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23)
923화. 확증
“안녕하세요.”
다시 한번 지원자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마주 보고 앉은 나는 고개를 들어 지원자들을 향해 차례로 시선을 줬다.
먼저 지원자 조인애.
긴장이 역력한 표정이다.
면접 마지막 날이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면접을 앞두고 긴장해서 굳어있는 지원자들은 많았으니까.
슥.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에 상반되는 표정의 지원자가 눈에 들어온다.
싱글벙글한 웃음.
시선은 다소 노골적으로 도연씨 쪽을 향하고 있다.
그렇다.
그 시선의 주인공은 박상영이었다.
도연씨는 보기에 다소 민망할 정도로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있지만.
‘놀랍지는 않네.’
알게 모르게 박상영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굳어진 탓일까.
지금 들어오는 장면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마지막은……
‘.. 응?’
그런 내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건 세 번째 지원자였다.
이름은 한혜주.
포폴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지원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고?
‘표정이 달라졌어.’
아까 들어올 때와는 표정이 아예 딴판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도 된 거 같다.
이런 표현은 좀 그렇긴 하지만 아까는 다 죽어가는 듯한 표정이었으니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싶을 정도였지.
지금은 정반대였다.
또렷한 눈빛.
가벼운 미소를 띤 채로 시선은 우리 면접관을 향하고 있다.
잘 모르겠다.
아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 중에서 어느 쪽이 진짜 그녀의 상태일지는.
‘그래도 다행이네.’
좋은 변화였다.
능력있는 지원자가 긴장해서 면접을 망치는 건, 면접관으로서도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니까.
그때였다.
도연씨 목소리가 들려온 건.
“조인애씨?”
“아, 네!”
이름을 호명하는 건 면접에 앞서 공통되는 절차였다.
지원자들을 확인하고 명확하게 구분 지을 필요가 있으니까.
“한혜주씨.”
“네, 한혜주입니다.”
설마 했다.
혹여나 박상영을 호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아닌가 하고.
그러나 도연씨는 프로였다.
아무런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로 세 번째 지원자를 호명했다.
“박상영씨.”
“넵.”
거기까지는 좋았다.
다른 말이 더 필요하지는 않았다.
호명한 뒤에 주도적으로 면접을 이어가는 건 우리 면접관들의 몫이었으니까.
허나 말이 이어졌다.
“오랜만입니다, 하하!”
심지어 그는 시선을 돌려 내게도 말을 건넸다.
“초록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죠?”
불필요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면접 도중에 친분을 드러낼 정도로 나와 그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언제인지 흐릿할 정도의 시간 속에서 인사 한 번 주고받은 게 끝이니까.
논점은 그게 아니다.
‘설사 둘도 없는 베프라고 해도……’
면접 도중에 이런 식으로 친분을 드러내는 건 옳지 않았다.
혼자였으면 모른다.
두 명의 지원자가 함께하는 면접이었다.
이런 사담이 두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리 없다.
악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문제야.’
굳이 안부를 묻고 싶다면 방법은 많았다.
면접은 면접대로 보고 다 끝난 뒤에 인사를 주고받으면 그만이다.
아무리 껄끄러운 사이라고 해도 도연씨가 그런 인사도 받지 않을 사람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는 건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생각이 짧아.’
짧아도 너무 짧았다.
그 짧은 생각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 참이었다.
먼저 입을 뗀 건 도연씨였다.
“박상영씨.”
“네? 방금 대답했는데.”
“면접과 관련된 이야기 외에는 자제 바랍니다. 면접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
어안이 벙벙한 표정.
그래.
도연씨의 대응이 맞았다.
면접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지더라도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한 번은 제대로 짚고 넘어갈 문제였으니까.
애써 웃으며 박상영이 말한다.
“하하, 알겠습니다. 반가워서 그랬습니다, 반가워서.”
이것도 사담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더 분위기가 흐려지기 전에 내가 입을 뗐다.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조인애씨?”
“네.”
“포폴을 보면 캐릭터 그림이 많이 나오는데……”
그렇게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면접이 시작됐다.
***
한편 미팅룸 외부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범인은 한경우였다.
원래라면 휴식을 취하거나 여유롭게 다음 지원자들 포폴을 검토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혈안이 된 채로 한경우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최표식과 유하나.
애꿎은 두 동료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만 살피고 있다.
결국 최표식이 나섰다.
“경우님.”
“네.”
“뭘 그렇게 열심히 찾아요?”
유하나도 살며시 한경우 자리 뒤로 이동했다.
한경우는 말했다.
“.. 증거요.”
“어떤 증거요?”
“조작의 증거요. 아니, 도용이라는 단어가 더 맞겠네요.”
그렇다.
