을 뱉었다.
“뭐야. 왜 그렇게 웃어?”
“그냥.”
아랑은 고개를 까딱하며 얘기했다.
“잘 어울려서. 츤데레씨.”
시선이 스친 건 우영이 착용하고 있는 판다 머리띠였다.
츤데레씨.
그 호칭은 꽤나 타격이 컸다.
아침에 얘기가 나왔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넘겼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절묘했으니까.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판다 머리띠를 빼서 한 손에 들고서 우영은 말했다.
“너, 너도 기다려.”
“뭐?”
“땅콩 나오면 너한테 딱 어울리는 거로 골라주라 할 테니까.”
흠칫한 아랑이 대꾸했다.
“.. 하지 마.”
“싫은데.”
“하지 말라고.”
“왜 하지 말래?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땅콩이 골라주는 건데.”
“내가 누나다.”
“하나만 해. 이럴 때만 누나라 하지 말고.”
또다시 시작된 뭔가 이상한 티키타카.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준태가 살며시 끼어들었다.
“저기, 우영씨.”
“왜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부탁 좀.. 연두한테 골라달라고……”
황당한 표정의 우영이.
“직접 부탁하시면 될 텐데.”
“하하, 제가 아직 연두랑 어사라서요. 어사 뜻은 아시죠? 아직 조금 어색한 사이라는 뜻인데……”
“……”
묘하게 합이 잘 맞는 삼인방이었다.
***
어찌어찌 촬영을 마쳤다.
처음이라 헤맨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와 아이들은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화면에 떠오른 결과물을 바라봤다.
“뭐야. 다 잘 나왔잖아!”
뜻밖의 결과였다.
여덟 장 중에 잘 나온 네 장의 사진을 선택해서 인화하는 형식의 인생네컷.
달리 말하면 네 장은 버려야 한다.
그래서 네 장을 건지면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전부 잘 나왔다.
“첫 번째 사진 엄청 웃겨..”
“다 얼었어.”
“흐흣.. 미뉴리 봐. 진짜 웃겨.”
“야. 너도 만만치 않거든!”
갑작스레 시작된 카운트다운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앞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첫 번째 사진에 담겼다.
그런데 그게 마음에 든다.
사진 속에 스토리가 묻어난다고 해야 하나.
누가 봐도 어떻게 나온 사진인지 감이 온다는 게 포인트였다.
자연히 웃음이 나고.
“아저씨는 이거 마음에 드는데? 한 장 넣으면 재미있을 거 같고.”
“저도요!”
“저도 마음에 들어요.”
그렇게 첫 번째 사진이 결정됐다.
남은 게 문제였다.
이제 잘 나온 사진 중에서 세 장을 엄선해야 하니까.
“어렵다..”
“응. 진짜 어려워..”
“다들 마음에 드는 거 하나씩 꼽아볼래? 제일 많이 겹치는 거로 하면 되니까.”
시은이가 의견을 냈다.
그에 따라 다들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기 시작했다.
“푸핫! 이 사진 연두 봐 봐!”
미처 보지 못했던 사진.
동시에 부스 안이 웃음바다가 됐다.
왜냐고?
여덟 장 중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연두가 내가 골라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으니까.
바로 갖다 버린 줄 알았는데.
“아, 아빠가 골라준 거니까……”
감동이다.
아빠를 위해 누가 봐도 이상한 선글라스를 쓰고 망가질 줄도 아는 딸이라니.
정말 나는 전생에 우주를 구한 걸까.
그렇게 망가져도 전혀 망가진 느낌이 안 드는 게 함정이지만.
“연두 귀여워..”
“나도 이거 쓰고 찍을걸……”
“우리 이 사진도 넣자!”
연두 눈이 동그래졌다.
“응?”
설마 이 사진이 채택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자, 잠깐만. 다른 사진도 많이 예쁜데……”
안타깝게도 자그마한 연두 목소리는 내 귀에만 들리고 묻혀버렸다.
미치겠네.
나머지 사진들도 차례로 결정되고 나는 모두를 대표해서 인화 버튼을 눌렀다.
스르륵.
빠져나오는 여덟 장의 사진.
인원수도 딱 맞았다.
일곱 장은 한 개씩 나눠 가지면 되고 한 장은 여기에 흔적으로 남겨놓으면 되니까.
“끝이 아니야, 얘들아.”
“으응..?”
한 방으로 끝날 게 아니었다.
열 명으로 조합할 수 있는 멤버구성은 넘쳐나니까.
아무래도 오늘 인생네컷 송도점 장사는 우리가 다 해줄 거 같았다.
***
여러 번 찍다 보니 꽤나 시간이 소요됐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요.”
안 찍겠다던 두 사람도 결국 포토부스에 들어갔다.
미리 말한 대로 흔적을 남겼다.
나랑 연두가 찍은 사진, 그리고 아이들끼리 찍은 단체샷까지.
“이제 천년이 지나도 이 사진은 남을 거야, 연두야.”
“.. 천년이 지나도요?”
“응, 공룡 발자국처럼.”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
공룡 발자국도 남았는데 사진이 못 남을 이유는 뭐란 말인가.
그렇게 가게를 나선 우리는 해변으로 걸어갔다.
“.. 와.”
아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캄캄한 하늘.
옅은 빛에 반사된 해수면이 비치고 시원한 파도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맞잡은 연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예쁘다……”
“불꽃놀이를 안 해서 아쉽다. 그치.”
밤바다를 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연두와 단둘이 놀러 갔을 때에도 이렇게 나란히 서서 바다를 봤으니까.
그때는 화려한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다.
‘안 떠오를 수가 없지.’
생생하게 떠오른다.
연두 생일을 챙겨줬던 것도, 함께 풍등을 날렸던 것도, 이렇게 서서 불꽃놀이를 바라봤던 것도.
손꼽을 정도로 행복한 기억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연두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그때는 불꽃놀이를 해서 좋았는데.. 지금은 불꽃놀이가 없어서 좋아요……”
불꽃놀이가 없어서 좋다.
그 의미를 알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 이상해여.”
“뭐가?”
“터널에서 숨 참기 실패했는데……”
미소를 띠며 연두는 덧붙였다.
“……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밤바다 보기.
옆에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어둡고 조용한 밤바다는 하늘을 수놓은 불꽃들보다 더 반짝이는 거 같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가장 끝에서 들려오는 레나의 목소리.
“행복해..”
“나, 나도……”
누군가 말을 보탠다.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지우인 거 같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선 채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밤바다를 바라봤다.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