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26)
926화. DD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면접 종료 후에 우리는 면접 결과에 대해 내부적으로 미팅을 진행하기로 했다.
우영이는 참석하지 못할 거 같지만.
‘학생 신분이니까.’
가끔 망각하곤 한다.
우영이가 대학생이라는 걸.
그만큼 학업을 병행하는 와중에도 작화팀에 할애하는 비중이 커서겠지.
그게 우려가 되기도 했다.
‘괜찮아요.’
늘 같은 반응이 돌아오긴 했지만.
보통 이런 경우면 정말 괜찮은 건지 마음이 쓰이긴 했지만 우영이는 달랐다.
우영이가 괜찮다고 하면 진짜 괜찮은 거니까.
그래도 형으로서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절대 꼰대 마인드는 아니었다.
“우영아.”
“네.”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지?”
왜인지 우영이 얼굴에 닭살 돋는 표정이 떠오른다.
그러고선 말한다.
“뭐예요, 그 엄마 같은 멘트는.”
반응을 보아하니 어머님도 비슷한 멘트를 하셨나 보다.
그럴 만도 했다.
학창 시절을 생각할 때 여러모로 우려가 되는 건 사실이니까.
우영이가 교우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나는 괜히 돌려 말했다.
“아니, 뭐 그런 거 있잖아. 대학생 하면 떠오르는 것들.”
“그게 뭔데요.”
친구라고 대놓고 말하면 너무 우영이를 아웃사이더로 몰아가는 거 같았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진심이다.
“뭐, 있잖아. 대학생 하면 떠오르는 풋풋한 것들.”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아오.
퍽 난감했다.
한쪽은 대학을 안 가서 잘 모르고, 한쪽은 현역 대학생인데 나보다도 잘 모를 거 같다.
결국 나는 입에 담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씨씨 이런 거 주위에서 많이 하지 않아?”
“씨씨요?”
“응, 캠퍼스 커플.”
잠깐 생각하더니 우영이가 답한다.
“있긴 하죠.”
“우영이 넌 안 해?”
“왜 해요?”
“왜 하냐면……”
말문이 막혔다.
그러게, 왜 하지?
사실 꼭 씨씨를 하길 바라는 것보다도 우영이가 대학에서 누릴 수 있는 청춘을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 큰 거 같다.
나는 즐겨보지 못한 것들이니 말이다.
“하긴 씨씨는 안 좋을 수도 있겠다. 주위 얘기 들어보면 씨씨 하다가 헤어지면 안 좋다고 들었고.”
“왜 안 좋은데요?”
“글쎄. 같이 학교 다니기 힘드니까? 내 친구도 그래서 한 번 군대로 도피한 적이 있거든.”
미리 말해두지만 성현이 이야기는 아니다.
그 말에 우영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피곤하게 사네요. 헤어지면 헤어지는 거지.”
우영이다웠다.
하기야 우영이는 그럴 거 같다.
애초에 연애를 하는 모습도 잘 그려지지 않지만, 사귀고 헤어진다고 해도 전혀 타격이 없을 거 같으니까.
아닌가?
또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면 다르려나.
‘.. 그건 좀 궁금하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영이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보고 싶은 장면이었으니까.
“어쨌든 씨씨 말고도 대학생만 할 수 있는 건 많지. 엠티도 그렇고.”
엠티 하니까 떠오르는 게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우영이 너 신입생환영회도 빠졌다고 했지? 입학하고 처음 가는 엠티도 빠졌고.”
“네.”
“그런 건 가급적이면 참여하는 게 어떨까 싶은 거지. 작화팀 일정이랑 겹치더라도 최대한 맞춰줄 테니까.”
“……”
심드렁한 표정이다.
그 표정이 뭘 의미하는지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왜 작화팀 일정을 포기하고 그런 걸 참여해야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거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지만.
“그래서 말인데.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거 안 한대?”
“……”
순간 나는 포착했다.
세상 어색한 우영이의 제스처를.
“.. 글쎄요.”
글쎄요는 무슨.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나는 바로 물고 늘어졌다.
“하는 거지?”
“뭐, 뭘요.”
“엠티 비스무리한 거.”
의외로 우영이는 거짓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며칠 전에 물어보긴 했어요. 안 간다고 했는데.”
“간다고 해.”
“네?”
나는 우영이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작화팀 수장으로서의 명령이다. 갔다 오도록.”
억울한 표정으로 우영이가 말한다.
“아니, 그건 너무 직권남용 아니에요?”
완벽한 직권남용이었다.
