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01)
901화. 제2의 사춘기
[스튜디오 초록 팀원 모집 공고]스튜디오 초록.
단톡방을 시끌벅적하게 만든 작화팀의 이름이었다.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대형회사는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대중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상영이 혼잣말을 뱉었다.
“.. 팀원 모집을 한다고?”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속해 있는 작화팀이었다.
서도연과 한경우.
한때 첫사랑이었던 대학 동기와, 생각만 해도 재수 없는 새끼가 속해있는 작화팀.
동창 모임 때만 해도 몰랐다.
그 작화팀이 이 정도로 잘나갈 거라고는.
‘나는.. 작화팀에 들어갔어. 스튜디오 초록.’
도연이 했던 말이었다.
과 수석이자 미래가 창창했던 서도연이었다.
고작 열 명 규모도 안 되는 작화팀에 들어갔는데, 모든 과 동기들이 띄워주는 상황이 상영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톡방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믹을 시전했던 터라 똥폼을 잡으며 했던 말.
‘근데.. 살짝 섣불렀던 거 아닌가?’
‘지금이야 잘 챙겨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혹시 작화팀이 잘 안 되면? 그런 상황에서도 잘 챙겨줄까? 그때 되면 대학원은 가고 싶어도 못 갈 텐데……’
‘혹시나 그때 되면 연락해. 그때쯤이면 나도 자리 좀 잡았을 테니까.’
자신이 한 말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오죽하면 그 까칠하던 서도연이 그렇게 말했겠는가.
‘걱정 고마워.’
고맙다고 말했다.
대학 생활과 그 이후를 통틀어 처음으로 도연에게 들은 고맙다는 인사였다.
그 뒤에 도연은 덧붙였다.
‘근데 그런 걱정할 필요 없을 거 같아. 며칠 뒤에 인터넷 보면 알게 될 거거든.’
‘.. 뭐?’
‘괜한 걱정이란 거.’
그로부터 정확히 며칠 뒤에 도연의 말은 현실이 됐다.
인터넷이 난리가 났으니까.
그때부터였다.
작화팀이 승승장구할수록 상영의 상황은 꼬이기 시작했다.
“.. 잠깐만.”
그런 와중에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상영은 중얼거렸다.
“아냐. 일단 여론부터 보자.”
단톡방에 쌓인 메시지가 곧 여론이었다.
지나가는 그림쟁이 : 진짜 빅뉴스네요, 이건.
귤 : 다들 지원하실 건가요.
고스트 미술왕: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일단 전 할 겁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도일고 반 고흐 : 저도요 ㅠㅠ 진짜 행복할 거 같네요. 초록님이랑 같이 일하면.
상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닉네임만 봐도 초록인지 뭐시긴지의 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평화고 미켈란젤로를 본떠서 지은 닉네임이었으니까.
‘.. 그 자식이 뭐라고.’
듣기로는 대학도 안 나왔다고 들었다.
운 좋게 몇 개 손대서 성공했다고 사람들이 띄워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애초에 그 운도 딸이 만들어 준 거 아닌가?
상영의 그런 생각은 결국 하나같이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공모전 심사에서 주원의 그림을 평가했을 때 수모를 당한 앙금이 아직 남아있는 것도 있고.
토깽이 : 너무 기대는 안 하려구용 ㅠㅠ 웬만한 대형회사보다 경쟁률 빡셀 거 같아서.
귤 : 맞아요.. 미술왕님 말대로 밑져야 본전.. 하유ㅠㅠ
고스트 미술왕 : 자신감을 가지세요, 여러분. 안 될 거라 생각하면 될 것도 안 돼요.
대충 그런 내용이 한가득이었다.
중요한 건 대체로 ‘스튜디오 초록’에 대한 여론이 엄청나게 좋다는 점이었다.
이제 확실해졌다
상영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이건 기회야……”
공고를 본 결과 1차와 2차로 이루어진다.
1차는 오로지 포트폴리오만을 보고 합격자를 선별하고, 2차 대면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정한다.
상영의 입꼬리가 오르다 못해 치솟았다.
“완전히 나를 위한 면접이잖아!”
1차는 합격할 자신이 있었다.
절대 떨어지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까.
중요한 건 2차 면접이다.
생각해 봤다. 2차 면접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 면접관은 그 자식일 거야.’
이주원.
초록으로 알려진 그가 면접을 진행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상영의 입장에서는 내세울 무기가 한둘이 아니었다.
왜냐고?
‘인연이 있어.’
