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이든
옷 갈아입는 걸 도와준 후, 두어 걸음 떨어져 연두를 바라봤다.
이 너머에는 범재와 범재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두 사람이 보기에 앞서, 먼저 내 눈에 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연두를 바라보는데.
‘.. 뭐야?’
보는 동시에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말이 웃기긴 하지만, 내가 예상한 예쁨 수치를 가볍게 넘어섰다.
연두가 예쁜 건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주목한 건 원피스였다.
사실 연두색 원피스만큼만 돼도 대박이라 생각했고, 그 이상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욕심이라 생각했으니까.’
백화점에 가서 많은 옷을 보고 깨달은 점이 있었다.
범재가 선물한 원피스가 정말 높은 퀄리티의 옷이라는 걸.
대형 백화점인데도 의외로 그만한 옷을 찾아보기 힘들었지.
눈이 높아져서 그런 건지, 대부분 기대에 못 미치는 옷들뿐이었다.
‘트렌치코트는 예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원피스와 트렌치코트는 다른 옷이었다.
같은 종류가 아닌지라 서로 비교하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너무 비싸서 살 수 없는 옷이기도 했고.
지금의 경우는 달랐다. 비교대상이 있기에 비교가 가능했다.
옆에 벗어 둔 연두색 원피스와, 지금 입고 있는 붉은 계열의 원피스.
솔직히 둘 다 너무 예쁜 옷이라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금 입고 있는 원피스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빨간색은 자칫하면 굉장히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색이다.
짙은 만큼 개성도 강한 색깔이니까.
범재가 원피스를 가져왔을 때 조금 걱정이 된 이유도 그래서였고.
‘괜한 걱정이었어.’
걱정한 게 무색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원피스였다.
촌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장난 아니게 고급스러웠으니까.
뭔가 유럽풍의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그런 원피스를 입은 연두는 꼭 유럽의 공주님 같았다.
지금까지의 연두와 전혀 색다른 모습임은 분명했다.
“아빠아..”
의도치 않은 침묵이 이어지자 연두가 수줍은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잠깐. 연두가 공주님이라면 나는 뭐가 되는 거지?
공주의 아빠면 왕인 건가?
뜬금없이 든 시답잖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대답이나 하기로 하자.
“응, 연두야.”
“.. 연두 어때여?”
입고 있으면서도 내게 물어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할 거울이 주위에 없었으니까.
뭐, 내가 대답해주면 되는 문제였다.
지금 연두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긴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엄청 예뻐. 너무 잘 어울린다.”
“.. 진짜요?”
“당연히 진짜지. 꼭 유럽 공주님 같은데?”
“헤헤.. 근데 아빠.”
“응.”
“유러비 머에요..?”
“아. 그니까 유럽이란 건……”
괜히 단어를 꺼냈다가 한참을 설명해줘야 했다.
얼마 후, 설명을 끝낸 나는 연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원피스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이거 때문이구나.’
손에 안감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안감 때문에 속이 비치지 않는 거 같았다.
물론 전혀 두꺼운 느낌의 안감은 아니었다.
여름에 입어도 전혀 지장 없을 정도로 가벼운 안감이었다.
‘그리고 이거.’
자연스레 손이 위쪽으로 올라갔다.
입은 모습을 보자마자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었다.
원피스 네크라인에 위치한 리본 포인트 장식.
이 장식이 있어서 옷이 전혀 밋밋하지 않고 세련돼 보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
그 말이 실감이 가는 순간이었다.
연두색 원피스 못지않게 퀄리티 높은 옷이었으니까.
예전에 범재가 작은 쇼핑몰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은 그냥 겸손을 떤 걸지도 모르겠다.
‘.. 도와줄 필요는 없겠어.’
몇 번인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연두튜브를 통해 쇼핑몰을 소개해주는 게 어떨까 하고.
지금 보니 괜히 혼자 오버를 한 거 같다.
이런 옷을 파는 쇼핑몰이라면 이미 잘 나가고 있지 않을까.
주관적인 감상으로는 ‘버디’에도 안 꿇리는 거 같은데.
투둑.
그런데 그때, 손에 까슬한 감촉이 느껴졌다.
네크라인의 리본을 만지작거리는데 느껴진 감촉이었다.
‘.. 뭐지?’
옷 안에 무언가 딱딱한 게 숨어있는 거 같았다.
혹시 급하게 가져온 거라 이물질이 섞여 있는 건가?
찔려서 연두가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잠깐 가만히 있어 볼래, 연두야?”