내가 뭐라고 우영이의 대학 생활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이건 그냥 억지였다.
우영이가 한 번이라도 엠티를 경험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부리는 억지.
“그래서.. 안 들어줄 거야..?”
애교까지 부리며 한참을 물고 늘어졌다.
사실 ‘안 들어줄 꼬야?’라고 하려 했는데 그랬다가는 한 대 맞을 수도 있을 거 같아 이 정도로 합의를 봤다.
다행히 그 선에서 우영이가 백기를 들었다.
“.. 말은 해 볼게요.”
“오! 진짜지?”
“늦어서 안 될지도 몰라요.”
그 정도면 만족이었다.
일단 우영이는 해 본다고 말하면 안 하고서 했다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으니까.
“그래.”
빙긋 웃으며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내일 미팅에 관해서인데 우영이 네가 못 오잖아.”
“네.”
“말해두고 싶은 거 있어?”
우영이는 고개를 젓는다.
“그냥 맡길게요. 어차피 붙어야 할 사람은 다 붙일 거라 생각하니까.”
“하하, 그래.”
그 말대로였다.
나는 이미 기준이 확립된 상태였으니까.
***
오늘도 연두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연두는 왜인지 생긋 웃음 짓고서 고개를 돌렸다.
자연히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톡. 톡.
연두가 내 얼굴에 묻은 슬픔을 털어줬을 때.
사실 슬픔은 아니었다.
‘슬퍼할 일은 아니니까.’
아마 연두가 본 감정은 안타까움 정도의 감정이겠지.
지금은 그냥 웃고 마는 걸 보면 내 얼굴에 그런 감정은 전혀 묻어있지 않나 보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 그래도 가끔은 슬퍼야겠어.’
말이 웃기긴 하지만 한 번씩은 조금 슬플 필요가 있는 거 같다.
왜냐고?
엄청 따뜻했거든.
그 자그마한 연두의 손길이 엄청난 위안이 되는 기분이었으니까.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연두야.”
연두가 고개를 돌아본다.
“.. 으응?”
불러놓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는 연두를 빤히 바라봤다.
마치 눈싸움을 하듯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연두가 말한다.
“왜 그래여, 아빠..?”
아쉽게도 그 멘트는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 ‘연두 얼굴에 뭐 묻었어요?’ 같은 멘트가 나오길 바랐는데.
역시 세상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뭐, 괜찮았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설계하면 되는 일이니까.
“연두 얼굴에 뭐가 묻어서.”
너무 억지 아니냐고?
원래 세상이 그런 법이다.
깜짝 놀란 연두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어디여? 뭐 묻었는데요..?”
“어쩌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엄청 많이 묻었는데.. 아빠가 털어주지는 못할 거 같아.”
“왜요?”
불안한 표정이다.
“더, 더러운 거 묻었어요?”
실소가 나왔다.
더러운 거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뻗어 털어줬겠지.
이제 정답을 말해줄 차례였다.
“프리티가 묻었거든.”
“.. 네?”
“연두 얼굴에 프리티가 잔뜩 묻었어. 큐트도 여기저기 묻어있고. 그걸 털어줄 수는 없으니까.”
“……!”
결국 연두가 예쁘고 귀엽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프리티와 큐티는 내가 얼마 전에 연두에게 가르쳐 준 단어였다.
아쉽게도 러블리는 아직 가르쳐주지 않은 관계로 쓰지 않았다.
이제야 알아챈 걸까.
“아, 아빠..”
연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큰일이다.
예쁨과 귀여움이 더 묻어버렸다.
그렇게 주책을 부리다 보니 어느새 학교 앞에 도착했다.
프리티와 큐트를 잔뜩 묻힌 채로, 연두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대디.. 씨 유 레이러……”
미치겠네.
무슨 마법인 걸까.
그토록 싫어하는 영어인데 연두가 하면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심지어 선태한테 ‘대디’까지 배워왔다.
‘그때도 그랬어.’
삼촌이랑 헤어질 때.
무의식적으로 평소의 인사를 뱉은 연두는 정정했다.
‘씨 유 레이러.. 삼촌!’
‘응?’
‘삼촌 집에 또 놀러오기로 했으니까.. 빠이가 아니라 씨 유 레이러에요..!’
빠이가 아니라 씨 유 레이러.
그 말에는 삼촌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래. 씨 유 레이러, 연두.’
엘리트답게 영어로 인사를 받아줬지.
나도 질 수는 없으니 준비해 온 게 있었다.
“씨 유 레이어, 디디.”
역시나 연두가 고개를 갸웃한다.
