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17)
917화. 한강
씨 유 레이러.
연두를 보내고 스튜디오로 향하는 와중에도 그 한마디가 계속 맴돌았다.
대체 뭘까.
그게 뭐라고 이렇게 귀여운 걸까.
“하아……”
매번 연두튜브에서 보는 댓글이 있다.
연두성분에 중독돼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말.
어쩌면 그 증세가 가장 심각한 건 연두부들보다 나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매일 봐서 버티고 있는 거지.
‘다음엔 꼭 담아야겠어.’
영어는 싫었다. 그러나 영어를 하는 연두는 좋았다.
다음에는 꼭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겠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도록.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재가 더 많은 영어표현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잠깐만. 그럼 나중에는 나도 공부해야 되는 거 아니야?’
나중에는 고급 표현을 배워와서 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내 수준이라면 알아듣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르고.
다음에 든 생각이 스스로도 충격이었다.
‘그럼 배우지, 뭐.’
학창 시절 엄청나게 골머리를 앓았던 영어였다.
단어를 외우다 열받아서 ‘실기로 커버 치면 되지.’ 하고 단어장을 덮어버린 적도 많았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랬고.
그런 내가 이렇게 쉽게 ‘배우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다니.
“하하……”
역시 나를 가장 쉽게 변화시키는 건 연두였다.
정확히는 연두를 위한 거라면 변화가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돌이켜보면 중독 수준은 아니었지만, 몇 년간 피운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었으니 말이다.
‘혼자였다면……’
분명히 지금까지 담배를 피웠을 거다.
크게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사실 커다란 변화였다.
그리고 이제는 더 마음에 들었다. 흡연을 하지 않는 지금 내 모습이.
어느새 도착한 스튜디오.
“굿모닝입니다!”
일찍 도착한 팀원들을 향해 밝게 인사를 건넸다.
모처럼 영어를 써 봤다.
“넵!”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초록님!”
“하하, 그래 보이나요?”
귀신같네.
팀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에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먼저 메일함을 확인했다.
하루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루틴이었다.
‘어디 보자..’
꽤나 쌓인 메일들.
특별한 건 없었다.
그러나 방금 막 도착한 따끈따끈한 메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이디
제이디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
곧바로 메일을 확인했다.
아직 면접을 시작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있었으니까.
‘그 내용이겠지.’
메일의 내용은 예상이 갔다.
당연했다.
이모티콘 강사를 제안하며 관련 내용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으니까.
꽤나 궁금했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달칵.
클릭과 동시에 떠오르는 파일.
페이지 수가 상당했다.
이 정도면 내부적으로 회의한 내용이 전부 들어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호오..”
제이디가 말한 대로 총체적인 내용이 적혀있었다.
강의 기간부터 예상 시기, 그리고 수강생을 뽑는 방식까지.
가장 흥미를 끈 건 수강생을 뽑는 방식이었다.
‘아무나 뽑지 않는구나.’
내심 걱정했다.
아무런 기준도 없이 수강생을 뽑게 된다면 여러모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으니까.
어떤 문제냐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수업에 나오지 않을 확률도 높다.
‘요즘 말로 찍먹해보는 거지.’
한 번 찍어 먹어 보고 별로다 싶으면 뱉어버리는 거다.
그렇게 일탈한 수강생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또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비효율의 극치였다.
그래서인지 파일에는 수강생을 뽑는 기준이 명시되어 있었다.
작화팀 면접과 비슷했다.
‘포폴을 보는군.’
출시 기준을 만족시킨 이모티콘을 제출한 사람에 한해서 수강생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그동안 이모티콘에 들인 노력을 보겠다는 거니까.
그것만으로 꽤나 많은 사람을 걸러낼 수 있었다.
의외로 양식에 맞춰 이모티콘 하나를 엉성하게나마 완성하는 것도 많은 노력이 소요되니 말이다.
‘직접 해봐서 알 수 있지.’
그리고 그편이 강사 입장에서도 훨씬 할 말이 많았다.