“네에.”
내 말에 연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까지 참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이 될 정도로.
나는 조심스레 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정체 모를 무언가를 꺼냈다.
‘아!’
모양을 보자마자 뭔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위험한 이물질 같은 건 아니었다.
이건 다름 아닌 가격표였다.
‘브랜드 이름이 적혀있네.’
영어로 적혀있는데 한글로 발음하면 ‘이든’이었다.
전에 원피스를 선물 받았을 때 가격표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가격표를 떼어버린 후 까먹긴 했지만.
이든이라. 무난하게 느껴지는 브랜드명이었다.
허나 가격표에서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힐끔.
괜히 눈치를 한 번 본 후, 옷 가격을 확인했다.
₩ 67,000
확인하는 동시에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와…”
‘버디’의 가격표를 봤을 때와는 다른 의미의 감탄사였다.
칠십삽만 원이라는 미친 가격에 경악했던 그때와는.
그 가격에 비하면 이 정도는 귀요미였다.
조금 과장하면 앙증맞아서 뽀뽀라도 해 주고 싶을 지경이다.
‘연두가 입고 있으니 그건 불가능하고.’
쪽.
더 사랑스러운 연두의 볼에 뽀뽀하는 걸로 대신하기로 했다.
“으응..?”
“너무 예뻐서.”
“히히.”
연두가 볼을 만지작거리며 배시시 웃는 사이, 나는 가격표를 도로 집어넣었다.
삐져나온 채로 나가면 곤란하니까.
“좋아. 이제 가 볼까, 연두야?”
“네에!”
이 옷은 시작일 뿐이었다.
얼마나 예쁜 옷이 더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너무 많아서 마음에 드는 옷을 다 사는 게 불가능할지도.
‘행복한 고민이겠군.’
그래. 백화점은 정답이 아니었던 거다.
원래 정답은 꼭꼭 숨어있는 법이니까.
나는 지금 정답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
“와…”
“오오…”
부자라 그런지 감탄하는 것도 비슷했다.
목소리의 굵기가 차이 나긴 했지만.
과장 안 하고 범재는 천사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진짜 미쳤다..”
직접 고른 옷인 만큼 감격이 더 큰 모양이다.
옆에서 범재의 아버지인 오준석도 한 마디 덧붙였다.
“정말 예쁘구나.”
“그치, 아빠. 와, 진짜 말도 안 된다.”
“연두 같은 딸이 있었어야 하는데……”
나는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방금의 얘기는 범재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는 발언이었으니까.
그런데 범재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이라도 낳으면 안 돼?”
“.. 미안하다.”
유쾌한 부자의 대화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편 연두는 칭찬이 쏟아져서인지 굉장히 수줍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귀엽게 느껴진다는 게 함정이지만.
쓰담.
나는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범재야.”
“네, 형.”
“너 진짜 안목이 있구나?”
“크크, 당연하죠. 연두에 관한 건데.”
우연이 겹치면 우연이 아닌 법이었다.
처음의 연두색 드레스는 우연히 잘 어울렸던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확실히 범재는 옷을 고르는 안목이 있었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옷의 퀄리티였다.
옷이 예쁘지 않았다면 안목은 소용없었을 테니까.
나는 오준석을 향해 말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뭐가 말입니까?”
“신기해서요. 이런 옷을 만드신다는 게.”
“허허, 아닙니다. 모델이 너무 예쁘니까 옷이 빛이 나는 거죠.”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공감할 수는 없었다.
물론 모델이 예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세상 어디에도 연두만큼 예쁜 아이는 없을 테니.
그러나 원피스 역시 무척 세련되고 느낌 있었다.
아까 말했듯이 ‘버디’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정도니까.
범재 아버지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저는 주원 씨가 대단한데요.”
“.. 제가요?”
“연두튜브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봤거든요. 정말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역으로 칭찬을 받으니 낯간지러운 기분이다.
게다가 옆에서는 연두가 맞는 말이라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 칭찬만 나오면 이렇게 자동으로 반응하는 연두였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얼마간 덕담을 주고받다가 나는 카메라를 꺼냈다.
이렇게 잔뜩 꾸몄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
앵글 속에 연두의 모습을 담고 나서 말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다른 옷도 입혀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러려고 초대한 건데요.”
“그럼 혹시…”
아직 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옷이 있었다.
여기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혹시 트렌치코트도 있나요?”
‘버디’에서 본 트렌치코트가 기억에 남았다.
