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28)
928화. 진실
미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연두를 데리러 갔다.
“… 아빠!”
표정이 밝아 보인다.
오늘도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냈나 보군.
하기야 이렇게 데리러 왔을 때 연두 표정이 좋지 않은 경우는 드물었다.
“그럼 가 볼까?”
“네에!”
걸어가는 길.
왜인지 쿡쿡 웃더니 연두가 말한다.
“아빠..”
“응?”
“알아냈어여.. 디디 뜻.”
왜 기분이 좋아보이나 했더니 그거 때문이었나 보다.
내심 아쉬웠다.
뜻을 알아내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는데.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진짜? 무슨 뜻인데?”
그러자 연두가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으응? 아빠도 알잖아요.”
“잘 모르겠는데? 기억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안 나는 거 같기도 하고.”
“……”
꽤나 충격받은 표정이다.
어떻게 그런 달콤한 말을 해 놓고 뜻을 잊어버릴 수 있냐는 표정.
이해는 간다.
나도 그럴 거 같으니까.
‘사랑해여, 아빠..’
그렇게 말해놓고 하루도 안 지나서 ‘연두가 언제요?’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라.
상당한 충격일 거 같다.
그래서인지 연두는 풀이 죽은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선 말없이 터덜터덜 걸어간다.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왜 그래, 연두야?”
“.. 아니에여.”
“디디 뜻 알아냈다며. 안 알려줄 거야?”
“기억이 잘 안 나요……”
이렇게 나오시겠다.
부녀가 서로 건망증을 앓고 있는 모양이었다.
굴하지 않고 나는 물었다.
“선재오빠가 알려준 거야?”
그게 유력했다.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가 아니다 보니 해외 생활을 오래 한 선재는 알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역시나 연두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침울한 표정이긴 하지만.
‘안 되겠네.’
이쯤에서 장난은 멈춰야 할 거 같다.
빙긋 웃으며 나는 물었다.
“정말 기억 안 나, 연두야?”
“.. 네.”
“곤란하네. 그럼 아빠가 알려줘야 하나.”
멈칫한 연두가 고개를 든다.
“아빠 기억 안 난다면서여.”
그 말에 나는 연두를 번쩍 들어 안고서 속삭이듯 말했다.
“사랑하는 우리 딸.. ‘darling daughter.’”
깜짝 놀란 표정.
나는 소리 내어 웃으며 덧붙였다.
“장난친 거지. 어떻게 그걸 잊어버리겠어.”
그제야 연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연두도.. 연두도 알고 있었어요!”
“정말?”
“네. 그리고……”
이번에는 연두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디디.”
그러고선 배시시 웃는다.
나로서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나는 몰라도 딸인 연두가 나한테 ‘디디’라고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왜 아빠한테 디디라고 해, 연두야?”
기다렸다는 듯이 연두는 얘기했다.
“선재오빠가 알려줬어요. 디디는 또 다른 뜻이 있어여.”
“또 다른 뜻?”
“네.”
정황은 이러했다.
디디의 뜻을 알게 된 연두가 선재에게 물은 거다.
‘선재오빠..’
‘응.’
‘그럼.. 사랑하는 아빠는 영어로 뭐에요..?’
선재는 즉답했다.
‘Dear dad.’
그러더니 웃으며 말했다는 거다.
‘뭐야. 이것도 ‘디디’잖아.’
‘.. 디디?’
‘그래. 연두 네가 찾는 단어는 디디다!’
그렇게 ‘디디’의 또 하나의 뜻이 탄생한 거다.
아마 실생활에서 쓰는 단어는 아닐 테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아빠도 연두의 ‘디디’예요. Dear dad.”
오히려 좋았다.
나와 연두만 공유하는 단어라는 생각에.
무엇보다도 뜻부터 ‘사랑하는 아빠’가 아닌가.
“그럼 우리는 서로의 ‘디디’인 거네?”
“맞아요!”
신이 난 연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디디. 디디는 영어가 좋아?”
“.. 좋아요, 디디.”
왜일까.
이상하게 어감이 달콤해서 이가 썩을 거 같다.
너무 남발하는 건 조심해야겠다.
“왜 좋은데?”
“그냥 하기에는 쑥스러운 말도.. 영어로 하면 쑥스럽지 않으니까……”
그런 이유였다니.
