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13)
913화. 김동혁
우영이 첫 순서 면접관을 고집한 이유가 있었다.
어제는 따분함의 연속이었다.
포폴을 보고 흥미가 동하게 만드는 지원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짜증을 내거나 한 건 아니었다.
이제는 치기 어린 고등학생이 아니라 어른이니 말이다.
‘한번 그려보세요.’
그게 우영이의 면접 방식이었다.
다른 두 사람을 놀라게 만든 방식이었지만 우영이의 상식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주 업무인 작화팀에서 그림을 안 보면 뭘 보고 뽑는단 말인가.
길게 볼 필요도 없다.
뭘 그리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잠깐만 보면 돼.’
그것만으로 포폴의 진위 여부와 지원자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었다.
포폴에 대해 아무리 질문을 늘어놓는 것보다 그 잠깐이 가져다주는 정보가 훨씬 더 크다는 뜻이다.
적어도 우영이는 그 방식에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게 맞나 싶었던 최표식과 한경우도 이제는 우영의 방식을 납득하고 있었다.
‘효율적이야.’
두 사람도 안목이 있었다.
그에 따라 지원자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화풍이나 그림 그리는 속도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으니까.
다시 돌아와서 우영이 첫 순서를 고집한 이유.
‘오늘은 우리 팀부터 면접 들어가도 되죠?’
그 말을 듣고 주원은 포폴 하나를 확인했다.
동시에 납득했다.
누가 봐도 흥미가 동할 만한 포폴의 퀄리티였으니까.
그리고 쿨하게 양보했다.
허나 주원이 간과한 게 있었다.
우영이 첫 순서를 고집한 게 단지 그 포폴 하나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 허?”
미팅룸 밖에 있는 주원은 이제 막 다른 포폴을 확인한 참이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그림들.
단지 그림의 퀄리티 때문만이 아니었다.
포폴 속 그림은 하나같이 매니악했다.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넘쳐났다.
매니악이라는 허울 좋은 방패를 쓰고 난해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한 끗 차이다.
그 한 끗은 화자의 역량에서 나온다.
피카소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지극히 정상적인 그림을 그리며 절대 흔들리지 않는 기본기를 쌓은 후에야 피카소는 현대에 알려진 화풍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달리 말하면 매니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뜻이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돌을 맞기 일쑤지.’
그런데 이건 그 어설픈 그림들과는 다르다.
진짜 광기였다.
심지어 정상으로 보이는 그림을 보더라도 왠지 모를 은은한 광기가 흘러나온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다음은…… 해수씨?”
“네.”
“이력이 굉장히 화려한데요.”
그리고 미팅룸에서는 그 지원자의 면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표식은 몇 번이나 그림과 지원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는다.
“수상 경력이 굉장히 화려한데, 이런 다소 매니악한 그림을 즐겨 그리는 이유가 있나요?”
왜 부끄러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수는 몸을 배배 꼬며 대답했다.
“저는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이라서요오..”
“한 우물이요?”
“네. 사실 제가 아직 나이가 어리다 보니까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과정이거든요. 갈대같이 막 흔들리고 이게 좋아 보였다가, 어떨 때는 이게 또 좋아 보이고……”
처음이었다.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면접에 임하는 지원자는.
“그런데 지금은 제가 또 바스키아 그림에 푹 빠져서요.”
“.. 바스키아라면, 장 미셸 바스키아 말인가요?”
“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장 미셸 바스키아.
미국의 화가이자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럼 바스키아에 빠져서 이런 그림을 그린 지는 얼마나 됐죠?”
“글쎄요.. 한 3개월 정도일까요?”
“3개월이요?”
“네.”
“그럼 이 포폴의 그림들이 전부 3개월 동안 그린 거라는 건가요?”
“네, 맞아요.”
동혁은 경악했다.
앞선 지원자의 입에서 5개월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믿기지가 않았는데 이번에는 3개월이란다.
심지어 이런 미친 그림들을 그려놓고 이유를 물으니 바스키아에 빠져서라고?
‘그럼 피카소에 빠지면?’
고흐에 빠지면?
현대미술 거장에게 빠지면?
애초에 스무 살이 가지고 있는 이력이라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미술대전 대상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이 작화팀 면접에는 천재들만 오는 건지, 그렇다면 대체 자신은 어떻게 합격한 건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도록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럼.. 동혁씨?”
그리고 그의 이름이 호명됐다.
***
“그럼.. 동혁씨?”
호명하면서도 최표식은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꼈다.
왜냐고?
그의 감정에 이입이 됐으니까.
‘포폴은 훌륭해.’
다른 멤버 속에 있었다면 포폴만으로도 꽤나 임팩트가 있었을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았으니까.
허나 조 편성이 좋지 않았다.
면접관인 자신이 생각해도 비현실적일 정도였다.
우선 이 남자 지원자 윤서준.
‘무슨 은둔 고수냐고.’
어제 면접을 진행하며 스펙이 화려한 사람들은 꽤 많이 봤다.
그걸 단번에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렸다.
홈스쿨링을 하며 집에서 그린 그림들로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기준이 있나요?”
“그때그때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렸습니다. 제가 뭘 그려야 할지 몰라서……”
한마디로 배운 게 없으니 그냥 그렸다는 거다.
스스로는 자각 못하겠지만 전형적인 천재의 대답이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이건 그 정도 수준도 아니다.
‘그냥 그렸는데 그게 엄청난 작품이었어요!’같은 느낌이다.
본인은 모르는 거 같지만.
유일하게 걸리는 게 군대였는데 면제란다.
