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20)
920화. 가족
“거슬린다며. 그럼 치워야지.”
잠깐 흠칫했다.
생각보다 더 강한 워딩이 귀에 들어왔으니까.
‘치운다.’
사람을 대상으로 흔히 쓰는 표현은 아니었다.
그렇다.
삼촌은 철저히 비즈니스적 효용의 관점으로 내게 조언을 하고 있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문제의 대부분은 사람으로 인해 발생해.”
나는 조용히 삼촌의 이야기를 들었다.
“거슬린다. 처음엔 그 정도였겠지. 달리 말하면 그 거슬림을 방치해서 문제가 커진 거야.”
확실히 그랬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
벌레 한 마리를 귀찮다고 방치했다가 나중에는 세스코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게 삼촌의 일이었다.
커질 대로 커진 문제를 바로잡는 것.
삼촌 같은 고급인력이 길게는 몇 달을 물고 늘어져야 할 정도로 일이 커져 버리는 거다.
손쉽게 해결 가능했던 일이.
“나중에는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하지.”
납득이 갔다.
왜 삼촌이 치우라는 워딩을 사용했는지.
겉으로는 내색 안 했지만 삼촌과 삼촌이 일하는 회사에 대해 따로 알아본 적이 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였다.
뒷조사 같은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단지 내가 관심이 가는 사람이, 가족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삼촌 말대로였어.’
문제가 발생한 회사의 전권을 위임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게 삼촌의 일이었다.
쉽게 말하면 말이다.
그러나 그 한 줄로 표현될 무게가 아니었다.
자신의 선택 한 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래.’
삼촌은 그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문제의 원인을 미연에 방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물론 주원이 네가 고민하고 있는 게 어떤 포인트인지도 짐작이 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삼촌은 말했다.
“굳이 내 손에 피를 묻힐 정도의 일인가 싶은 거겠지. 아니면 주원이 네가 말한 대로 괜한 과민반응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수도 있고.”
왜인지 또 속담이 떠올랐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
‘내가 이 정도로 속담을 많이 알았나.’
그와 별개로 정확했다.
신기할 정도였다.
삼촌한테 박상영에 관해 얘기한 것도 아닌데.
정확히 내가 그 마인드였다.
‘그때도 그랬어.’
박상영으로 추정되는 자가 단톡방에 허위 사실을 유포했을 때.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와 별개로 그건 충분히 우리 작화팀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한 명이라도 그걸 보고 ‘스튜디오 초록’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면 악영향이라 볼 수 있으니까.
도연씨와 경우씨를 비롯한 몇몇 팀원은 진상을 밝혀내자고 했다.
그럼에도 대응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빈대였어.’
딱 그 정도였다.
아주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심력을 쏟을 여력은 없는 빈대 같은 느낌.
그 정도 일로 굳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도 않았다.
손으로 벌레를 잡으면 기분도 좋지 않고 더러운 게 묻으니까.
무엇보다도 확증이 없었다.
‘심증뿐이지.’
심증을 확증으로 만드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을 고작 빈대 하나에게 쏟기는 아까웠다.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말했다.
“사실 이렇게 삼촌한테 얘기하는 것도 아까울 정도예요. 그 정도로 사소하거든요.”
“그렇겠지.”
와인 한 모금을 들이켜고서 삼촌은 말했다.
“그런데 주원아.”
“네.”
“거슬린다는 건 생각보다 강한 표현이야. 어지간해서는 쓰지 않지. 생각해봐. 살면서 누군가 거슬린다는 말을 입 밖에 뱉은 적이 얼마나 있어?”
놀랍게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이미 무시할 수는 없는 크기라는 거야.”
생각해봤다.
삼촌 말이 맞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톡방 일.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냥 해프닝 정도로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거슬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지원원서를 봤을 때였다.
‘선을 넘었어.’
길 가다가 보이는 날파리는 보여도 못 본 척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집 안에 날아다니는 커다란 파리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그게 문제였다.
“그러니까 주원아.”
“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하나야.”
삼촌은 특유의 낮은 어조로 말했다.
“그런 때가 있어.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명분이 생겼을 때. 다른 때는 몰라도 그때만큼은 치우는 걸 주저하지 마.”