생각해 보면 의외로 연두도 직접적인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가끔 혼자 엄청 부끄러워할 때도 많고.
“그렇구나.”
영어는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인 거 같았다.
그런 거 치고 지금도 얼굴이 붉긴 하지만.
“아빠도 영어 연습해야겠다.”
“왜요?”
“연두한테 하고 싶은 쑥스러운 말들이 엄청 많으니까.”
잘 모르겠다.
지금 한 말이 그만큼 연두를 사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걸 연두가 알아챘을지.
달콤한 하굣길이었다.
***
“.. 어떻게 됐어?”
우영이를 보자마자 물었다.
“뭐가요?”
“엠티. 물어봤어?”
뚱한 얼굴로 우영이는 답했다.
“.. 했어요.”
“뭐?”
“가기로 했다고요.”
“나이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우영이가 말한다.
“왜 형이 그렇게 좋아해요?”
“당연히 좋지! 아끼는 내 동생이 첫 엠티를 간다는데.”
“……”
멋쩍은 얼굴로 녀석이 중얼거린다.
“엠티가 뭐라고……”
우리 대화를 들은 걸까.
주위에 있던 팀원들이 모여들었다.
“엠티요?”
“우영님 엠티 가요? 와.. 재밌겠다……”
경우씨가 입을 뗀다.
“우영님 엠티 가는 거 처음 아니에요?”
“맞아요, 처음.”
“오호, 이번엔 왜 가기로 결정했어요? 앗, 혹쉬.. 멤버 중에 마음에 드는 학우라도……”
도연씨가 끼어들었다.
“학우라는 표현 너무 옛날 사람 같네요. 경우님.”
“헉, 그랬나요? 제가 너무 엠지하지 못했나요? 하하하!”
그러나 경우씨는 또 한 번의 태클을 당했다.
이번에는 하나씨였다.
“요즘은 엠지 말고 엠제트라고 한대요, 경우님.”
“……”
기죽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엠지.. 아니, 엠제트의 세계는 멀고도 험하군요. 그래서 엠제트의 중심에 계신 우영님이 엠티에 가기로 결심한 계기는?”
뭔가 이상하다.
우영이가 엠제트의 중심이라니.
나이로 치면 분명히 엠제트세대의 중심이긴 한데, 역시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닌 모양이다.
“주원이형이 가라고 해서요.”
“초록님이요?”
“네, 직권 남용인 거죠.”
상황이 단번에 그려진 건지 팀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영님.”
“네.”
“엠티 선배로서 팁을 드리자면…… 술은 최대한 빼세요.”
왜일까.
엠티 팁이라기보다는 우영이 맞춤 팁으로 들리는 건.
그럴 만도 한 게 우리는 회식 때 우영이의 주량을 파악한 상태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처참한 수준이었지.
‘지혜씨가 맥주 한두 캔에 취했던 거 같은데.’
우영이 주량은 그와 비등하거나 조금 아래로 파악된다.
내가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엠티 특성상 술을 많이 마실 텐데, 술에 취해서 사고라도 치면 곤란하니까.
여기서 사고의 케이스는 다양하다.
‘꼭 대형사고만 사고가 아니야.’
엠티를 가 본 적은 없지만 대학에 간 친구 녀석들로부터 엠티 썰을 많이 전해 들었다.
원래 훈훈한 이야기는 재미없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녀석들로부터 전해 들은 건 대부분 부정적인 썰이었다.
신입생 엠티에서 선배 멱살을 잡았다거나, 술자리에 토를 퍼부었다거나, 다짜고짜 여학우에게 고백을 박았다거나.
심지어 이 중 하나는 친구 이야기였다.
누군지는 신상 보호를 위해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어쨌거나……
“맞아. 술은 조심해야 돼, 진짜.”
저번 우영이의 주사는 귀여운 편이었다.
스스로는 흑역사일지 몰라도 주위 사람이 보기에는 오히려 호감도가 증가하는 수준의 주사였으니까.
허나 모르는 일이다.
어떤 주사가 숨어있다가 튀어나올지.
‘많이 마셔본 것도 아니니까.’
만취 경험이 많으면 자신의 주사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조심하게 된다.
가장 위험한 경우는 별로 마셔보지 않아서 스스로의 주사에 확신이 없는 케이스였다.