심지어 면제 사유는 아버지한테 간 이식을 해줘서 그런 거고.
‘효자이기까지 하냐고!’
당연한 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는데 나 몰라라 할 자식이 어디 있냐고.
허나 막상 그 상황에 처하면 생각보다 그리 간단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간이라는 게 ‘여기요.’ 하고 똑 떼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실제로 그랬다.
서준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것도 간 이식으로 인한 회복이 필요해서였다.
‘호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어.’
평가 항목에 효심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고 리스펙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지원자 신해수는 대놓고 천재였다.
‘본인도 알고 있겠지.’
모를 수가 없었다.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고 자신이 천재라는 걸 모를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드러내거나 부각하려는 느낌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표현 해도 되나……’
그냥 해맑았다.
어딘가 4차원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외모만 보면 영락없는 철부지 소녀였다.
비정상적인 건 그림뿐이었다.
윤서준과 신해수.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면접을 통틀어 다른 느낌으로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게 김동혁이었다.
‘불가능해.’
이 멤버 속에서 위축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아마 그럴 수 있는 건 옆에 앉아있는 우영이 정도밖에 없을 거다.
슬쩍 옆을 바라봤다.
‘엄청 즐거워 보이네.’
이렇게 신난 모습은 면접을 통틀어, 아니 그냥 처음인 거 같았다.
실소와 함께 최표식은 입을 뗐다.
“동혁씨. 전체적으로 포폴이 훌륭한데요.”
가벼운 칭찬으로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관련 업무에 종사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동혁의 면접이 시작됐다.
***
확실히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여러 유형이 있었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부류, 위축돼서 면접을 망쳐버리는 부류, 질투심에 눈이 멀어버리는 부류.
동혁은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았다.
‘나는 최고다!’
앞서 뱉은 말은 아쉽게도 스스로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최고가 아니었다.
최고는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어울리는 단어였다.
그럼에도 그는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인드 컨트롤을 할 때 뱉는 멘트와 별개로 그의 좌우명은 따로 있었으니까.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여보! 우리 동혁이 그림 그린 거 봐!’
‘어머.. 동혁이 천재 아니야?’
‘으하하! 고럼! 누구 아들인데!’
그런 말도 숱하게 듣곤 했다.
비록 재능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가진 단점을 메우려 노력했다.
고질적인 단점 중 하나가 그림을 그리는 속도였다.
“미술학원에서 제 별명은 굼벵이였습니다.”
“굼벵이요?”
“네. 그림 그리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그는 진실되게 면접에 임했다.
“하지만 저는 노력했습니다.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했고 입시에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팀 작업에 있어서도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고요.”
백 점이 만점이라고 치자.
앞선 지원자들은 포폴만으로 만점을 기록했다.
‘나는 몇 점일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 상대적인 기준에서 50점을 준다고 해도 후하게 줬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50점으로 고정된 게 아니다.
위축돼서 면접을 망친다면 점수는 더 내려갈 수 있다.
‘최선을 다해야 해.’
그래서 50점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거다.
동혁은 그런 사람이었다.
우습지만 그 모습을 보며 옆에 있는 윤서준과 신해수가 하는 생각은 일치했다.
‘.. 멋있다.’
‘이 아저씨.. 멋지잖아.’
선망의 눈빛.
그게 아이러니한 포인트였다.
잠자코 있던 우영이가 입을 뗐다.
“동혁씨.”
“네.”
사실 그랬다.
지원자 김동혁에게 우영은 아무 관심이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포폴에 빠져서 김동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상태였으니까.
그럼에도 입을 뗀 이유는 하나였다.
“포폴의 마지막 그림은 ‘드림 큐!’의 일러스트를 그린 건가요?”
“네, 맞습니다. 예리 일러스트를 그렸습니다.”
예리는 우영이의 최애 캐릭터였다.
방 안에서 혼자 플레이하며 눈물까지 자아내게 만들었던 에피소드의 주인공.
그 사실을 아는 건 우영이 엄마뿐이지만 말이다.
“이걸 왜 그린 건가요? ‘드림 큐’는 이미 제작이 끝난 게임인데.”
김동혁은 숨을 고르고 얘기했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그 그림은 ‘스튜디오 초록’의 면접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왜죠?”
“제가 그만큼 유연하게 팀이 추구하는 화풍에 맞춰서 그릴 수 있다는 걸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제 그림을 자세히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우영이의 입꼬리가 작게 올라갔다.
동시에 중얼거렸다.
“.. 이런 거였나.”
면접을 앞두고 주원이형과 나눈 얘기가 있었다.
‘다른 거 볼 필요 있어요? 작화팀 면접인데 그림만 보면 되지.’
그 말에 주원이형은 말했다.
‘글쎄.’
‘네?’
‘나는 면접을 통해 달라지는 결과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우영은 처음으로 그 멘트를 뱉지 않았다.
‘한번 그려보세요.’
사실 그림 그리는 건 보고 싶었다.
허나 이 상황에 그건 포폴의 진위 여부와 합불을 결정하는 데 쓰기보다는 사심을 채우기 위한 절차라 봐도 무방하다.
어른답지 못하다.
그 즐거움은 조금 아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끝으로 우영은 물었다.
“해보셨나요? 드림 큐.”
생각지 못한 물음에 김동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엄청 좋아하는 게임이거든요. ‘스튜디오 초록’에 지원한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예리입니다.”
“알 거 같네요.”
“네?”
“왜 예리를 좋아하는지.”
예리는 재능이 없음에도 끝까지 꿈을 손에서 놓지 않는 캐릭터였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캐릭터였다.
동혁은, 예리와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