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31)
931화. 둥지
메일을 확인한 한동안 동혁은 그대로 멈춰있었다.
“……”
얼떨떨한 표정.
혹여나 누가 장난친 게 아닌가 싶어 메일 주소까지 확인했다.
작화팀 메일주소가 맞았다.
“.. 진짜 합격했다고?”
그제야 현실을 파악한 동혁은 두 손을 모으고서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였다.
합불 여부는 둘째치고 자신을 따르는 두 사람에게 멋진 선배가 되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적어도 같은 길을 걸어갈 수는 있게 됐다.
동료로서 말이다.
“흐윽.. 얘들아, 나도 너희랑 헤어지기 싫었어!!”
과몰입.
핸드폰을 들고 서른 살답지 않게 동혁은 부르짖었다.
그리고 단톡방을 바라봤다.
-축하해요.
그 뒤에는 자신이 남기려던 메시지가 떠올라있었다.
-저는 아쉽게도……
아직 전송하지 않은 상태.
동혁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메시지를 지우는 대신에 동혁은 그대로 보내버렸다.
김동혁 : 저는 아쉽게도……
숫자가 곧바로 사라진다.
둘 다 메시지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 그 시점.
방에 앉아있던 서준은 그대로 얼어붙은 상태였다.
“…… 대장님?”
아쉽게도.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대장님이 떨어지셨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합격 소식이 동혁에게 반전이었던 것처럼, 동혁이 떨어진다는 건 서준에게 있어서 엄청난 반전이었으니까.
“대장님이.. 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야, 서준에게 있어서 동혁은 생각 이상으로 커다란 존재였다.
첫 만남이 떠올랐다.
멋진 정장을 입고서 문을 열고 들어오던 대장님의 모습이.
‘자, 따라 하는 거예요. 내가 최고다!’
‘내가 최고다아!’
‘최고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상황.
그렇게 대장님이 용기를 북돋아 준 덕분에 면접에 자신감을 가지고 임할 수 있었다.
끝이 아니었다.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서준님, 해수님.’
‘네.’
‘지금보다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요. 두 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빛나는 사람이니까.’
단톡방이 생겼을 때도 기뻤다.
서준은 새벽에 한 번씩 감수성이 풍부해지곤 하는 편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감수성이 올라온 새벽에 단톡방에 말했다.
윤서준 : …… 대장님.
윤서준 : 혹시 면접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도.. 한 번씩 조언을 구해도 될까요..?
이유는 하나였다.
면접에 떨어진다고 해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사실상 사회에 발을 내딛고 나서 처음으로 가까워진 소중한 인연이었으니까.
감사하게도 대장님은 답해줬다.
대장님 : 당연하죠.
이런 상황은 전혀 상정하지 못했다.
대장님만 면접에 떨어진다니.
해수도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아, 안 되는데……”
정확히 뭐가 안 된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해수는 똑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때였다.
단톡방 알림이 울린 건.
김동혁 : 합격했습니다!(첨부)
서준과 해수가 동시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 어?”
“뭐야!”
속았다는 걸 깨닫고서 둘은 벌떡 일어났다.
윤서준 : 놀랐잖아요!
신해수 : .. 대장님?
처음으로 대장님을 향해 분노한 두 사람.
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김동혁은 낄낄 웃음 지었다.
김동혁 : 미안해요.
간신히 가라앉힌 후에야 동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서 중얼거렸다.
“다행이야..”
다시 생각해도 벅차올랐다.
‘생각보다 허들이 낮았던 건가.’
극적으로 합격한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채용인원이 꽤 많겠는데……”
허나 동혁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서준과 해수에게 건넨 말이 그에게도 적용된다는 걸.
‘지금보다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요. 두 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빛나는 사람이니까.’
동혁이 합격한 건 면접 허들이 낮아서가 아니었다.
허들은 높았다.
채용인원이 고작 일곱 명일 정도로.
그 일곱 명 안에 들 만큼 동혁이 빛나는 사람이었던 것뿐이다.
그게 전부였다.
“.. 기대되네.”
서준과 해수, 그리고 동혁.