그게 삼촌의 결론이었다.
***
이번에도 그랬다.
삼촌은 내게 가장 와닿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뒤에 아리송한 한 마디가 이어지긴 했지만.
“.. 쉽지는 않겠지만.”
옅은 미소를 본 나는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응?”
“쉽지 않을 거라고요.”
조언과 별개로 의문은 해결하고 봐야지.
그 말에 삼촌은 답했다.
“그야, 주원이 넌 마음이 약한 편이니까.”
“예?”
이건 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술이 좀 올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반박의 말이 나갔다.
“아무래도 삼촌이 저를 잘 모르시는 거 같네요. 저 이주원이 어떤 놈인지.”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발끈한 게 아니라 반쯤은 장난이 섞여 있는 말이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더 추해 보이나?
그래서인지 삼촌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어떤 놈인데?”
“먼저 물어볼게요. 진지하게 제가 어떤 놈 같으세요?”
“평화고 미켈란젤로?”
“아니, 삼촌!”
인정한다.
이번에는 좀 발끈했다.
삼촌은 작게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하하, 미안. 진지하게 답하자면……”
“네.”
“아까 말한 그대로인데? 마음이 약하고 상냥한 사람. 나랑은 다르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얘기했다.
“삼촌이 오늘 맞는 말만 하셨는데, 그거 하나는 잘못 봤네요.”
나는 몰랐다.
지금 내가 어느 정도로 취기가 올라왔는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와인은 내게 그리 익숙한 술이 아니었으니까.
“저 그렇게 착한 놈 아닙니다.”
따라서 몰랐다.
내 말이 삼촌한테 얼마나 재미있게 들릴지도.
그도 그럴 게 삼촌의 눈에 나는 그저 어리고 귀여운(?) 조카에 불과할 테니까.
평소에 자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번에 보셨어요? 단톡방에 저에 대해 써 놓은 글.”
“응, 봤어.”
그걸 봤을 정도면 역시 삼촌도 나한테 관심이 있구나.
괜한 뿌듯함을 느끼며 말했다.
“그게 마냥 허위 사실은 아니거든요. 저도 화내야 할 땐 확실하게 화내는 편이니까.”
“호오, 그래?”
“그럼요. 친구들 사이에서 제가 나름 나쁜 놈으로 통한다니까요?”
희한한 일이다.
원래도 친구 녀석들한테 속된 말로 애새X 같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삼촌과 단둘이 얘기할 때면 한 번씩 진짜 애가 되는 거 같았다.
지금처럼 말이다.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말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삼초온.”
혹시 내가 지금 발음이 꼬이고 있나?
잘 모르겠다.
남은 와인 한 모금을 들이키며 말했다.
“아까 삼촌이 그랬죠.”
“뭘?”
“마음이 약하고 상냥한 사람.. 나랑은 다르게.”
“응, 그랬지.”
“가만 보면 삼촌은.. 스스로를 무슨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거 같은데요.”
평소라면 하지도 않을 말이 입 밖에 튀어나왔다.
착각일까.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것만 같은 이 기분은.
“아니, 꼭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데..”
삼촌의 대답에도 말이 멈추지 않았다.
“그거 착각이에요.”
“그럼.. 내가 어떤 사람 같은데?”
“한국대 졸업한 천재.”
“그거 말고.”
“와..”
이렇게 단번에 인정할 줄이야.
“삼촌은.. 멋진 사람이죠.”
이제는 생각과 말이 혼동이 갔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건지 말하고 있는 건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할머니랑.. 우리 편이 되어줬으니까.”
“가장 먼저 연두 편이 되어준 건 너야, 주원아.”
혼잣말인 걸까.
“나는 그때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왜일까.
내가 그 혼잣말에 반응한 건.
“그럼요, 삼촌.”
“응.”
“지금 그때로 돌아가면, 연두 안 데리고 갈 거예요?”
“데려가야지.”
삼촌은 덧붙였다.
“이제는 가족이라 생각하니까.”
술을 마셔서 감정에 솔직해진 탓일까.
웃음이 나왔다.
삼촌의 진심을 들은 거 같아서.
