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30)
930화. 대장님
합격 메일이 발송됐다.
그 시점에 지원자들은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따로 결과 발표 시각이 정해진 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결과를 접하는 건 지원자들 입장에서 다소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결과를 접한 건 주세종이었다.
사각. 사각.
그는 면접 준비에 한창이었다.
면접은 끝난 거 아니냐고?
‘스튜디오 초록’의 면접은 끝났으나 그의 면접이 끝난 건 아니었다.
만화가의 꿈을 그만뒀다.
그리고 그는 가장으로서 한 아이와 아내를 부양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어디든 취업해야 해.’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어디든 취업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스튜디오 초록’이 일순위인 건 맞지만, 어느 한 곳에 올인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여기 아니면 안 가.
그것도 책임질 게 없는 어린 시절에나 부릴 수 있는 객기다.
“후우……”
또 한 번의 이력서와 포폴을 보낸 뒤에 그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스튜디오 초록.
그곳이 일순위인 이유는 간단했다.
작화팀이라는 특성상 좀 더 그가 추구하는 그림과 맞닿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다.
‘스튜디오 초록’이 작화에 참여한 ‘드림 큐’는 만화의 형식과 굉장히 유사했다.
‘.. 아직 못 버린 건가.’
실소가 나왔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우습게 느껴졌으니까.
이제 개인의 즐거움을 좇을 때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만화가의 꿈을 좇으며 긴 시간을 허비했고, 그 시간 동안 아내의 희생이 뒤따랐다.
‘욕심이었어.’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 반대였다.
이 길이 정답이 아니었던 거다.
얼마든지 다른 길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하나의 길을 고수했던 거다.
늦었지만 그 고집을 꺾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거고.
‘이제는 제게 만화가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흐릿합니다.’
면접에서 거짓말을 해 버렸다.
흐릿하다.
그 말조차 이제는 사치였다.
주세종은 결심했다. 지금 이 순간을 경계로 만화가라는 꿈을 완전히 지우겠다고.
‘붙을 거 같지는 않아.’
냉정하게 생각할 때 ‘스튜디오 초록’에 합격할 거 같지는 않았다.
함께 면접을 본 사람들만 해도 수준이 상당히 뛰어났다.
그리고 젊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나이가 많을뿐더러, 면접관들 입장에서는 걸리는 점도 있었을 거다.
‘원래는 말할 생각 없었어.’
만화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만화를 빼놓고는 이력서 한 줄조차 제대로 적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이 전부 만화와 맞닿아 있었으니까.
‘.. 보였겠지.’
면접관들은 바보가 아니다.
아직 남아있는 미련이 그들의 눈에 분명히 보였을 거다.
작화팀 입장에서 그런 사람을 뽑을 이유는 없었다.
“여보.”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들어가도 돼?”
아내의 목소리였다.
세종은 곧바로 뒤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응, 들어와.”
아내를 향해 세종은 웃으며 말했다.
“뭘 물어보고 들어와. 그냥 들어오면 되지.”
“면접 준비 때문에 바쁠까 봐.”
“하하, 아니야.”
“이거 좀 먹으면서 하라구.”
과일이었다.
왜인지 과일을 보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정확히는 실소였다.
‘뭐가 예쁘다고 이렇게 챙겨주는 거지.’
그녀는 줄곧 세종의 꿈을 응원해줬다.
스스로 꿈을 포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다.
꿈을 포기한 데에 와이프가 준 영향은 조금도 없었다.
되레 그 반대였다.
‘.. 정말 괜찮은 거야?’
몇 번이나 그녀는 물었다.
괜찮은 거냐고.
사실은 묻고 싶었다.
너야말로 이런 무능한 남편이 괜찮은 거냐고, 어떻게 내 꿈을 나보다 더 응원해 줄 수 있냐고.
그러나 입 밖에 뱉지 않았다.
그런 나약한 말들이 아내를 더 아프게 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고마워.”
이번에도 세종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잘 먹을게. 성환이는?”
“친구들이랑 놀러 나갔어.”
“짜식. 지치지도 않네.”
성환이.
세종의 아들이자 세종이 그리던 만화의 애독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애기 때부터 성환이는 한결같이 얘기하곤 했다.
다섯 살 때였을까.
‘아빠가 그리는 만하가 제일 재밌어!’
‘하하, 정말?’
‘응!’
‘좋아. 나중에 아빠가 유명한 만화가 되면 성환이 갖고 싶어 하는 거 다 사 준다!’
‘진짜? 뭐든지 다?’
‘그럼! 제일 가지고 싶은 게 뭔데?’
‘떠따떠따 비행기!’
상당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비행기 장난감 말하는 거지?’
‘아니! 하늘 날으는 커다란 비행기!’
