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95)
895화. 폭탄토스트
“.. 당연히 안 걸리죠.”
“응?”
“아저씨가.. 저 차단했으니까……”
“……?”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잠깐 사고가 정지했다.
“아저씨가? 그러니까.. 내가 유리를 차단했다고?”
“.. 네.”
없는 말을 한다고 하기에 유리의 표정에는 심각함, 그리고 서운함이 잔뜩 묻어났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기억은……
‘.. 어?’
잠깐만.
그때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여러 정보가 맞물렸다.
차단을 한 게 나라는 유리의 말, 내가 차단한 여러 사람들, 그리고 그중에 나를 아저씨라 불렀던 특이한 장난문자.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정도의 단편적인 기억은 떠오른다.
소름 돋는 기분과 함께 내가 입을 틀어막았다.
“너였어, 유리야?”
“네?”
“그 장난전화.. 아니, 장난문자?”
“……”
아차.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노골적으로 표현해버렸다.
안 그래도 그렁그렁하던 유리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정정했다.
“아니, 그렇다고 유리를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라.. 아저씨가 나빴지! 그럼! 유리인지도 모르고……”
유리를 달래며 기억을 끄집어봤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도 내 머릿속에는 꽤나 악질적인(?) 장난문자로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왜 정확히 기억 못하냐고?
‘한둘이어야지.’
바보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유리를 매치하지 못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그런 사람이 워낙 많았으니까.
유리인 걸 알기 전까지는 그저 장난을 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허나 유리인 걸 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장난이었을 거야.’
핸드폰을 산 뒤에 신나서 보낸 문자였을 거다.
그런데 냅다 차단을 박아버렸으니 얼마나 서운했을지 납득이 간다.
그 뒤에 행동도 이해가 갔다.
풀이 죽어있던 유리의 목소리와, 묘하게 나를 의식하며 피하던 반응이.
이마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미안해, 유리야.”
문자 내용과 무관하게 내가 사과하는 게 맞았다.
더 빨리 오해를 풀었어야 하는데.
유리는 괜히 허공을 응시하며 툭 내뱉었다.
“됐어요.”
“많이 화났니?”
“아니, 그게 아니라.. 아저씨가 잘못한 거 아니니까.”
“응?”
“장난친 건 저니까요. 별로 장난치려던 건 아닌데.. 그냥 우연히 아저씨가 떠올라서 그런 건데.. 그렇다고 바로 차단할지는 몰랐는데.. 그래도 먼저 장난친 건 저니까……”
실소가 나왔다.
그냥 장난이 치고 싶었다 하기엔 쑥스러워서 한 마디씩 이어가는 모습을 보니.
결론은 하나였다.
“.. 아저씨가 잘못한 건 아닌 거죠.”
나는 그런 선후관계를 하나하나 따져서 사과한 게 아니었다.
모두 떼어놓고 생각해서 내 차단으로 인해 유리는 꽤나 심하게 마음고생을 했다.
내 눈에도 그게 보였고.
그러니 누가 잘못했든 간에 그 심정을 헤아려서 미안함을 전한 거다.
“기특한데?”
그래서였다.
유리의 이런 반응이 기특하게 느껴지는 건.
“네?”
많이 속상했을 텐데.
비록 그 속상함을 드러내긴 했지만 유리는 그 속상함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전과는 대조되는 상황이다.
첫 만남인 콩쿠르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독일 여행 때만 해도 노엘과 다툰 뒤에 화를 내며 무작정 달아나버린 유리니까.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그냥.. 유리가 많이 컸구나 해서.”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유리.
뭐, 굳이 이 상황에 기특한 이유를 언급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을 듯하다.
이 정도로 넘어가기로 하자.
그보다 나도 나대로 어느 정도 변명 같은 해명을 하고 싶었다.
“혹시 유리인 걸 못 알아봐서 서운했어?”
“……!”
순간 눈이 동그래지더니 휙 시선을 피한다.
“누, 누가 그런 거로 서운해해요. 애도 아니고.”
그게 기준이라면 유리는 아직 애인가 보다.
나는 확신했다.
완전히 정곡을 찔렀다고.
차단당한 것보다도 유리를 서운하게 만든 건, 내가 유리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냥 유리한테 그렇게 문자를 받았으면 바로 알아챘을 거야. 오히려 반가워서 엄청 웃으면서 아저씨도 같이 장난쳤을걸? 근데 왜 못 알아봤는지 알아?”
“.. 왜요?”
