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
9화. Present
지이이잉.
-외할머니
예상치도 못한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다름 아닌 내 외할머니였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열아홉의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친척들의 도움은 없었고,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해야 했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도 돌아가신 상황이었지.’
그때 유일하게 내게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외할머니였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깡촌에 내려가기 싫었으니까.’
외할머니가 거주하시는 곳은 외진 시골이었다.
태어나서 19년 동안 서울에 살던 나는 굶으면 굶었지 시골 생활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외할머니의 손길을 거부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를 좋아하지 않으시니까.’
외할머니가 나를 미워한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나를 싫어하신다는 걸.
나를 대하는 표정과 말투에서 그게 느껴졌다.
손자를 싫어하는 이유가 뭐냐고? 잘 모르지만 대충 유추는 가능하다.
‘엄마의 죽음.’
내 기억에도 없는 엄마의 죽음이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엄마는 나를 낳고 급격하게 몸이 약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외할머니의 입장에서는 딸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아빠의 말에 의하면.’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가 가장 아끼던 자식이었다.
아빠가 항상 엄마를 천사라고 말했으니, 왜 아꼈을지 이해는 간다.
그와 반대로 장례식에서 내가 본 외가 쪽 친척들은 전부 머저리였다.
외삼촌도 개망나니 인간쓰레기였고.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그런 이기적인 인간들한테 정이 갈 리 없다.
‘아마도 외할머니는.’
가장 아끼던 딸이 죽은 원인 중 일부를 나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엄마를 기억도 못 하는 내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외할머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외할머니는 최소한의 도리를 다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아마 아빠 때문이겠지.
아빠는 엄마가 죽은 후에도 외할머니를 부모처럼 깍듯이 대했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솔직히 엄마가 없다면 거의 남남이나 다름없는 관계 아닌가.
더군다나 외할머니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데도 예의를 중시하는 아빠는 외할머니에게 한결같이 행동했다.
‘그래서겠지.’
외할머니가 미워하는 내게 손을 내민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자신에게 친자식보다 더 부모같이 대했던 우리 아빠 때문에.
실제로 깡촌행은 거절했지만, 나는 외할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때 외할머니의 지원이 없었다면 자립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외할머니는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 이후의 금전적 지원은 전부 거절했다.
더 큰 빚을 지기 싫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게 내키지 않았고.
외할머니와 나의 관계는 딱 그 정도였다.
가끔 통화를 하긴 하지만, 서로 전혀 애틋하지는 않은 관계.
지이이잉.
즉, 전화를 안 받는 원수 사이는 아니다.
그러니까 받는다.
“연두야, 잠깐만. 아빠 전화 한 통만 하고 집에 가자.”
“네에!”
물론 그리 달가운 전화는 아니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외할머니의 까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원이냐?”
“네. 주원이에요.”
“염병.. 오랜만에 전화 건 할미한테 잘 지냈냐는 안부 한 마디 없네.”
“.. 잘 지내셨어요?”
“됐어, 이런 버릇없는 조대새끼.”
내가 얘기 안 한 게 있는데 외할머니는 입이 거칠다.
예전부터 나를 조대새끼라 불렀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물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서울은 올라오셨어요?”
“그래.”
“장례식은 가셨고요?”
“그래.”
“외삼촌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괜찮으세요?”
“… 그럼, 괜찮지. 안 괜찮을 게 뭐야? 다 짧게 왔다가 가는 건데.”
안 괜찮은 거 잘 알 거 같다. 그렇다고 내가 건넬 위로의 말은 없었다.
엇나간 자식의 죽음에, 나 따위가 건네는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을 테니.
내가 할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어쩐 일로 전화하셨어요?”
그러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찾아와라.”
“.. 네?”
“찾아오라고.”
“할머니를요?”
“그럼 누구겠어?”
“왜요?”
“왜라니! 할미가 오랜만에 손주 얼굴 보자는 게 잘못된 거냐?”
“…”
영문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장례식 끝나는 날에 제가 찾아뵐게요.”
“아니.”
“네?”
“주말에 시골로 내려와.”
“.. 할머니 집으로요?”
“그래, 그 애도 데려오고.”
갑자기 연두를?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친척들에게 들은 건가?
나는 혹시 몰라 입을 열었다.
“설마 애를 할머니가 키우실 생각인 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외할머니의 고함이 들려왔다.
“키우긴 내가 왜 키워! 그 쪼그마한 조대새끼를.
“근데 갑자기 왜 그러시는…”
“됐고, 오는 걸로 알고 끊는다.”