셋의 인연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거 같았다.
***
홍원대 캠퍼스.
우영의 엠티 일정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불평을 하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인 상태였다.
“아무튼 그래서……”
복도를 걷는 우영.
옆에는 은서린이 함께였다.
우영이 학교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다소 일방적이긴 했지만.
“우와.. 방금 봤어?”
서린이 입을 뗐다.
“뭘?”
“방금 지나간 사람. 진짜 예뻤는데. 우리 학교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우영이가 답했다.
“못 봤어.”
다른 이유 때문에 못 봤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
진짜 못 봐서였다.
애초에 본 걸 못 봤다고 할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 풋.”
작게 웃음을 터트린 서린은 말했다.
“진짜 신기하다니까.”
“뭐가?”
“보통 남자들은 저렇게 예쁜 사람 보면 자동으로 시선이 가지 않나? 그렇다고 하던데.”
우영이가 발걸음을 멈췄다.
“보러 갈까.”
“.. 응?”
“그렇게까지 얘기하니까 얼마나 예쁠지 궁금한데.”
입을 삐죽 내밀며 은서린이 구시렁거렸다.
“.. 뭘 또 그렇게까지.”
우영이 피식 웃었다.
당연하게도 진짜 궁금해서 꺼낸 말이 아니었다.
“됐고, 빨리 가자.”
우영이 다시 발을 내디뎠다.
“.. 응.”
그런 와중에 우영이 재차 입을 뗐다.
“근데 마찬가지 아닌가?”
“뭐가?”
“남자가 예쁜 사람 보면 시선이 가는 거면, 여자도 잘생긴 사람 보면 시선이 갈 거 아니야.”
“그, 그러네?”
맞는 말이었다.
살짝 고개를 돌린 우영이 말을 건넸다.
“그런 적 있어?”
“응?”
“너도 그런 적 있냐고.”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이 정도로나마 우영이 학교 친구와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게.
서린의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장면.
“.. 없는 줄 알았는데, 있네.”
강의실에서 우영이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고개를 갸웃하며 우영이는 말했다.
“신기하네.”
“뭐가?”
“난 그런 적 없어.”
서린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다.
“연두 봤을 때는?
예리한 포인트였다.
살짝 멈칫한 우영이는 답했다.
“땅콩은 논외로 둬야지.”
놓치지 않고 서린은 물고 늘어졌다.
“왜 논외야? 논외로 둘 정도로 예뻐서?”
“어리잖아.”
“어린 거랑 상관없지 않나.”
“……”
우영이는 입을 꾹 닫고 걸어갔다.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시선이 가는 정도가 아니라 계속 지켜보며 챙겨주게 되는 것.
그게 ‘논외’의 정의였으니까.
“왜 대답이 없어? 응? 선우영!”
끈질긴 은서린.
그때였다.
서린의 눈에 지금껏 보지 못한 장면이 들어왔다.
우영의 시선이 돌아갔다.
“김소희.”
그리고 이름을 불렀다.
그 시선이 닿는 곳에는 한눈에 봐도 예쁜 여자애가 서 있었다.
“어, 우영아!”
“참가비, 어디로 내면 돼?”
“그건……”
기분이 이상했다.
우영이가 이렇게 또래 여자애와 대화를 주고받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심지어 꽤나 친해 보인다.
“그럼 이따 보자, 우영아!”
“응.”
소희가 가고 난 뒤에 우영이가 말했다.
“뭐 해, 안 가?”
“아, 응.”
걷는 와중에 서린이 자그맣게 입을 뗐다.
“누구야? 방금 그분.”
“과 동기.”
“아……”
또 하나 궁금한 게 있었다.
캐묻고 싶지는 않았으나 궁금증이 더 앞섰다.
“참가비는 뭐야? 어디 참가해?”
“엠티.”
“.. 응?”
“가기로 했어, 엠티.”
“엠티면…… 이번에 가는 연합 엠티?”
“어.”
연합 엠티.
그 안에는 서린의 과도 속해있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우영에게 같이 가자고 졸랐던 서린이었다.
