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12)
912화. 괴물
귀엽다.
사실 나는 그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남자한테는 거의 쓰지 않지.’
달리 말하면 내가 남자한테 ‘귀엽다’라는 말을 쓸 때는 장난 아니게 귀엽다는 뜻이었다.
흉내로는 낼 수 없다.
그런 흉내도 있냐고?
당연하다.
귀여워 보이려고 의식해서 하는 말과 행동이나, 이를테면 대놓고 하는 애교 같은 것도 있었다.
‘누가 내 앞에서 굳이 그러지도 않겠지만.’
어설프게 그랬다가는 내게 이끌어낼 수 있는 건 ‘귀엽다’가 아닌 분노뿐이었다.
그럼 어떨 때 남자가 귀엽다고 느끼냐고?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상황과 맥락, 그리고 모든 요소들이 맞물릴 때.
‘그래.’
어떻게 보면 귀엽다는 말은 내가 남자를 향해 뱉을 수 있는 최상급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아, 물론 연두는 24시간 내내 귀엽다.
반박은 받지 않겠다.
문제는 그렇게 암묵적으로 정한 규칙이 단 한 순간에 깨졌다는 거다.
“아,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지원자의 인사 한마디에.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과장이 아니었네.’
귀여운 지원자와 더불어 경우씨가 한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하나씨가 ‘초록님을 음해하려는 세력 아니에요?’라고 물었을 때였다.
경우씨는 단호하게 답했다.
‘눈이 착해 보였어요.’
관상을 믿지는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른 의미의 관상을 믿는다.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관상은 없지만, 그 사람이 사는 인생이 얼굴에 묻어난다고 생각하니까.
“.. 우와.”
귀요미가 웃는다.
그 두 눈 속에서는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초록님이다..”
재차 인사하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습니다.”
“아, 네.”
안내해주려는 참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귀요미는 어딘가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이 떡 벌어져 있다.
표정 관리라고는 없었다.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경우씨가 있었다.
“하, 하하.. 안녕하세요?”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제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전해 들었으니까.
같은 입장인 줄 알았던 사람이 면접 장소에 떡하니 앉아있으면 놀랄 만도 하다.
끝이 아니었다.
“.. 허억!”
이번에는 소리까지 나왔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는 도연씨를 보고.
도연씨도 어색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저기……”
최소한의 설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걸까.
경우씨가 입을 뗐다.
“어제는 경우가 없어서 말 못 했는데, 저는 한경우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본인도 라이밍을 즐기는 거 같다.
“스튜디오 초록의 일원이고요.”
“그럼.. 직원이신 건가요?”
“그렇죠?”
“시,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하하, 아닙니다. 실례는요.”
이 정도면 오해는 어느 정도 풀린 거 같았다.
귀요미 지원자도 어쩔 줄 몰라 하며 쭈뼛쭈뼛 서 있는 걸 보니 더 세워두는 건 안 될 거 같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면접 시간까지는 좀 남아서요. 다른 지원자도 아직 도착 안 했고요. 들어가서 기다리시면 될 거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바구니 안에 있는 건 얼마든지 드셔도 되고요.”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귀요미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문제네.
이름을 모르다 보니 자꾸 귀요미라 부르게 된다.
이러다 입 밖에 그대로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곤란한데.
끼익.
그때였다.
팀원들끼리 대화를 나눌 틈도 없이 다음 지원자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앳된 얼굴의 여성 지원자였다.
“안녕하세요오..”
“어서 오세요.”
마찬가지로 미팅룸으로 안내해줬다.
“이쪽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시면 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총총 걸어가서 미팅룸 안으로 들어간다.
팀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입을 뗀 건 표식씨였다.
“오늘..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데요?”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시작이었다.
***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귀요미의 이름은 윤서준이었다.
미팅룸에 들어간 서준은 패닉에 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어제 일이 스쳐 지나갔다.
틀림없이 자신과 같이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가운 나머지 말을 건넸다.
‘하나 드릴까요?’
‘에이, 실례는요. 저는 ‘스튜디오 초록’이요!’
‘꼭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면접 파이팅!’
얼굴이 화끈거린다.
현재 ‘스튜디오 초록’의 팀원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니.
‘바보냐고, 진짜……’
어제 너무 의지에 불타올랐던 게 문제였다.
1차 포폴 면접에서 합격한 것도 그렇고, 성인이 되고 나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너무 들떠버렸다.
그런 나머지 면접 날짜까지 헷갈렸다.