한경우는 필사적으로 구글링하고 있었다.
도용의 증거를 찾기 위해서.
박상영이 제출한 포폴의 그림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미지 검색에 넣어보고 있었다.
할 거면 진작에 하지 왜 지금 와서 하고 있냐고?
‘.. 안 해 봤겠냐고.’
한경우는 박상영의 도용을 확신했다.
미우나 고우나 대학 동기였고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까.
상영의 실력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상영이 잔머리는 많이 굴리지만 엄청나게 허술하고 빈틈 많은 녀석이라는 것도.
따라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용의 증거를.
‘바로 넣어봤지.’
도용이 의심이 간 시점에 바로 포폴의 그림을 하나하나 이미지 검색에 넣어봤다.
그러나 나오지 않았다.
겹치는 이미지가 하나도 없었다.
경우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안 나오는 게 없는 구글 이미지 검색이었으니까.
‘내 그림만 넣어도 나오는데.’
박상영의 포폴 속 그림은 상당히 뛰어났다.
뇌가 단세포인 녀석인 만큼 꽤나 이름있는 작가의 그림을 가져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랬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 때문에 한경우는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안쓰러운 표정의 유하나.
“경우님.”
표식이 재차 입을 뗐다.
“혹시 본인 그림일 가능성은 정말 없을까요?”
한경우는 말했다.
“표식님.”
“네.”
“제가 말이에요. 보기보다 안 된다고 말하는 걸 진짜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사람이거든요. 100%라는 말도 싫어하고요.”
아리송한 표정의 최표식.
경우는 말을 이었다.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만약 누군가 저한테 신문지를 띄워서 영차영차 노를 저어서 한강을 건널 거라고 말했다고 쳐요. 제가 뭐라고 할 거 같아요?”
“왜 그런 짓을 하냐고요?”
“아니요. 열심히 해 보라고 할 거예요.”
“왜요?”
“그렇게 말한 데는 나름의 이유와 근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불가능하다.
신문지를 띄워서 한강은 건너는 건.
그런 미친 짓도 응원해 줄 거라고 말하는 한경우의 의도는 간단했다.
“불가능해요.”
“네?”
“100%예요. 박상영이 그 그림을 그렸다는 건 그냥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렇다.
한경우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신문지로 한강을 건너는 게 더 신빙성 있는 일이었다.
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요.”
이해가 안 될 수가 없었다.
유하나도 말을 보탰다.
“저도요. 경우님이 그렇게 말하는 거면 진짜 100%인 거겠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경우님.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요?”
“네. 멀티는 잘 되는 편이라서.”
실제로 경우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유하나가 입을 뗐다.
“그렇게 열심히 증거를 찾을 필요가 있어요? 도용이 맞다면 어차피 면접 도중에 밝혀지지 않을까요? 경우님도 알다시피 안에는 우영님도 있고요.”
태연하게 한경우는 말을 받았다.
“밝혀지겠죠.”
“근데 왜……”
“밝혀지는 것뿐이니까요. 그게 팀원으로 뽑지 않을 이유는 되지만, 박상영이 조작을 했다는 확증이 되지는 않죠. 한 마디로……”
한경우의 얼굴에 조금의 광기가 어렸다.
“약이 올라서요.”
말 그대로였다.
팀원으로 뽑지 않는다고 해서 그동안 박상영으로 인해 얻은 피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잘못된 일이다.
도용한 포폴로 1차에 합격하는 것도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더 이상 철없는 동기 하나 때문에 초록님, 그리고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건 바라지 않거든요.”
마땅히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포폴을 도용한 죄에 대한 벌이 고작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뿐이라면 이치에 맞지 않다.
그 정도로 끝난다면 똑같은 죄를 또 반복할 거다.
‘알아듣게 말한다고 알아먹을 녀석이 아니야.’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다시는 죄를 지을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커다란 벌을 내리면 된다.
그럴 위해 필요한 게 증거였다.
‘.. 제발 나와라.’
그런 필사적인 모습 때문일까.
뒤에서 지켜보던 최표식과 유하나도 자리로 돌아갔다.
“저도 한 번 찾아볼게요.”
“저도요!”
그렇게 똘똘 뭉친 세 명의 팀원이었다.
***
다소 어수선하게 면접이 시작되긴 했지만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첫 번째 지원자인 조인애.
‘괜찮았어.’
시종일관 긴장한 모습이긴 했지만 면접에 충실히 임했다.
잔뜩 떨면서도 줄타기를 하듯이 아슬아슬 대답하는 모습에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그리고 한혜주.
그녀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면접 내내 침착한 모습을 보여줬다.
‘포폴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거 같고.’
답변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오랜 기간동안 근무한 학원을 두고 우리 작화팀에 지원하게 된 계기도 마음에 들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박상영씨.”