생판 모르는 것보다는 해당 분야에 어느 정도 노력을 해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게 편리할 수밖에 없으니까.
파일을 읽어 내려갈수록 구미가 당겼다.
가장 중요한 강의시기 역시 조건을 충족했다.
‘한참 남았어.’
이 정도라면 적어도 새로운 팀원들이 모두 정해지고 합류까지 한 뒤가 될 거다.
그렇다면 충분했다.
본업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
‘.. 그래. 해보자.’
이제는 마인드가 바뀌었다.
내가 원하는 거라면 기피하는 게 아니라 해보자는 주의로.
굳이 돋보기로 속마음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알았다.
오늘 중으로 제이디에게 답변을 줄 생각이었다.
***
오늘도 면접은 순조로웠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지원자도 한 명 등장했다.
‘주세종.’
이제는 면접관 조합이 바뀌어 나랑 우영이, 도연씨가 한 팀이었다.
셋 다 의견이 같았다.
기본 체급이 높은 지원자였으니까.
‘나이는 서른둘.’
나보다 연장자였다.
뭐, 나이는 애초에 고려 요소가 아니었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와서 면접을 보더라도 그림이 마음에 들면 뽑는다는 마인드다.
주세종은 그 기준에 부합하는 지원자였다.
‘전체적인 능력치가 뛰어났어.’
천재성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노련함이 그림에서 묻어났다.
면접 도중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만화가를 꿈꿨고, 오랜 시간 동안 만화가로 활동했다.
선화부터 채색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왜 저희 ‘스튜디오 초록’에 지원하셨나요?’
여러 뜻이 함축된 물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만화가라는 직업을 버리고 우리 작화팀에 지원한 거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스스로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실패한 만화가였다.
아내와 아들 한 명이 있었고 만화를 그리는 일로는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더는 내 꿈을 좇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드는 찰나에 ‘스튜디오 초록’의 팀원 모집 공고를 봤다는 모양이다.
도연씨가 물었다.
‘이런 질문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 아직 만화가로서의 꿈을 간직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 그럼 작화팀에 들어온다고 해도 그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도연씨가 총대를 멘 셈이다.
얘기가 나온 이상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야기였으니까.
주세종은 답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꿈보다 소중한 게 있으니까요. 이제는 제게 만화가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흐릿합니다.’
그럴 리 없었다.
담담하게 말하긴 했지만 꿈이란 건 그렇게 쉽게 흐릿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짠한 마음이 일었다.
그가 만화가라는 꿈을 위해 노력했을 시간들을 생각하니 더더욱 그랬고.
‘꿈보다 소중한 것.’
전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해주고 싶은 말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말을 더하지 않고 면접을 끝냈다.
‘지금 할 말은 아니야.’
어차피 그와의 인연은 오늘이 끝이 아니었다.
그를 돌려보내고 난 뒤에, 우리는 티타임을 가지며 얘기를 나눴다.
“어땠나요?”
도연의 물음에 경우씨가 답한다.
“저희는 무난했습니다.”
눈에 띄는 지원자는 없었다는 뜻이다.
“그쪽은요?”
“한 명 있었어요.”
“오, 정말요?”
비율이 희박한 편이다 보니 이런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특히나 우영이의 말은 임팩트가 컸으니까.
“만화가 출신인데 잘 그리더라고요.”
왜일까.
평소와 다르게 우영이 표정은 어딘가 달라 보였다.
그렇게 면접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경우씨와 따로 얘기를 나눴다.
“경우씨.”
“네, 초록님.”
의도한 건 아닌데 묘하게 엄숙해진 분위기.
나는 나지막이 입을 뗐다.
“중요한 얘기는 아니고요. 혹시 그 말 진심인가 해서요.”
“어떤 말이요?”
“제가 이모티콘 강의하면 듣고 싶다는 거.”
즉답이 돌아왔다.
“당연하죠! 듣고 싶습니다!”
“혹시 따로 이모티콘 그려놓은 거 있어요?”