그 사실을 ‘스튜디오 초록’ 건물 앞까지 걸어가고 나서야 알았고.
‘……?’
그때라도 알아서 다행이었다.
마지막까지 모르고 안에 들어갔으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또 이런 변수가 닥칠 줄이야.
역시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다.
짝. 짝.
고개를 휙휙 저은 서준은 양쪽 뺨을 두드렸다.
“정신 차리자……”
이 당황스러움이 면접까지 이어지면 곤란했다.
그때였다.
옆에서 소리가 들려온 건.
“안녕하세요오..”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면접 보러 오신 거죠?”
“네. 혹시……”
“물론 저도 그렇답니다.”
조금은 특이한 말투를 구사하며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근데.. 엄청 귀엽게 생기셨네요?”
“네, 네?”
당황한 서준을 향해 물었다.
“그런 말 자주 듣죠?”
“자, 자주는 아니고……”
“듣기는 듣는다는 말이군요?”
서준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말은 아니라서요.”
“네? 왜죠?”
진심으로 이해 못 한다는 표정.
왠지 모르게 말문을 튼 두 사람은 대화를 계속했다.
“.. 저도 남자니까요.”
서준은 몰랐다.
수줍음 섞인 그 말 한마디가 자신의 귀여움을 배로 증폭시킨다는 걸.
쿡쿡 웃으며 여자는 말했다.
“그게 어때서요?”
“네?”
“남자는 귀여우면 안 된다는 법 있나요? 오히려 남자의 귀여움은 엄청나게 희귀한 속성이랍니다. 왜냐하면……”
뭘 상상하는 건지 혼자 웃더니 얘기한다.
“아니, 이 말은 나중에 하는 게 좋겠네요.”
“아, 네..”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면접 잘 보세요. 제가 보니까 그쪽은 여기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꼭 붙어야 해요.”
“.. 감사합니다.”
서준은 말했다.
“저는 윤서준이에요. 이름 여쭤봐도 될까요?”
“신해수예요.”
“아, 해수. 멋진 이름이네요.”
“서준씨도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서준은 얘기했다.
“해수씨는 안 떨리세요? 이제 곧 면접인데.”
왜인지 안 떨린다고 대답할 거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무진장 떨려요!”
“예?”
“심장이 막 콩닥콩닥 뛰고! 뭔지 알죠!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가만히 앉아있으면 심장 터질 거 같아서.”
그러더니 귀에 대고 속닥속닥 얘기한다.
“이런 말 하면 만만하게 보일까 봐 어디 가서 말 안 했는데.. 저 면접 처음이거든요.”
“헐.. 진짜요?”
“네.”
“저도 처음인데.”
“진짜요?”
“네.”
멋쩍게 웃으며 서준은 말했다.
“다 서류에서 탈락했거든요. 그래서 대면 면접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와우.”
해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얘기했다.
“서류로는 서준씨의 진가를 알아볼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요.”
“고, 고맙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금 미팅룸 문이 열리고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두 분도 면접 보러 오신 건가요?”
김동혁.
현재 상태를 말하자면 면접을 앞두고 상당히 쫄아있는(?) 상태였다.
통성명을 한 뒤였다.
동혁은 눈을 깜빡였다.
그야, 양쪽으로 시선이 느껴졌으니까.
“우와.. 정장……”
알 수 없는 포인트에 감탄하는 귀여운 남성 지원자와, 왠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앳된 소녀 지원자.
그러더니 해수가 자그맣게 속삭이듯 묻는다.
“혹시.. 면접 봐 보셨나요?”
“네?”
그는 나름 사회생활 짬밥이 있었다.
“그렇죠. 아무래도……”
“우와!”
“그래서 이렇게 하나도 안 떠시는 거군요. 혹시 면접 팁 좀 주실 수 있나요?”
“저도요! 저는 여기 꼭 붙어야 해요! 그래야 관찰……”
“관찰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튼요!”
어안이 벙벙했다.
안 떨기는커녕 사시나무 떨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떨고 있는데.
정장이 그 떨림을 가려주는 걸까.
그렇긴 해도 양쪽에서 전해지는 순수한 눈망울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요.”
“마인드 컨트롤이요?”
“네. 다들 앞으로 손 내밀고……”
척.
손이 겹쳤다.
그 상태로 동혁은 힘주어 목소리를 냈다.
“따라 하는 거예요. 내가 최고다!”
“내가 최고다!
“한 번 더!”
