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08)
908화. 그리움, 고마움
성장통.
사전적 정의는 이러했다.
성장기 아동에서 나타나며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신체활동을 많이 한 날에 통증이 생기며, 낮보다는 저녁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잦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검색해 봤으니까.’
그런데 사실 사전적 정의보다는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더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그야, 나는 성장통이 심한 편이었으니까.
‘잠깐만.’
그런데 왜 이 정도밖에 못 컸지?
생각해보니 억울하네.
어쨌거나 나도 성장통이 찾아왔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생 정도 됐을까.
신나게 뛰어놀고 들어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다리가 미친 듯이 아팠다.
‘으어어..’
시름시름 앓을 정도였다.
결국 나는 아빠한테 SOS를 쳤다.
당시 상황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으나 아빠의 반응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으하핫!’
믿기는가.
고통에 신음하는 어린 아들을 보며 아빠는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평소에는 잘 웃지도 않으면서.
아마 그때의 충격 때문에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말했다.
‘키가 크려는 거다. 아픈 만큼 크니까 참아라.’
그래서 참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세상 매정하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리를 주물러줬다.
아빠 손 힘이 센 탓에 고통이 상쇄돼서 덜 아팠던 거 같기도 하다.
“아, 아빠..”
“연두야.”
“다리가.. 다리가 너무 아파여.”
그리고 지금은 내가 아빠가 됐다.
눈가에 반쯤 눈물이 고여있는 걸 보면 연두도 성장통이 심한 모양이다.
안쓰러우면서도 마음이 놓였다.
‘확실해.’
성장통이 확실했다.
처음에 신음과 아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어디 심하게 다친 건가 해서.
성장통.
말 그대로 질병이 아닌 통증이었다.
“많이 아파, 연두야?”
“…네에.”
연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다쳤는데…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불안할 만도 하다.
성장통은 달리 말하면 불합리한 통증이었다.
뚜렷한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조 없이 갑작스레 찾아오니까.
“걱정하지 마, 연두야.”
지금 내가 줘야 할 건 심리적 안정이었다.
“성장통이라는 거야.”
“…성장통?”
“응. 연두는 지금 성장기잖아. 키가 크는 과정에서 다들 성장통이 발생하거든. 지금처럼 다리가 욱신거리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키가 크려는 거야.”
이 정도로 말하면 될 줄 알았다.
그야, 연두는 평소에 키가 빨리 크고 싶어 했으니까.
그런데……
“키 크는 게 이렇게 아프면… 연두는 키 안 클래여.”
이건 변수였다.
생각보다 많이 아픈 모양이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통증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지.
바로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수밖에.
“아빠도 성장통이 심했어, 연두야.”
“…아빠도요?”
“응.”
몸을 일으킨 나는 말했다.
“그대로 누워있어 봐.”
통증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특히 아프다는 왼쪽 다리 무릎 부분과 종아리 부분이었다.
아빠처럼 우악스러운 손길은 아니었다.
꾸욱-
“아, 아빠..?”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다리를 주물러줬거든.”
손재주 하나는 뛰어난 편이다.
마사지 스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때?”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나아지고 있어여..”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로 효과가 빠르면 곤란한데.
“다행이다.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연두야. 성장통은 오래 가지 않거든.”
“.. 그럼요?”
“오늘이 지나면 하나도 안 아플 거야.”
그러다 또 예고없이 불쑥 찾아오긴 하겠지만 말이다.
굳이 그걸 말하지는 않았다.
안심이 된 건지 연두는 아까보다 훨씬 편안한 표정이었다.
통증이 많이 가셔서라기보다는 심리적 불안감이 해소됐기 때문일 거다.
“아빠 안 힘들어여?”
“하나도.”
“진짜요?”
“그럼, 진짜지.”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갑작스런 물음에 잠깐 딜레이가 있었다.
“하하, 갑자기?”
그러나 답은 정해져 있었다.
“보고 싶지. 엄청.”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연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여.”
“응?”
“아빠… 슬프게 만들어서……”
내가 슬퍼보인 걸까.
표정을 보고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슬프지는 않아.”
정말이었다.
아빠는 내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책임지고 나를 키워줬고, 지금 생각하면 아빠가 한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한 것들이었다.
슬픔이 아니었다.
옅은 미소를 머금고 나는 덧붙였다.
“…그리운 거지.”