틱.
그렇게 외할머니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진짜 예전부터 변함이 없는 분이다. 그나저나.. 가야 하는 건가?
빚을 진 게 있기에 무시할 수는 없는데.
‘다섯 시간.’
외할머니댁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휴일은 전부 날려야 한다는 건데. 고민을 좀 해 봐야 할 거 같다.
그러던 와중 옆에서 볼멘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연두를 바라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화가 난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왜 그래, 연두야?”
“구 사람.. 누구예요?”
“응? 아, 그냥 할머니야. 아빠 할머니.”
일부러 외삼촌의 어머니라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연두가 입을 열었다.
“연두는.. 할머니 시러요!”
“.. 어? 왜?”
“아빠한테 화내는 거 시러요! 나뿐 사람이야!”
“푸흡.”
미용실에서 아주머니들에게 화를 낸 일부터 지금의 통화까지.
그로 인해 한 가지 확실해진 사실이 있다.
연두는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할 때만 화를 낸다는 거.
‘얼마나 화가 난 건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특이한 취향이 있는 거 같다.
연두가 화를 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내 일에 나보다 더 화를 내주는 딸이 있다는 사실에.
‘아마 이런 딸은.’
세상에 하나뿐일 거다.
***
토요일 오후, 편의점 내부.
화수목금토를 일하는 내게는 한 주의 마지막 근무일이었다.
손님이 없는 사이에 나는 빗자루로 바닥을 청소했다.
연두는 나를 쫄래쫄래 따라오더니 말했다.
“아빠! 연두가 도아줄게요!”
“아냐, 괜찮아. 왜냐하면.. 연두 네가 하기에는 빗자루가 너무 큰데?”
“.. 여, 연두도 할 수 이써요!”
“그래?”
나는 웃으며 연두에게 빗자루를 넘겨줬다.
아니나 다를까 연두는 낑낑거리며 간신히 빗자루를 잡았다.
“하하, 무겁지?”
“아.. 안 무거… 으으..”
내 가슴팍까지 오는 큰 빗자루라 그런지 잡고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마치 빗자루가 연두를 끌고 다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결국 나는 빗자루를 다시 넘겨받았다.
“나중에 연두가 좀 더 크고 나면 도와줘. 알겠지?”
“네에…”
연두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풀이 죽은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또 웃음이 나왔다.
“그럼 연두야. 빗자루 대신 쓰레받기 바닥에 대고 있어 줄래?”
“뜨레받기..?”
“응. 연두가 쓰레받기 대고 있으면 아빠가 먼지 쓸어서 넣어주는 거지. 그럼 많이 도움이 될 거 같은데?”
“헤헤, 조아요!”
나를 도와줄 수 있게 돼서 기쁜지, 연두는 금세 해맑게 웃어 보였다.
쓰레받기는 무겁지 않아서 연두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었다.
연두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쓰레받기를 대줬다.
“자아, 먼지 간다! 쉬융~~”
“우아.. 아빠, 먼지 완전 마나요!”
먼지가 많다는 말을 들으니 왜인지 한숨이 나왔다.
그야,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과장 안 하고.’
최근 며칠간 손님이 최소 서너배는 늘어난 거 같았다.
연두를 한 번 본 손님들은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편의점에 방문했다.
마치 연두를 보러 편의점에 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변화는,
끼이익.
“행님, 저희 오늘도 왔습니더~”
“헤헤, 안녕하세요! 우리 귀요미 욘두도 잘 있었또?”
“역겨우니까 혀 굴리지 마라, 하주연.”
“아, 조동건 너 좀 닥치라고!”
“아저씨, 오늘도 새로운 애들 엄청 데려왔어용! 저 잘했죠! 칭찬좀, 히히.”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네.
바로 이 녀석들이 손님 급증의 주범이었다.
첫날 녀석들이 왔을 때 느낀 불안감이 완전히 적중한 것이다.
나는 일부러 무미건조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아, 행님. 왜 그러세요. 저희한테는 편하게 말 놓으시라니까..”
“맞아요, 아저씨. 그냥 편하게 친동생처럼 생각하세용.”
“풉. 저렇게 예쁜 딸이 있는데 네가 친여동생이라니 말이 되냐?”
“하아, 너 와꾸로 나한테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이 시끄러운 고딩들은 정말 매일같이 왔다.
그것도 새로운 친구 녀석들을 데리고.
물론 이 녀석들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이 정도면 요즘 애들치고 되게 착한 편이니까.’