“워낙 많았거든.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장난치는 사람이.”
몰랐던 사실인지 유리의 입이 살짝 벌어진다.
하기야 알 턱이 없지.
연두한테도 굳이 얘기하지 않은 건데.
“그래서 유리일 거라 생각 못했어. 오히려 그때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
“어, 어떻게요?”
“이 나쁜 장난문자범! 나를 아저씨라고 불러? 나를 아저씨라 부르는 사람은 연두 친구들 정도밖에 없는데! 어딜 감히!”
내 연기력이 발동했다.
문자를 받고 실제로 했던 생각이라 더 생동감이 넘쳤다.
“그러니까 유리를 생각하면서 유리일 거라고는 생각 못한 거지.”
“.. 풋.”
내 연기는 성공했다.
유리가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렸으니까.
“그게 뭐예요. 바보 같아.”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긴 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유리인 걸 몰랐지.
“그럼.. 빨리 풀어요, 차단.”
“아, 그래.”
오해를 풀었으니 이제 바로잡을 시간이었다.
***
핸드폰을 꺼냈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정확한 문자 내용이 어땠길래 내가 냅다 차단을 해 버린 건지.
틱.
차단 목록에 들어가자 떠오르는 문자들.
얼마 지나지 않은 비교적 따끈따끈한 차단이라 금방 발견했다.
어디 보자.
유리도 고개를 쏙 내밀었다.
-아저씨
[누구세요?]-저에요.
[누구시죠?]-ㅎㅎ 저 누군지 모르겠어요? 바보.
[장난치지 마세요. 차단하겠습니다.]절로 입이 벌어졌다.
생각보다 너무 별거 없는 문자 내용에.
‘그렇게 큰 장난도 아니었잖아.’
왜 나는 문자 내용을 악질적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심지어 내 말투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
유리가 상처를 받았을 만하다.
“.. 응?”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차단을 푸는 동시에 당시에는 차단해서 미처 보지 못했던 문자들이 갱신됐다.
띠링. 띠링.
“뭐지, 이건?”
다시 한번 미안함을 전하려던 내 눈에 들어오는 문자들.
이제 끝났다 생각하고 고개를 회수하던 유리의 시선도 도로 화면을 향했다.
-유리애ㅛ
그게 차단 이후의 첫 문자였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오타.
-안 돼.
-나 유리란 말이야!
-차단 풀어요!
-핸드폰 샀어요! 저 유리에요!
“자, 잠깐만! 보지 마세요!”
세상 놀란 유리가 뒤늦게 손으로 핸드폰을 가려봤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마지막 문자까지 본 상태였으니까.
-제발 차단 풀어주세요……
이미 차단당해서 절대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보낸 문자가 확실하다.
영원히 닿지 않을 거라 생각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유리가 이렇게 문자를 보낼 리 없으니까.
“.. 봐, 봤어요?”
그러나 유리는 K-핸드폰 기능을 너무 무시했다.
마음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방해물에 직면해도, 많이 돌아가더라도, 결국은 당사자에게 가서 닿는 게 진심이라는 거다.
유리야, 너의 진심은 닿았다.
“아니.”
“.. 진짜. 진짜 못 봤어요?”
“응. 못 봤어.”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나는 시치미를 뗐다.
왜냐고?
유리의 진심을 지켜주고 싶었으니까.
웃음보가 터져서 또 유리한테 미움받게 되면 그때는 돌이킬 길이 떠오르지 않기도 하고.
“잠깐만요. 핸드폰 좀.”
“그래.”
나는 순순히 넘겨줬다.
유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만지작거리더니 핸드폰을 돌려줬다.
조작법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여기요.”
화면을 보니 문자 내역이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리셋된 문자.
그러나 내 기억까지 리셋할 수는 없었다.
유리는 귀여웠다.
-제발 차단 풀어주세요……
그 문자 내용을 떠올리며 안도하는 유리 표정을 보고 있으니 더 귀엽게 느껴진다.
끝까지 모른 척 연기하며 나는 말했다.
“그럼 오해는 풀린 거지, 유리야?”
“.. 네.”
“장난전화, 장난문자 다 환영이야. 이제 유리인 거 다 알아볼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살며시 올라가는 유리의 입꼬리가 시선에 스쳤다.
***
오해가 풀린 나와 유리는 사이좋게(?) 아침을 준비했다.
메뉴는 토스트였다.
“유리 임무가 있어.”
“뭔데요?”
“가장 어려운 임무야. 할 수 있겠어?”