그런 아빠를 생각할 때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
그 뒤로도 연두 다리를 주물러주며 한참 동안 얘기를 주고받았다.
의외로 신나게 수다를 떠는 건 통증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었으니까.
대충 이런 대화였다.
“아빠.”
“응, 연두야.”
“그럼… 아빠는 이제 성장통 안 해요..?”
귀여운 질문이었다.
“하하, 그렇지.”
“왜요?”
“아빠는 성장이 끝났으니까. 몸도 마음도.”
순간 흠칫한 나는 말했다.
“혹시 아빠가 아직 성장이 덜 된 거 같니?”
다행히 연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얘기했다.
“…아쉬워서여.”
“뭐가?”
“아빠 성장통 하면… 연두가 주물러주려 했는데……”
젠장, 한다고 할 걸.
말을 바꾸려다가 그건 너무 추한 거 같아서 그만뒀다.
“꼭 성장통이 아니더라도 해 주면 되지.”
“아.”
생긋 웃으며 연두가 말했다.
“맞아여! 그럼 연두가 안마쿠폰 줄게여..!”
나이스 득템이다.
그밖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서서히 연두의 눈이 감겼다.
이윽고 들려왔다.
코오-
잠에 들었다.
그런 연두를 보고도 얼마간 더 주물러주다가 조심스레 손을 뗐다.
됐다.
‘이제 연두 몸에서 나가라.’
손님이 떠날 차례다.
내일 일어나고 나면 거짓말처럼 하나도 아프지 않을 테니까.
잠든 연두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연두한테도 성장통이 오는구나.’
물론 성장통이 왔다고 해서 급격하게 성장할 거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성장통이 온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지만, 내가 급속도로 성장한 건 중학생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이 뭉클했다.
‘이렇게 작은데……’
여전히 내게는 처음 봤을 때처럼 작았다.
매일같이 보다 보면 성장하고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없다.
그런 내가 연두의 성장을 자각할 수 있게 만드는 건, 절대적인 수치와 이런 요소밖에 없었다.
연두는 성장하고 있다.
‘고마워, 연두야.’
잘 크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내게는 고마운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슥.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보겠는가.
언제든 볼 수 있지만 생각보다 자주 꺼내보지는 않으니 말이다.
손을 뻗어 서랍에서 사진을 꺼냈다.
‘안녕, 아빠.’
사진 속이라 친근하게 불러도 돼서 좋았다.
‘이 녀석이. 내가 니 친구냐?’
실제였다면 아마 그렇게 말했을 거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아빠가 내게 무심하게 했던 말과 행동을 내가 연두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는 걸 자각했을 때 깨달았다.
그 말과 행동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되는지.
‘사랑.’
사랑이었다.
단지 혈육이자 부모로서의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었다.
사랑을 받았다.
그렇기에 나도 연두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었다.
아니, 사랑을 주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 고마워요.’
그리움과 고마움은 맞닿아 있는 감정이었다.
***
스튜디오 초록 1차 심사의 합격 여부는 지원자의 개인 메일로 통보됐다.
지금 막 메일을 확인한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박상영이었다.
-축하드립니다.
-1차 심사에서 합격되셨습니다.
-2차 면접 일정은……
치솟는 입꼬리.
학원 데스크에 앉아 있던 박상영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됐다!”
퍽.
그 과정에서 데스크에 정강이를 부딪히긴 했지만.
“악! 시X..”
욕을 뱉고 나서 박상영은 아차 하고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으흐흐. 흐흐.”
자꾸 웃음이 나왔다.
합격할 줄 알고는 있었지만 그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만의 하나라는 게 있었으니까.
혹여나 한경우나 서도연이 나쁜 마음을 먹고 떨어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아, 그건 변수였지.’
단톡방에 글 좀 쓴 게 그렇게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혹여나 특정되지는 않을까 심장이 쫄렸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홍원대 졸업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익명 단톡방에서 자신을 특정할 수 있을 리 없다.
괜한 걱정이었다.
“흐하하!”
조울증 환자처럼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진상 학부모의 전화를 받고서 부아가 치밀던 참이었다.
애새끼 그림이 안 느는 걸 왜 자신한테 따진단 말인가.
강사도 아닌데.
‘아이고, 그러셨군요. 진우가 컨디션이 좀 안 좋았나 봐요. 그림 많이 늘었는데……’
망할 학부모들 비위를 맞추는 것도 이제 끝이었다.