편의점 안에 오래 있기는 했지만, 녀석들은 항상 뒤처리는 깔끔했다.
심지어 나를 돕겠다며 자진해서 편의점 내부를 청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주위에 영업을 하는 통에 손님이 미친 듯이 급증했고, 나는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바빠졌다.
‘영향력이 이렇게 클 줄이야.’
겨우 고딩 몇 명의 영업력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진짜 대기업의 능력 있는 영업직 부럽지 않을 정도다.
‘내가 사장이었다면 돈을 주고라도 고용했을 거야.’
그러나 나는 사장이 아니었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다면 첫날에 때려 패서라도 말리는 건데.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이미 흘러간 강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언니, 오빠들!”
연두가 고딩들한테 꾸벅 배꼽인사를 했다.
며칠 동안 안면을 터서 그런지 고딩들과 꽤 친해졌다.
연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와, 인사하는 거 귀염 터진다 레알.”
“연두 오늘은 더 예쁘게 하고 왔네!”
“큭큭, 티셔츠 색깔 봐 봐. 연두가 보라를 입었네.”
“아재 개그 자제해라. 역겨우니까.”
쉴 새 없이 떠드는 녀석들을 향해 내가 입을 열었다.
“얘들아. 너희 기억은 하고 있지?”
“뭐를요?”
“오늘이 마지막이란 거.”
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 주부터 아이를 맡겨도 된다고.
그래서 물어보는 손님들에게는 미리 얘기해 뒀다.
오늘이 연두가 오는 마지막 날이라는 걸.
당연히 이 고딩들한테도 미리 말해둔 참이었다.
“히잉.. 너무 슬프다.”
“연두 보러 오는 게 요즘 인생의 낙이었는데..”
녀석들의 표정이 금세 침울해졌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어른 돼라, 너희는.”
아, 방금 말은 좀 꼰대 같았나?
뭔가 흡연자가 ‘너희는 이런 거 피우지 마라.’ 이러는 느낌이었던 거 같은데.
그래도 나름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연두가 없으면.’
녀석들이 여기 올 이유는 없다.
학교 위치상 훨씬 더 가깝고 시설 좋은 편의점이 있으니까.
이제 딱히 자주 얼굴 볼 일은 없겠지.
그러니 실패한 인생 선배로서 해 주고 싶은 말을 한 것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녀석들과는 나름 정이 들었으니까.
그때였다.
“엥?”
뭔가 괴상한 외마디 물음이 들려왔다.
장난기 많은 동건이라는 녀석이 낸 소리였다.
엥이라니, 이 자식이. 형이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조언하는데.
녀석은 찡그리는 내 얼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녀석의 말은 나를 다소 놀라게 만들었다.
“아니, 그게 무슨 섭한 소립니까, 행님.”
“응?”
“왜 섭하게 마지막으로 볼 사람처럼 말을 하십니까.”
“그야 연두가 오늘 마지막이니까..”
“아니지요. 아무리 연두가 마지막이라 해도 저희랑 행님이 지금까지 쌓은 의리가 있는데. 당연히 여기로 와야지요. 그게 의리 아닙니까.”
옆에서 이 녀석과 틈만 나면 싸우는 여학생 하주연도 입을 열었다.
“맞아요. 아저씨 때문에라도 당연히 여기로 와야죠! 연두 없어도 영업은 계속할 거예요, 헤헤.”
잠깐만. 이 기분은 뭐지?
뭔가 감동 받을 거 같다. 그래도 영업 계속한다는 말은 빼 줬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녀석들은 내 생각보다 더 좋은 애들인 거 같았다.
그러던 와중 무리 사이에서 범재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첫날에 이 녀석들이 여기 왔을 때 물주로 활약했던 친구였다.
유독 무리 사이에서 갈굼을 받는 녀석이기도 했고.
단톡방의 내 모습과 비슷해서 묘하게 정이 가는 녀석이었다.
방금까지 슬픈 표정으로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갑자기 내 앞으로 왔다.
“주원이 형.”
이름까지 넣어서 형이라 부르는 게 은근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하, 왜, 범재야. 무슨 할 말 있어?”
“.. 제가 드릴 게 있는데요.”
“응? 나한테?”
“네.”
갑자기 범재는 줄 게 있다면서 가방 지퍼를 열었다.
주위 녀석들은 미리 들은 게 있는 건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
“얘들아, 집중하자. 범재좌 필살기 꺼낸다.”
“두구두구두구두구…”
범재는 주위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예상치도 못한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