주원과는 인연이 있었다. 인사도 나눴으니 나름의 친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몇 없는 직장 동료 중 두 명이 자신의 과 동기였다.
충분히 어필이 되는 부분이었다.
“전혀 이상하지 않아.”
동창 모임 때 도연에게 상황이 어려워지면 연락하라고 말했다.
그건 그 역도 성립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대충 둘러대면 끝이다.
‘학원 상황이 좀 그래서. 학원과의 의리도 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기도 하고.’
둘러댈 말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동기를 매몰차게 내팽개칠 녀석들은 아니니 말이다.
희망이 보이는 거 같았다.
아니, 이 정도면 거의 확신이었다.
“으하하. 동기 좋다는 게 뭐냐.”
그렇다면 지금 당장 밟아야 할 절차가 있었다.
단톡방에 들어갔다.
여전히 떠들썩한 단톡방, 상영은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홍원대 xx학번 : 단톡방이 떠들썩하네요 ㅎㅎ
나름 단톡방 내에서 네임드인 터라 바로 반응이 있었다.
지나가는 그림쟁이 : 오오! 홍원대님!
귤 : 공고 보셨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테이크투 : 고견이 궁금합니다.
상영의 얼굴에 비열한 웃음이 떠올랐다.
홍원대 xx학번 : 글쎄요. 사실 저희 과 동기가 거기서 일하고 있거든요.
귤 : 헐.. 정말요?
토깽이 : 근데 왜 글쎄인가요..?
잠깐 고민하던 상영은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경쟁자 제거 들어가신다.. 원래 인생은 스마트하게 사는 거라고.”
거짓말을 잘 치는 방법이 뭘까.
그건 바로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는 거다.
뭐가 진실인지 뭐가 거짓인지 알 수 없도록.
상영이 잘 쓰는 수법이었다.
홍원대 xx학번 : 이런 말 하기 좀 조심스럽긴 한데 알려진 것처럼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들었어요 ㅎㅎ
홍원대 xx학번 : 생각보다 초록? 그분이 엄청 예민하다고 하더라고요. 화도 많이 내고 ㅎㅎ
홍원대 xx학번 : 사실 저도 대학원 들어가기 전에 제안받았는데, 돌이켜보니 안 가길 잘했다 싶은……
기믹으로 얼룩진 삶이었다.
***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데스크톱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
바로 나였다.
[스튜디오 초록 팀원 모집 공고]생각보다 반응이 핫했다.
공고를 올린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엄청난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표정이 뚱하냐고?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엄청난 양의 포트폴리오를 확인할 생각에 짓는 표정은 아니었다.
‘감사한 일이지.’
작화팀에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건 감사할 일이었다.
기분이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질 일은 아니다.
문제는 함께 떠오른 기사였다.
[연두 아빠 초록.. 생각보다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기사 제목이다.
이러니 내가 뚱한 표정을 안 짓고 배기겠는가.
진짜 예민해질 거 같은 기분이다.
찌라시를 자주 올리는 기자가 올린 기사이긴 했지만, 제목이 자극적이라 그런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기레기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하아..”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팀원들 앞에서 감정을 표출해버렸다.
프로답지 못하게.
처음으로 나는 팀원들이 내 눈치를 보는 장면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표정을 고쳤다.
그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으니까.
‘사실 딱히 멘탈이 나간 것도 아니고.’
단지 안쓰러울 뿐이었다.
내 성격이 뭐라고 그걸 기사화하고 이렇게 대중적으로 관심을 얻는 이 상황이 뭔가 기이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 허위사실이다.
왜냐고? 나는 예민한 성격이 아니니까.
‘.. 아닌가?’
정정한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사에 함께 첨부된 어느 익명 단톡방의 채팅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홍원대 xx학번 : 단톡방이 떠들썩하네요 ㅎㅎ
문제의 인물이었다.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홍원대 xx학번 : 글쎄요. 사실 저희 과 동기가 거기서 일하고 있거든요.
이후 내용이 이슈가 된 부분이다.
홍원대 xx학번 : 이런 말 하기 좀 조심스럽긴 한데 알려진 것처럼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들었어요 ㅎㅎ
홍원대 xx학번 : 생각보다 초록? 그분이 엄청 예민하다고 하더라고요. 화도 많이 내고 ㅎㅎ
홍원대 xx학번 : 사실 저도 대학원 들어가기 전에 제안받았는데, 돌이켜보니 안 가길 잘했다 싶은……
나를 콕 집어서 얘기했다.