“그런데 정확히 그 상황 그대로라면 데려가지 않을 거야.”
“.. 왜요?”
“주원이 너보다 좋은 아빠가 될 자신은 없거든.”
그 말에 나는 케이블 위에 고개를 박으며 중얼거렸다.
“.. 하하, 맞잖아, 좋은 사람.”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혼잣말을 들었던 거 같다.
“와인을 그렇게 마시면 당연히 취하지. 알면서도 내버려 둔 거 보면……”
삼촌의 목소리.
“.. 짓궂네, 나도.”
역시 기억은 나지 않았다.
***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그냥 머리가 조금 아팠을 뿐이었다.
어제 삼촌이랑 무슨 대화를 했더라.
‘맞아.’
몇몇 조언을 구했다.
팀원 모집에 관한 것부터 사소한 문제 해결에 대한 것까지.
딱 거기까지였다.
그 후에는 그냥 피곤해서 잠에 들었고.
그래야만 했다.
“…… 미친 자식.”
그런 자기암시에도 불구하고 새어 나오는 혼잣말.
물론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후우..”
사실 이 두통도 숙취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근 몇년간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내게도 술버릇이란 게 존재한다는 걸.
그때였다.
“일어났어, 주원아?”
흠칫하게 만드는 삼촌의 목소리.
이어서 연두 목소리도 들려왔다.
“.. 아빠! 일어났어여?”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하하, 일찍 일어났네요? 삼촌도, 연두도.”
삼촌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묻는다.
“몸은 괜찮아? 주원이 너 어제 좀 많이 마셨는데.”
“괜찮습니다!”
혹여나 연두가 걱정할까 싶어 벌떡 일어나며 멀쩡함을 어필했다.
속은 쓰렸지만.
역시 숙취 때문은 아닌 거 같았다.
“아빠! 빨리 해장해요..!”
“응? 해장?”
“네. 아빠 해장해야 해서.. 삼촌이랑 같이 만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거 같다.
옆에서 삼촌이 말한다.
“바로 운전하는 건 위험할 거 같아서. 해장하고 쉬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
풀 죽어 있을 필요는 없다.
돌이켜보면 내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은 거 같다.
아마도.
그리고 좀 저질렀다면 또 어떤가.
‘가족이잖아.’
서로의 부족한 점도 품어주는 게 가족 아닌가.
불리할 때만 찾는 거 아니냐고?
그런 예리한 지적은 정중히 사양하겠다.
‘철판 깔자.’
원래 그렇다.
가장 꼴불견인 게 취해서 실수하는 것보다 그거 때문에 풀 죽어 있는 거다.
따라서 나는 철판을 깔기로 했다.
“뭐야.. 우리 연두가 아빠를 위해 아침을 만들었다고? 뭘 만들었을지 엄청 궁금한데?”
억텐 한 스푼.
부엌으로 나가니 해장음식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미역국이었다.
미역국 하면 생일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기막힌 해장음식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잘 먹겠습니다!”
곧바로 식탁에 앉아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 기가 막히는데요?”
“괜찮아?”
“요리까지 잘하세요, 삼촌?”
삼촌이 능청스레 답한다.
“연두가 하는 거에 숟가락만 얹었지.”
아마 그 반대일 거다.
그런데도 연두한테 공을 돌리는 모습에서 스윗함이 묻어난다.
“맛있어여, 아빠..?”
“응, 엄청. 속이 확 풀린다.”
“헤헤..”
연두가 삼촌을 향해 찡긋 눈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성공이에여, 삼촌!”
“……”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귀여워하는 삼촌의 표정을.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가 봐야겠어요, 삼촌.”
“그래.”
집에 갈 시간이었다.
벌써 삼촌의 꿀 같은 휴일을 꽤나 많이 방해해 버렸으니까.
삼촌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연두 얼굴에는 아쉬움이 떠오른다.
“또 놀러 와, 연두야.”
“..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이제는 굳이 뒤에 ‘가족인데’를 붙이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가족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니까.
문을 나서기 전에 삼촌은 내게 말을 건넸다.
“주원아.”
“네.”
“항상 응원해.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저도요, 삼촌. 진심으로요.”
“.. 그래.”
역시 우리의 키워드는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