‘……’
결국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비행기 정도로 합의를 봤다.
지킬 수 없게 된 약속이다.
모형 비행기는 사 줄 수 있어도 만화가로 성공할 수는 없을 테니까.
“와.. 맛있는데? 당신도 하나 먹어.”
그런 세종을 바라보며 지연이 말했다.
“여보.”
“응.”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아들은 아빠의 꿈이 가진 무게를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다.
따라서 오직 그녀뿐이었다.
그 무게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괜찮아.”
세종은 힘주어 말했다.
“할 만큼 해서 더 미련이 없어. 진심이야.”
“……”
“오히려 설레는데? 새로운 길에 발을 들인다는 생각에.”
아직은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이제부터 진실로 만들면 되니까.
“스튜디오 초록은 아쉽게 떨어진 거 같은데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좋거든.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지연은 느꼈다.
세종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지는 무게를.
그렇기에 웃었다.
“알겠어. 응원할게.”
“응.”
지연이 뒤돌아 나가려는 참이었다.
“응?”
세종이 외마디 소리를 뱉고서 모니터를 바라봤다.
알림이 떠올라있었다.
클릭과 동시에 떠오르는 메일.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초록’입니다.
내용을 보는 세종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그 표정을 본 지연이 말했다.
“왜 그래, 여보?”
“.. 여보.”
“응?”
“나 합격했대.”
세종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합격했대, 스튜디오 초록!”
“지, 진짜?”
“응!”
부둥켜안는 둘.
그 순간만큼은 다 잊고 기쁨을 만끽하는 세종이었다.
***
메일을 발송한 뒤에 나는 새로운 작업에 들어갔다.
그 작업은 앞으로 일하게 될 일터와 꽤나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여러모로 알아봤지.’
어느 곳이 좋을지 여러모로 알아봤다.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적절한 장소에 위치해 있어야 하고, 공간은 지금보다 넓어야 하고, 여러모로 편의성이 좋아야 했다.
식사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그 모든 걸 고려해서 알아보던 와중에 발견했다.
공유 오피스라는 걸.
말 그대로 여러 회사가 한 건물을 공유하는 건물을 뜻한다.
그런 만큼 건물 내에는 식당을 포함해 직장생활에 필요한 여러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비용도 합리적이고.’
여러모로 최적의 장소였다.
다시 말하지만 공유 오피스는 여러 회사가 함께 이용하는 건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필요한 게 있었다.
‘사원증.’
사원증이 필요했다.
사원증은 출입증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
‘내일 가보기로 했지.’
시설은 군데군데 빠짐없이 사진과 영상으로 확인했지만 직접 보는 것만큼 정확할 수는 없었다.
계약에 앞서 직접 보러 갈 생각이었다.
슥.
그리고 지금 나는 사원증을 직접 디자인하는 중이었다.
꼭 공유 오피스로 가는 게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원증은 필요하니까.
튈 필요는 없다.
최대한 심플하게 디자인하고 싶었다.
‘부끄럽지 않아야 돼.’
작화팀 수장을 맡고 있긴 하지만 우습게도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친구 녀석한테 들었다.
그런 장소에서 회사원들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닌다고.
생각해보라.
목에 걸고 다니는 사원증이 최소한 부끄럽게 느껴지지는 않아야 할 거 아닌가.
‘그래도 초록색을 포기할 수는 없어.’
그건 작화팀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였다.
초록색을 활용하되 너무 튀지 않으면서 산뜻한 느낌을 주는 게 목표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생각보다 금방 초안이 완성됐다.
‘여기서 이름이랑 사진만 바꾸면 끝이지.’
의외로 벅차오르는 기분이다.
사원증이 ‘스튜디오 초록’을 좀 더 팀다운 팀으로 만들어줄 것만 같았으니까.
합격소식은 전해졌다.
‘전부 올까.’
잘 모르겠다.
허나 가능하면 일곱 명 모두를 팀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리고 직접, 사원증을 건네고 싶었다.
***
지원자들은 차례로 합격 소식을 확인했다.
조인애의 경우.
친구와 밥을 먹으며 신세를 한탄하던 도중이었다.
“탈락한 거 같아?”
“……응.”
침울한 목소리.
“근데 나라도 탈락시켰을 거 같아.”
“왜?”
“면접 때 엄청 떨었거든.”
조인애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면접이었다.
“포폴 구성도 잘못한 거 같고.”
포폴도 에러였다.
하나를 확실히 보여주려는 마음에, 다양한 측면을 포폴 속에 구성하지 못했으니까.
“면접이 끝나고 보내긴 했는데, 보셨을지 잘 모르겠어.”
“.. 아쉽다. 1차도 합격했는데. 그래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면접 끝난 지 꽤 됐는데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침울해진 분위기.