나랑 뭔가 안 좋은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 한 일을 한 기억은 거의 없는데.
“진짜 누굴까요……”
결국 포문을 연 건 경리 유하나였다.
“누가 초록님한테 이런 말을……”
최표식도 입을 뗀다.
“그러게 말이에요. 초록님이 예민한 성격?”
심장을 콕 찌르는 한 마디.
다행히 그 뒤에 말이 더 이어졌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화를 많이 낸다고요? 오히려 화 좀 내 달라고 사정사정해야 할 판인데.”
“맞아요.”
그 뒤에 입을 뗀 건 경우씨였다.
“초록님.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자면 저랑 도연님은……”
“하하, 알아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
익명의 누군가는 자신이 홍원대 출신이고 과 동기가 우리 작화팀에서 일한다고 밝혔으니 두 명으로 축소된다.
언급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저는 두 분 말고 홍원대 출신한테 입사 제안을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누군지 몰라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죠.”
“아.”
“진짜 이해가 안 가요.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씩씩거리며 대신 화를 내는 하나씨를 보니 왜인지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요. 초록님한테도 벌레가 꼬이네요.”
“원래 꽃에는 벌레가 꼬이기 마련이죠.”
꽃에 비유하면 좀 쑥스러운데.
실소를 뱉으며 나는 말했다.
“아마 저랑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 아닐까요? 홍원대 출신이라는 거 자체가 거짓말일 수도 있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팀원들.
대충 상황을 중재하고 넘어가려는 참이었다.
경우씨가 재차 입을 뗐다.
“도연님.”
“네.”
왠지 모르게 도연씨도 표정이 좋지 않다.
그때였다.
경우씨가 입을 뗀 건.
“혹시 저만 그 녀석이 생각나나요?”
***
도연씨가 반응했다.
“.. 그 녀석?”
“네. 우리 과 동기였던 그 녀석이요.”
그 뒤에 들려온 이름.
“박상영.”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도연씨가 흠칫한다.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가져가더니 표정이 점점 굳는다.
“경우님.”
“네.”
“증거 없이 몰아가는 건 좋지 않아요. 그런데……”
도연씨가 차갑게 말을 얹었다.
“.. 증거가 있네요.”
도연씨는 얘기했다.
“이 열받는 말투랑 습관처럼 말끝에 붙이는 히읗 두 개. 그림에 그려놓은 듯한 박상영인데요.”
“하하, 그렇죠?”
경우씨가 작게 중얼거린다.
“이거 진짜 미친 자식이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말투는 그렇다 쳐도 말끝에 습관처럼 히읗을 붙이는 경우는 흔하니까.
그런데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서인지, 두 사람은 거의 확신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도연은 말했다.
“초록님.”
“네.”
“이거 걔가 확실한 거 같은데, 그냥 명예훼손 이런 거로 걸어버리는 거 어떨까요?”
미소를 띠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요. 그 정도로 심각한 내용도 아니고요.”
“그래도……”
걱정해주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댓글 보세요. 이럴 때 쓰는 말인 거 같은데요? 오히려 좋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기사 댓글창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뭐냐, 이 초록님을 음해하려는 1인 세력은?
-심지어 내용도 하찮아서 웃김 ㅋㅋ 초록님 의외로 예민하고 화도 낸다. 이게 전부임.
-홍원대인 건 맞냐 ㅋㅋㅋㅋㅋ 뭔가 의심 가는데.
-ㅇㅇ
-근데 이건 오히려 멋진 거 아니냐. 일할 때는 프로다운 모습이라는 건데.
-갭모에 미쳤고.
-헤으응.. 초록이형, 화내줘.
당황스러운 댓글도 있긴 했지만 사실상 거의 타격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죠. 지금은 그런 것보다 집중해야 할 게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이 정도는 해프닝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때였다.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듯이 가만히 있던 우영이가 입을 뗀 건.
“근데 저는요?”
“네?”
“저도 홍원대잖아요. 저랑 관련된 걸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
이걸 어쩐다.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우영이의 인간관계를 고려할 때 도저히 우영이와 관련된 일은 아닐 거 같았다고.
팀원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나, 나이가 안 맞잖아요.”
“나이요?”
“응. 작성자는 대학원 다닌다는데 그럼 우영님이랑은 나이가 안 맞으니까.”
“아.”
납득한 건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네요.”
살짝 웃는 우영이.
관심을 안 줘서 속상했던 건가?
아무래도 우리 우영이한테 제2의 사춘기가 찾아온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