사실 회화에서 쓰는 표현은 아니었다.
내가 멋대로 인터넷에서 찾아내서 갖다 붙인 거뿐이지.
일종의 수수께끼인 셈이다.
“디디가 뭐에요, 아빠?”
“글쎄. 선태오빠한테 한 번 물어봐.”
그렇게 수수께끼를 남기고 연두를 올려보냈다.
디디.
그 의미를 알아냈을 때 연두가 보일 반응이 궁금해졌다.
***
연두성분이 가득 채워진 탓일까.
활력이 넘쳤다.
“좋은 아침입니다!”
팀원들과 인사하고 바로 미팅룸으로 들어갔다.
면접은 모두 끝났다.
따라서 미팅 주제는 정해져 있었다.
이제 면접 결과를 바탕으로 합불 통보에 앞서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누구를 뽑을지.’
간단하지만 어려운 문제였다.
긴 고민 끝에 삼촌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나는 기준을 정했다.
그러나 나 하나의 기준대로 정하는 건 옳지 않았다.
그럴 거였다면 면접도 나 혼자 진행했어야 하니까.
‘팀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었어.’
함께 일할 팀원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하면 모두의 의견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며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그 답도 어느 정도 찾은 상태였다.
“본론을 꺼내기에 앞서 먼저 전달사항이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팀원들.
꽤나 중대 사항인 만큼 나는 힘주어 말했다.
“모두 지금 이 공간에 정이 많이 들었을 텐데요.”
이 정도만으로도 팀원들은 내 입에서 어떤 얘기가 나올지 눈치챈 거 같았다.
그럴 만도 하다.
몇 번이나 언질을 주었던 부분이니까.
“아쉽지만 이곳을 떠날 때가 온 거 같습니다.”
이유는 하나였다.
생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 증축을 한다고 해도 지금의 공간은 충분하지 못했다.
좀 더 쾌적한 환경이 필요했다.
“역시 그렇군요.”
“저는 그래도 좋은데요? 아쉽긴 하지만 그만큼 우리 작화팀이 빠르게 성장했다는 거니까요.”
그렇다.
우스갯소리로 주고받았던 말이 있다.
이 공간의 벽을 우리 작업물로 다 채우고 나면 새로운 장소로 옮기자고.
‘그건 실패했지만.’
어찌 보면 그보다 훨씬 더 큰 쾌거를 이뤘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변화였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에 이렇다 할 커다란 장애물은 느껴지지 않았다.
위치도 정해진 상태고.
“그럼 이제 본론인데……”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다들 면접 고생 많으셨습니다.”
“네.”
“초록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축할 만했다.
처음인데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면접을 해냈으니.
변수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나름 잘 극복해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스튜디오 초록’의 미래를 그려갈지 선택해야 합니다. 아마 모두가 동의하는 지원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먼저 서로의 면접 평가를 공유해 볼까요?”
그림에서 절대적인 실력이란 존재한다.
그런 만큼 공통적으로 판단이 겹치는 지원자가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명단이 추려졌다.
-윤서준
모두가 인정하는 귀요미 지원자.
특이사항으로는 아버지에게 간 이식을 해 준 효자다.
그러나 합격이유는 역시 그림이었다.
-신해수
동 나이대의 지원자.
‘장 미셸 바스키아’를 좋아하고 조금은 4차원인 거 같다.
-김동혁
역시나 만장일치의 지원자였다.
탄탄한 포폴과 면접 내용이 인상 깊어 모두가 만장일치로 합격을 준 지원자.
-주세종
만화가 출신으로 연륜에서 나오는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이다.
역시나 만장일치였다.
특이사항으로는 자식이 있는 아빠라는 점 정도일까.
-한혜주
그녀 역시 면접 내용이 유효하게 작용했다.
강사 생활을 하며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왔다는 점에서 열정을 엿볼 수 있었고.
여기까지였다.
고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섯 명이 전부였다.
만장일치로 합격이 결정된 지원자는.
톡.
펜을 내려놓은 나는 말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인데요. 혹시나 나는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 또는 꼭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지원자가 있을까요? 부담 없이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확실한 건 쉽다.
늘 어려운 건 그 밑에 있는 선이었다.
아무리 부담 없이 말하라고 해도, 이 상황에는 부담이 안 될 수가 없겠지.
그래서 내가 스타트를 끊을 생각이었다.
“그럼 제가 먼저 얘기하겠습니다.”
나는 기억에 남는 지원자가 있었으니까.
“조인애씨 기억하시나요?”
그렇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마지막 날에 면접을 진행했던 지원자 조인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