얼마나 ‘스튜디오 초록’에 가고 싶어 했는지 알기에 친구로서도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문자 알림음이 귀에 들어온 건.
띠링.
합불 통보는 메일과 문자로 동시에 전송된다.
조인애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뒤집어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소영아.”
“응.”
“.. 이거 꿈 아니지?’
뺏어가다시피 핸드폰을 가져간 소영이 입을 틀어막았다.
이어지는 돌고래 비명.
그게 조인애가 합격 소식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한편 불합격을 100% 확신하고 있는 지원자도 있었다.
김동혁이었다.
사실 불합격을 확신할 정도로 면접을 망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동혁이 스스로 탈락했을 거라 확신하는 건 대진운 때문이었다.
두 천재와 한 조에 걸렸으니까.
윤서준과 신해수.
문제는 그 둘과 너무 친해졌다는 거다.
‘떡볶이를 먹지 말았어야 했나?’
면접이 끝난 뒤 함께 떡볶이를 먹었다.
떡볶이를 사준 이유는 하나였다.
그렇게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을 면접 선배라고 따르는 모습이 순수하게 귀여워서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할 슈 있다, 면접!]헤어지기 전에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다음 날이었나.
‘.. 엥?’
자고 일어나니까 단톡방이 개설되어 있었다.
할 슈 있다, 면접.
단톡방을 만든 건 신해수였다.
신해수 : 그림을 그려봤읍니다(첨부)
해수는 단톡방에 매일 그림을 그려서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했다.
신해수 :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대장님.
생각해봤다.
동나이인 서준씨를 향해 대장님이라 부를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럼 누가 남지?
‘.. 나잖아!’
혹시 몰라서 물었다.
김동혁 : 혹시 대장님이 저인가요?
신해수 : 당연합니다!
그러자 서준씨가 등장했다.
윤서준 : 저도 피드백 부탁드려도 될까요, 대장님?
그때부터 김동혁의 호칭은 대장님이 됐다.
둘은 매일같이 그림을 올렸고, 김동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피드백을 했다.
‘.. 이게 맞아?’
피드백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두 사람이 그리는 그림은 하나같이 입이 떡 벌어지는 그림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스튜디오 초록’에 붙을 일은 없겠구나 하고.
그러나 동혁이 답답해서 침대 위를 데구루루 구르게 하는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 왜 모르는 거냐고!’
두 사람은 자신들이 면접에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며칠 전, 늦은 밤이었다.
윤서준 : …… 대장님.
단톡방 알람이 울려서 들어가니 보이는 건 서준씨의 말이었다.
윤서준 : 혹시 면접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도.. 한 번씩 조언을 구해도 될까요..?
딱 봐도 자신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다.
늦은 밤, 감수성이 폭발한 20세 윤서준이었다.
홈스쿨링을 한 서준에게 있어서 김동혁은 해수와 더불어 처음으로 가까워진 사람이었으니까.
해수도 말을 얹었다.
신해수 : 단톡방.. 안 나가실 거죠..?
동혁은 울고 싶었다.
때로는 순수함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얘들아. 너희는 붙고 나는 떨어질 거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 큰 문제는 조금도 밉지 않다는 거다.
‘왜 이렇게 착한 거냐고.’
김동혁 입장에서도 두 사람은 귀여운 동생이었다.
꼭 병아리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옆에서 하나하나 챙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능력이 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림만 놓고 보면 서준과 해수는 병아리가 아니라 브레스를 뿜는 용이었다.
‘어쩔 수 없어.’
지금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
합불이 정해지고 나면 서준과 해수도 현실을 깨달을 거다.
그리고 자연히 멀어지게 되겠지.
‘.. 그게 맞아.’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단톡방 알람이 울려 들어가 보니 사진이 하나 떠올라있었다.
슥.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 합격했구나.”
반전은 없었다.
역시나 면접에 합격한 서준이었다.
윤서준 : 대장님이랑 해수님도 메일 받으셨나요!
그러자 곧바로 올라왔다.
신해수 : (첨부)
합격 메일이었다.
신해수 : 지금 확인했어요오! 우오아ㅏ아.. 진짜 합격할 줄 몰랐는데……
김동혁 : 축하해요.
알림을 울리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불합격을 의미하는 거겠지.
-저는 아쉽게도……
축하와 함께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참이었다.
결국은 밝혀야 하는 문제니까.
그런데……
띠링.
보란 듯이 알람이 울렸다.
곧바로 들어가 문자를 확인한 김동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축하드립니다.
축하였다.
탈락한 사람에게 축하한다는 표현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최종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반전은 있었다.
당당히 ‘스튜디오 초록’의 최종 면접에 합격한 대장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