항상 같은 대답이 돌아왔지만.
‘안 가.’
그런데 가기로 했다니.
왜일까.
우영이 마음이 바뀐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툭.
발걸음이 멎었다.
“뭐 해?”
“.. 먼저 가. 나 뭘 놓고 와서.”
“아, 그래.”
본의 아니게 연약한 서린의 마음에 불을 지른 우영이었다.
***
다음날, 공유 오피스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요일은 토요일.
주말로 잡은 이유는 간단했다.
‘비교적 한적할 테니까.’
주말인 만큼 연두도 함께였다.
새로운 ‘스튜디오 초록’의 둥지를 연두도 보고 싶어 할 테니 말이다.
이렇게 말하니 마음속으로는 이미 정한 것처럼 보이는데,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치명적인 결함이나 애로사항이 없다면 계약할 생각이다.
“가 볼까, 연두야?”
“.. 네!”
집을 나섰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손님이 차에 탑승했다.
다름 아닌 우영이였다.
“뭐냐, 땅콩. 너도 있었냐.”
“연두는 알았어요! 우영이오빠 같이 가는 거..”
왜일까.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우영이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귀가 좀 빨개진 거 같은데 착각인가.
어쨌거나……
“그럼 출발합니다.”
가는 동안 얘기를 나눴다.
“최종 합격자는 확인했지?”
“네.”
“어땠어?”
“합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합격했던데요. 잘 모르는 사람도 있긴 한데……”
우영이는 말했다.
“알아서 잘 뽑았겠죠.”
“호오.. 그래도 팀원들에 대한 신뢰도가 있구나.”
“뭐……”
멋쩍은 표정.
빙긋 웃으며 나는 말했다.
“엠티는 다음 주에 간다고 했나?”
“네.”
그러자 연두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 엠티?”
나는 설명해줬다.
“엠티는 우영이오빠가 대학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가는 거야. 이번에 연두가 친구들이랑 같이 부산 놀러 갔던 것도 엠티라고 볼 수 있지.”
“아!”
술 얘기는 굳이 꺼내지 않았다.
연두가 부러운 듯이 말했다.
“재밌겠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우영이가 말한다.
“재밌긴.”
“우영이오빠는 엠티 재미없어요..?”
“안 가 봐서 모르겠는데. 딱히 재미있을 거 같지는 않지만.”
“그럼.. 부산 엠티는요?”
“뭐?”
“부산 엠티도.. 재미없었어요..?”
부산 엠티.
우영이 입장에서는 가불기가 걸리는 질문이었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재미없었다고 하면 연두가 서운해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
결국 우영이는 답했다.
“부산 엠티는.. 낫 배드였지.”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 낫 배드?”
“어.”
“그게 뭐예요?”
“궁금하면 인터넷에 쳐 봐라.”
“낫 배드.. 영어에요..?”
“그래.”
“낫 배드.. 낫 배드……”
검색해보려고 외워두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말한다.
“엠티 재밌게 다녀와여, 우영이오빠!”
그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진에서 본 대로 엄청나게 높은 신식 건물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동행하기로 한 공인중개사였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넵.”
어찌어찌 입구로 들어갔다.
토요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오가는 사람이 있었다.
‘진짜 걸고 다니네.’
목에 걸고 다니는 사원증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필요하겠군.
“뭐, 뭐야?”
“연두 아니야? 연두가 왜 여기 있어?”
“대박……”
역시나 연두는 시선을 끌었다.
짧은 팬서비스를 마치고 아저씨를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탑승했다.
우우웅.
한참을 올라간 뒤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먼저 사용하시게 될 공간을 보여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이쪽입니다.”
“네.”
복도를 따라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걸음이 멈추고 아저씨가 카드를 문 앞에 가져다 댔다.
삑.
동시에 열리는 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앞에 펼쳐졌다.
사진 속에서 봤던 넓은 공간과, 사진 속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창밖의 경치가.
다소 이르지만 발을 내디디며 나는 확신했다.
‘.. 여기다.’
여기가 우리 ‘스튜디오 초록’의 새로운 둥지가 될 거라고.