내 말을 듣고 엠티를 갔다가 흑역사를 만들어오면 우영이를 볼 낯이 없었다.
“걱정 마세요.”
우영이도 성인이었다.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건 엠지.. 아니, 엠제트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하나씨가 입을 뗀 건.
“하아.. 엠티 얘기하니까 엠티 가고 싶다.”
“와, 저도요.”
“근데 그러기에는 너무 늙어버렸네요.. 흑흑.”
“제가 하나씨보다는 조금 어린데요?”
“.. 경우님?”
살기 어린 목소리에 한경우는 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와중이었다.
머릿속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나 스친 건.
“추진해 볼까요?”
“네?”
“작화팀 엠티요. 이제 새로운 팀원들도 들어올 테니 환영회 느낌으로.”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뜨거웠다.
“우와……”
“너무 좋은데요? 친목도 다질 겸.”
그 말대로였다.
서로 어느 정도 가까워지는 건 팀워크에 있어서도 도움이 될 테니.
한번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작화팀 첫 엠티를.
***
딴. 따단.
피아노 연습을 하던 유리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건반에서 손을 뗐다.
“좋아.”
비교적 한가한 나날이 지속되고 있었다.
유리 표현에 따르면 스케줄이 많지 않은 시기였다.
다가오는 콩쿠르 일정도 없었고.
심적인 부담감이 없어서일까.
연습도 잘됐다.
톡.
방음 시공이 된 방이었다.
그 말은 안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엄마아빠의 귀에도.
그리고 유리 손에는 엄마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연두의 부산여행 마지막 시리즈!(feat. 돌아온 터널)]“벌써 마지막이네……”
유리의 얼굴에 아쉬움이 번졌다.
부산여행 시리즈는 요즘 여덟 살 유리가 인생을 사는 낙 중 하나였으니까.
영상을 재생했다.
숙소를 떠나는 장면부터 영상이 시작됐다.
자기도 모르게 유리는 입 밖에 한 마디를 뱉었다.
“.. 또 가고 싶다.”
숙소를 보니 숙소에서의 즐거웠던 기억이 마구 밀려들었다.
한 침대에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를 떨다가 꼭 붙어서 잠에 들었던 것도 유리로서는 처음 해 보는 경험이었다.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직 돌려주지 못한 필름카메라 속에 담았던 기억들이.
“안녕..”
다시 한번 유리는 숙소를 향해 아련하게 인사했다.
이 방 안에서만큼은 솔직해질 수 있는 유리였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었다.
부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 흐흣.”
유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터널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니까.
“나왔다!”
“터널이다..!”
“도전 안 했서! 그러니까 괜찮아!”
첫 터널을 지나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
바로 그 시점에 구세주처럼 등장한 게 아저씨였다.
“얘들아.”
아저씨는 말했다.
“무조건 성공하게 만들어줄게.”
“.. 으응?”
“지금부터 나는 선장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말만 듣는다. 실시.”
“실시!”
왜일까.
홀린 듯이 아저씨의 지시에 따른 기억이 난다.
“.. 멋있었어.”
엄청 멋있었다.
터널이 나올 때마다 확신을 갖고 지시를 내리던 아저씨의 모습은.
새로운 모습이기도 했다.
이레나 말대로 모르고 있었으니까.
‘아저시가 천재였서!’
아저씨 기억력이 그렇게 좋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몇 개의 긴 터널을 지나치고 나서야 아저씨의 지시가 떨어졌고, 보란 듯이 모두가 미션에 성공했으니까.
“.. 흣.”
새어 나오는 웃음.
그 장면을 기대하며 유리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데……
우웅.
뭔가 이상했다.
별안간 카메라 구도가 변경되더니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아이들 반대편의 카메라가 담고 있던 장면이었다.
다리 사이에 끼워두고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커닝하는 아저씨의 모습.
“다음 터널도 패스다.”
“흠, 애매하군. 하지만 모두가 안전하게 통과할 수는 없는 길이다. 도전하지 않는 게 좋겠어.”
“이번에도……”
그런 주제에 잔뜩 폼을 잡고 얘기하는 모습까지.
유리의 입이 벌어졌다.
이윽고 방 안에는 배신감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 아저씨! 우리를 속였어어!!”
진실을 알게 된 유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