실제로 그랬다.
지금 내가 만들려는 샌드위치는 무척 간단하다.
단 하나, 달걀을 포크로 마구 으깨는 과정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심지어 10인분 분량이다.
“뭐 만들 건데요?”
“폭탄토스트라는 거야.”
“폭탄토스트?”
이름이 왜 그렇게 이상하냐는 듯한 표정이다.
원래 바로 떠오른 명칭은 마약토스트였다.
그런데 여덟 살 아이 앞에서 입에 담기에 마약은 나쁘니까, 대충 그다음에 떠오르는 게 폭탄이었다.
“왜 폭탄인데요?”
“지금부터 아주 건강하지 않은, 엄청나게 자극적인, 그런데 폭발적으로 맛있는 토스트를 만들 거거든.”
“.. 풋. 그래서 폭탄이에요?”
“그렇지.”
궁금한 표정이다.
말로 하기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편이 빠를 듯했다.
커다란 냄비에 달걀을 왕창 삶아서 꺼낸 뒤에 껍질을 까고 볼에 담았다.
나도 처음이다.
이렇게 대량으로 만들어 보는 건.
“잘 봐, 유리야.”
필요한 소스를 모두 들고 왔다.
먼저 설탕과 소금 적당량을 넣는다.
다음은 후추다.
“후추추추……”
내 현란한 기교에 유리가 쿡쿡 웃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의아할지 모른다.
이 정도로 폭탄을 운운하기에는 너무 건강한 재료만 들어간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핵심은 지금부터니까.
슥.
달걀 못지않게 핵심 재료인 소스를 손에 들었다.
바로 마요네즈였다.
쭈우우욱-
원래도 많이 넣는다.
그런데 지금 만들려는 건 10인분이다.
한 통을 다 쓰겠다는 기세로 나는 마요네즈를 달걀이 든 볼 위에 투척했다.
마요네즈 바다.
그 웅장한 자태에 유리의 입이 벌어진다.
“괘, 괜찮은 거예요?”
“그럼.”
그렇게 나는 작은 통의 마요네즈를 진짜 다 짜냈다.
통째로 말이다. 끝이 아니었다.
마요네즈만큼의 양은 아니지만 맛을 더해줄 허니머스타드 소스까지 대량으로 추가했다.
양을 보고 확신했다.
“이건 포크로 안 되겠어.”
거품기를 유리 손에 쥐여줬다.
“이걸로 달걀을 소스랑 섞으면서 마구 으깨주면 돼. 할 수 있지, 유리야?”
“.. 그거야 쉽죠.”
해 보면 알게 될 거다.
쉽지 않다는 걸.
그렇게 유리의 손에 맡겨주고 나는 식빵 한 면에 딸기잼을 바르기 시작했다.
딸기잼과 마요네즈의 조합은 보기보다 굉장하니까.
자, 어떤가.
‘폭탄토스트.’
이제야 그 이름에 걸맞은 느낌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헥헥대는 소리가 유리 쪽에서 들려온다.
잼을 다 바르고 다가가니 유리는 완전히 진이 빠져 있었다.
“도와줄까, 유리야?”
“아니요.”
좋은 자세였다.
그렇게 유리는 가장 어려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제 거의 끝났어, 유리야.”
나머지는 같이 하기로 했다.
그 전에 요리하는 사람의 특권이 하나 있었다.
“유리야.”
“네.”
“한 번 먹어봐.”
씩 웃으며 으깨진 달걀을 살짝 덜어서 유리 입에 넣어줬다.
오물거리는 입.
이윽고 눈이 번쩍 뜨인다.
잠깐이지만 황홀한 표정이 유리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어때?”
유리는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짜.. 건강하지 않은데.. 폭발적으로 맛있어요.”
“하하, 대성공이네.”
나머지는 함께하기로 했다.
소스와 섞여 으깨진 달걀을 식빵 위에 올리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위를 딸기잼을 바른 식빵으로 덮는다.
‘완벽해.’
하나 완성이었다.
나머지도 차례차례 완성하다 보니 어느새 열 개의 토스트가 완성됐다.
조금 남았으니 부족한 사람은 알아서 만들어 먹으라고 하면 되겠지.
“고생 많았어, 유리야.”
손바닥을 내밀었다.
뿌듯한 얼굴로 유리는 손바닥을 마주쳤다.
짝!
경쾌한 하이파이브.
“그럼 가볼까?”
“네.”
이제 잠꾸러기인 일행을 깨우러 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