면접에서 합격만 하고 나면 원장과 싸가지없는 강사 면전에 대고 사직서를 던져줄 생각이었다.
아니, 사직서도 아깝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충분해.’
기분좋은 상상.
자꾸만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나왔다.
그때였다.
-셔틀 도착했습니다.
문자가 날아왔다.
왜인지 열이 받았다.
‘스튜디오 초록’에 합격할 정도의 인재인데 셔틀 시간이나 체크하고 있다니.
“후.. 조금만 참으면 된다.”
아이들이 들어왔다.
저번에 똥침을 날렸던 빌어먹을 꼬맹이도 속해있었다.
이름은 배동휘였다.
“안녕하세요, 쌤!”
인사하는 아이들을 향해 박상영은 귀찮다는 듯이 휘휘 손짓하며 말했다.
“얼른 교실 들어가라.”
“아직 수업시간 아닌데요?”
“원래 수업시간 전부터 들어가 있는 거야. 그래야 나처럼 좋은 대학 가고 하는 거라고.”
그때였다.
이번에도 동휘는 상영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푸흣! 쌤은 쌤도 아니잖아요.”
“뭐?”
“좋은 대학 나오면 쌤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야, 너……”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해맑게 일침을 꽂고서 동휘는 교실로 들어가버렸다.
“저 새X가, 진짜……”
뒤이어 강사 한혜주가 교실로 들어간다.
열이 받았다.
“확 때려치워 버려?”
2차는 사실상 따 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좋을 대로 생각하는 게 특기인 박상영인데 1차 합격 소식까지 접한 상태였다.
머릿속은 완벽한 행복회로를 굴리고 있었다.
나쁜 경우의 수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다, 참자.”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다시 교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복도를 뛰어다니며 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야, 싸우지 마!”
여자아이의 목소리.
상영이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건 서로 툭툭 건드리는 두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중 한 명은 동휘였다.
아직까지는 장난의 축에 속했다.
“영역전개!”
“태양의 호흡!”
두 아이의 장난은 계속됐다.
기술명을 뱉으며 두 아이는 쫓고 쫓기며 복도를 뛰어다녔다.
싸움이란 게 그랬다.
장난이 진심이 되고, 말리는 또래 아이가 있으면 더욱 거세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 말려야 하는 건 상영의 몫이었다.
그러나……
슥.
말리는 대신 상영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동영상 촬영 모드로 바꿔서 두 아이의 추격전을 담기 시작했다.
“에이, 아니지! 박재규! 거기서는 몸통박치기를 써야지!”
“몸통박치기!”
퍽.
“억!”
재규는 분위기에 잘 휩쓸리고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듣는 아이였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부족해! 고무고무 개틀링건!”
“개틀링건!”
퍼버벅.
“그, 그만해!”
동휘가 몸부림쳤다.
아이들 싸움을 부추긴 것도 부추긴 거지만, 상영이 악질인 건 진짜 타격이 있을 법한 기술명만 골라서 말했다는 점이다.
상영의 입꼬리는 잔뜩 치솟아있었다.
‘꼴 좋다, 이 새X.’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싸늘한 목소리가 귀에 꽂히듯 들어온 건.
“..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고개를 돌리니 서 있는 건 강사 한혜주였다.
“아이들 싸움시키시는 거예요? 그걸 또 핸드폰으로 찍고 있고?”
“아니, 이건……”
습관적으로 변명하려다가 상영은 입 밖에 외마디 소리를 뱉었다.
“.. 하.”
생각해보니 더 이상 저자세로 나갈 필요가 있었다.
이 여자가 원장도 아니고.
원장한테 말한다는 것도 더는 무섭지 않았으니까.
“싸움은 무슨 싸움이에요. 애들 노는 거 재밌어 보여서 그냥 찍은 건데.”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혜주는 말했다.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
“뭐요?”
“딱 봐도 아파하는 게 보이는데 말리지는 못할망정.. 정말 믿기지가 않네요.”
한혜주는 덧붙였다.
“이 일은 원장님께 말씀드릴 거예요. 영상은 지우시고요.”
더는 말 섞을 가치가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래서일까.
“아, 씨X. 진짜……”
“.. 네?”
“지잡대년이 더럽게 떽떽대네.”
결국 상영을 돌이킬 수 없는 말을 입 밖에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