이번에는 입을 모아 외쳤다.
“내가 최고다아!”
“최고다!”
정확히 그 타이밍에 동혁은 눈이 마주쳤다.
문을 열고 들어온 세 명의 면접관들과.
“……”
웃픈 광경이었다.
***
테이블을 두고 면접관과 지원자가 마주 앉았다.
면접관은 우영, 경우, 표식이었고 지원자는 서준, 해수, 동혁이었다.
“그럼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네.”
면접이 시작됐다.
대체로 주도해서 면접을 진행하는 건 최표식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한경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면접에 앞서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이라.. 두 분한테는 먼저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서준씨. 어제 편의점에는 왜 있었던 건가요?”
서준은 얘기했다.
“정말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가 면접 날짜를 하루 착각해서요. 그걸 면접 시간이 다 돼서야 알아서……”
“하하, 그랬군요.”
역시 그런 이유였다.
궁금증을 해결한 경우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면접 시작하죠. 먼저 포트폴리오에 대해 질문드릴 건데요. 서준씨부터 차례로 질문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같이 보면서 질문드리자면……”
자연히 나머지 두 지원자의 눈에도 포폴 속 그림이 들어왔다.
둘 다 표정 변화가 있었다.
특히나 놀라다 못해 경악한 동혁의 표정.
‘……?’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면접은 처음이라며 팁을 알려달라던 지원자의 모습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미친 퀄리티의 그림이었다.
원래라면 면접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면접내용에 따라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의 면접전략을 다시 세울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놀란 나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포폴을 준비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5개월 정도입니다.”
충격의 연속이었다.
몇 년간 쌓아 올린 자신의 포폴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의 포폴을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5개월이라니.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답을 들으면 알 수 있었다. 직접 그린 그림일 수밖에 없다는걸.
“우리 작화팀이 아닌 다른 곳에도 지원한 적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결과는 어땠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전부.. 서류에서 탈락했습니다.”
우영이가 처음으로 입을 뗐다.
“이 포폴을 제출하고 탈락한 건가요?”
“동일한 건 아닙니다. 최근에 그린 그림도 들어있어서요.”
“어쨌든 이걸 제출했다는 거죠?”
“네.”
“…… 하.”
실소를 뱉는 우영.
또 무슨 돌발행동을 할까 싶어 표식은 이어서 질문을 던졌다.
“여기 기재한 항목 중에 나이와 학력이 있는데요. 나이는 스무 살이고 고등학교는 진학하지 않고 홈스쿨링을 했다고.”
“네, 맞습니다.”
“꼭 기재해야 하는 항목이 아닌데 기재한 이유가 있나요?”
“그게……”
한차례 숨을 고르고 서준은 말했다.
“따로 연락이 온 경우가 많아서요.”
“네?”
“따로 연락을 주셔서 나이와 학력을 여쭤보는 경우가 많아서, 기재할 수 있는 부분은 전부 기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군요.”
어떤 의미인지 알 거 같았다.
블라인드를 추구하는 회사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정말 100% 블라인드로 면접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어린 나이와 홈스쿨링.
냉정히 말해서 선호하는 스펙은 아니었다.
다른 건 전혀 보지 않고 오로지 그림만을 보는 우영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다소 개인적인 질문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군입대는 언제 할 계획인가요?”
“아, 그게……”
사적인 물음이긴 했다.
그래도 채용한다고 가정하면 파악해둬야 하는 부분이었다.
서준은 답했다.
“군대는 면제라서요.”
“.. 면제요?”
“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열일곱 살 때 아버지께 간이식을 해 드렸거든요.”
우영이 흠칫했다.
나머지 두 사람뿐 아니라 모두 적잖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한경우가 애써 입을 뗐다.
“그럼 홈스쿨링도……”
“네. 아무래도 회복이 필요하다 보니까……”
“지금은 괜찮은 건가요?”
“물론입니다! 아버지도 저도 지금은 건강합니다! 저 술도 마십니다!”
씩씩한 모습에 한경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영은 웃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러다 짤막하게 한 마디를 입 밖에 뱉었다.
“.. 다행이네요.”
“네?”
“아닙니다.”
면접은 계속 진행됐다.
“다음은…… 해수씨?”
“네.”
“이력이 굉장히 화려한데요.”
그 이력은 마찬가지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동혁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다시 입이 떡 벌어졌다.
마음속 울부짖음.
‘뭐냐고, 진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면접 초짜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이 알고 보니 괴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