만약 범재의 아버지가 만든 트렌치코트가 있다면, 분명히 예쁠 거 같았다.
어쩌면 그 옷보다 더 예쁠지도 모를 일이다.
기대감 속에 오준석이 입을 열었다.
“네, 있습니다.”
계 탔다, 오늘.
***
이후에는 거의 패션쇼의 현장이었다. 패션쇼의 모델은 연두 하나뿐이긴 했지만.
예상대로 이든의 트렌치코트는 연두와 찰떡이었다.
‘버디’와는 다른 느낌이긴 했지만, ‘이든’만의 개성이 있었다.
‘블라우스도 그랬고.’
그 밖의 옷들도 각기 다른 매력이 존재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연두는 새로운 매력을 뽐냈다.
빨간색 원피스를 입었을 때는 유럽의 공주님 같았고,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은 모습은 마치 요정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기를 진짜 잘했다는.
띵동.
이 정도면 원 없이 옷을 골랐다 싶을 즈음, 벨이 울렸다.
중국집에서 배달시킨 음식이 온 모양이었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잠시만요. 계산을……”
“아닙니다. 초대해 주셨는데 이건 제가 사야죠.”
오준석이 만든 퀄리티 높은 옷들 덕에 쇼핑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배달음식이긴 하지만 식사는 내가 대접하는 게 옳았다.
“카드 받았습니다.”
“네.”
테이블 위에 짜장면 두 개와 짬뽕 두 개, 그리고 탕수육이 놓였다.
우습게도 부녀와 부자끼리 메뉴가 겹쳤다.
나와 연두는 짜장면을, 범재와 오준석은 짬뽕을 주문했으니까.
“와, 개꿀맛 각이네…”
범재가 입맛을 다시며 비닐에 손을 옮겼다.
오준석이 내게 말했다.
“그럼 잘 먹을게요.”
“아닙니다. 맛있게 드세요.”
연두의 시선도 짜장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웃으며 비닐을 뜯어 연두에게 건넸다.
“기억나지, 연두야?”
“모가여..?”
“짜장면 맛있게 먹는 방법.”
연두는 신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에! 짜장면 한 입에 담무지 하나..!”
“하하, 그래.”
전에 짜장면을 먹을 때 내가 연두에게 전파한 법칙이었다.
짜장면은 꼭 단무지랑 같이 먹기.
연두도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그 법칙을 따르고 있었다.
이윽고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됐다.
둘러앉은 네 명이 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후루룩.
연두도 지지 않고 식사에 열중했다.
나도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짜장면 위에 단무지 하나가 똑 떨어졌다.
고개를 드니 연두가 맑게 웃고 있었다.
“헤헤, 아빠 꺼..”
“푸흡.”
식사 중에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입가에 짜장을 잔뜩 묻힌 채로 웃는 연두를 보니.
잠깐만 저 상태로 놔둬야겠다. 귀여워서.
“고마워, 연두야.”
모른 체하고 짜장면을 입에 넣었다.
연두가 준 단무지라 그런지 더 맛있는 느낌이다.
범재의 부러운 눈빛을 견뎌야 하긴 했지만.
식사가 끝나갈 즈음, 내가 입을 열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뭘요. 옷을 산 건 주원 씨인데 제가 감사해야죠.”
“아닙니다. 덕분에 연두 여름옷 걱정은 없겠네요. 그치, 연두야.”
“네, 아빠! 아저씨가 만둔 옷 체고에여..!”
오준석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를 향해 나는 살며시 입을 열었다.
“참. 겨울옷도 만드시는 거죠?”
“네. 그렇긴 합니다만…”
“잘됐네요. 이든이라는 인터넷 쇼핑몰로 들어가서 사면 될까요?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아버님이 만드는 옷을 연두한테 입히고 싶어서요.”
“…”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이런 가성비 좋고 퀄리티 높은 옷들을 두고 백화점을 찾을 이유는 없으니까.
‘.. 그런데 뭐지?’
분위기가 순식간에 이상해졌다. 실언이라도 한 것처럼.
범재도 무언가 씁쓸한 표정으로 안경만 만지작거리고 있고.
당황한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말실수라도…”
오준석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허허, 아닙니다.”
“그럼..”
“그게.. 안타깝지만 겨울에는 ‘이든’의 옷을 못 사실 겁니다.”
“.. 네? 왜죠?”
잠깐의 침묵 이후 오준석이 입을 열었다.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드는 한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조만간 정리할 생각이거든요. 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