그리고 면접은 박상영의 차례로 넘어갔다.
“포폴을 보면……”
박상영의 포폴이 떠올랐다.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
놀라서 입까지 벌어진 다른 두 지원자의 표정이.
특히나 한혜주는 자신의 면접을 진행할 때보다 더 놀란 거 같았다.
‘그럴 만도 하지.’
단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놀랄 만했다.
박상영에 앞서 두 사람의 개인면접을 먼저 진행한 건 옳은 판단이었다.
나는 포폴의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도 상당히 퀄리티가 높았다.
다른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착각인가?’
박상영에게만 건넨 요청이 아니었다.
따라서 지원자들의 대답 패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하나였다.
상영의 대답이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것.
‘형식이 같아.’
본인이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어떤 그림에는 유독 지원자의 애착이 드러난다거나, 어떤 그림은 다소 미숙하다고 느껴서 움츠러드는 경우도 있다.
박상영은 달랐다.
모든 그림에 대한 설명의 형식이 일치했다.
뭘 그린 거고, 뭘 표현하고자 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그래.’
해설이다.
꼭 그림에 대한 해설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서도연이 입을 뗀 건.
“박상영씨.”
“네.”
“이 포폴을 완성한 기간은 어느 정도죠?”
박상영의 면접이 시작한 후로는 처음으로 도연씨가 건넨 질문이었다.
잠시 멈칫한 상영은 답했다.
“6개월이 좀 넘을 거 같은데요.”
“그럼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 완성한 포폴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 그렇죠?”
도연씨는 물었다.
여전히 이렇다 할 감정이 묻어나지는 않는 목소리로.
“제가 아는 대학교 재학 시절 박상영씨의 그림과는 화풍이 아예 다른데 그 이유가 있나요? 아예 다른 사람처럼.”
“.. 네?”
“박상영씨 말대로라면 졸업 후에 이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건데, 포폴의 시작과 끝은 완성도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거든요. 화풍이 달라졌다면 그 변화와 발전의 과정이 포폴 속에 묻어나야 하는데 이 포폴은 그렇지 않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되어 있으니까.
그 말대로였다.
졸업 후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부터 이미 새로운 그림체가 완성되어 있다.
말이 맞지 않는다.
앞서 내가 말한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박상영이 말도 안 되는 천재라 해도,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 바로 새로운 화풍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는 없으니까.
처음으로 박상영의 얼굴에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하하.. 무슨 얘기인지……”
얼버무릴 수밖에 없겠지.
내가 생각해도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삽시간에 싸늘해진 분위기.
그 시점에 우영이는 세상 태연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슥.
세 장의 종이.
“그려 보세요. 뭐든 상관없으니까.”
나도 버티기 힘든 분위기였다.
그 속에서 한혜주가 가장 먼저 펜을 손에 들고, 이어서 조인애도 펜을 들고, 끝으로 박상영이 마지못해 펜을 손에 쥔다.
부당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박상영에게만 요청한 게 아니었으니까.
사각. 사각.
잠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도 한혜주는 침착하게 그림을 그린다.
조인애도 손을 떨어서 그림이 다소 흔들리긴 하지만, 포폴 속 그림이 직접 그린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슥.
그리고 박상영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실소가 나왔다.
‘.. 사과?’
고등학교 실기 때가 떠오르는 대상 선정이었다.
그리고 우영이는 대놓고 소리를 냈다.
“.. 허.”
그래서일까.
새하얘진 얼굴로 박상영이 스스로 펜을 놓는다.
“커, 컨디션이 별로 안 좋네요. 갑자기 그리려니 뭘 그려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서……”
탁월한 선택이다.
더 그려 봐야 본인에게 악영향만 갈 뿐이다.
그런 걸 계산하기에는 이미 모든 게 너무 명확해져 버렸지만.
내 안에서 99라는 숫자는 이미 100이 되어있었다.
“박상영씨.”
말할 수밖에 없겠군.
“포폴 속 그림이 본인이 그린 게 맞나요?”
웬만하면 꺼내고 싶지 않았던 물음이었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인다.
“맞습니다! 와.. 잠깐만요. 설마 이거로 의심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알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확증은 없었다.
100%의 심증만 있을 뿐이지.
삼촌은 주저하지 말라고 조언해줬지만 그건 명분이 확실할 때였다.
‘기다리는 수밖에.’
명분이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방법은 없었다.
조금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를 팀원으로 뽑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저, 저기……”
고개를 돌렸다.
입을 뗀 건 다름 아닌 지원자 한혜주였다.
그녀가 포폴 속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파격 발언을 내뱉었다.
“.. 제가, 이 그림을 아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