내 권한으로 꽂아주는 건 불가능하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비리(?)를 저지를 생각은 없다.
“네, 있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조금 놀랐다.
이모티콘에 관심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진짜 그렸을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진심이었구나.
“양식에 맞춰서 그린 건가요?”
“그렇긴 한데 움직이는 이모티콘은 아직입니다. 여러모로 고민이 돼서요.”
“가능하면 마저 그려두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다시 말하지만 비리를 저지를 생각은 없다.
그러나 소중한 팀원에게 이 정도 정보를 줄 수는 있었다.
“곧 수강생 모집 공고가 올라올 거거든요.”
잠깐의 침묵이 일고 경우씨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역시 눈치가 빠른 경우씨였다.
***
어느새 최종 면접은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은 건 이틀이다.
‘빠르네.’
앞으로 이틀 후면 모든 게 정해진다.
최종 결정을 해야겠지.
지금 그 결정을 도와줄 믿음직스러운 조력자를 만나는 길이다.
물론 연두도 함께였다.
“헤헤..”
연두가 배시시 웃음 짓는다.
“그렇게 좋아, 연두야?”
“네에.”
“삼촌 보는 게?”
“삼촌 보는 것도.. 그리고 한강 가는 것도 너무 좋아여……”
그렇다.
삼촌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한강이었다.
막상 내가 한강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삼촌 반응은 사뭇 다르긴 했지만.
‘.. 한강?’
굳이 한강에서 만날 필요가 있냐는 뉘앙스였다.
그럴 만도 했다.
조언을 구할 게 있다고 얘기했는데 약속 장소를 한강으로 잡는 게 자연스럽지는 않았으니까.
삼촌 입장에서는 아리송할 만도 했다.
‘연두를 데려간다고 안 했고.’
보통 이럴 때는 둘이 조용한 장소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의구심이 들더라도 삼촌은 웬만하면 내 말을 따라주는 편이었다.
‘뭐, 그래. 한강에서 보자.’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다.
이제 날이 꽤 쌀쌀해서 두터운 옷을 입고 온 상태다.
끼익.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한강 오랜만이다. 그치, 연두야.”
“네에..”
“안 춥지?”
“따뜻하게 입어서 하나도 안 추워여..!”
자그마한 두 손으로 양쪽 어깨를 감싸는 연두.
새삼 놀랐다.
연분홍색 점퍼가 이렇게 잘 어울릴 일인가 하고.
“그래. 추우면 모자 쓰고.”
“.. 으응.”
“으응은 반말인데.”
문득 장난기가 발동해 선동이로 빙의해봤다.
“아.. 네!”
“푸핫! 장난이야, 장난.”
반응을 보니 왜 선동이가 매번 서당 훈장님으로 빙의하는지 알 거 같았다.
장난 아니게 귀엽다.
연두의 손을 잡고 주차장에서 한강 쪽으로 걸어갔다.
강이 보인다.
“이 날씨에도 오리배가 있네?”
둥둥 떠다니는 오리배.
아마 거의 막바지 시즌이 아닐까 싶다.
“우아……”
오리배를 바라보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오리배 탔던 거 기억나?”
“네에..”
고개를 끄덕인다.
“지혜언니랑 같이 탔는데.. 오리배도.. 자전거도.. 지혜언니 보고 싶다……”
“.. 아.”
괜히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게 해 버렸나.
잠깐만.
이렇게 말하면 다시는 못 볼 사람이라도 되는 거 같잖아.
실소를 뱉으며 말했다.
“곧 볼 수 있을 거야.”
“.. 진짜요?”
“그럼, 진짜지.”
“오늘도 삼촌이랑 오리배 탈까?”
“삼촌이랑요?”
“응.”
“좋아여!”
그때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주원아!”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내 옆에 있는 연두를 바라본 삼촌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지막이 삼촌은 입을 뗐다.
“.. 한강에서 보자고 한 이유가 있었구나?”
이제는 연두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번지는 삼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